2026년5월3일, 요한일서 4:9-1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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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026년5월3일, 요한일서 4:9-1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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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5-09 22:35 ヒット 2 コメント 0

本文

  일본 출신의 어느 유명한 크리스천이,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또한, 어떤 과정을 통해 신앙이 성장했는지를 글로 남겼습니다.

  오늘은 그분의 글을 소개하는 것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소개할 글은,

  우리 본향 지체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제가 약간 편집한 글입니다.

 (이 글을 쓴 저자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나는 1861년 3월 23일, 에도(江戶) 코이시카와(小石川)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가정은 무사(武士) 집안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면서부터 싸워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또한, 나는 수많은 신사(神社)마다 각각의 신(神)이 있다고 믿었고,

  그 신들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사람에게는 복(福)을,

  반대로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죄인에게는 벌(罰)을 내린다고 믿었다.

  그 신들 중 내가 특히 존경한 신(神)은 배움과 글쓰기의 신(神)이었는데,

  나는 그 신(神)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매월 25일 그 신에게 경배했다.

  나는 매월 25일, 그 신(神) 앞에 꿇어 엎드려, 내 필체가 더욱 나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도록 도와 달라고, 진지하게 간청했다.


  나는 그 외에도 여러 신들을 섬겼다.

  그런데, 내가 섬기던 신(神) 중에 어떤 신은, 나에게 계란을 먹지 못하게 했고,

  또 어떤 신은 나에게 콩을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더구나 내가 섬기는 신들이 점점 늘어나자,

  어느 신의 요구가 다른 어느 신의 요구와 서로 충돌할 때도 있었고, 따라서 나는,

  내가 섬기는 모든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밤낮 고민했고, 점점 소심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섬겨야 할 신은 날마다 늘어났고,

  마침내 나는, 그 모든 신을 만족시키기가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은 것이다.


  처음 알게 된 기독교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내 영혼을 평안하게 하는 그 음악들(찬송), 그리고 성경 이야기,

  그리고 크리스천들이 내게 보여 준 친절은 나를 매우 즐겁게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5년 후,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라."

  라는 제안과 함께, 내가 지켜야 할 엄한 규칙들과

  내가 희생하며 행해야 할 여러 헌신이 나에게 제시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나의 조국인 일본을 공경하고,

  오직 내 조국의 신들만을 예배하도록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마음은, 성경을 공부할수록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성경을 접했을 때, 나는 그 도덕의 고결함과 위엄에 탄복하였다.

  특히, 성경은 나의 불결함과 불완전함을 깊이 깨닫게 만든 유일한 책이었다.

  내 말과 내 행실, 그리고 나의 사상을 성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더럽기 짝이 없었다.

  내 삶이 온통 기만과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나는 성경을 통해 철저히 깨달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제껏,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삶을 살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면서 좋아하였고,

  다른 사람을 넘어뜨려 서까지라도 성공하기를 원했다.

  나의 목적은 언제나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지만,

  진정한 목적은 나 자신의 이기심과 명예를 채우는 것이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도덕군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매우 공격적인 야심가였다.

  내 생애의 목적은 비루(천박)했고, 사상은 더러웠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천이 된 뒤로, 나의 모든 사상과 행실을

  완전히 바꾸기로 다짐하고, 먼저 아래의 것들을 우선하여 결심했다.

 

  첫째, 나는 이제부터 내 말과 행실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

  둘째,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셋째, 남을 비판하거나 헐뜯는 말을 하지 않겠다.

  넷째, 물건을 탐하고 그것에 집착하는 정욕을 버리겠다.

  다섯째, 게으르지 않겠다.

  여섯째, 원수를 도리어 사랑하겠다.

  일곱째,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지겠다.

  여덟째, 술, 담배, 영화 관람을 중단하겠다.

  아홉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겠다.

  열째, 굳게 결심한 이 마음,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지키겠다.


  한동안 내 결심은 잘 실행되었다.

  더구나, 나의 이러한 변화가 정말 대단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고,

  나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매일 드리는 나의 아침 기도는 뜨거웠고, 또 길었다.

  어제까지 교만하여 잘난체하던 내가, 이제는 침묵하는 자가 되었고,

  나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회개의 눈물과 성경 말씀이 있었다.

  나는 마치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듯한 삶을 살았다.

  또한, 세상에는 내가 믿어 왔던 것처럼, 수많은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기독교의 유일신론(唯一神論)은 내 미신의 뿌리에 도끼날을 대었다.

  많은 신이 아닌,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은, 내 작은 영혼에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나는 콩과 계란을 다시 먹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마치 기독교 전체를 이해한 것처럼 흥분과 감격으로 가득 찼다.

  새로운 믿음이 가져다준 영적 자유는, 나의 지성과 육체에 건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변화가 나에게 유익한 것이긴 했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된 나의 성결(聖潔)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기독교인으로서의 겉모양만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 후, 나의 언행과 생각은 다시 옛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부자연스러운 생활은, 내 주변 가족들과 친구들을 어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마저 부자유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약간의 방종(放縱)이 신앙에 무슨 해(害)를 가져오겠는가 ?"

 "지나친 침묵은 오히려 우울증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완전히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유일한 표시는,

  주일마다 냉랭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과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숙여, 무의미한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 이 목사의 단점, 저 성도의 결점,

  그리고 이웃의 허물을 화젯거리로 삼는 나의 옛 습관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야고보가 말한 대로 "한 혀로, 주되신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고,

  같은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하였다.

 

  야고보서3:9-10.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私たちは、舌で、主であり父である方をほたえ、

     同じ舌で、神の似姿に造られた人間を呪います。)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同じ口から賛美と呪いが出て来るのです。)


  정작 나 자신은, 성경이 말하는 명백한 가르침을 따라 살지도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는,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철면피가 극에 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

  그렇다.

  나는 위선자다. 참된 변화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내가,

  무슨 면목으로 남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하겠는가 ?!


  바로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내 영혼에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고뇌를 가져다주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약속하고 있는데,

  도리어 내 영혼은 깊은 좌절과 고뇌의 미로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영혼의 평안을 찾기 위해서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과 생각을 수없이 정죄했다.

  그 정죄의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컸던지, "차라리 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짐승이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경을 통해 주님은,

  마태복음5:22.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兄弟に対して怒る者は、だれでもさばき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兄弟に

『愚か者』と言う者は火の燃えるゲヘナに投げ込まれます。)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출애굽기20:15 "도둑질하지 말라 (盗んではならない。)"라는

  성경의 말씀 역시, 나를 정죄하고 있었다.

  이 말씀에서 '도둑질'은 절도나 강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도둑질'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지 않은 것을,

  내가 억지로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그렇다. 나는 위선자였고, 살인자였으며, 도둑질한 자였다.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춰볼 때마다,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을 때는, 악을 행했어도 큰 고통이 없었는데,

  진리를 알게 된 후로는 죄를 범할 때마다 고뇌가 나를 압도했다.

 

  결국, 나는 내 죄가 부끄러워서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 잡은 내 손을 절대로 놓지 않으셨다.

 

  당시 나는, 하나님이 겨누는 활의 표적이 된 듯했고,

  그의 화살에 맞아 비틀거렸으며, 그의 손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내가 동쪽으로 도망해도 그가 계셨고,

  내가 서쪽으로 도망해도 그곳에 그분이 계셨다.

  나는 결국, 죄로 인한 가책 때문에, 신앙의 즐거움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식욕도 잃고 밤잠도 이루지 못했으며, 살아갈 기력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헌신과 봉사로 영혼의 고통을 잠시 잊어보려 했다.

  빈민 구호 병원에 보조 간호사로 들어가, 환자들의 발을 씻기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닦아주며, 그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헌신과 봉사는 사랑의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헌신과 봉사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언뜻 사실처럼 보이지만, 진리는 아니다.

  헌신과 봉사가 아름다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우리 마음속에 담겨 있는 사랑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만약, 우리 마음속에 담겨 있는 사랑보다, 더 큰 헌신과 봉사를 억지로 끌어낼 경우,

  우리의 헌신은 위선이 되고, 봉사는 교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

  고아원을 세워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헌신하며 봉사하려고 하는 자여 !

  세상이 그대의 자비로움을 인정하고, 교회가 그대의 헌신을 칭찬할 때,

  그대는 바로 지옥의 벼랑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6:3-4.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あなたが施しをするときは、右の手がしていることを

     左の手に知られないようにしなさい。)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あなたの施しが、隠れたところにあるようにするためです。)


  매일매일 죄로 인해 고통 하던 나에게, 마침내 하나님이 다음과 같은 깨우침을 주셨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갓 태어난 아기의 관계와 같다.

  아기는 어머니로부터 만 가지를 받지만, 아기는 어머니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한다.

  아기가 마침내 자라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깨달았기 때문에 받은 선물일 뿐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도 이와 같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깨달았기 때문에 비로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이 없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의 은혜로

  깨닫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선물로 받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오래전, 하나님을 믿었다. 그분의 선하심도 알았다.

  그리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결심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부모를 배반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성도는, 하나님을 버리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한다.


  그렇다. 과거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성도의 흉내만 내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나의 선한 행위와 의로서, 하나님과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나의 구원에 대해서 그분과 대등한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

  나는 지음을 받은 자면서도, 도리어 지으신 분의 흉내를 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기이면서도, 우주의 창조 사역에 동참했던

  그의 동반자(파트너)가 된 것처럼 너무도 교만하였다.

  아 ! 내가 얼마나 미련했던가 !

  아 ! 내가 얼마나 교만했던가 !

  나의 가장 큰 잘못은, 내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는

  그분의 그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먼저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자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나 스스로,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하나님 외에, 누가 나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어머니의 손을 놓고 진흙탕에 빠진 아이가,

  어찌 스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마침내, 모든 기력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주님 앞에서 다시 선 나는, 수없이 범한 죄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고,

  내가 행한 의와 선행도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태초 이전부터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루신 속죄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로, 저의 교만과 죄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당신께 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미련함과 교만을 깨뜨린, 깨어진 마음뿐입니다."


  잠시 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내 영혼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 후, 나의 기도에는 내 소원을 요구하는 주장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직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청만이 있을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넘칠 뿐이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깊이 인식한 채,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용서가, 주님의 공의(公義)에 어긋나지 않도록,

  나는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깊은 멸망의 수렁에서 건져주신 주님의 은혜를, 내가 어떻게 저버릴 수 있는가 !

  전에 나는 주님의 율법에 압도되었지만, 이제 나는 주님의 엄청난 은혜에 압도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평안과 구원의 길을 발견하였다.

<참고> 성령께서 이 분에게 이 귀한 진리를 발견하고, 또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알게 된 것이, 반드시 그 길을 걷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단지 깨달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평안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실테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소개한 이 글은, 일본의 크리스천들이 가장 존경하는

  内村鑑三(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의 글입니다.

<참고> How I Became a Christian 

『余は如何にして基督信徒となりし乎』(岩波文庫)

  나는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는가 ?

 

  内村鑑三는 앞서 소개한 글에서,

 '하나님이 깨우쳐 주신 진리'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갓 태어난 아기의 관계와 같다.

  아기는 어머니로부터 만 가지를 받지만, 아기는 어머니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한다.

  아기가 마침내 자라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깨달았기 때문에 받은 선물일 뿐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도 이와 같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깨달았기 때문에 비로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이 없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의 은혜로 깨닫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선물로 받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9-10절.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神はそのひとり子を世に遣わし、その方によって、

     私たちにいのちを得させてくださいました。

     それによって、神の愛が私たちに示されたのです。)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私たちが神を愛したのではなく、神が私たちを愛し、

     私たちの罪のために、宥めのささげ物としての御子を遣わされました。

     ここに愛があるのです。)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고, 또 느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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