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년5월11일, 창세기 45:4-11 (요셉의 부모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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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말씀을 되돌아보며, 우리 함께 고백합시다.
성도님 ! 어려서부터 바른 가르침을 받은 아이는, 청년 때에 철이 들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나이가 들어 머리가 희어져도 철들지 않습니다.
성도님 !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줍시다.
또한, 성도님 !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14:28.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わたしは生きている。わたしは必ず、
おまえたちがわたしの耳に語ったとおりに、おまえたちに行う。)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우연히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자기야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
아들이 대답합니다.
"그야 당연히 당신이지 ! 당신은 나의 영원한 1번이야 !"
"그럼, 그다음으로는 누가 좋아 ?!"
"당연히 우리 멋진 아들과 어여쁜 딸이지 !"
"그럼 세 번째는 누구야 ?!"
"이렇게 예쁜 당신을 낳아주신 장모님이시지 !"
"그럼 네 번째는 누구야 ?!"
"어 ∼ 우리 강아지 해피 !"
"그럼 다섯 번째는 누구야 ?“
아들이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 ∼ 또 누가 남았더라 ! 아 ! 그래, 우리 엄마 !"
아들과 며느리의 이런 대화를 들은 어머니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가면서, 메모 하나를 남겼습니다.
"불효막심한 아들과 그 아들의 영원한 1번 보아라 !
5번은 집을 나간다.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살아라."
몇 해 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국민일보가 이런 기사를 냈습니다.
[최근 주목할 만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정재기 교수의
'한국의 가족 및 친족간의 접촉빈도와 사회적 지원의 양상'이란 논문입니다.
정교수는 25개국 3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관계가, 부모의 재산에 좌우된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OECD 15개 국가도 함께 조사했는데,
한국과 다른 OECD 14개 국가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일본,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는,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녀들의 부모 방문 횟수가 많았는데,
한국은 부모가 가진 재산이 적을수록, 부모를 찾아가는
자녀들의 방문 횟수가 도리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부모가 재산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인적 연결망(人的 連結網)이 넓어져서,
자녀와의 만남의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고,
반대로, 부모의 재산이 적으면 시간적 여유가 많아,
자녀와의 만남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한국은,
부모의 재산이 많을수록 자식들이 자주 찾아가고,
부모의 재산이 적을수록 자식들이 찾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자녀들은, 자기의 부모가 필요할 때는 부모를 찾지만,
반대로 부모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는 부모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한국 자녀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 본향교회에 와서 이런 조사를 했다면,
분명 그 결과는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또한, 정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런 것도 밝힙니다.
한국인들은 '물질적 도움'을 받기 원할 때는 가족이나 친척을 찾지만
'정서적 도움'이 필요할 때는 친구나 동료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정교수가 시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한국인 51.9%는 '가족과 친척'을 꼽았습니다.
친구·이웃·동료(19.1%), 은행 등 공식기관(13.2%), 배우자(8.9%)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대로 '고민되는 일이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 누구와 상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한국인의 55.3%가 친구·이웃·동료를 먼저 꼽았습니다.
배우자(20.7%)나 가족·친족(17.3%)은 뒷순위였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며,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됩시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을,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로 키웁시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한 명의 효자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자 ! 요셉은 어떻게 부모를 공경했을까요 ?!
첫째, 요셉은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과 그 열두 아들은 목축업을 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목자들을 천민계급으로 분류했습니다.
요셉도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애굽에 온 아버지 야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버지를 애굽 왕 바로에게 당당하게 소개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직업, 형제들의 직업 역시, 당당하게 밝힙니다.
창세기46:31-34.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ヨセフは兄弟たちや父の家の者たちに言った。
「私はファラオのところに知らせに上って行き、申しましょう。『カナンの地にいた、
私の兄弟たちと父の家の者たちが、私のところにやって来ました。)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この人たちは羊飼いです。家畜を飼っていたのです。この人たちは、
自分たちの羊と牛と、所有するものすべてを連れて来ました。』)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もしファラオがあなたがたを呼び寄せて、『おまえたちの職業は何か』と聞いたら、)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こう答えてください。『しもべどもは若いときから今まで、
家畜を飼う者でございます。私たちも、また私たちの先祖も』と。」)
여러분 !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당시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습니다.
애굽의 귀족들과 고관들이 요셉과 그의 모든 가족이 목자(牧者)인 것을
알게 되면, 분명 요셉을 우습게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자기의 출신환경과 자기 부모와 자기 형제들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자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식, 그는 효자요 효녀입니다.
자기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녀, 불효자요 불효녀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의 시대는 모든 환경이 어렵던 시대였습니다.
식민 통치하에서 자랐고, 6. 25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으며,
파란만장한 고난과 고통, 역경을 견디신 분들입니다.
글을 쉽게 배울 수 없던 시대였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분들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글을 모른다고 창피하게 여기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어쩌다 카톡 편지를 보내셨는데, 받침도 하나도 안 맞고,
문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편지라고 구박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요,
더 나아가 그 부모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입니다.
어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복 주시겠으며 높여 주시겠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5: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あなたの父と母を敬え。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とおりに。
それは、あなたの日々が長く続くようにするため、また、あなたの神、
主があなたに与えようとしているその土地で幸せになるためである。)
둘째, 요셉은 형제들과 화목을 통해, 부모에게 효도합니다.
부모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
물론입니다.
자녀들이 서로 우애하며, 서로 돕고, 서로 이끌어 주며,
혹 다툼이 있더라도 곧 용서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 만약, 우리의 아들과 딸이 틈만 있으면 싸우고, 차례로 찾아와,
서로 자기 상대를 비방하고 욕하며, 자기편을 들어 달라고 한다면,
부모인 우리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아니면, 고통스럽겠습니까 ?!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의 형들은 과거에, 요셉에게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못된 짓을 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 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고통들이 쉽게 잊혀지겠습니까 ?!
형들의 악행을 쉽게 용서 할 수 있었겠습니까 ?!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5-8절.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私をここに売ったことで、今、心を痛めたり自分を責めたりしないでください。
神はあなたがたより先に私を遣わし、いのちを救うようにしてくださいました。)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というのは、この二年の間、国中に飢饉が起きていますが、
まだあと五年は、耕すことも刈り入れることもないからです。)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神が私をあなたがたより先にお遣わしになったのは、
あなたがたのために残りの者をこの地に残し、また、大いなる救いによって、
あなたがたを生き延びさせるためだったのです。)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ですから、私をここに遣わしたのは、あなたがたではなく、神なのです。
神は私を、ファラオには父とし、その全家には主人とし、
またエジプト全土の統治者とされまし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한마디로 요셉은 성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죽이려 한 형들을, 도리어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혹시 형제 자매간에 불편한 분은 없습니까 ?!
돈 문제로, 유산문제로, 또는 예의 문제로 서로 불화 중입니까 ?!
만약 그렇다면, 그런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과 눈물로 지켜보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불효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같은 어머니의 태(胎)에 있었고,
같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습니까 ?!
더군다나 여러분 !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것은 형제 자매간에 일어난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 자매간에 얼굴 붉힐 일이 있었다면,
그 배후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용서를 못합니까 ?!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요.
성도여러분 !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로마서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兄弟愛をもって互いに愛し合い、
互いに相手をすぐれた者として尊敬し合いなさい。)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요한을 통해, 우리에게 무섭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3:10, 12.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このことによって、神の子どもと悪魔の子どもの区別がはっきりします。
義を行わない者はだれであれ、神から出た者ではありません。
兄弟を愛さない者もそうです。)
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カインのようになってはいけません。彼は悪い者から出た者で、
自分の兄弟を殺しました。なぜ殺したのでしょうか。
自分の行いが悪く、兄弟の行いが正しかった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형제자매와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성도여러분 ! 마귀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습니까 ?!
셋째,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부양(扶養)하는 효도를 합니다.
창세기47:12. <요셉이>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またヨセフは、父と兄弟たちとその一族全員を、
扶養すべき者の数に応じて、食物を与えて養った。)
그렇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노후를 책임지고 담당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형들과 형들의 모든 가족도 책임졌습니다.
조연경씨가 쓴 '효도 별곡'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둣집을 경영하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부부는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둣가게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 둘은, 늘 따로따로 가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만두를 시켜놓고는 마치 연애하는 분들처럼
애틋하게 서로에게 먹여줍니다.
그래서 만둣집 주인은, 이 두 노인이 아마도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이였다가,
말년에 그 사랑을 잊지 못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썩이곤 했습니다.
한참 뒤에 일어나 만두값을 치른 할아버지는
그 날만큼은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만둣집을 나섰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마치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만둣집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어느 수요일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둣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만둣집 부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얼굴은 예전과 달리 몹시 초췌해 보였고,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부부를 향해, 할아버지가 답례로 보인 웃음은,
울음보다 더 슬퍼 보였습니다.
만둣집 여자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는 마치 독백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첫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어엿한 부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아들의 집에서,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서 각각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식들끼리 싸운 결과였습니다.
큰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자기 혼자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라고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아들들이 공평하게(?)
한 분씩을 모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만 되면,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그 만둣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온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기 이야기의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우리 할멈과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까지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물질의 복뿐만 아니라, 끝없이 섬겨도 지치지 않는,
사랑의 마음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부모공경과 형제 우애를 위해,
물질의 복과 사랑의 마음의 복을 하나님께 구합시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의 옛날 속담에 [효자는 하늘에서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효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만이 참 효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하나님)에서 보냄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子どもたちよ。主にあって自分の両親に従いなさい。
これは正しいことなのです。)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あなたの父と母を敬え。」これは約束を伴う第一の戒めです。)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そうすれば、あなたは幸せになり、
その土地であなたの日々は長く続く」という約束です。)
자 ! 우리 함께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로, 부모님께 감사드립시다.
어머니의 마음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1938년)
(1)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참고> 가이없어라 : 끝이 없다, 한도가 없다.
(2) 어려서 안고 업고 길러 주시며 /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 어머니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우리에게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