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년4월6일, 다니엘 9:1-2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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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말씀을 되돌아보며, 우리 함께 고백합시다.
우리 인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 유일하게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겨, 우리의 노력으로는
악(悪)한 본성(本性)을 온전케 할 수가 없는, 큰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든 죄인 중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시고,
믿음과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 중에, [만남의 복]도 참 중요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 젊은 나이에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만남의 복] 때문입니다.
첫 번째 만남의 복은, 신앙의 스승인 전대홍 목사님의 만남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교회를 사임하여 떠나고,
새로운 목회자가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전대홍 목사님입니다.
당시 그분은 40대 초반의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 목사님의 가르침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기도 훈련, 말씀 훈련, 예배 훈련, 섬김 훈련, 드림 훈련, 찬송 훈련 .....
모든 것이, 단순한 배움이 아닌, 말 그대로 훈련이었습니다.
그때 전 목사님이 자주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천국사관학교(天國士官學校)입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생도(生徒)가 장교(將校)가 되는 것처럼,
우리 교회의 훈련을 잘 받은 성도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장교(將校)가 될 것입니다."
당시 여러 선후배, 그리고 성도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힘들어서요.
그러나 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저에게 그 훈련을 받을 힘과
마음도 주셨고, 결국, 그 훈련을 다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제 스승이 또 한 가지 강조했던 것은,
[일찍 순종 (遅れないように早く従順)]이었습니다.
전 목사님 자신은, 일찍이 고등학교 때, 목회자가 될 것을 하나님과 약속했으나,
세상을 실컷 경험하고, 40대가 되어서야 신학교에 갔답니다.
그런데, 말만 경험이지, 온갖 고난이란 고난은 다 겪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루기만 했던 불순종 때문에요.
그래서 저를 비롯한 헌신자들에게는 [즉시 순종, 바로 순종]을 늘 강조했습니다.
결국, 저는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바로 신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좋은 신앙의 스승을 만나는 복을 주셨고,
그 스승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 일찍 순종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에 지금도 감사하고, 또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두 번째 만남의 복은,
[하나님의 열심, 저자 박영선, 1992년]이라는 책과의 만남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한다.
더 헌신해야 한다.]라는 부담 속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인간 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믿음(신앙)은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다]라는
성경적 원리를 강조합니다.
즉,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노력으로 생기고, 또 성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고, 하나님이 성장시켜 나가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신앙을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에 초점을 맞춥니다.
박 목사님은 이 책에서
[믿음(신앙)이란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신 것]이라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나 열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攝理)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우리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 개념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셔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이 책에서 성경의 큰 인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처음부터
위대한 신앙(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베드로, 바울 ... 그들은 연약했고, 실패했고, 넘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그들의 신앙(믿음)을 키워가셨습니다.
저는 1990년대 초, 하나님의 은혜로 이 책을 만난 다음,
하나님을 보는 눈도, 성경을 보는 눈도, 성도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당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의 복은, 꼭 사람과의 만남뿐만이 아닙니다.
이렇듯 책과의 만남도 복된 만남입니다.
몇 년 전, UN이 세계 각국의 독서량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성인(成人)의 독서량은 세계 192개국 중 166위였습니다.
주요 국가의 월간(月間) 독서량(讀書量)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 한국 0.8권.
특히, 한국 성인(成人)의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대별로 한국 성인의 [비(非) 독서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 비(非) 독서율: 1년 동안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비율
20대 25.5%, 30대 32.0%, 40대 52.1%, 50대 63.1%, 60대 이상 84.3%.
그렇습니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분들의 비율이 높아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떤가요 ?
약 500년 전,
중세 교회가 하나님과 신구약 성경으로부터 멀리 떠나버렸을 때,
하나님은 루터와 칼빈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루터가 1517년(루터의 나이 34세), 독일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올렸을 때, 칼빈은 아직 8세의 어린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칼빈과 루터는 1세대쯤 다른 세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은 한 사람의 공통 스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 A. D. 534∼604)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칼빈과 루터는 어떻게, 1,000년 전에 살았던 어거스틴을
각각 스승으로 둘 수 있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루터도 칼빈도 어거스틴이 쓴 책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루터가 어거스틴을 스승으로 삼은 것은 그의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루터가
어거스틴의 책을 통해, 바울의 신앙을 깊이 깨달은 결과였습니다.
(물론,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칼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책과의 만남은, 때때로 사람과의 만남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더구나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가지게 합니다.
마치 칼빈과 루터가, 천 년 전의 '신앙의 선배'였던 어거스틴을
공통 스승으로 둘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약 2년 전, 우리교회 집사님으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성도의 공동생활]입니다.
독일 출신의 본회퍼는, 세계적인 목사요, 세계적인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졌던 본회퍼 목사님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교회는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교회의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했고,
히틀러를 암살하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부 과격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참고> 에큐메니컬 운동 : 교회들이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연합으로 추진하는 선교 및 사회 활동. 본래는 좋은 목적으로 시작했으나,
연합을 강조하다 보니, 복음의 진리까지 타협하고, 포기할 상황에 이르기도 함.
더구나 본회퍼는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보다는 자유주의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본회퍼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이,
잘못된 선입관(先入觀)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에 두 번에 걸쳐, 우리 본향 성도들에게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과거,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2:13.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かつては遠く離れていたあなたがたも、今では
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近い者となりました。)
그러므로 우리는, 남남(他人)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에베소서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あなたがたは、もはや他国人でも寄留者でもなく、
聖徒たちと同じ国の民であり、神の家族なのです。)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 더더욱 깊고 다정한, [성도의 교제 (聖徒の交わり)]를 나눕시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본향교회(본향 공동체)로 보내신 것은,
우리 본향교회의 부족한 것들에 대해 불평하며,
본향의 영적인 체온을 끊임없이 재어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본향교회의 꿈을, 본향 교회 자체보다도 더 사랑하는 지체는,
그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라 해도,
자칫 본향교회를 파괴하는 파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우리 본향교회에 이미 주신 것들을,
날마다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며, 서로를 격려한다면,
우리 본향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더욱 견고하게 될 것이며,
더욱 성숙해질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책과의 만남은,
잘못된 선입관(先入觀)을 고침을 받기도 하고, 또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 에디슨을 발명왕으로 만든 것도 책이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입학 후, 겨우 석 달 만에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그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이에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에게 책들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그 책들은 에디슨의 어린 두뇌와 마음에 지혜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에디슨에게, 발명가가 지녀야 할 상상력과 창의력은,
바로 이때 입력된 것이 분명하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에디슨이 겨우 9살 때에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책들을 읽혔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어른이나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책들을 말입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통해 책과의 만남을 즐기던 에디슨은,
이미 10대 초반에 '로마제국 흥망사'를 읽고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길렀고,
파커의 '자연과학의 학교'를 통해, 과학적인 의문들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는 12세 때부터 열차판매원으로 기차 안에서 신문과 음료를 팔았었는데,
일이 끝나면 곧바로 디트로이트 시립도서관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그 도서관 책 전부를 읽어버렸습니다.
훗날 에디슨이 고백합니다.
“나의 피난처는 디트로이트 도서관이었습니다.
나는 맨 아래 칸 왼쪽의 책부터 맨 윗줄 오른쪽의 책까지 순서대로 읽었습니다.
문고판, 백과사전, 전집을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초등학교에서도 쫓겨난 에디슨이
세계적인 발명왕이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많은 책을 통해, 수많은 만남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또한, 본향의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여러분 !
특히, 이번 주간부터 새 학년에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여러분 !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이 주는 정보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도 많고,
재미와 즐거움도 주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과 삶을 파괴하는 것도 많습니다.
더구나 얻은 정보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시간을 조금 줄이고,
대신 좋은 책을 만나시기를 부탁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28살 때 진보적 단체에 가입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 후 8개월 만에 사형집행을 선고받게 됩니다.
그는 곧바로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황제의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사형중지 !”
그에게는 시베리아 감옥에 가두라는 새로운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유형지(流刑地)로 가는 도중,
하나님은 그에게 성경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유배 생활 내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의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만남을 통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세계적인 작품을 기록하게 됩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들을 통해, 세계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 책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가지되,
꼭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또한, 여러 책을 통해, 만남을 넓게 하시되,
꼭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あなたがたは、聖書の中に永遠のいのちがあると思って、聖書を調べています。
その聖書は、わたしについて証ししているも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반드시 예수님을 만납니다.
더구나 여러분 ! 예수님도 성경(구약성경)을 즐겨 읽으셨습니다.
누가복음4:16-17.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イエスはご自分が育ったナザレに行き、いつもしているとおり安息日に
会堂に入り、朗読しようとして立たれた。)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구약성경 이사야>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라>
(すると、預言者イザヤの書<舊約聖書>が手渡されたので、
その巻物を開いて、こう書いてある箇所に目を留められた。)
또한, 바울도 성경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디모데후서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あなたが来るとき、トロアスでカルポのところに置いてきた外套を持って来てください。
また書物、特に羊皮紙の物を持って来てください。)
그렇습니다.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은 '구약성경'이 분명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 중에, [만남의 복]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남의 복은,
꼭 사람과의 만남뿐만이 아닙니다.
책과의 만남도 복된 만남입니다.
신앙과 관련된 책은 물론, 교양서적, 과학서적, 위인들의 전기(傳記),
시와 수필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통해, 복된 만남을 확장해 가십시오.
특히, 매일 성경을 읽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을,
가장 복되고, 가장 행복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은,
구약성경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습니다.
본문1-2절.
1. .......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ダレイオスが、カルデア人の国の王となったその元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すなわち、その治世の第一年に、私ダニエルは、預言者エレミヤにあった
主のことばによって、エルサレムの荒廃の期間が満ちるまでの年数が
七十年であることを、文書によって悟っ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획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알려 주신 그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쁨과 사명을 줍니다.
하나님은 본문의 다니엘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매일 성경을 읽어,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 쓰시는 귀한 사명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은혜를 항상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