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년3월16일, 전도서 3:11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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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다윗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짓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충성할, 헌신자들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성전을 세울 각종 재료와 헌물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의 방식(方式)]이었습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취미 중 하나였습니다.
'저 별은, 내가 있는 이곳으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있는 별일까 ?!'
'저 별까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면,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
'저 별은, 저렇게 작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클까 ?!'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다 보니,
그 별들 대부분은 지구보다 수백 수천, 수만 배가 크다는 것을 알았고,
그 별까지는 지금 인류가 가지고 있는 어떤 빠른 비행물체로도,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별들이 너무나 먼 곳에 있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에게 다가온 생각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무한(無限)하게 크고 넓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두다 보니, 제 모습이 조금은 허황(虛荒)되고,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말씀을 알게 하셨습니다.
전도서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神のなさることは、すべて時にかなって美しい。
神はまた、人の心に永遠を与えられた。)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본문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新共同譯. 神はすべてを時宜にかなうように造り、)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상 일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물체들과 생명들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것 중에, 저절로 생겨난 것이 있을까요 ?!
강단의 십자가, 예배당 뒤편에 있는 시계나 종이 한 장이라도,
누군가가 만든 것이거나, 선대(先代)로부터 생명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작은 먼지 하나도, 그 입자(粒子)를 살펴보면, 누군가가 만든 것의 조각이거나,
선대(先代)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의 파편(破片)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시작인 창세기부터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はじめに神が天と地を創造された。)
출애굽기31:17.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わたしが六日間で天と地を造り、七日目にやめて、休息したからである。)
이사야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あなたがたは目を高く上げて、だれがこれらを創造したかを見よ。
この方はその万象を数えて呼び出し、一つ一つ、その名をもって呼ばれる。
この方は精力に満ち、その力は強い。一つも漏れるものはない。)
이사야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わたしは光を造り出し、闇を創造し、平和をつくり、
わざわいを創造する。わたしは主、これらすべてを行う者。)
골로새서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天と地にあるすべてのものは、見えるものも見えないものも、
王座であれ主権であれ、支配であれ権威であれ、御子にあって造られたからです。
万物は御子によって造られ、御子のために造られました。)
요한복음1:1-3.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この方は、初めに神とともにおられた。)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すべてのものは、この方によって造られた。造られたもので、
この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一つもなかっ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65:17. 보라 !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見よ、わたしは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創造する。
先のことは思い出されず、心に上ることもない。)
이사야65:25. <그곳에서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狼と子羊はともに草をはみ、獅子は牛のように藁を食べ、
蛇はちりを食べ物とし、わたしの聖なる山のどこにおいても、
これらは害を加えず、滅ぼすこともない。)
이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복과 안식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영원(永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11절.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神はまた、人の心に永遠を与えられた。)
이 말씀의 원문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하올람 나탄 벨리밤]인데,
그 뜻은, [그가 그들의 마음에 영원을 두셨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것을 느끼고,
또한,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느끼고,
또한,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마음을 주셨을까요 ?!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1>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신 것을 깨달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시편136:1-9.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主に感謝せよ。主はまことにいつくしみ深い。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神の神であられる方に感謝せよ。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3.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主の主であられる方に感謝せよ。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ただひとり, 大いなる不思議を行われる方に。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英知をもって天を造られた方に感謝せよ。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地を水の上に敷かれた方に。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大きな光る物を造られた方に。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昼を治める太陽を。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夜を治める月と星を。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 우리 인간도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ます。
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永遠に続くからです。)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100여 년의 삶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전체의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明日のことは分かりません。
あなたがたのいのち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
あなたがたは、しばらくの間現れて、それで消えてしまう霧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잠시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고 마는 안개와 같이, 참으로 짧고도 짧습니다.
그렇다면, 안개와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요한복음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わたしは彼らに永遠のいのちを与えます。彼らは永遠に、決して滅びる
ことがなく、また、だれも彼らをわたしの手から奪い去りはしません。)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 세상에서의 우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동거할,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바로 앞은 물론 영원한 것을 봅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마사 그레이엄은 현대무용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1991년 97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도,
쉼 없이 작품을 구상하고, 가르치고 직접 무대 위에서 공연했던,
그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도 훌륭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은,
수백 년 동안이나 지속하여 왔던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린 데 있습니다.
그녀는 1894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 그레이엄을 불러, 컵 속에 있는 물을 보게 했습니다.
그것은 수정처럼 맑은 물이었습니다.
곧이어 아버지는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에 떨구어 놓고,
딸에게 그 속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현미경을 통해 본 물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아무것도 없이, 맑게 보였던 물인데도 말입니다.
그레이엄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레이엄 ! 너는 겉에 드러나 있는 것만을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겉모습 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린 그레이엄 마음속에 이 말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그레이엄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슬픔이, 딱딱한 품위 속의 위선이,
친절 속의 분노와 증오가, 무지함 속의 순박함이 보였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신은 뚜렷이 볼 수 있는 진실을,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발레를 택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보다 무용이 더 편한 자기표현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본 감추어진 진실을 나타내기에는,
고전 발레의 틀은 너무나 좁고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하게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리고,
현대무용의 막을 올리는, 최초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보이지 않는 영원(永遠)을 보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어릴 때부터 별과 우주를 참 좋아합니다.
그중 가장 관심 깊었던 분야는 우주의 크기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주장으로, 우주의 크기는 약 950억 광년(光年)입니다.
1 光年은 빛이 1년 동안 달려가는 거리로서 약 9조 5천억km입니다.
<참고>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돕니다 -> 秒速 약 30만km
그러므로 지금의 우주 크기를 km로 계산하면,
95,000,000,000 (950억 광년) x 9,500,000,000,000 (9조 5천억 km)
= 902,500,000,000,000,000,000,000km입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우주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에서 300光年 떨어진 별은
1시간에 36,000km씩 지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무지하게 큰 우주는,
바로 이 순간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제가 가끔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은,
커질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주는 지금 풍선처럼 커지고 있다 하는데,
풍선이 커지려면 커질 공간이 있어야 커지는 것 아닙니까 ?
무엇인가가 가로막고 있으면 풍선은 절대 커질 수 없지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가 커진다. 그렇다면, 그 우주의 밖은 무엇인가 ?'
제가 우주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또다시 한 발자국을 디디면, 그곳은 우주가 아닌가 ?'
이에, 과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우주는 무한(無限)하다고, 우주는 영원(永遠)하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무한하고 영원한 공간인 우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있는 것들만 쳐다보고,
그 뒤에 펼쳐진 놀라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삶을 버립시다.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우리가 됩시다.
둘째,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영원한 것을 누리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주신 이유는, 영원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배를 주셨다면, 우리가 그 보배를
박물관이나 금고 속에 넣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보배의 힘과 기쁨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영원한 것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1>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의 품에 1000만 엔을 가진 사람은, 1000엔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 우리에게 영원한 것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누리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예를 들면, 하나님, 천국, 영생)들을 이미 가졌으니까요 !
2>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에는 평화, 평강, 평안, 화평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히브리어 ‘샬롬’과 헬라어 ‘에이레네’를 옮긴 것으로, 모두 같은 뜻입니다.
미국의 전도자 코넬은 자신 속에 평강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평안이란 없습니다.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모두, 낡아져서 소멸하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낡아져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서는, 어떤 평안도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넬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코넬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평화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화(샬롬, 에이레네)는 오직 위로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만 내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함께 찬양 드립시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 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리석은 모델이 아니라면,
모델은 자기가 입은 옷과 같은 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입은 옷뿐 아니라, 자신까지 없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곧 없어질 세상의 것들로 배경을 삼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동시에 망치고 죽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것은 다 소멸하여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분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을 때에만, 우리도 살고,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도 영원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1> 눈앞의 것만 바라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봅시다.
2> 영원을 누리는 가운데, 지금 눈앞의 유혹을 이겨내고,
영원한 평안을 누립시다.
끝으로, 그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며 삽시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5:5. 이것<영원한 생명, 행복, 기쁨>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そうなるのにふさわしく私たちを整えてくださったのは、神です。
神はその保証として御霊を下さいました。)
한평생, 썩어질 육신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선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主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