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4년12월22일, 누가복음 19:28-36 (주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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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메시지를 잠시 돌아보겠습니다.
5일 후, 악한 무리에게 잡혀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대속(代贖)을 이루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눈앞에 두고 두 제자에게 명하셨습니다.
본문30절.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そこに入ると、まだだれも乗ったことのない子ろばが、
つながれ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連れて来なさい。)
이 예수님의 명령은, 순종하기 어려운, 좀 부담스러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조금 마음 불편한 예수님의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
물론입니다.
주님(主, 王)께서 말씀하시면, 그냥(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을 王과 主로 믿는 사람들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役事)가 일어날 때를 보면, 항상 똑같은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과테말라 [알모롱가]의 마리아노 목사님처럼, 그대로 순종해 버립시다.
마음에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에 굴복하지 말고,
평양의 길선주 장로님처럼, 부끄럽고 창피해도, 주저함 없이 즉각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금 그릇]이 됩시다.
할렐루야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난 주일의 말씀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어린 나귀]를 끌고 오라"는 명령을 받은, 두 제자 중심의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린 나귀]와 그 [나귀 주인]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본문 30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본문30절.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向こうの村へ行きなさい。そこに入ると、まだだれも乗ったことのない子ろばが、
つながれているのに気がつくでしょう。それをほどいて、連れて来なさい。)
자 ! 여러분 ! 이 말씀을 보면,
두 제자가 끌고 올 나귀는 장성한 나귀입니까,
아니면 아직 어린 나귀입니까 ?!
예 ! 아직 어린 새끼 나귀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이 어린 나귀는 이제껏 사람을 태워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
예 ! 아직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이 어린 나귀를 어디에 쓰시려고, 끌어오게 하신 것입니까 ?!
예 ! 예수님 자신이, 그 나귀를 타시려고 끌어오라 하셨습니다.
자 ! 여러분 !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왕의 왕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드디어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入城)하십니다.
왕이신 예수님께, 경험 많고 멋진 백마(白馬)가 어울리겠습니까, 아니면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본 적이 없는, 어린 나귀가 어울리겠습니까 ?!
요새 말로 하면,
왕이 탈 자동차로 トヨタ センチュリー(토요타 센츄리)가 어울리겠느냐,
아니면 오래전 한국의 티코가 어울리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크고 멋진 자동차가 어울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생각, 즉, [왕이 타실 것이라면,
경험도 없고, 힘도 없고, 몸도 작은 자신보다,
경험도 많고, 힘도 세고, 몸도 큰 말(馬)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누구도 했겠습니까 ?!
예 ! 예수님이 타시려는 [어린 나귀]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히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태우는 그 귀한 일을 할 수 있어 ?!
아니야, 절대로 안 돼, 나는 그럴 능력도, 힘도 없어 !!]
그러나 여러분 !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명령이
[즉각 순종하기 어려운,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 그 특징인 것처럼],
하나님이 누군가를 귀하게 사용하실 때는
[경험이 많은 사람, 실력이 출중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보다,
[경험이 없는 사람, 실력이 보통이거나 없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1:26-29.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兄弟たち、自分たちの召しのことを考えてみなさい。人間的に見れば知者は多くは
なく、力ある者も多くはなく、身分の高い者も多くはありません。)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しかし神は、知恵ある者を恥じ入らせるために、この世の愚かな者を選び、
強い者を恥じ入らせるために、この世の弱い者を選ばれました。)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有るものを無いものとするために、この世の取るに足りない者や
見下されている者、すなわち無に等しい者を神は選ばれたのです。)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肉なる者がだれも神の御前で誇ることがないようにするためです。)
세계 선교의 역사를 보아도, 이것은 분명히 나타납니다.
먼 곳을 볼 것도 없이, 가까운 곳에서 그 예를 찾으면, 매우 가까운
관계인 일본의 교회와 한국의 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고,
한국의 성도들은 지난 십수 년간 여러모로 약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세계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교회는 매우 약하고, 성도들도 매우 적습니다.
한국교회와 일본 교회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조선)에 복음이 처음 전해져 들어올 때, 당시 대다수 선교사들이
'전도의 주 대상자'로 삼았던 계층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민들과 종(머슴)들이 전도의 주 대상자였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낮은 곳에 전해진 복음은,
서서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
마침내 주인들과 나라를 변화시켰고,
지금은 세계 교회를 선도(先導)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교회는 이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일본에 복음이 처음 전해져 들어올 때, 당시 대다수 선교사들의
'전도의 주 대상자'로 삼았던 계층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이묘(大名)와 성주(城主)들이 전도의 주 대상자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높은 곳에 전해진 복음은,
좀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지 못했고,
그 결과 일본의 교회는 지금까지도 약합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한 나라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장 밑바닥부터, 풀뿌리부터,
별로 영향력 없고, 평범해 보이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분들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나라가 바뀌게 되는 것이지,
예수님을 잘 믿는 대통령이 나와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귀하게 쓰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린 나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본향교회도 [어린 나귀]와 같은 연약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은 예수님의 대속사역(代贖事役)을 위해 [어린 나귀]를 부르셨듯이,
(하나님은) 이 땅 일본의 복음화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와 우리 본향교회를 부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나 고민, 그리고 주저함이 아니라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본문의 어린 나귀처럼, 즉시 순종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끝으로, 어린 나귀의 주인에 대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본문33-36절.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彼らが子ろばをほどいていると、持ち主たちが、
「どうして、子ろばをほどくのか」と彼らに言った。)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弟子たちは、「主がお入り用なのです」と言った。)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二人はその子ろばをイエスのもとに連れて来た。
そして、その上に自分たちの上着を掛けて、イエスをお乗せした。)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イエスが進んで行かれると、人々は道に自分たちの上着を敷いた。)
여러분 ! 어린 나귀의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 둘이 나타나서는,
자기 나귀가 묶여있는 줄을 풀려고 합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라고 물었더니,
'주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라고 합니다.
나귀 주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말씀이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9장에는 물론,
마태복음 21장에도, 그리고 요한복음 12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세 곳 모든 곳에서, 나귀의 주인이 더는 묻지 않습니다.
그냥 나귀를 내어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王과 主로 믿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주님께 내어드립니다.
지난 12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서,
우리 본향 지체들이 드린 김과 과자 100박스를
에도가와구(江戸川区) 어린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분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감사편지도 쓰고 한다는데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아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
우리는,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세상의 어린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주는 것을, 올해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본향 성도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번뿐이 아닙니다.
터키(도루코)에 큰 지진이 났을 때도,
일본 곳곳에서 지진과 태풍의 피해가 있었을 때도,
한국의 태풍피해 때도,
우리 본향 지체들은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그냥 내어주셨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땅 일본에도 많지는 않지만, 오래된 교회들이 꽤 있습니다.
여러분 ! 그곳에 교회가 저절로 세워졌겠습니까 ?!
아니요 ! 복음의 불모지인 이곳 일본에서도, 오래전 어느 날,
이름 모를 성도들이 주님의 일이라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헌신하여 드린 분들이 있으니까,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본향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기간 동안,
일본에서만 1,000개 교회 이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팬데믹 전에 일본의 전체 교회가 약 7,000개였으니까,
일곱 교회 중 한 교회씩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는 도리어 그 팬데믹(감염병 세계 유행) 기간에
예배당을 이전했습니다.
더구나 복된 이곳을 구매하여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더불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합니다."라는 말씀에,
오늘 본문의 나귀 주인처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헌신하여 드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그토록 귀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王과 主님으로 믿는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조금 마음 불편한 예수님의 명령에도,
조금 부담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에도, 주저함 없이 즉각 순종합니다.
둘째, 경험이 없어도, 실력이 없어도, 능력도 없어도,
[어린 나귀]처럼, 주저함 없이 즉각 순종합니다.
셋째,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기쁨으로 내어드립니다.
오늘 성탄 주일을 맞아, 다시 오실 왕, 예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
지금까지의 삶을 이 세 가지의 믿음으로 사셨으매,
앞으로도 계속하시기를 바라며,
주님 앞에 서실 때,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