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4년11월24일, 요한복음 15:13-17 (벗, 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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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정작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에, 매우 인색한 것 같습니다.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기업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기업이 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친구(友達), 벗(友) 있으십니까 ?!
좋은 친구, 좋은 벗(親友) 가지고 계십니까 ?!
일본어 사전에 보니까, 친구(友, とも)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いつも親しく交わっている相手。(언제나 친하게 지내는 상대)]
[志や目的を同じくする人。(같은 목적과 뜻을 가진 사람)]
이런 친구, 좋은 친구(親友)를 가진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친구를 갖지 못한 사람은,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뒹굴 듯,
나이가 들수록 쓸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무도 자기를 상대해 주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외로움은 없습니다.
기쁨과 슬픔, 꿈과 우정을 나눌 친구가 없다면, 그는 정말 불행합니다.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한 죄수가 어두침침한 독방에 감금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 죄수는 이제 더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벽을 향해.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도 했지만,
이야기 상대도 없이 벽에만 말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예 ! 그 죄수는 크나큰 외로움에 지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죄수는 자신의 감방 안에 거미 한 마리가 들어와,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수는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거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보면서, 죄수는 거미와 친근하게 되었고,
어느덧 거미를 애지중지하며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죄수는 열심히 움직이며 일하는 거미를 보면서, 외로움도 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
벌레 한 마리가 걸린 것을 본 죄수는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거미가 그 벌레를 맛있게 먹을 때는,
이 죄수도 큰소리를 지르며, 같이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거미는 죄수의 친구가 되었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간수(看守)가 그 죄수의 독방을 지나다가,
거미와 노는 죄수를 보고, 그만 그 거미를 잡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 그 후 그 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예 ! 그 거미가 죽고 며칠 되지 않아, 쓸쓸히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친구, 즉 벗(友)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친구가 소중한 것을 알면서도,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시대가 바뀌어,
무슨 일이든 누군가와 비교를 당하고, 또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일부 사람은, 친구가 잘되는 것을 내가 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시대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좋은 벗(親友)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어떻게 친구, 즉 벗(親友)을 얻을 수 있을까요 ?!
또한, 친구 사이의 우정(友情)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질까요 ?!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친구가 만들어지고,
또 친구 사이에 어떻게 우정(友情)이 생기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좋은 벗(親友)을 가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첫째, 벗은, 내가 누군가의 벗이 되어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なく、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일평생을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합니다.
<참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셔서,
어떤 일이든지 선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 즉 우리의
영원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여, 최고의 선택을 하신 여러분 !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의 약속들이,
예수님을 선택한 여러분에게 전부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다음으로 중요한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배우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돕는 배필(助け手)]로 남편과 아내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神である主は言われた。「人がひとりでいるのは良くない。
わたしは人のために、ふさわしい助け手を造ろう。」)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돕는 배필(助け手)]을 가지신 본향성도여러분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ついに私の骨からの骨、私の肉からの肉。)]
라고 외친 아담처럼, 남편을 소중히 여기고, 또한,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다음으로 중요한 선택이 있다면, 역시 그것은 친구, 즉 벗(友)입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는 평생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몇 사람만이 나의 친구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친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선택하신 12명의 제자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友です。)"라고 말씀하시면서,
매우 뜻깊은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あなたがたがわたしを選んだのではなく、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選び、)
물론,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의 가장 중요한 뜻은,
[구원과 사명에로의 선택은, 인간 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 안에서 시작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친구를 선택할 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는 친구다운 친구가 없어 !"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 앞에, 멋진 친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
위의 말씀을 이에 적용해 보면,
친구란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내가 누군가를 친구로 선택함으로,
비로소 친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누군가를 선택해서 그에게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비로소 나에게 친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도 보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로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친구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예수님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누군가를 선택해
친구가 되어줌으로써, 친구를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왜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셨을까요 ?!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본문16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それは、あなたがたが行って実を結び、その実が残るようになるため、
また、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父に求めるものをすべて、
父が与えてくださ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를 친구로 삼아주신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어떤 이익이나 대가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하여,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만약, 친구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무슨 덕을 보기 위해,
친구를 만들려 한다면,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마음이 아닙니다.
또한, 그 친구에게도 결코, 기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닙니다.
친구는 친구인 것 같은데, 정말 꼴불견의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잘난 척하는 친구', '있는 척하는 친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려고 친구를 구합니다.
그러나, 잘난 척하는 것은, 우정의 참 의미를 희미하게 만듭니다.
진실한 우정은 상호보완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넉넉함이 벗의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하고,
벗의 넉넉함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난 것이 있어도, 친구 사이에서는 절대로,
그 잘난 것을 감추는 겸손한 친구가 진실한 친구와 우정을 얻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애정보다 우정을 더 귀한 것으로 생각합니까 ?!
애정은 소유욕이 포함되어있는 사랑이지만,
우정은 피차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동등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간의 동등함을 파괴하는 '잘난 척하는 교만'이 있는 곳에는,
아름다운 우정의 꽃은 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친구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서, 혹은 무엇인가 덕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친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찾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친구를 찾고, 선택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친구와의 우정은, 나눔으로서 자라납니다.
본문15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友と呼びました。父から聞いたことをすべて、
あなたがたには知らせたから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난 다음, "우리 서로 친구 합시다 !"라고 외친 후
친구가 되면, 그 둘이 저절로 좋은 친구가 되거나,
두 사람 사이의 우정(友情)이 자란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한두 번의 만남으로,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했습니까 ?!
아니요. 별 의미 없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관계들이 많았습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누군가와의 만남이 아름다운 우정(友情)으로 열매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눔]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어떤 나눔이 필요한 것일까요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15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友と呼びました。父から聞いたことをすべて、
あなたがたには知らせた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비밀까지도 다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요 ?! 예 ! 자신의 친구인 제자들에게요.
물론, 여기에서 예수님이 친구인 제자들에게 알린 비밀은, [십자가 대속]입니다.
조금 있으면,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정말 좋은 친구는, 그저 겉으로만 친구가 아니라,
깊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하고는 비밀도 나눕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비밀을 나눌 수 있으려면,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예 ! 서로 간의 신뢰입니다. 즉, 믿음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아무도 비밀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구 간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잠언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愛を追い求める者は背きの罪をおおう。
同じことを蒸し返す者は親しい友を離れさせる。)
그렇습니다. 서로를 믿을 때, 비로소 비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온전한 친구가 되고, 드디어 우정을 쌓기 시작합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내 약점과 아픔, 내가 숨기고 있던 인생의 갈등과 고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스트레스와 번민을 조금씩 조금씩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나눔이 없이는, 절대로 우정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 이런 진실한 친구가 되어줍시다.
이런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마음도, 시간도, 사랑도 준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 ! 우리 본향교회 성도 중, 누구의 친구가 되어야 할까요 ?!"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친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
셋째, 친구와의 우정은,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본문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人が自分の友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ること、
これよりも大きな愛はだれも持っていません。)
사랑하는 여러분 !
부부 혹은 연인과의 사랑이 그렇듯이, 친구와의 우정(友情)도
반드시, 그 우정을 시험받는 '어떤 때'를 만나게 됩니다.
그 시험의 때는 대부분, 친구의 삶에 어떤 고난이 왔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에게 고난이 왔을 때, 그 친구 곁을 떠나는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진실한 친구 아닙니다.
당연히 좋은 친구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생 최악의 순간, 지옥같이 느껴지는 그 고독의 순간에,
끝까지 함께 있어 주고, 친구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
그는 진실한 친구요, 좋은 친구입니다.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상금을 걸고
"친구"라는 말의 정의(定義)를 독자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응모엽서 중 다음 것들이 선발되었습니다.
[친구란, 기쁨은 곱해 주고, 고통은 나눠 갖는 사람]
[친구란, 친구의 침묵을 이해하는 사람]
[(내) 친구는, 언제나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절대로 멈추지 않은 시계]
하지만 1등은 다음의 글이었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나도, 끝까지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본문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人が自分の友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ること、
これよりも大きな愛はだれも持っていません。)
그리고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참 친구], [최고의 친구]는 온 세상이 다 그 곁을 떠나도,
끝까지 곁에 있어 주는 것은 물론,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주는 친구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 이런 [참 친구], [최고의 친구]가 되어줍시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본향교회는 오늘 [남성회] [1여성회] [2여성회] [청년학생회]를
조직하는 창립총회를 엽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2년까지, 남선교회, 제1여선교회, 제2여선교회가 있었지만,
당시는 '선교'에 힘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오늘 조직하는 [남성회] [1여성회] [2여성회] [청년학생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와 섬김, 중보기도]가 목적입니다.
저는 오늘 조직하는 [남성회] [1여성회] [2여성회] [청년학생회]를 통해,
우리 본향지체들이 [평생을 섬기고 감싸줄 귀한 벗]을 얻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잠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잠언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多くの友に関わる人は身を滅ぼす。
しかし、兄弟以上に親密な友人もいる。)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가 됩시다.
우리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할렐루야 !
끝으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17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が互いに愛し合うこと、
わたしはこれを、あなたがたに命じます。)
이 말씀에 순종하여,
오늘부터 우리 서로 [참 친구], [최고의 친구]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