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4년11월3일, 누가복음 6:36-38 (주고 또 주는 교회)
ページ情報
本文
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본향교회는 죄인들도 모이고, 의인들도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노인들도 모이고, 젊은이들도 모이며,
많이 배운 분도 모이고, 많이 배우지 못한 분도 모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주님을 따르는 교회여야 합니다.
우리 본향교회는 부자도 모이고, 가난한 자도 모이며,
믿음 큰 분도 모이고, 믿음 적은 분도 모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여야 합니다.
저는 지난 10월, 두 번에 걸쳐 [필립 얀시]란 분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신실한 신앙생활을 했지만, 신자들의 위선(僞善)과
지루한 예배 때문에, 청년 시절에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시각(視角, 見る立場, 視点)]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나는 교회를 대할 때,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보아야 함을 배웠다.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던 내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새로운 시각(視角) 덕분이다.]
그래서 저는, 지난 두 번의 주일에 걸쳐,
[위를 올려다보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각(視角)은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필립 얀시가 가졌던 예배에 대한 과거의 시각(視角)은 이랬습니다.
[전에 나는 비판적인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다.
(관람료<헌금>를 냈으니)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내놓아라,
나를 즐겁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그렇습니다. 과거의 그는 [예배를 보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 시각(視角)을 갖게 되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올려다보며, 예배를 (보는 자가 아닌) 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예배를 보는 자에서 드리는 자로 바뀐 후),
한때 그토록 비위에 거슬리고 지루했던 예배의 순서들이,
마치 잘 길든 신발을 신는 것만큼이나 편하게 느껴진 지 벌써 오래다.
이제 나는 (잘 몰랐던) 찬송가도 좋고,
(예배 중에) 일어날 때와 앉을 때도 알고, 광고도 잘 듣는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넘쳐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필립이 가지게 된 시각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때에 교회를 떠났던 필립 얀시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
그는 자신과 아내가 다닐 교회의 기준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나 (우리 부부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찾자.]
즉, 자신과 수준이 같고, 취향이 비슷한 성도의 교회를 찾은 것입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나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만 찾는 실수를 저질렀다.
교육 수준, 성경 지식, 찬송가와 예배의 취향이
나와 비슷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당시의 나는, 작은 차이만 보여도
그것을 짓밟으려 했던, 내가 어릴 적에 다녔던 교회의
과오(過誤, あやまち)를 그대로 답습(踏襲)하고 있었다.]
[라살 교회를 처음 다닐 때, 나는 교회를 아예 체념해버리고 말았다.
라살 교회는 주일 아침이면, 지역의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는데, 그 음식 냄새가 예배를 크게 방해했다.
또한, 무료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과 노숙자들도 교회에 남아,
주일예배를 함께 드렸는데, 때로 예배당 의자에 벌렁 드러누워,
예배시간 내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도 했다.]
[나는 가끔 그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복음을 쉬운 말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떠돌이 노숙자에게도 그 뜻이 전달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도, 또한, 못 배운 노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복음의 능력'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리고 점점,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많은 그 교회를 다니는 것이 좋아졌다.
라살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부부는 별로 공통점이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라살 교회는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인 것을 잘 아는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노인들의 하나님이시고, 젊은이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배운 자의 하나님이시고, 배우지 못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부자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가난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 큰 자의 하나님이시고, 믿음 적은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헌신자의 하나님이시고, 헌신하지 않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끔 시험에 빠지는 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항상 믿음의 길을 걷는 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여야 합니다.
할렐루야 !
오늘은 필립이 하나님께 받은 세 번째 시각에 대해 말씀을 전합니다.
예 ! 교회는 [밖을 내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별하신 축복의 땅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바다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 바다이고, 또 하나는 사해 바다입니다.
우선, 갈릴리 바다에는, 수많은 물고기 떼가 뛰놉니다.
갈릴리 바다 주변의 수목들은 매우 푸르고 건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여러분 !
갈릴리 바다는, 자신이 담고 있는 물을, 흘려보내 주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물은, 요단강을 통해 이스라엘 곳곳의 사막지대에 흘러들어,
척박한 사막의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듭니다.
다음으로, 사해(死海, Dead Sea) 바다입니다.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해 바다에서는 거의 모든 생물이 살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여러분 !
사해 바다는, 자신이 담고 있는 물을,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기 때문에 죽은 바다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우주 속에 넣어 두신 우주의 원리입니다.
풍성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베풀고 나눠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합니다.
사도행전20:35.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主イエスご自身が『受けるよりも与えるほうが幸いである』と
言われた御言葉を、覚えているべきです。)
그래서 복음 전도자 루이스 팔라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거름(肥やし)과 같습니다.
거름을 쌓아두면 온 마을에 악취를 풍기지만,
그 거름을 나눠 주면, 그 마을을 기름지고 풍요롭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교회는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호 ! 본향교회 다니기를 잘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다음 주부터는 더 많이 받아갈 수 있겠네 !]
아닙니다. 여러분 ! 오늘 말씀은 교회 밖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슈바이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처럼 실력 있는 분이, 왜 이곳에다 모든 것을 바칩니까 ?”
그렇습니다.
슈바이처는 목사이면서 교수였고, 철학, 신학, 의학 박사였으며,
대단한 문필가이며, 훌륭한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슈바이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말로서 사람을 설득시킬만한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아무리 말로 설명하려 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고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슈바이처는 ‘주고 섬기는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가복음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人の子も、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仕えるために,
また贖いの代価として, 自分の命を与えるために来たのです。)
어떤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하루는 하늘나라의 천사가 잠시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찾아,
그 손에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팔찌를 걸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께 받아 온 하늘나라의 팔찌를 걸어줄,
아름다운 손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하늘나라의 팔찌를 걸어줄,
그런 아름다운 손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는 숲속에 있는 한 외딴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집에는 세 딸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에,
이 하늘나라의 팔찌를 걸어주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첫째 딸이 앞으로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손을 좀 보세요. 얼마나 예쁜 손입니까 ?! 제 손은 예쁠 뿐만 아니라,
이 손으로 늘 꽃을 만지기 때문에, 제 손에는 아름다운 꽃향기도 가득하답니다.”
그러자 둘째 딸이 질세라 앞으로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제 손도 좀 봐주세요. 정말 깨끗한 손이지요 ?! 저는 제 손에
먼지만 묻어도 곧 흘러가는 맑은 시냇물로 제 손을 깨끗이 씻는답니다.”
이번에는 셋째 딸이 말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소곳이 제 자리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천사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셋째 딸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왜 아무런 말도 없습니까 ? 자매님의 손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
그러자 셋째 딸은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 제 손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천사님에게 보여드리기가 민망스럽습니다.
이 손으로 가족들과 이웃을 섬기다 보니, 제 손은 늘 거칠고 아무런 볼품이 없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천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자기가 가지고 온 하늘나라의 팔찌를 꺼내,
그 셋째 딸의 손목에 걸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며 섬기는 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일하는 손, 섬기는 손이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약 100년 전, 미국에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나는 장차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리라’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오직 돈 벌어 부자가 되는 일에 바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기회를 얻어, 유전(油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탠더드 석유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30대에 백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그의 나이 43세에, 그는 세계 최초로 대규모
트러스트(기업합동)를 구성해, 세계에서 가장 큰 재벌기업의 총수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53세에, 그는 세계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록펠러는 그의 소원대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록펠러가 55세가 되도록, 오직 돈과 사업에만 몰두하며 살다 보니,
몸도 쇠약해졌고 우울증에 심한 식욕부진까지 겹쳐,
그만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는 불치병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다 빠져버렸습니다.
심한 불면증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는 최고의 부자였지만, 그가 하루에 먹는 것은,
겨우 우유 한 잔과 비스킷 몇 조각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가장 불쌍한 억만장자였습니다.
담당 의사는 그를 진찰한 후, 1년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이제 록펠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그는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부자가 되기 위해, 잠도 못 자고, 피곤하여,
숱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육체가 쇠약해졌으니,
이제부터는 남에게 베풀며, 주며, 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느냐 보다,
적은 재산이라도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에게 전했답니다.
본문38절. 주라 !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与えられます。詰め込んだり、
揺すって入れたり、盛り上げたりして、気前良く量って懐に入れてもらえま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제까지 록펠러는 움켜쥘 줄만 알았지, 손을 펼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또한, 가지고 모으려는 삶만 살았지, 주고 베푸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예 ! 모으기는 많이 모았는데,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손을 펴, 주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껏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또 자기 재산의 많은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회적으로 뜻 있는 일에도, 많은 일을 했습니다. 대학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손을 펼치고 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마음에 평안히 찾아왔습니다.
잃었던 잠을 찾게 되었습니다.
입맛도 돌아왔습니다.
건강도 서서히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
담당 의사는 록펠러가 55세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는데,
그 록펠러가 얼마나 살았는지 아십니까 ?!
예 ! 98세까지 건강한 몸으로 장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립 얀시 부부를 보내신 시카고의 라살 교회는
[교회 밖을 내다보며, 세상의 이웃을 섬기는 교회]였습니다.
지난 주일, 여러분에게 소개한 것처럼, 그 교회는
주일 아침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외에도, 매주 그 교회는
글(영어)을 읽을 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과 함께 글을 읽어 주었습니다.
가난한 마을 분들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게임을 통해 많은 상품도 주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자녀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라살 교회의 이러한 이웃 섬김은, 성도 개개인들도 참여했습니다.
매주 어떤 성도는, 몸이 불편해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분들에게 식료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또, 어떤 변호사 성도는, 무료로 저소득층 주민들을 변호해 주었습니다.
또, 어떤 의사와 간호사 성도는, 병원에 갈 수 없는 분들을 찾아가 왕진을 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몇 주 전, 연말을 준비하는 우리 본향의 제직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몇몇 청지기로부터 이런 제안(提案)이 있었습니다.
올 성탄에는 [성탄 선물 교환]을 하지 말고, [성탄 선물 주기]를 하면 어떻겠느냐고요.
그래서, 얼마 전, 江戸川区社会福祉協議会를 찾아가 상담을 해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곳 江戸川区에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어린이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밥(식사)을 대접하는 [子ども食堂]이 52곳이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사모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에도가와구 복지협의회의 와타나베 상이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子ども食堂에 와서 밥을 먹는 어린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주면 어떻겠느냐고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를 [교회 밖을 내다보며, 세상의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미 우리 교회는, 작년과 제 작년에, 여러분이 주신 수십 상자의 김(のり).
그리고 추수감사절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린 쌀과 과일 등을
江戸川区 鹿骨에 있는 어느 子ども食堂에 가져다드린 적이 있습니다.
너무도 기뻐하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를 주고, 또 주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の光を人々の前で輝かせなさい。人々があなたがたの
良い行いを見て、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이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 밖을 내다보며, 세상 이웃을 섬기고,
그로 인해, 세상 이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이,
우리의 섬김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