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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4년10월6일, 요한복음 4:23-24 (하나님만이 예배를 보시고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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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209回 日時 24-10-11 17:27

本文

  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님 !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웃과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고, 선(線)을 넘지 맙시다.

  도리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해하며, 만족해하며, 힘껏 헌신합시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의 지경(地境)을 넓혀 주실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깊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 앞에서, 막 개봉(開封)한 헐리우드판 영화 [오셀로]를

  신앙적인 이유로 보러 갈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던 소년이었습니다.

 <참고> 오셀로 :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는, 악한 자가 꾸민 거짓말에 넘어가

  명확한 증거도 없이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가,

  더욱 커진 의심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은 후,

  결국에는 살인과 자살로 마무리되는 비극적인 내용의 작품입니다.


  그는 또한, 학교 수업인 과학 시간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을 반박(反駁)하는 20페이지의 리포트를 냈다가,

  자신이 준비한 내용의 허점들 때문에, 과학 선생님으로부터 모욕당한 것을,

  도리어 기뻐했던 소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박해받는 소수에 속한 데서 오는 뿌듯함과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가 자주 불렀던 찬양은 이런 곡이었습니다.


  제목 :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그런데 여러분 ! 그랬던 그가, 청년 때에 그만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아니, 달리 말하면, 교회를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깊고도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던 그가, 왜 교회를 떠나고 말았을까요 ?!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교회를 떠난 것은) 신자(信者)들의 위선(僞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었던 무신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어떤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을 부정적으로만 보십니까 ?"

  그랬더니, 니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들(신자들)이 조금만 더 구원받은 사람들처럼 보인다면,

 (혹은,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면) 나도 그들의 구원을 믿겠소 !"

 (彼らがもう少し救われた人たちのように見えたら、

  私も彼らの救援を信じます!)


  청년의 때, 신자들의 위선 때문에 교회를 떠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아침이면, 좋은 옷을 차려입고 서로를 보며 웃지만,

  그런 겉모습 속에 비열한 마음을 숨기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그래서 누구에게서든, 조금만 위선의 낌새만 보여도 무조건 반감이 생겼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だれでも、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

  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ます。)

  그리고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위선을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마태복음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

  おまえたちは人々の前で天の御国を閉ざしている。

  おまえたち自身も入らず、入ろうとしている人々も入らせな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옛날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위선으로 신앙인들을 넘어뜨렸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교회 안에 있는 일부 위선자들이

  주를 따르려 하는 사람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내고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은 계속 이어집니다.

  마태복음23:25-28.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杯や皿の外側は

      きよめるが、内側は強欲と放縦で満ちている。)

  26.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目の見えないパリサイ人。まず、杯の内側をきよめよ。

      そうすれば外側もきよくなる。)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

      おまえたちは白く塗った墓のようなものだ。外側は美しく見えても、

      内側は死人の骨やあらゆる汚れでいっぱいだ。)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同じように、おまえたちも外側は人に正しく見えても、

      内側は偽善と不法でいっぱいだ。)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본향교회는 겉만 깨끗한 교회입니까 아니면 속도 깨끗한 교회입니까 ?

  또한, 본향교회는 진실한 교회입니까 아니면 위선적인 교회입니까 ?!


  둘째, (그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지루한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청년 때에 교회를 떠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일예배는 나를 짜증 나게 했다.

  매주 똑같은 순서의 반복, 변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

  주보와 광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까지 다 그랬다.]


  그는 계속해서, 지루함을 경험한, 다른 사람의 경험까지 소개합니다.

 [매주 신기하게 느낄 정도였다. 장판뿐인 맨바닥의 예배당은

  어떤 꽃으로도 분위기를 살리거나 따뜻하게 할 수 없었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찬송가 부르기도 형편없었다.

  성경 봉독은 사람을 지치게 했고, 설교는 지독히도 알맹이가 없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주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혹시 짜증이 나십니까 ?!

  매주 똑같은 순서의 반복, 변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 주보와 광고,

  잘 모르는 찬송가 부르기 등으로 인해, 따분하고 지루하십니까 ?!


  소개한 이 두 가지, 즉, 신자들의 위선과, 지루한 예배로 인해,

  청년 때에 교회를 떠났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필립 얀시]라고 하는 분입니다.

  

  자 ! 여러분 ! 한 가지 묻습니다.

  깊고도 철저하게 신앙 생활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나 청년 때에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았던 필립 얀시가 교회로 돌아왔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교회와는 일정의 거리를 두었을 것 같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는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말입니다.

  돌아온 그 내용을 적은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Church : Why Bother ? : My Personal Pilgrimage). 2001년]


  현재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독교 작가입니다.

  그는 성경과 세상, 인간의 연약함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일상에서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내는 예민함, 어려운 신학적 주제들을

  쉽게 풀어내는 솜씨로 ‘이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작가’라는 찬사를 듣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는 그방 소개한 위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기독교는 결코 지적(知的)이고 내적(內的)이기만 한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삶이 동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교회) 안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끝내 교회를 포기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잠시 교회를 떠나 있을 때면, 고통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더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식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를 떠난 나는, 매번 빙 돌아서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왔다.

  한때는 예배 출석이 들쭉날쭉했지만,

  이제 나는, 교회와 예배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는 자신이 교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합니다.

  네 가지로 말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몇 주에 걸쳐, 그가 말한 이유를 소개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에도 몇번이나 교회를 떠났던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중 누군가도 언젠가 교회를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오늘의 메시지가,

  우리를, 다시 교회로 인도하는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특별히, 이곳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는 여러분 !

  오늘부터 전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아,

  우리 모두의 마음이,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완전히 고정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필립 얀시가 교회로 돌아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은혜로,

  보는 눈의 각도 즉 시각(視角, 見る立場, 視点)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교회를 대할 때,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보아야 함을 배웠다.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던 내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새로운 시각(視角) 덕분이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첫째로, 위를 올려다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필립 얀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나는 비판적인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다.

 (관람료<헌금>를 냈으니)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내놓아라, 나를 즐겁게 해달라'는 식이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극장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신자들)는 객석에 앉아 무대의 배우들(예를 들면,

  목사와 기도자, 성가대와 반주자)을 주시하고,

  배우들은 모든 시선을 한몸에 받습니다.

  배우들이 우리를 제법 즐겁게 해주면,

  우리는 박수와 환호로 감사를 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절대로, 사람이 무엇을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극장(劇場)과는 정반대입니다.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의 관객(觀客)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를 보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를 보는 우리가 되지 맙시다.

  왜냐하면, 예배를 보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까요 !!!

  그렇다면 여러분 ! 여러분과 저는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배를 보고 받으실 수 있도록,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떠나갈 때,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은

 [내가 (오늘) 예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가 아니라,

 [내가 (오늘) 드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 ?]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자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약한 마음을 위로해 주거나, 자존감을 세워 주거나,

  서로 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이 일에 실패하면, 우리 교회는 실패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즐거움과 위로, 격려와 섬김은 교회 안에서 필요한 일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교회 안에서 추방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앞서서는 안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막과 성전의 예배 규정에 할애(割愛)된 말씀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생애에 할애된 말씀과 거의 맞먹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특히 강조]하고 있으며,

  예배의 핵심도 바로 그것(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에 대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まことの禮拝者たちが、御霊と真理によって父を禮拝する時が来ます。今がその時です。

  父はそのような人たちを、ご自分を禮拝する者として求めておられ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보는 자가 아닌,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월터 윙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가장 분명한> 행위이다."

 (禮拝とは、教会の主が誰であるかを記憶する<最も明らかな>行為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이후 우리는, 예배시간에 구경꾼이나 관객처럼, 목사나 강단을 쳐다볼 수도 있고,

  또한, 주인 행세를 하며, 예배를 판단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고, 위로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릴 적부터 깊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던 필립 얀시,

  그러나 그가 청년 때에 교회를 떠났습니다.


  첫째, 신자(信者)들의 위선(僞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교회에 돌아오고 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교인들이 다 나처럼 다른 신자들을 판단하기만 한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고 말까 ?!'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겸허해졌고, 먼저,

  다른 사람의 신앙이 아니라 내 자신의 신앙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교회 안의 위선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라 결론지었고,

  그래서 그런 판단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그대로입니다.

  마태복음7:3-5.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あなたは、兄弟の目にあるちりは見えるのに、

     自分の目にある梁には、なぜ気がつかないのですか。)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兄弟に向かって、『あな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かせてください』と、どうして

     言うのですか。見なさい。自分の目には梁があるではありませんか。)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偽善者よ、まず自分の目から梁を取り除きなさい。そうすれば、はっきり

     見えるようになって、兄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くことができます。)


  둘째, 지루한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교회에 돌아오고 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예배를 보는 자에서 드리는 자로 바뀐 후) 한때,

  그토록 비위에 거슬리고 지루했던 예배의 순서들이,

  마치 잘 길든 신발을 신는 것만큼이나 편하게 느껴진 지 벌써 오래다.

  이제 나는 찬송가가 좋고, 일어날 때와 앉을 때도 알고, 광고도 잘 듣는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예배를 보실 수 있고, 예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예배시간에 사람과 환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배드립시다.

  오늘 이러한 마음과 이러한 자세로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한량 없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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