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9월15일, 에스라 10:1-5 (진정한 회개에는 사죄<謝罪>와 돌이킴이 있습니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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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4년9월15일, 에스라 10:1-5 (진정한 회개에는 사죄<謝罪>와 돌이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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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270回 日時 24-09-2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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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다.


  지난 주일,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난 후, 마음이 부담이 많았고,

  급기야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 용서는 뭔가를 잘못한 사람이 하는 것입니까 ?! 아니면,

  잘못한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하는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잘못한 사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하는 것이 용서(容恕, ゆるす)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용서를 해주어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까,

  사죄(용서를 빌며)하며, 용서를 구해야 할 때가 더 많았습니까 ?!

  용서를 해주어야 할 때가 더 많았다고요.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용서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죄(謝罪)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참된 회개(悔改)와 사죄(謝罪)에 대해 말씀을 전하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몇년 전에도 한 번 소개했지만,

  한국의 배우 전도연씨가 주연으로 열연(熱演)한 작품 중에 ‘밀양’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전도연씨는 이 ‘밀양(密陽)’이라는 영화로, 프랑스의 칸에서 열린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

  도심을 떠나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곳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교통사고 사망 보상금을 노린

  유괴범에 의해 아들이 납치되고, 그만 아들이 살해당하고 맙니다.

  청천벽력(青天霹靂)과 같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유괴범은 다름 아닌, 아들이 다녔던 웅변학원 원장이었습니다.

  가까이 알고 지냈던, 그야말로 면식범(面識犯)의 소행이었던 것입니다.

  졸지에 가족을 다 잃고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살던 그녀는,

  이웃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주일예배와 모임 등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그리고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그녀의 상처는 조금씩 그리고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는 주기도문을 외우던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부분에 감화를 받아,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래서 신애는 큰마음을 먹고, 감옥에 있는 유괴범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유괴범을 만난 신애는, 그만 큰 충격에 빠지고 말지요.

  아들을 잃고 한동안 절망하고 고통 하다가, 이제 겨우 마음의 중심을

  잡기 시작한 신애 앞에서 선 유괴범의 모습은, 너무나 여유로웠습니다.

  더구나 유괴범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말은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모두 용서해 주셨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유괴범 도섭 : (“준이 어머니 !” = 주인공 신애) 저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교도소에 들어온 뒤로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게 됐지요.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인간에게 찾아와 주신 거죠.

  신애 : (말없이 도섭을 쳐다보며, 아주 평화롭고 안정되어 보이는 도섭에게)

       그래요 ?!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유괴범 도섭 : 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하나님이 저한테, 이 죄 많은 놈한테 손 내밀어 주시고, 그 앞에 엎드려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신애 : 하나님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

  도섭 : 예 !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어요. 그리고 나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죠.

       잠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도하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아무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사형이 되도 달게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기(臟器) 기증(寄贈)까지 다 해 두었어요.

       이 죄 많은 인간의 몸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가치 있게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한테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이렇게 편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내 마음이 .......

  신애 : (아무 말도 하지 못함)

  도섭 : 요새는 내가 기도로 눈뜨고 기도로 눈감습니다.

       준이 어머니(신애)를 위해서도 기도 많이 했어요. 빼놓지 않고 늘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만나고 보니

       하나님이 역시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신애 : (계속 말을 이어가지 못함)


  신애는 결국 면회소에서 뛰쳐나오고 맙니다. 용서를 못한 채요 !

  그리고 자신과 면회를 같이 가 준 김 집사님에게 말합니다.

  신애 : 용서하고 싶어도 나는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대요.

       하나님한테. 그래서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

  김집사 : (신애를 진정시키며 붙들며) 아이고, 왜 이래요 ?! .......

       그래, 하나님이 용서했으니깐, 이 선생도 용서하면 되잖아요.

  신애 :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할 수 있겠어요 ?!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어요 ?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대요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 왜 ? 왜요 ?


  여러분 ! 이 장면을 보며, 신애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

  그렇습니다.

  피해자 신애는, 처절한 고통을 간신히 극복하고, 겨우 안정을 되찾아 가는 중인데,

  더구나 용서해야 할 쪽은 피해자인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신애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유괴범은 ‘하나님의 용서’를 말하며,

  자신의 그 큰 죄를 천연덕스럽게 희석(稀釋)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신애는 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마치 배교자(背教者)처럼

  교회와 하나님을 향해 노골적으로 저항합니다.

  불륜과 탈선을 넘나들지요.

  심지어 마음과 정신까지 중심을 잡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용서를 구하는 일, 그리고 사죄(赦罪)를 받는 일은,

  단지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피해자와의 사이에서도 참된 사죄(謝罪)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사죄(謝罪)와 참된 용서는,

  인간 対 인간 차원에서의 참회의 의무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내세워, 너무나 쉽게

  자신이 행한 악과 불의의 책임을 벗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을 행한 우리가 진정으로 참회와 용서를 원한다면,

  피해자를 향해 철저한 사죄(謝罪)와 용서를 구하는 행동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뼈아프고 쓰린 참회의 마음으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의 범인은, 잘못된 깨우침으로 자기만족에 빠져,

  자기 스스로 사죄와 용서의 완결을 선언하고,

  너무나 떳떳한 모습으로 피해자 앞에 당당히 서는 태도를 보입니다.

  어찌 보면, 철면피와도 같습니다.


  여러분 ! 유괴범 도섭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신애에게 사죄했어야 옳습니다.

  죽음으로써 그 죄를 씻을 수 있다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신애 앞에서, 훨씬 더 낮아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도섭의 회개는 결코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용서’는,

  언뜻 보면 ‘값없이 받는 은혜의 용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큰 고통을 당하신 후 끝내 죽으신,

  主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철저한 자성(自省)과 통회(痛悔), 그에 따른 실천적인 돌이킴이 없는

  회개(悔改)는, 그 자체로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 교회가 순수한 부흥의 불길에 휩싸이던 시절,

  一當百과도 같은 신앙의 용사들이 수없이 배출되던 시절의 한국 교회에는,

  철저한 돌이킴의 회개, 뜨거운 눈물의 뉘우침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회개한 후, 어릴 적

  중, 고등학교 시절 통학 열차에 무임승차했던 것을 뉘우치고, 시골 역장을 찾아가

  그 전액을 갚았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 교회들에 전해 내려옵니다.


  여러분 !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눈 안의 티가 아닌, 우리 눈 속의 들보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없이 쏟아내는 눈물로, 들보를 눈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바른 부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범죄로 인한, 기나긴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후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인물은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입니다.


  에스라가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7년째였습니다.(B. C. 458년)

  이것은 고레스 왕 때의 1차 귀환(B. C. 538년)이 있고 난 뒤

  80년 만에 이루어진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은 만 4개월이 걸리는 험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에스라7:9), 에스라와 귀환자(帰還者) 일행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그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의 중간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스라9:1-2.

  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これらのことが終わった後、指導者たちが私のところに近づいて来て次のように言った。

   「イスラエルの民、祭司、レビ人は、カナン人、エジプト人、

     アモリ人など異国の忌み嫌うべき習慣と縁を絶つことなく、)

  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かえって、彼らも息子たちも、これらの国々の娘を妻にし、

     聖なる種族がもろもろの地の民と混り合ってしまいました。

     しかも、指導者たち、代表者たちがこの不信の罪の張本人なのです。」)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본래부터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거나, 또한 80년 전 먼저 귀환했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을 아내나 며느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죄악에 고관들과 종교가들이 앞장섰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 모습이 자세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9: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私はこのことを聞いて、衣と上着を引き裂き、

  髪の毛とひげを引き抜き、茫然として座り込んでしまった。)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이것이 이토록 놀랄만한 일입니까 ?

  본향성도여러분 !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해, 오랜 세월 동안 포로로 끌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녀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우상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가 우상을 소개했습니까 ?

  물론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무리들이 바로 이방 여인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지혜의 왕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죄악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나눠버린 솔로몬 왕의 가장 큰 죄가 뭡니까 ? 

  그렇습니다. 우상숭배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초창기에는

  하나님을 의뢰했지만, 나중에는 정략결혼을 이용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악한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부인과 후궁이 된 천여 명의 이방 여인들이,

  각기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예루살렘 왕궁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앞다투어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자기 여인들을 위해,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하나님의 성전 건너편에 세워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 멸망의 가장 큰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과거 자신들의 역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백성들은 과거 조상들의 죄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먼저 회개합니다.

  에스라9:6-7.

  6.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神よ。私は恥じています。私の神よ。私はあなたに向かって顔を上ることを

    恥ずかしく思います。私たちの咎は増し、私たちの頭より高くなり、

    私たちの罪過は大きく、天にまで達したからです。)

  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私たちの先祖の時代から今日まで、私たちは大きな罪過の中にありました。

    私たちのその咎のため、私たちや、私たちの王、祭司たちは、

    諸国の王たちの手に渡され、剣にかけられ、捕虜にされ、かすめ奪われ、

    面目を失って、今日あるとおりです。)


  에스라9:10. 우리 하나님이여 ! 이렇게 <포로 생활에서 회복시켜 주신> 하신 후에도,

  우리가 <또다시>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こうなった今、何と言えばよい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の神よ、私たちはあなたの命令を捨てたのです。)


  에스라9:15. 하나님 여호와여 ! 主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神、主よ、あなたは正しい方です。まことに、今日あるとおり、

  私たちは逃れの者として残されています。

 ご覧ください。私たちは罪過を負ってあなたの御前におります。このような状態で、

  だれもあなたの御前に立つことはできないにもかかわらず。)


  이러한 에스라의 간절한 눈물의 회개에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에스라10:1-4절이 그 내용입니다.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エズラが神の宮の前でひれ伏して、涙ながらに祈り告白しているとき、

    男や女や子どもの大会衆がイスラエルのうちから彼のところに集まって来た。

    民は涙を流して激しく泣いた。)

  2. 엘람 자손 중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そのとき、エラムの子孫の一人シェカンヤが、エズラに言った。

  「私たちは、自分たちの神の信頼を裏切り、この地の民である異国人の女を妻にしました。

    しかし、このことについてイスラエルには今なお望みがあります。)

  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今、私たちは自分たちの神と契約を結び、主の勧告と、私たちの神の命令を

    恐れかしこむ人々の勧告にしたがって、これらの妻たちと、その子どもたちを

    みな追い出しましょう。律法にしたがってこれを行いましょう。)

  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立ち上がってください。このことはあなたの肩にかかっています。

    私たちはあなたに協力します。勇気を出して、実行してくだ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금 백성들은, 자신들의 아내와 자식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분명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할지라도, 절대로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백성들이 내어 보낼 가족들은,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사실은 자신들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아내요, 며느리요,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내쫓고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렇듯 참된 회개와 온전한 회개는,

  뼈아픈 돌이킴과, 포기함과 놓아 버림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현재의 습관화되고 체질화된 것에서 벗어나는 일이

  정말로 힘겹고 아픈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 !

  오늘 에스라 회개 운동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점은,

  에스라와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9:11-12절의 에스라가 회개하는 장면을 보면,

  그 회개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로 명하여 이르시되

 (神のしもべである預言者たちによって、こう命じておられました。) ” 

  예 !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 그들의 기준이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와 정의 그리고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현시대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추려 합니다.

  이른바 ‘변질된 상황 윤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수는 항상 옳다’라는 그릇된 편견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동일한 진리요 기준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다 가는 길이니, 그 길이 옳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두들 다 그렇게 하는데 뭐 어때 ?”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러는데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야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오늘 우리는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돌아서서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세상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언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わたしの叱責に立ち返れ。おまえたちにわたしの霊を注そそぎ、

  わたしのことばを知らせよう。)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이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진실하지 못한 재물과 권력과 술수가, 

  진리와 진실을 왜곡시키며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어두움이

  우리 신앙인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까지 침범해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 !

  진실한 회개와 온전한 돌이킴을 실행하여,

  참된 의미의 ‘하나님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합시다.


  그러기 위해, 사랑하는 여러분 !

  ‘다수는 항상 옳다’라는 그릇된 편견에 빠지지 맙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인 것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모든 삶과 삶의 목표들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무차별적으로 침범해 오는 세상 어두움을 막아냅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결한 마음과 정결한 삶을 소망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빛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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