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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4년8월25일, 누가복음 7:11-16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어루만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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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80回 日時 24-08-3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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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분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는 우리가 됩시다.

  성도님 ! 기도할 때 [남의 탓]을 하면서 기도하지 맙시다.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되, 먼저 그 말씀대로 사는 우리가 됩시다.

  성도님,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둘 셋이 같이 기도하는 우리가 됩시다.


  지난 20세기 후반, 영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은, 현재 영국 찰스 왕의 부인이었던 다이애나 妃입니다.

  1961년, 영국의 노퍽 샌드링엄에서 태어난 그녀는, 20세의 나이에

  동화 속의 공주님처럼 영국의 황태자와 화려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다이애나의 순수함과 삶의 자세는,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을 일으켰고,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등은 순식간에 세계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찰스 왕세자와는 쇼윈도 부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찰스에게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부터 첫사랑이었던,

  카밀라라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밀라는 왕세자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불륜관계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것 등이 원인이 되어, 찰스와 다이애나는 14살과 12살의 아들들에게

  큰 상처를 주며, 결혼 15년 만에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7년 8월 31일, 그녀의 나이 36세 때, 다이애나는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약 27년 전에 있었던, 참으로 충격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짧고 허무한 인생을 살다간 다이애나를,

  지금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합니다.

  여러분 !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예 ! 다이애나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손길을 내밀어, 그들을 어루만졌던,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에이즈나 나병 환자와도 서슴지 않고 손을 잡았습니다.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으며, 생활고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따뜻하게 위로했습니다.

  때때로 두 아들(윌리엄, 헨리)을 데리고 병원과 무료급식소,

  노숙자 집단수용시설을 방문하며, 따뜻한 섬김의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약 2천만 개의 지뢰가 묻혀있는 앙골라를 찾아가, 직접 지뢰매설지역을

  걸으면서, 지뢰의 反인륜성과 위험성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 왕자는, 몇 해 전

  인도와 부탄을 방문해, 빈민가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코뿔소 보호구역에서 아기 코뿔소에게 우유를 먹이는 등

  지금도 섬김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그녀는, 격식 있게 잘 연출된 말과 정해진 행동만을

  기대하는 영국 왕실 입장에서 보면, 분명 이단아(異端児)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사람들은 그녀의 따뜻한 섬김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녀를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르네 스피츠라는 의학박사가 있는데,

  그는 ‘마라스무스(접촉 결핍증)’라는 질병(疾病)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마라스무스 병이 어떤 병일까요 ?

  스피츠 박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국립병원 의사로서, 아이들을, 위생적인 환경에서 충분한 음식을 주면서

  양육했음에도, 그들의 사망률이 높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멕시코로 겨울 휴가를 갔을 때, 휴양지 근교의

  한 고아원에서,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고아원의 아이들은, 먹는 음식도 충분하지 못했고, 환경도

  좋지 않았지만, 도리어 건강이 매우 좋았고, 또한 밝았습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스피츠는, 모처럼 만의 휴가도 잊어버리고,

  한참 동안을 그곳에 머물면서,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그 고아원에는 마을의 여인들이 매일 와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또 쓰다듬어 주고, 또 노래도 불러 주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란 이유임을 밝혀냈습니다.


  스피츠 박사는 그 연구 결과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랑의 접촉’을 가진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다.

  하지만 유모차나 침대 위에서 피부의 큰 접촉 없이 자란 아이들은

  점점 약해졌고, 그들의 세포는 하나둘씩 죽어갔다.

  이것이 바로 접촉 결핍증이다”

  그렇습니다.

  육체적인 접촉 부족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안아주거나

  입맞춤을 해 준 아이들이 훨씬 건강하게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는 말하기를,

 “인간의 피부는 풀밭과 같은데, 각 피부의 말초신경이 매우 민감하여,

  피부에 살짝만 닿아도, 인간의 두뇌 속에 그 순간의 기억이 깊이 저장된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도, 손을 꼭 잡아 주든 가,

  아니면 포옹하면서 “사랑해!”라고 말할 때, 사랑이 깊이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안해 사과할 때도, 그냥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손을 꼭 잡는다든가, 가볍게 포옹하면서 말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또한, 꾸짖거나 칭찬을 할 때도,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손을 잡고 말하면, 그 효과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미국 듀크 대학의 생물학자 솔 버그 박사가, 쥐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보통 쥐의 수명은 600일 정도인데, 그중 몇 마리의 쥐를 선별해,

  하루 한두 번씩 쓰다듬어 주니까, 그 쥐들의 수명이 900일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솔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한 의학 연구에서,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나 손을 잡힌 사람,

  둘 다 신체적으로 매우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둘이 손을 잡으면, 두 사람 모두,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올라가,

  산소 공급이 활발해져, 신진대사가 원활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사람과 사람이,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손을 만지고,

  어루만지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나 노인, 또한 건강이 약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터치(touch)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팔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손발을 만져드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노인들의 건강에 매우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만짐이 보약)

  여러분 ! 우리 ! 사랑을 담은 손길로, 서로에게 힘을 줍시다 !!!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12년 동안이나 혈류 증(자궁출혈)을

  앓았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녀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이유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9:22.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娘よ、しっかりし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のです。)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9:22.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その時から彼女は癒やされ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만짐은, 고침을 얻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만져주시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바쁘신 예수님을 “왜 힘들고 귀찮게 하느냐”였을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신 예수님이, 도리어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어린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또한 안수하며

  기도해 주시고, 또한 사랑이 듬뿍 담긴 마음으로, 듬뿍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루만져 주심의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두 소경이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마태복음20:30. 주여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

 (主よ、ダビデの子よ。私たち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

  이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20:32.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わたしに何をしてほしいのですか。)

  그랬더니 그들이 대답했지요.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目を開けていただきたいのです。)”

  여러분 !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따뜻한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마태복음20: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イエスは深くあわれんで、彼らの目に触れられた。すると、

  すぐに彼らは見えるようになり、イエスについて行っ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만져주시는 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어루만져 주라 !”

  여러분 !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사람’이 됩시다.


  첫째, 이웃과 사람들과 가족을, ‘사랑의 눈과 손’으로 어루만집시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잡히실 때,

  제자 베드로가 칼로 예수님을 붙잡았던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잘라버립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고의 잘린 귀를 손에 들고, 귀를 어루만지십니다.

  이 장면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イエスは、「やめなさい。そこまでにしなさい」と言われた。

  そして、耳にさわって彼を癒やされた。)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무리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주먹으로 얼굴과 머리를 맞고, 말할 수 없는 수욕을 당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누가복음22:57.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いや、私はその人を知らな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했을 때, 온갖 폭행을 당하시던 예수님의 눈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문밖의 베드로를 향하셨습니다.

  그 순간 부인하여 실패한 베드로의 눈과, 따스한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이 사랑의 눈빛으로 베드로를 어루만지신 것입니다.

  여러분 !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


  누가복음22:61-62.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主は振り向いてペテロを見つめられた。ペテロは、「今日、鶏が鳴く前に、

      あなたは三度わたしを知らないと言います」と言われた主のことばを思い出した。)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そして、外に出て行って、激しく泣いた。)


  그렇습니다. 주님 주신 말씀이 생각났고,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회개가 있었기에, 베드로는 얼마 후 예수님께,

  요한복음21:17.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主よ、あなたはすべてをご存じです。あなたは、私があなたを

  愛していることを知っておられます。)라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손과 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라고,

  또한, 이웃을 째려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따스한 사랑의 눈빛으로, 이웃을 어루만지라고 주신 것입니다.


  둘째, 이웃과 사람들과 가족을,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집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인 성이라는 곳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곳에서 너무나 서글픈 장면을 목격하십니다.

  한 여인이 일찍 홀로 되어, 하나 남은 외아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는데,

  그만 그 아들이 죽고 만 것입니다. 그것도 20대의 젊은 나이에요.

  그 아들의 장례행렬이 예수님 앞을 지나는데,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온 마을 사람이 슬피 울며, 넋을 잃고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과 아들을 불쌍히 여기사,

  ‘측은한 마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죽은 아들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한글과 일본어 성경은 “그 관에 손을 대시니 (棺に触れられる)”라고 번역했는데,

  팔레스타인 장례는 시신을 관에 넣지 않고, 나무 상여에 눕혀 운구(運柩)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청년의 시신(屍身)을 어루만지신 것입니다.


  여러분 !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사랑의 손이, 싸늘한 시신을 만지셨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본문14-15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そして近寄って棺に触れられると、担いでいた人たちは立ち止まった。

      イエスは言われた。「若者よ、あなたに言う。起きなさい。」)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라>

     (すると、その死人が起き上がって、ものを言い始めた。

      イエスは彼を母親に返された。)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지시자, 죽은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고 하시자, 벌떡 일어나 앉아,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과 본향에는, 우리의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짐이 필요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 참된 성도의 교제가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 서로, 따스한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집시다.

  분명, 그 사랑을 통해,

  우리의 죽은 것 같은 것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가정에도, 이웃에도

  지금 당장 ‘사랑의 어루만짐’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서도, 우리의 이웃들 속에서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같은, 회복의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서로를 사랑의 마음으로 어루만져, 사람을 살려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셋째, 이웃과 사람들과 가족을, ‘간절한 기도’로 어루만집시다.


  따스한 눈과 손으로의 어루만짐, 그리고 사랑의 마음의 어루만짐이,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과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들을 향한 어루만짐이라면,

  ‘기도의 어루만짐’은 가까운 곳에 있는 분들은 물론,

  멀리 있는 가족과 멀리 있는 이웃을 어루만질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17:9-11. 17.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わたしは彼らのためにお願いします。世のためにではなく、あなたがわたしに

      下さった人たちのためにお願いします。彼らはあなたのものですから。)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わたしのものはすべてあなたのもの、あなたのものはわたしのものです。

      わたしは彼らによって栄光を受けました。)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わたしはもう世にいなくなります。

      彼らは世にいますが、わたしはあなたのもとに参ります。

      聖なる父よ、わたしに下さったあなたの御名によって、彼らをお守りください。

      わたしたちと同じように、彼らが一つになるためです。)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真理によって彼らを聖別してください。あなたのみことばは真理です。)


  또한, 우리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17:20-21. 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わたしは、ただこの人々のためだけでなく、

      彼らのことばによってわたしを信じる人々のためにも、お願いします。)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父よ。あなたがわたしのうちにおられ、わたしがあなたのうちにいるように、

      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彼らもわたしたちのうちにい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

      あなた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ことを、世が信じ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わたしは彼らにあなたの御名を知らせました。また、これからも知らせます。

      あなたがわたしを愛してくださった愛が彼らのうちにあり、

      わたしも彼らのうちにいるようにするためです。)


  그렇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간절한 기도로, 먼 훗날의 우리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어루만지심이 우리에게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예배도 드릴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따스한 눈과 손길의 만짐이, 영혼을 회복시키듯이,

  또한, 사랑의 마음으로 만짐이, 죽은 사람을 살리듯이,

  간절한 기도의 만짐은, 구원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 ! 눈과 손길로,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 이웃을 어루만집시다.

  함께 한 성도들을 어루만집시다.

  가족을 어루만집시다.

  분명 우리의 어루만짐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그 만져주심의 은혜를 함께 찬양합시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イエスのように、心触れるものなし)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とわに探し求めても、他になし)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あわれみ豊かにあふれ、いやしはみ手に)

  고통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苦しむ子ら胸にいだき、守られる)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イエスのように、心触れるものなし)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 (とわに探し求めても、他になし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어루만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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