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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024년3월10일, 에베소서 2:14-19 (성도의 교제 <聖徒の交わり>)-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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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철 작성일 24-03-16 11:48 조회 4,433 댓글 0

본문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이유 중 하나는 [교제 (交わり)]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

  우리는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성도의 교제]는 예수님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聖徒の交わり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た、イエス·キリストの中にある交わりです。)

  성도들과의 온전한 교제를 통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얻습니다.


  지난 주일과 오늘,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박사 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를 참고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둘째,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다가가야 한다.]

  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곳에는 다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이루어 주신 화평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キリストこそ私たちの平和です。キリストは私たち二つのものを

  一つにし、ご自分の肉において、隔ての壁である敵意を打ち壊し、)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죄와 질투와 다툼 등으로 인해, 나눠질 수밖에 없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와 우리 사이에는 다툼과 불화(不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며,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는 앞으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는 서로 교제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만한 신앙인들은, 예수님 없이 교제하려 합니다.

  하나님도 없이, 예수님도 없이, 자신들만의 그룹을 만들려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시기 위해, 골고다가 있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하루 전, 예수님은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요한복음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イエスは過越の祭りの六日前にベタニアに来られた。

  そこには、イエスが死人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たラザロがいた。)

 <참고> 베다니 : 예루살렘 동쪽 약 3km의 거리에 있는 마을로서,

  감람산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로부터 약 6개월 전, 나사로는 죽은 지 4일이나 지났지만,

  예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었습니다.

  이에 나사로와 그의 동생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준비했고,

  마침내 예수님이 6개월 만에 오시자 잔치를 열었습니다.

  요한복음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人々はイエスのために、そこに夕食を用意した。マルタは給仕し、

  ラザロは、イエスとともに食卓に着いていた人たちの中にいた。)

  잔치 도중, 마리아는 지극히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으며,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편, 예수님이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많은 유대인이 나사로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와

  그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예수님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大勢のユダヤ人の群衆が、そこにイエスがおられると知って、やって来た。

  イエスに会うためだけではなく、イエスが死人の中から

  よみがえらせたラザロを見るためでもあった。)


  그런데 여러분 !

  이 아름다운 광경을, 시기와 질투로 지켜본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12:10-11.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祭司長たちはラザロも殺そうと相談した。)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彼のために多くのユダヤ人が去って行き、

      イエスを信じるようになったからである。)


  여러분 ! 묻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과 나사로를 왜 죽이려 합니까 ?

  예 ! 많은 유대인이 자신들을 떠나, 예수님에게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11절의 [가서]의 원문 헬라어는 [휘페곤]인데,

  그 뜻은 [신속하게 달려나감]입니다.

  더구나 [휘페곤]의 시제(時制)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유대인들이 줄을 이어, 신속하게 달려나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에, 영어 성경에서는 [away, going over] 등의 단어를 사용해,

  [유대인들이 대제사장들의 앞을 떠나, 예수님께로 갔다]라고 묘사합니다.

  그래서 한글 표준새번역 성경은, 11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표준새번역. 많은 유대 사람이 떨어져 나가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 한 번 더 묻습니다.

  사람들이 내 앞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몰려가는 것이 그토록 분(憤)하고,

  화가 나며, 심지어 살인을 계획할 정도로 열 받는 일입니까 ?!


  예 ! 열 받는 일이고, 분(憤)하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세상 거의 모든 인간은, 다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가면, 눈에 불이 납니다.

  어디 눈뿐입니까 ?!

  머리에도, 마음에도 시기와 질투의 불이 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확실히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5:17. 19-21.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肉が望むことは御霊に逆らい、御霊が望むことは肉に逆らうからです。この二つは

      互いに対立しているので、あなたがたは願っていることができなくなります。)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肉のわざは明らかです。)

  20. .......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敵意、争い、そねみ、憤り、党派心、分裂、分派、)

  21. 투기와 .......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ねたみ、そういった類いのものです。このようなことをしている者たちは

      神の国を相続できません。)


  더구나 여러분 !

  유대인의 무리가 자신들을 떠나 예수님께로 가버렸다고,

  크게 분노하는 대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

  물론입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神は混乱の神ではなく、平和の神なのです。)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平和をつくる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の子どもと呼ばれるからです。)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하나님 없는 모임, 하나님 빠진 모임,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안 계신 모임, 예수님 뺀 모임, 성도의 교제 절대로 아닙니다.

  혹,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교제가 혹, 지금 내가 속한 모임이

  예수님이 안 계신 모임은 아닌지, 혹, 예수님을 뺀 모임은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만약, 내가 속한 곳에, 혹은 내가 추구하는 곳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속히 그 모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모두 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우리)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우리) 인생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시며, 유일한 머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예수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고,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찬송과 예배와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각 다른, 재능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그림을 잘 그리고, 어떤 분은 가르치기를 잘하며,

  어떤 분은 음식을 잘 만들고, 어떤 분은 정리정돈을 잘합니다.

  우리는 이런 재능을 발휘해서,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구제와 봉사도 하고, 찬양과 성경공부도 하고, 교제도 합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회도 하고, 윷놀이와 수양회도 가집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도, 오직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본향교회에 모이는 이유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본향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모인 [예수님 공동체]입니다.

  우리 모임에 예수님이 없으면 모일 이유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으면, 본향교회는

  아무 가치도 없는 빈껍데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다른 지체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그 사귐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교제와 사귐이 참되고 깊어질수록, 우리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뜻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게 됩니다.

  이것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난 주일부터 지금까지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면,


  첫째, 우리는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도들과의 온전한 교제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습니다.


  둘째, [성도의 교제]는 예수님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聖徒の交わり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た、

 イエス·キリストの中にある交わりです。)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모임, 하나님 빠진 모임,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모임, 예수님을 뺀 모임에는,

  성도의 교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다른 지체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그 사귐을 지속해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성도의 교제가 이루지는 공동체,

  즉 본향교회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


  자 ! 묻습니다.

  여러분이 본향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으셨을 때,

  본향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대해,

  어떤 꿈과 소망을 품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그냥 오셨습니까 ?!


  혹시, 꿈과 소망을 품고 오셨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셨습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


  자신의 꿈과 소망을 본향교회에서 이루려고 애쓴 분들에게만 묻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 내셨나요, 아니면 이루어 내지 못하셨나요 ?!

  이에 대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의 꿈을 신속하게 깨버리십니다."

 "하나님은 꿈만 깨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에 대한 커다란 실망,

  무엇보다 교회에 대한 실망,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에 짓눌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에게 공동체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지게 하십니다."


  성도여러분 ! 또 묻습니다. 

  새로운 성도가 본향교회와 지체에 대해 실망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실망할 때,

  본향교회와 지체들은 그 성도에 대해 실망하겠습니까,

  실망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무게의 차이는 있겠지만, 교회와 지체도 같이 실망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본회퍼 목사님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러한 실망이 개인에게나 공동체에 빨리 찾아올수록

  양자에게 훨씬 유익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인의 꿈과 이상(理想)에

  집착하는 공동체는, 언제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 인간적인 꿈은, 참된 공동체를 방해하므로,

  반드시 깨어져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그 공동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꿈을, 그 기독교 공동체 자체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라 해도,

  결국 모든 기독교 공동체의 파괴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몽상(夢想)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몽상은 사람을 교만하고 거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조금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성도가, 우리 본향교회에 대한 소망과 꿈(본향교회상, 本鄕敎會像)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예를 들면, 선교하는 교회, 철야 기도하는 교회 등등)

  그 성도는,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며 힘쓰며 노력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 성도의 결심이 강할수록,

  그 성도는 자신이 생각한 방법과 계획 등을 만들어,

  꿈을 이루어 내려 할 것이고,

 (만약, 다른 성도들이 그 방법을 따르지 않을 때)

  다른 성도와 교회를 비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 성도는 마치 자신이 본향교회를 만들어 낸 것처럼

 (사실은,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자신이 꿈꾼 대로 다른 성도들을 움직여 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는 그것을 실패라고 규정합니다.

  실패를 맞이한 그 성도는,

  처음에는 다른 성도들을 정죄(定罪)하고, 후에는 교회를 정죄(定罪)하며,

  마지막에는 절망에 빠져 자기 자신을 정죄(定罪)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는, 그 누가 아닌,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본향 공동체가 지금의 이 모습,

  지금의 이 모양을 가지게 하신 것 역시,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향 공동체에 대해,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본향교회에 행하신 일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향 공동체 안에,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 개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 공동체에도 감사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공동체가 더욱 큰 것을 받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것을 구하면서도, 매일의 작은 (그러나 사실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선물에는 감사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소속된 본향 공동체에 대해, 날마다 감사하지 않고,

  도리어 모든 것이 우리 기대와는 달리,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며 불평만 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준비해 놓으신,

  본향 공동체를 성숙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앞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교회 공동체는, 성도 개개인의 [거룩한(?) 욕망]을 이루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과 기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는 곳입니다.

  잠언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人の心には多くの思いがある。しかし、主の計画こそが実現する。)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본향교회(본향 공동체)로 보내신 것은,

  우리 본향교회의 부족한 것들에 대해 불평하며,

  본향의 영적인 체온을 끊임없이 재어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본향 공동체의 꿈을, 본향 공동체 자체보다도 더 사랑하는 지체는,

  그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헌신적인 사람이라 해도,

  자칫 본향 공동체를 파괴하는 파괴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우리 본향교회에 이미 주신 것들을,

  날마다 감사함으로 받아 누리며, 서로를 격려한다면,

  우리 본향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더욱 견고하게 될 것이며,

  더욱 성숙해질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본향교회(본향 공동체)의 모습은,

  우리가 우리의 원하는 대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도(主導)하셔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하나님 보다 앞서가는 우리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또한, 본향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거절하는 우리도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과거,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2:13.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かつては遠く離れていたあなたがたも、今で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

  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近い者となりました。)


  이제 우리는 남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본문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こういうわけで、あなたがたは、もはや他国人でも寄留者でもなく、

  聖徒たちと同じ国の民であり、神の家族なのです。)


  그러므로 우리,

  더더욱 깊고 다정한, [성도의 교제 (聖徒の交わり)]를 나눕시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다른 지체와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사귐을 지속해 나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제 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와 본향 공동체를 나날이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날마다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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