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년3월3일, 에베소서 2:11-13 (성도의 교제 <聖徒の交わり>)-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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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 하라 하시니, 거룩한 우리가 됩시다.
긍정적인 말, 위로의 말, 믿음의 말, 감사의 말, 축복의 말을 합시다.
그런데 성도님,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님, 거룩하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이 우리 안에 나타나고, 우리도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 두 주 전에, 세례(洗禮)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
세례가 언제부터,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지요 ?!
예 ! 신구약 중간기(中間期)에,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에 입교(入敎)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례가 시작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례(洗禮, バプテスマ)는 개인적인 신앙 결단의 측면은 물론,
신앙공동체(즉,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성도인 우리는 세례를 통해, 신앙공동체(교회)의 일원이 됨과 동시에,
같은 소망과 같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왜 하나님은, 세례를 통해 성도를,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을까요 ?!
다른 측면에서 묻는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모아 주셨을까요 ?!
예 !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제 (交わり)]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함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使徒信條)]을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我は天地の造り主、全能の父なる神を信ず。)]
어느 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我はその独り子、我らの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ず。)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에게 나시고,
(主は聖霊によりてやどり、おとめマリヤより生ま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ポンテオ・ピラトのもとに苦しみを受け、十字架につけられ、
死にて葬られ、陰府にくだり、)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三日目に死人の内よりよみがえり、)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天にのぼり、全能の父なる神の右に座したまえり。)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かしこよりきたりて生ける者と死にたる者とを審きたまわん。)]
어느 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성자 하나님]입니다. 즉, 예수님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我は聖霊を信ず、)]
어느 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성령 하나님]입니다.
[거룩한 공회<公會, 즉 교회>와 (聖なる公同の教会、)]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교회]입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聖徒の交わり、)]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罪のゆるし、からだのよみがえり、とこしえの命を信ず。アーメン)]
무엇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며, 우리의 고백입니까 ?!
예 ! [대속(代贖)의 은혜, 부활(復活), 영생(永生)]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항상 고백하는 사도신경(使徒信條)의
여덟 가지 고백에 당당히 포함될 정도로,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시편133:1-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見よ。なんという幸せ、なんという楽しさだろう。
兄弟たちが一つになって、ともに生きることは。)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それは、頭に注がれた貴い油のようだ。それは、ひげに、
アロンのひげに流れて、衣の端にまで流れ滴る。)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それはまた、ヘルモンから、シオンの山々に降りる露のようだ。
主がそこに、とこしえのいのちの祝福を命じられたからであ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성도의 교제]를 행하여,
시편 133편의 복을 항상 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보배로운 기름’의 복, 즉, 성령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며,
성령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슬'의 복, 즉, 매일 매 순간, 성령을 통해 은은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잔잔한 은총]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생'의 복, 즉,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同居)하는 복]도 누리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또한,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가 신앙생활에,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이렇게 교훈합니다.
에베소서2:20-22.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あなたがたは、>使徒たちや預言者たちという土台の上に
建てられていて、キリスト・イエスご自身がその要の石です。)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建物の全体が組み合わされて成長し、
主にある聖なる宮となります。)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あなたがたも、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ともに築き上げられ、
御霊によって神の御住まいとなるのです。)
이 말씀에서 21절의 [건물]은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전체 교회]는 물론 [각 교회와 각 성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에베소서4:15-16.
15. .......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あらゆる点において、かしらであるキリストに向かって成長するのです。)
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 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キリストによって、からだ全体は、あらゆる節々を支えとして組み合わされ、
つなぎ合わされ、それぞれの部分がその分に応じて働くことにより成長して、
愛のうちに建て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서로 연결되어,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 온전한 성도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이유입니다.
자 !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요사이,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 열심히 하고 계십니까 ?!
요사이,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 바르게 하고 계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도인 우리가, 서로 어떻게 교제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교제(聖徒の正しい交わり)]일까요 ?!
약 1년 전, 우리교회 집사님으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성도의 공동생활]입니다.
독일 출신의 본회퍼는, 세계적인 목사요, 세계적인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본회퍼 목사님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교회는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교회의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지했으며,
히틀러를 암살하는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부 과격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본회퍼는 신학적으로, 보수주의보다는 자유주의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본회퍼 목사님에 대한 제 생각이,
잘못된 선입관(先入觀)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특히,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는
너무나 깊은 (하나님의) 진리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래서 지금 소개합니다.
저에게 이처럼 귀한 책을 선물하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과 다음 주일,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성도의 교제(聖徒の交わり)]에 대해 말씀을 전합니다.
두 주의 말씀을 통해,
[성도의 바른 교제(聖徒の正しい交わり)]가 우리 가운데 풍성히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또한, 그를 통해 시편 133편의 복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핵심(核心, 中核)]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聖徒の交わり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た、
イエス·キリストの中にある交わりです。)
자 ! 여러분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첫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른 그리스도인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의(義)]를, 우리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찾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구원받은 자녀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말씀 따라 산다고 하면서도, 지난 주일의 말씀은 기억도 못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산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다르면, 짜증부터 냅니다.
기도한다고 하지만, 식사 기도 말고는, 좀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예배합니다.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시간을 나 자신을 위해 삽니다.
주님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 신앙생활 합니다.
그리고는 시험 들고, 낙심하고, 하나님과 이웃과 교회를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우리는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의(義)]를
우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될까요 ?!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성경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집니다.
우리 본향지체들에게 한 번 소개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윌버 채프만(Wilbur Chapman)이 대학생 때, 그에게도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채프만은, 유명한 무디 목사님이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날의 주제는 [구원(救援, 救い)]이었습니다.
그런데 채프만은, 예배 후에도 전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다음, 개인적으로 무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채프만은 무디 목사님에게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무디 목사님, 전 아직도 분명한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무디 목사님이 묻습니다. "자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
"네, 믿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아직 분명한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요한복음5:24절을 펴서 읽어보게 !"
채프만은 그 말씀을 즉시 펴서 읽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わたしのことばを聞いて、
わたしを遣わされた方を信じる者は、永遠のいのちを持ち、
さばきにあうことがなく、死からいのちに移っています。)"
"이 말씀을 믿는가 ?"
"예, 믿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 이제는 구원의 확신이 생겼겠지 ?!"
"글쎄요 ! 아직 저에게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요한복음 5:24절의 말씀을 읽어보게 !"
채프만은 큰소리로 다시 한번 말씀을 읽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わたしのことばを聞いて、
わたしを遣わされた方を信じる者は、永遠のいのちを持ち、
さばきにあうことがなく、死からいのちに移っています。)"
무디 목사님이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믿는가 ?"
"아, 글쎄 아까 믿는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그럼 자네는 영생의 구원을 얻었는가 ?"
"아, 글쎄 그것을 잘 몰라, 지금 고민하고 상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러자 무디 목사님이 윌버 채프만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자네가 뭐라고 감히 하나님을 무시하는가 ?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믿는 자가 영생을 얻었다 하면 얻은 것이지,
자네가 그토록 잘 났는가 ?"
그제야 채프만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목사님 ! 그렇다면 제게 이미 영생이 주어졌다는 말씀입니까 ?"
"여보게 !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이야 !"
채프만은 바로 그 순간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윌버 채프만은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었으며,
훗날 무디 목사님이 은퇴했을 때,
무디 목사님이 담임했던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한, 훌륭한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구원의 확신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
우리의 느낌입니까 ?
아니면, 지금 내 속에 있는 신앙의 감정입니까 ?
아니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멋진 신앙생활의 모습입니까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구원의 확신을 그러한 곳에 절대로 두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런 곳에 구원의 확신을 두면,
멀지 않아 그 확신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것입니다.
한국 신학의 거장(巨匠) 차영배 목사는 구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를 구원받는 자녀라 하니, 우리는 구원받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구원의 근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믿으십니까 ?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인하십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로마서10:9-10 말씀의 주인공입니다.
로마서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もしあなたの口でイエスを主と告白し、あなたの心で神はイエスを
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たと信じるなら、あなたは救われます。)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人は心に信じて義と認められ、口で告白して救われるのです。)
할렐루야 ! 아멘 !
2> 하나님이 묶어 주신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의 입에 넣으시고,
그 '다른 사람'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나에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 '다른 사람'은, 목사일 수도 있고, 성도일 수도 있고,
구역 식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줄,
다른 그리스도인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은 불확실하지만,
다른 성도(혹은, 목사, 신앙 친구)의 말씀 속에 계시는 예수님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귐(성도의 교제 <聖徒の交わり>)을
갖는 목적이 분명해졌습니다.
성도는 서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서
만나고 교제(交わり)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본향 지체가 서로에게 구원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묶어 주셨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낙심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라고,
우리를 묶어 주셨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시험에 들었을 때,
손을 붙잡아 일으켜 세워주라고, 우리를 묶어 주셨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사명 앞에서 두려워할 때, 격려하라고,
우리를 묶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성도의 바른 교제(聖徒の正しい交わり)]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히브리서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10:24-25.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愛と善行を促すために、互いに注意を払おうではありませんか。)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ある人たちの習慣に倣って自分たちの集まりをやめたりせず、
むしろ励まし合いましょう。その日が近づいていることが
分かっているのですから、ますます励もうではありませんか。)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의 교제는,
사도신경(使徒信條)에 고백할 정도로, 신앙생활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제입니다.
(聖徒の交わりはイエス·キリストを通じた、
イエス·キリストの中にある交わりです。)
어떤 교제에 예수님이 빠지거나, 주님의 뜻과 다르면,
그것은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여) 서로 격려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신앙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칭찬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예수님을 닮아 가고 있다고 칭찬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주님을 위해 함께 헌신하자고 권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같이 기도하자고 초대합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에게, 같이 찬송하며, 예배하자고 권합시다.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의 [교제 (聖徒の交わり)]를
복된 열매로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성도의 바른 교제(聖徒の正しい交わり)]는
말씀을 선포하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바른 교제는, 칭찬하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바른 교제는, 초대하고, 격려하고, 권하는 교제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거짓이든 아니든) 소문을 말하고,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고,
서로가 아닌 남(다른 성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또한,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묶어 주신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십니다.
더구나 성도의 교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실 복의 통로가 됩니다.
‘보배로운 기름’의 복, 즉, 성령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며,
성령을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슬'의 복, 즉, 매일 매 순간, 성령을 통해 은은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잔잔한 은총]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영생'의 복, 즉,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同居)하는 복]도 누리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본문 말씀을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칩니다.
본문11-13절.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 할례를 받은 ...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思い出してください。あなたがたはかつて、肉においては異邦人でした。
割禮を持つ人々からは、無割禮の者と呼ばれ、)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そのころは、キリストから遠く離れ、約束の契約については他国人で、
この世にあって望みもなく、神もない者たちでした。)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しかし、かつては遠く離れていたあなたがたも、今では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
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近い者となりました。)
아멘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