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3월1일, 빌립보서 2:5-8 (예수님이 품으신 생각)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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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026년3월1일, 빌립보서 2:5-8 (예수님이 품으신 생각<思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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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3-07 21:50 ヒット 3 コメント 0

本文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A. D. 50년경)에

  자주 장사 루디아(紫布の商人 リディア. 사도행전16:14),

  빌립보의 간수(ピリピの看守. 사도행전16:34) 등과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그로부터 약 12년 후, 빌립보교회와 그 성도들은 크게 성장했지만,

  성장해 가는 모든 교회가 그렇듯이, 몇 가지 어려운 문제도 안고 있었습니다.

  특히, 빌립보교회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두 여인이었습니다.

  두 여인의 이름은 유오디아와 순두게(ユウオディア、シンティケ)였는데,

  그 둘은 빌립보교회의 설립 멤버였고, 교회의 중직자(役員)였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어떤 일을 계기(성경은 이 일에 침묵합니다)로,

  서로 충돌하여 다퉜고, 시간이 지나도 용서도 하지도 않고, 반목하다가, 

  마침내 파당까지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신앙은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성장해 가고,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에베소서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あなたがたも、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ともに築き上げられ、

  御霊によって神の御住まいとなるのです。)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동역자를 [멍에를 같이한 자 (くびきを共に負う者).

  빌립보서4:3]라고 표현했습니다.

  성도여러분 !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멍에를 지고, 일하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깨높이도 맞춰줘야 하고, 진행 속도도 맞춰줘야 하고,

  발걸음의 넓이도 맞춰줘야 합니다.

  즉, 자기 스타일을 내려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서로 부딪쳐서, 결국에는 넘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에게는 동역자와 함께 걷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의 스타일을 내려놓고, 상대를 잘 살피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배려할 때, 비로소 함께 걸을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신앙은 나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견뎌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편,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급히

  편지를 써, 두 여인과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가르칩니다.

  그 편지가 바로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ピリピ人への手紙)]입니다.

  바울은 편지(빌립보서)를 통해, 두 여인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빌립보서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ユウオディアに勧め、シンティケに勧めます。

  あなたがたは、主にあって同じ思いになってくだ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바울은 두 여인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主にあって同じ思いになってください。)"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두 여인, 그리고, 빌립보교회의 성도, 그리고

  모든 성도가 품어야 할 [그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


  본문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あるこの思いを、あなたがたの間でも抱きな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물론, 우리가 품고

  또, 가져야 할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인격이나 성품]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일까요 ?!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또 몇 가지를 묻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인격과 성품은 전부 똑같나요, 아니면 각각 다르나요 ?!

  예 !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도, 인격이나 성품이 각각 다릅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 !

  급한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느린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

  꼼꼼한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헐렁한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

  엄한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아니면 너그러운 성품이 좋은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여러분 !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우리에게는, 이쪽저쪽 모두의 성품이 있어야 좋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 각각의 사람들에게 개성(個性)을 주셨습니다.

 <참고> 개성: 한 개인이 가지는 고유한 취향이나 특성

 <참고> 個性(こせい): 個人や個体が持つ他とは異なる独自の性質や特徴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는 부드러운 성품을 주셨고,

  야곱의 아들 레위에게는 급한 성품을 주셨으며,

  야곱의 아들 시므온에게는 물불을 안 가리는 과격한 성품을 주셨고,

  야곱의 아들 요셉에게는 차분한 성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그 성품대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질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본문5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キリスト・イエスのうちにあるこの思いを、あなたがたの間でも抱きなさい。)

 

  여러분 !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가진 모든 개성(個性)을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인격을 가지라는 것일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기질대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気質に応じて用いる神)]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은 무엇을 가지라는 것일까요 ?!

  본문5절의 표준새번역 성경과 KJV 성경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표준새번역.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주신 태도입니다

 (皆さんはこのような態度を持ってください。

  それはすなわち、キリスト・イエスが示された態度です。)

 

  KJV.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あなたがたのうちに、この思いを抱きなさい。

  それは、キリスト・イエスの中にもあった思いだ。)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인격이나 성품]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진 생각이나 태도]입니다.

  즉, 예수님의 마음(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思い)과 태도(態度)와 자세(姿勢)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올 한해, 우리의 목표가 [예수님을 닮는 교회, 예수님을 닮는 성도]인데,

  이 목표는 '예수님의 마음이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태도와 자세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


  첫째, 자기가 가진 모든 권리를 버리시기로 생각하셨습니다.


  본문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

  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이 말씀에서 본체(御姿)라는 말의 원문 헬라어는 [모르페]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성품'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으로 가지셔야 할 모든 속성과 성품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또 버리시기로 생각하셨고, 실제로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의 가진 이 생각과 태도를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빌립보교회의 설립 멤버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그들은 그 교회의 중직자(役員)였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12년 전, 바울과 함께 헌신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여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4:3.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이었다>

 (この人たちは、福音のために私と一緒に戦ったのです。)

  이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두 여인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을 것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그렇다면,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교회 안에서 어떠했어야 합니까 ?!

  물론입니다. 예수님이 가진 생각과 태도로 자신들을 낮춰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진, 자신들의 경력과 지위, 권리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급기야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내 편 네 편'으로 나누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함께 마음과 입으로 다짐해 봅시다.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를 본받아,

  내가 가진 모든 권리를 버리도록 힘쓰겠습니다.]


  1> 나이(年齢) 및 선배(先輩)로서 가진, 모든 권리와 지위를 버립시다.


  일본과 달리,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따지는 것 중 하나가 나이입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꼭 묻는 것이 나이입니다.

  나이를 물는 다음에는 꼭 서열을 매깁니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자기보다 두 살이 많으니까, 앞으로는 그냥 언니라고 불러 !"

  그렇습니다. 나이가 조금 많다고, 말을 탁 놓습니다.


  우리 교회도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연세가 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본향의 대다수 어른은 그렇지 않지만, 두세 분은

  젊은 성도를 향해, 말이 짧은 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젊은 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말합니다.

  경어(敬語)를 쓰지 않고, 말을 짧게 하는 것(즉,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친숙한 것이라고요.

  저는 제 아내와 31년째 부부로 지내고 있고, 37년째 사랑하며

  지내고 있지만, 지금도 서로 경어(敬語)를 쓸 적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와 제 아내가 친숙하지 않을까요 ?!

  아니요 ! 저는 본향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잉꼬부부라고 생각합니다.


  군대나 직장에서 뭔가 난처할 때, 먼저 온 선배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너, 몇 기(基)야 ?!" "너, 언제 입사(入社)했어 ?!"

  여러분 ! 먼저 들어온 것을 말할 것이 아니라,

  먼저 들어온 선배답게,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낮아진 것을

  후배에게 보여주는 것이, 멋진 선배이며, 본받을 선배가 아니겠습니까 ?!


  2> 이웃에게 베풀고, 도와주고, 섬긴 것에 대한 모든 공치사(功致辭)를 버립시다.


 <참고>

  공치사(功致辭, 자기가 한 좋은 일을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함.

  自分がした良いことを自分で称賛し、誇る)


  물론, 자신이 행한 선한 일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또다시 용기 내어 선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와 반대로, 자신이 행한 선한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를 높이고 칭찬하는 일은,

  자칫 이웃을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서로 다툴 때, 꼭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

  여러분 !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

  예 ! 이 말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너를 도와주고, 너를 섬기고, 너에게 준 것들이 정말

  많은데, 네가 그 은혜도 모르고,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참으로 이상하게도, 사랑하고 섬겼던 사람과 좋았던 관계를,

  더 확실하게 깨고,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동안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 그리고 그 사람을 돕고 섬겼던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 왜 이런 이상한 일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납니까 ?!

 

  그것은 우리가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

  네 ! 이웃을 향한, 사랑, 선행, 섬김, 도움을 잊지 않고,

  그 이웃으로부터 보답을 받고, 높임을 받으려는 [공치사 마음]을 말입니다.


  여러분 !

  만약 성도 간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

  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면, 그 관계는 갈 때까지 다 간 것입니다.

  이제까지 함께 쌓아왔던 두 사람의 모든 관계를 다 불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교훈입니다.


  또한, 여러분 !

  만약 부모와 자식 간에, "내가 너에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

  라는 말까지 했다면, 그 관계 또한, 갈 때까지 다 간 것입니다.

 

  또한, 만약 자식과 부모 간에, "내가 아빠(엄마)에게 어떻게 했는데,

  아빠(엄마)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라는 말까지 했다면,

  그 관계 또한, 갈 때까지 다 간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제까지 함께 쌓아왔던 부모와 자식 간의 모든 관계를 다 불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너무 소중한 교훈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 가지신 모든 속성과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또 버리시기로 생각하셨고, 실제로 버리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의 가진 이 생각과 태도를 우리도 가집시다.


  첫째, 나이(年齢) 및 선배(先輩)로서 가진,

         모든 권리와 지위를 버립시다.

 

  둘째, 이웃에게 베풀고, 도와주고, 섬긴 것에 대한

         모든 공치사(功致辭)도 버립시다.


  분명, 하나님은 예수님이 가지신 그 생각과 그 태도를 가진 우리를,

  예수님처럼 높여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소망하며,

  오늘도 묵묵히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태도를 닮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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