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3월8일, 고린도후서 12:7-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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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026년3월8일, 고린도후서 12:7-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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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3-14 20:09 ヒット 1 コメント 0

本文

  제 아버지는 육류(肉類)보다 어류(魚類)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어릴 때부터 꽁치나 고등어 갈치 등을 자주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생선을 굽거나 졸여 먹으면, 가끔 곤란한 일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어떤 곤란한 일일까요 ?!

  물론입니다. 가끔 목(のど)에 생선 가시가 박힙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합니다.

 "큰 김치를 입에 넣고, 강하게 깨물지는 말고 오물오물하다가, 꿀꺽 삼키거라 !"

  이렇게 하면, 대부분 가시가 김치와 함께 위(胃)로 내려가지만,

  어떤 경우는 김치를 몇 번이나 삼켜도,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요사이 우리 본향 성도들을 보면,

  가시(일본어 성경, とげ)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참고> とげ(棘)には、主に以下の3つの意味があります。

  (가시에는 주로 다음의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植物の突起: バラのトゲやクリのイガのように、植物の茎や葉に生える針のような突起。

                  (장미나 밤의 가시처럼, 식물의 줄기나 잎에 자라는 바늘 같은 돌기)

  皮膚に刺さるもの: 木の破片や魚の骨など、皮膚に刺さる小さく鋭いもの。

                  (나무 조각이나 물고기 가시 등 피부 등에 박히는 작고 날카로운 것)

  人を傷つける言葉: 相手を不快にさせるような、きつい言葉や皮肉。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거친 말이나 비꼬는 행동)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바울도 육체의 가시로 크게 고통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토록 강해서, 아무 어려움과 아픔도 없어 보였던 바울에게도,

  사실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큰 고통과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가시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그 가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어떤 질병(病)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 가시는,

  평생 바울을 끊임없이 찌르고 할퀴어서, 바울을 크게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모든 인간은 육체의 가시, 혹은, 마음의 가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시로 인한 아픔을 견디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오늘 함께 한 우리 모두도 똑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가시를 이겨내시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가시를 빼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다.

  본문8절.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この使いについて、私から去らせてくださるようにと、

  私は三度、主に願いました。)

 

  여기에서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은, 그저 설렁설렁한 기도가 아닙니다.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밤을 새우는 철야기도였는지, 혹은 금식기도였는지,

  광야에서의 어떤 특별한 기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이 시간을 정해,

  일정 기간, 그 한 제목만을 놓고, 간절히 기도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이렇게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 제가 지금, 오직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

  더구나 주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죽을힘을 다해, 충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 !

  이토록 제 몸이 아파서야, 어떻게 이 사명을 계속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주님 ! 치료해 주세요.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즉시 고쳐주세요 !”


  여러분 ! 바울의 이 기도가 타당합니까 ? 타당하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타당합니다.

  원활한 복음 사역을 위해, 가시를 빼 주시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주시라는 기도,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해 주실만 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찌 된 일인지 뜻밖의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자 ! 바울에게 주신 주님의 응답은 어떤 응답이었습니까 ?

  자 !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わたしの恵みはあなたに十分である。

  わたしの力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からである。)


  그렇습니다.

  지금 바울에게 들려오는 음성은, 오래 前

  다메섹을 향하여 가다가 들었던, 바로 그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래 ! 너의 고통을 내가 잘 안다 ! 내가 너의 가시를 없애주마 !”

  하는 말씀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혹은, “그래 ! 그동안 너를 테스트해보려고 그랬던 거야 ! 이젠 됐다.

  내가 너의 가시를 빼주마 !”라고 하셨어도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그런데 주께서 바울에게 주신 응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누리고 있는 내가 준 은혜는, 지금도 충분하다”

 “네가 더욱 약해져야, 나의 능력이 네 속에서 더욱 온전하여진단다”

  이것은, 바울의 기대와는 다른 너무나 예상 밖의 응답이었습니다.


  여러분 ! 만약 우리가 바울이라면, 이 응답을 듣고 어떠했겠습니까 ?

  분명 괴로웠을 것입니다.

  원망도 되었을지 모릅니다.

  참 서운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 소망하나 안 들어주시나 ?”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그래 ! 主님께서 이 가시를 내게 허락하셨다면,

  분명 거기에는 主님의 깊은 뜻이 있을 거야”

 “그래 ! 가시에 찔리자 !”

 “찔리고 또 찔리다 보면, 언젠가는 이 가시도 무뎌지겠지 !

  그러면 그때는 견딜 수 있을 거야 !”

 “더구나 내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더 온전해진다고 하시잖아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름다운 보석인 진주는,

  조개의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통해 만들어진 '보석'입니다.

  조개가 입을 벌릴 때, 모래 한 알갱이가 조개 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 모래알은 조금씩 또 조금씩 조개의 연한 살을 파고 들어가지요.

  그순간, 조개는 자기 몸을 할퀴는 큰 통증을 느낍니다.

  조개는 그것을 이겨보려고,

  자기 몸의 모든 진액을 내보내서 모래알을 에워쌉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그 모래알은 조개의 몸에 박힌 가시가 되어,

  조개가 잊을만하면 찌르고 또 찌릅니다.

  그때마다 조개는 온 힘을 다해, 다시 진액을 쏟아부어, 아픔을 덜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시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후 어느 순간, 그 '모래알'과 '조개의 아픔의 진액'이 하나 되어,

  마침내 딱딱한 구슬 모양의 맑고 하얀 알갱이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여러분 ! 진주의 모습이 얼마나 영롱하고 아름답습니까 !?

  그 진주는, 조개의 엄청난 고통의 진액(津液)들이 뭉쳐진,

  고난과 인내와 눈물과 아픔의 결정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그 가시를 견디면서,

  진주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바울 속에 있던 가시는, 바울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 나갔을까요 ?


  첫째, 바울의 가시는, 그를 더욱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본문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その啓示のすばらしさのため高慢にならないように、

  私は肉体に一つのとげを与えられました。それは

  私が高慢にならないように、私を打つためのサタンの使いです。)


  그렇습니다. 바울은 신비한 신앙적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자랑할 줄 모르는 그가, 이런 자랑까지 합니다.

  고린도후서12:1-4,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私は誇らずにはいられません。

      誇っても無益ですが、主の幻と啓示の話しに入りましょう。)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私はキリストにある一人の人を知っています。この人は十四年前に、

      第三の天にまで引き上げられました。肉体のままであったのか、私は知りません。

      肉体を離れてであったのか、それも知りません。神がご存じです。)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私はこのような人を知っています。)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彼はパラダイスに引き上げられて、言い表すこともできない、

     人間が語ることを許されていないことばを聞きました。)

 

  그렇습니다. 바울은 본문을 기록하기 14년 전, 환상 중에 천국에 갔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기적을 맛보고, 또 기적을 행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무섭고 두려운 함정이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교만]이라는 함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인간은 다른 것에서는 돌이킴이 가능해도,

  일단 [교만]에 빠지면 좀처럼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기 나름의 신비체험을 통해서, 영적 교만에 빠진 자들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자칭 예수라고 말하는 사람이 2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한 번 교만해지면, 그 교만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그 교만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시기 위해,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물론입니다. 우리에게도 교만이 다가옵니다.

  신앙의 교만, 외모의 교만이 다가옵니다.

  경험과 지식의 교만, 재물과 학벌의 교만도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러한 교만을 물리치고, 교만에 빠져 멸망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 목사님은 88년 동안,

  하루 평균 32km의 전도여행을 했고, 하루 평균 세 차례를 설교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는 지금처럼 3~40분 정도 하는 설교가 아니라,

  몇 시간씩 계속하는 설교였습니다.

  또한, 그분이 살아생전 책을 쓴 것이 200권이 넘었고,

  하루 기도시간도 평균 두 시간이 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 어떻게 그렇게 전도에 힘을 기울이면서도,

  그 많은 일을 감당했는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분에게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 가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미국에서 한 번 결혼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재혼하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새 아내가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피와 함께, 역사적으로 알아주는 악처였습니다.

  얼마나 사나운 여인이었는지, 그 소문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들려오지 않습니까 !

  날마다 바가지를 긁고, 가끔은 남편을 때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집에 있으면, 날마다 싸우는 것이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웨슬리 목사님은 다른 일은 잘하다가도,

  아내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고, 마음이 위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은 어쩌면, 어디서나 존경받고 추앙받는 웨슬리 목사님을,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그런 아내를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아내와 날마다 싸움을 해야 하니까, 지쳐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고,

  그러다 보니, 전국을 다니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가시 때문에 많이 힘드십니까, 많이 아프십니까 ?!

  어쩌면 그 가시가 우리를 교만하지 않게 낮추시는 하나님의 은혜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진 가시가, 우리를 교만으로부터 지키고, 오히려 겸손하게 만드는 가시라면,

  사실 그것은 가시가 아니라, 자랑거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바울의 가시는, 바울의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본문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しかし主は、「わたしの恵みはあなたに十分である。

  わたしの力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からである」と言われました。

  ですから私は、キリストの力が私をおおうために、

  むしろ大いに喜んで自分の弱さを誇りましょう。)


  이 말씀에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わたしの力は弱さのうちに完全に現れる)”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 여기에서 ‘내 능력’은 누구의 능력을 말합니까 ?

  물론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능력은 어디에서 온전하게 힘을 발휘합니까 ?

  그렇습니다. 약한 곳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여러분 ! 예수님의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약한 곳에서만 힘을 내는 것일까요 ?!

  마치 아주 어두운 곳에서, 약한 불빛이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본래부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강력한 예수님의 능력이, 약한 곳에서 온전한 힘을 발휘할까요 ?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약한 곳’은 '겸손한 곳', '자기를 낮춘 곳'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울의 가시는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고, 바울이 가진 가시로부터 오는

  온갖 아픔과 고난은, 바울을 철저하게 '낮은 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그 낮아진 바울에게, 자신의 능력을 넘치게 부어 주셔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고난(가시)이 없어져야 행복하고,

  고난(가시)이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정말 그럴까요 ?

  아닙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가시)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게 되고,

  주님의 능력을 맛보며, 부활의 능력까지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요셉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가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온갖 고난을 받는 중에,

  하나님이 쓰실만한 귀한 사람으로 성장하여져 갔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자신을 팔았던 형들,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은, 분명 견디기 어려운 가시였을 것입니다.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형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갖 생각이 다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시(자신을 판 형제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가

  비로소 요셉을 요셉 되게 만든 것입니다.


  중국의 성서학자요, 순교자였던 워치만 니가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도 바울처럼, 좀처럼 몸에서 떠나지 않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 병 때문에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 그가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큰 바윗돌이 자기 앞을 딱 막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꿈속에서도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 이 바윗돌을 옮겨주소서. 그래야 이 배가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워치만 니야 ! 바윗돌을 옮겨주랴, 아니면 강물이 크게 불어서,

  그 바윗돌 위로 배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랴”

  워치만 니가 대답했습니다.

 “오 ! 주여 ! 강물이 불어서 넘어가는 것이 평안하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강물이 불어서, 배가 그 바윗돌 위로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깼다고 합니다.

  꿈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은 워치만 니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여 ! 내 속에 바윗돌 같은 가시를 빼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후로는 주님의 은혜가 넘쳐, 내 속의 가시를 넘어가게 하옵소서 !”


  사랑하는 여러분 !

  주님이 주시는 가시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그 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가 그 가시를 빼 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그 가시를 넘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시는 우리의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표이고, 우리를 낮추사,

  우리 속에 주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자랑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もし誇る必要があるなら、私は自分の弱さのことを誇ります。)


  끝으로 제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칩니다.

  그분은 이상근 목사님입니다.

  이 목사님은 한국의 大 신학자요, 깊은 신앙적 인격을 가진 분으로서,

  이상근 목사님의 신약성경 주석은 특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에게도 남모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16세 때에, 뭔가에 발(足)이 찔려, 그날 이후 발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보아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의술이 많이 부족했나 봅니다)

  그래서 이 분이 대구 분이신데, 대구 달성 공원 느티나무 밑에서 그 아픔을

  고쳐달라고 40일을 작정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급기야는 발이 아파서, 전혀 출입을 못 하고 집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안에서 성경을 읽고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가 어디서 좋은 약을 구해오셨다고 하면서 고약을 붙여주셨는데,

  그것이 뭐가 잘못됐는지, 오히려 독이 올라서, 평생 불편한 발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도 다닐 수가 없어서 집에서 공부하고, 결국 검정고시를 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들어갔는데, 여전히 바깥출입은 최소로 줄여야 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발에서 진물이 나고, 그래서 이 목사님의 양말은 따로 빨아야 하고,

  그것이 다른 가족들한테 옮길까 봐 늘 걱정거리였습니다.

  그 사이에 그분이 하신 일은, 틈만 나면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목사님이 되었는데, 목사가 된 후에도, 그 발(足)의 병(病) 때문에

  움직이는 것을 절제하고, 책상 앞에서 연구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하시게 됐는데, 목사님과 가까운

  어떤 의사가 수술을 권유해서, 그 아프던 발을 수술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수술을 해 보니, 그 발 속에서 1.5cm쯤 되는 철사가 나오더랍니다.

  그 철사가 무려 60년 동안이나, 이 목사님의 발 속에 가시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 목사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철사(가시)를 보여주면서,

 “이 철사(가시)가 저에게, 오직 성경만을 보고, 성경만을 연구하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말씀을 듣는 순간 내내,

  우리 속에서 느껴졌던 우리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

  육체의 병입니까 ? 아니면, 모난 성격입니까 ?

  혹은, 부모 형제입니까 ? 아니면, 배우자요 혹은 자녀입니까 ?

  그것만 생각하면 “아 !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한숨이 나오시지는 않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하지만 그 가시를 그냥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가시에 그냥 찔리시기를 바랍니다.

  찔려서 아파하고 몸부림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그냥 고통이 아닙니다.

  우리를 복되게 하는 고통이요,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고통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가시야말로,

  분명 조개를 괴롭히는 한 알의 모래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그 성가신 모래알의 가시가

  결국은 진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가 가진 가시는, 지금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또 아프지만,

  머지않아 수려하고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그 가시가 나를 겸손하게 했답니다 !

  그 가시가 내게는 힘이었답니다 !

  그 가시가 결국 저에게는 복이었어요 !!!

  그 가시는 이제 저의 자랑입니다.

  제 가시를 보세요.

  예수님이 함께 해주신 은혜의 흔적이랍니다 !!!”


  그 감사 고백의 날을, 곧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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