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年2월18일, 요한복음 19:23-30(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은혜)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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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8年2월18일, 요한복음 19:23-30(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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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18-02-21 22:04 ヒット 17,426 コメント 0

本文

  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우리 의지와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 삽시다.
  온 마음 다해 진액(津液)을 쏟아 붇는 간절한 예배를, 항상 드립시다.

​

  맥아더 장군이 미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한 번은 그 어려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물리학 교수의 과제를 받고,

  그것을 동료 생도들 앞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봐도, 교수님이 봐도 너무나 완벽하고 알기 쉽게 잘 설명을 했습니다.

  크게 감동을 받은 교수님이 맥아더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이토록 어려운 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
  그랬더니, 그때 맥아더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이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책에 있는 내용을 다 외워서 그 외운 것을 발표했을 뿐입니다."

​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신앙의 문제도 때로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당장은 믿어지지 않더라도 열심히 듣고, 자주 묵상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 은혜로 언젠가는 정말 믿어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자가 구속의 사건입니다.

​
 "도대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왜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는가 ?"
 "십자가 외에는, (우리) 인간을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인가 ?"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 죽음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매우 싫어하십니다.

  더구나 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하십니다.

​
  그런데 여러분 ! 그만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로마서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

​
  그렇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오직 죽음의 징벌뿐입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은 죄를 씻음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죄는 어떻게 씻음 받을 수 있을까요 ?

​
  히브리서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피 흘림, 즉 죽음으로써 죄 씻음을 받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때에는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자신을 대신해서 소나 양 等을 죽여,

  그 피를 하나님께 제사로 드림으로 죄를 씻음 받았습니다.

  피 흘림(죽음)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여러분 ! 이 피 흘림의 제사는 완전한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사람이 제물이 되어야지요.

  그런데 왜 짐승이 제물이 됩니까 ?

  더구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도 죄인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제물에 불완전한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제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이 제사는 죄를 질 때마다 매번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습니까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단 한 번의 완전한 제사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실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고 또한 시행하셨습니다.

​
  우선, 짐승이 아닌 완전한 희생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제물을 처참하게 죽이셨습니다.

  그 완전한 희생제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고,

  그 제사를 치른 곳이 바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다시는 죄를 씻기 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인 된 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대속(代贖)이라 함은,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셨다,'

  혹은 우리의 죽을 죄를 대신 담당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

  그런데 여러분 !

  우리의 신앙상태를 측정하는 기준은 바로 여기,

  십자가의 은혜를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십자가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시간 함께 하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출발하고 있습니까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가고싶고,

  예수님 발자취를 따르려는 간절한 소원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
  만약에 우리들에게 이러한 소원이 있다면,

  우리들은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좋은 곳에 서있는 것입니다.

​

  그러나 만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이 십자가의 은혜가 전혀 생소한 것으로 느껴진다면

  저는 이 시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의 자리를 빨리 갈보리 십자가의 언덕으로 옮겨야 합니다.

​
  여러분 !

  우리들이 부활의 동산에 서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외치고,

  할렐루야 찬송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 그것이 십자가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빨리 갈보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이 성령의 은혜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사와 감동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혹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면, 빨리 거기서 나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갈보리 언덕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오 ! 주여 ! 어서 오시옵소서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 그것이 십자가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는, 모든 은혜의 샘이요, 복음의 시작이요,

  복음의 핵심이요, 우리 신앙의 근본입니다.

​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찬 다섯 사람이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인 마리아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사도 요한입니다.
  2천 년 전, 십자가 앞에 선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혹은 예수님이 죽는 것을 구경하러 서 있었지만,

  이 다섯 사람만큼은 예수님을 진정 사랑해서 십자가 앞에 온 사람들입니다.

​

  여러분 ! 이 사람들이라고 로마 군인들이 무섭지 않았을까요 ?
  이 사람들에게 유대교의 악한 지도자들이 무섭지 않았을까요 ?
  그러나 이들은 어떤 해를 당하고,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왔습니다.

  예 !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리고 이들은,

  십자가와 그곳에 달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에,

  평생 십자가의 은혜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거나 배반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2018년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우리도 십자가 앞에 나아갑시다.
  이제 막 시작한 사순절 기간, 가능한 한 매일 예배당을 찾아,

  사복음서의 고난의 장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분명 우리들은, 십자가를 지신 우리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들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

  자 !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의 자리일까요 ?

​

  첫째, 십자가는 내가 당할 고통을 主가 대신 당한 은혜의 자리입니다.

​

  내 죄 때문에 내가 당할 고통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 시간 죄 가운데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합니다. 이웃을 속입니다. 사명 앞에 게으릅니다.

  심지어 사명을 팽개칩니다.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정말 교만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모든 죄악들은 반드시 대가(고통)를 동반합니다.
  여러분 ! 만약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 값을 그대로 받는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옥불의 고통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받을 그 고통을, 우리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말입니다.

​
  어느 목사님이 LA에 갔을 때, 그곳에서 오래 살았던 목사님 한 분이,

  꼭 보여 줄 것이 있다면서 어떤 장소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었냐 하면, 중세 카톨릭 교회가 개신교 신자들을 잡아다가 엄청난 고문을 했는데,

  그 때 사용했던 고문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답니다.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몇 백년 전 사건인데, 아마 모조품을 전시해 놨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모두가 진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문 도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그 옆에 써 있는 설명문을 읽으면서,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 질 수 있을까 ?” “이건 사람도 아니다. 악마다 악마 !”

​
  그곳에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사타구니 사이를 켜서 죽이는 데 쓰이는 톱이 몇 개 걸려 있었고,

  사람을 끌어다가 기계 속에 넣으면 국수 가락처럼 되어서 나오도록 만든 소름끼치는 기계도 있었답니다.
  또 사람을 집어넣고 자물통을 채우면 꼼짝달싹도 못한 채,

  고스란히 말라죽어 뼈다귀만 남게 만드는 기계도 있었답니다.

​

  그런데 여러분 !

  아무리 이런 고문 도구들이 잔인하고 흉측하다 한들,

  멀쩡한 사람을 십자가 틀에다가 눕혀 놓고, 손발에 철 못을 박고,

  죽을 때가지 매달아 놓는 것만큼 잔인할 수 있을까요 ?
  톱으로 켬을 당해 죽는 것은,  5분이나 10분 정도 고통을 당하다 보면, 기절해서 그대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십자가의 죽음은 절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
  모든 죽음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게 십자가 죽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형벌의 고통은, 지구상의 있었던 어떤 형벌보다도 가장 잔인한 형벌이라고 합니다.

​
  성경은 십자가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22:14-15,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벌집을 만들기 위하여 꿀벌이 분비하는 진액)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わたしは水となって注ぎ出され,骨はことごとくはずれ,心は胸の中で蠟のように溶ける.

   口は渴いて素燒きのかけらとなり, 舌は上顎にはり付く.)
  온 몸이 불붙은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고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상상조차 해 볼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

  여러분 ! 이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
  그것은 사실은 우리가 받을 고통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彼が刺し貫かれたのは, わたしたちの背きのためであり, 彼が打ち碎かれたのは,

  わたしたちの咎のためであった. 彼の受けた懲らしめによって, わたしたちに平和が與えられ,

  彼の受けた傷によって, わたしたちはいやされた.)

​
  여러분 !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찔리셨습니까 ?
  여러분 ! 예수님이 왜 상함을 당하셨습니까 ?
  여러분 ! 예수님이 왜 징계를 받으셨습니까 ?
  그것은 나의 허물, 나의 죄악, 내가 받을 고통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기를 소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를 우러러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

  둘째, 십자가는 나의 수치를 대신 담당해 주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
  본문23절,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兵士たちは, イエスを十字架につけてから, その服を取り, 四つに分け,

   各自に一つずつ渡るようにした. 下着も取った.)

​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다음에, 예수님의 옷을 벗겨 나눠 가졌습니다.

  또한 속옷까지도 벗겨 버렸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이 고난 당하신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참혹한 수치와 모멸을 당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매질을 당하셨습니다.

  얼굴에는 사람들이 뱉은 침이 흐르고, 수 차례 뺨을 맞고, 머리를 맞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나중에는 온 몸이 완전히 빨가벗겨져서,

  십자가에 처참하게 매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일부입니다.
  예수님은 몸에 아무 것도 걸칠 수 없으셨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처량했는지 시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시편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참혹한 수치를 친히 당하셔야 했습니까 ?
  그 이유는 죄는 반드시 수치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마자 금방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뭇잎을 엮어서 하체를 가렸습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죄는 부끄러움을 가져다 줍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천국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무리 초청하셔도, 우리는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왜 못 들어갑니까 ? 부끄러워서 못 들어갑니다.
  우리 모습 이대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억지로 천국 안에 넣어 놓는다면, 사흘 안에 미쳐버릴 것입니다.
  부끄러워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누더기 옷을 입고, 엄청난 냄새를 풍기며, 머리는 다 헝클어진 가운데,

  깨끗하고 멋진 사람들이 가득한 일류식당에 홀로 서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로 창피해서 당장 뛰쳐나오고 말 것입니다.

​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은혜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범한 죄로 인한 수치(羞恥)를, 다 제거(除去)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담당할 수치와 모욕을 우리 예수님이 다 담당해 주셨으므로,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이 놀라운 십자가를 우리가 어떻게 사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

  셋째,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
  본문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여러분 "다 이루었다"는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일까요 ?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이루셨다는 말씀이고,
  둘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씀입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 명분을, 충분하고 완전하게 갖추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해서
  1>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히 기도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

​
  바로 이러한데

  우리가 어떻게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고통 당하시고, 또한 처참히 죽으신 십자가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의 자리입니다.

​

  첫째, 십자가는 내가 당할 고통을, 主님께서 대신 당한 은혜의 자리입니다.
  둘째, 십자가는 나의 수치를, 대신 담당해 주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셋째,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은혜의 자리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올 사순절을 보내면서 이 십자가 앞에 나오십시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상태를 측정하는 기준은 바로 여기,

  십자가의 은혜를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십자가로부터 시작합니다.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난주간부터 시작된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여, 우리도 십자가 앞에 나아가십시다.
  이제 막 시작한 사순절 기간,

  가능한 한 매일 예배당을 찾아 사복음서 고난의 장을 읽으면서 십자가를 되돌아보십시다.
  분명 우리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들에게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정작 이 십자가의 은혜를 누려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작 있어야 될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연약한 여자들과 열두 제자 중 가장 어린 막내(사도 요한)만이 남아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 외쳤던 그 무리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
  벳새다 광야에서 배불리 먹었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죽었다가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 난 나사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
 "다른 사람이 다 떠나갈지언정 저만큼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또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

  사랑하는 여러분 ! 거듭 말씀드립니다.

  이 번 사순절기간, 예배당에 자주 나오십시오.
  그리고 우리 죄 때문에, 우리의 허물 때문에 고통 당하신 예수님 신음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들 속에 있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분명,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할 것입니다.

​

  자 !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찬송가150장)
  2절, 멸시 천대받은 주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 도다
     , 귀한 어린양이 세상 죄를 지고 험한 십자가 지셨도다
  3절,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이라

 <후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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