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026년10월25일, 로마서 12:1-2 (우리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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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10-31 21:42 ヒット 13 コメント 0本文
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 509주년 기념일입니다.
1517년, 루터 등을 통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매년 종교개혁 주일에 제가 전했던 말씀은,
당시 교회의 부패를 소개하고, 그에 대해 루터, 칼빈 등
종교개혁가들이 목숨 걸고 외쳤던 주장을 소개하면서,
종교개혁의 의미를 마음에 새겼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지금까지와 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와 많은 교회들은, 종교개혁을 기념할 만한
믿음도 부족하고, 성도로서의 부족함도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가 종교개혁을 기념하려면,
적어도 509년 전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당시 교회들과 성도들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더 닮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당시 개혁가들이 외쳤던 세 가지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말씀), Sola gratia (오직 은혜),
Sola fide (오직 믿음)입니다.
당시 성경은, 매우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있어서,
사제(司祭) 외에 일반 성도들은 아예 읽기도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은 오직 신부(神父)만 할 수 있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
당시 교회는 왜 이런 그릇된 일을 했을까요 ?!
예, 만약 일반 성도들이 성경을 읽게되면, 당시 교회가 얼마나 성경과
다른 거짓말을 했는지, 즉시 탄로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가 한 일은,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알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신앙의 기틀은 역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과 교회를 알 수 있겠습니까 ?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으로 !)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당시 중세교회는, 면죄부를 사기 위해 금화(金貨)를
헌금함에 넣는 순간, 인간의 죄는 다 용서받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지은 죄가 헌금으로 없어집니까 ?
아니오 !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드릴 헌금이 없으면, 어떻게 용서를 받습니까 ?!
그런데 당시 성도들은 성경도 읽을 수 없고, 또 성경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거짓말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면죄부를 샀는데, 자기들 것은 물론이고,
군대에 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 것까지 다 샀습니다.
천국 가게 해야 하니까요 !
더구나 당시 중세교회는, 믿음 없는 가운데 죽은
부모의 것까지 사라고 강요했습니다.
‘자식이 대신해서 면죄부를 사주면,
그 부모도 천국에 가게 할 수 있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요.
정말로 완전 엉터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ご存じのように、あなたがたが先祖伝来のむなしい生き方から
贖い出されたのは、銀や金のような朽ちる物にはよらず、)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傷もなく汚れもない子羊のようなキリストの、尊い血によっ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만이, 우리의 죄를 없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성경에 없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죄를 씻음 받는 것도, 또한 구원받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어 주신 그 은혜 때문인 것이지,
면죄부 등을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 ! 전적(全的)으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또한, 당시 중세교회는,
구원을 위해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선행(善行)과 고행(苦行)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 자신도, 고행을 위해
성전 계단을 무릎으로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무릎이 깨져 피가 줄줄 흐를 때까지요.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자신을 괴롭혀도,
루터에게는 어떤 구원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로마서1장17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義人は信仰によって生きる。)"
물론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선행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구원의 열매인 것이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この恵み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信仰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す。
それはあなたがたから出たことではなく、神の賜物です。)
그래서 종교개혁들은 외친 것입니다.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만약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가들이 지금 우리를 찾아온다면,
지금 우리들과 세상의 교회들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
아마도 기가막혀 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에 대해 깊이 묵상할 때, 이런 응답을 받았다 합니다.
“뭐, 별문제 아니야. 모두들 자기들이 좋아하는 성경만 알아서 그래 !”
“예 ? 자기들이 좋아하는 성경만 알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바로 이 이야기야 ! 모두들 요한복음3:16절 말씀은 알면서,
왜 고린도전서3:16절 말씀은 모르는 거야 ? 잘 한 번 읽어 봐 !”
여러분 ! 함께 읽어볼까요 !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独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
御子を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命を持つためである。)
고린도전서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あなたがたは、自分が神の宮であり、神の御霊が
自分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ことを知らないのですか。)
그렇습니다.
일부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도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이며, 교회라고요.
그렇습니다.
나 자체가 교회인데, 우리는 내 속의 교회를 교회 답게할 노력은 안 하고,
모이는 교회만 교회다워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내 속 사람의 교회’가 달라지지 않고는,
‘우리가 모인 본향교회’는 좀처럼 거룩하게 변하지 않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이 시대의 교회보다 먼저,
우리의 어떤 부분을 온전히 변화시켜야 할까요 ?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この世と調子を合わせてはいけません。)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었고,
로마市는 그 자체가 힘과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도 로마제국 당시의 건축물, 도로, 목욕탕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그것을 보면 당시 로마가 얼마나 강대한 국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힘과 부를 가지면, 다음에 찾는 것은 쾌락입니다.
로마가 가장 번성할 때였던 B. C. 1세기에서 A. D. 2세기까지의 로마의 모습을,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좀 가졌다고 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남편과 부인 외에 또 다른 애인이 있었습니다.
또한, 매일 밤 파티가 없는 날이 없었으며,
심지어 토하게 해 주는 전문 노예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토해서 속을 비우면 다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남녀 구별이나 기혼 미혼의 구별이 없었답니다.
결국, 나중에 어떤 일이 생겼냐 하면, 귀족들이 자식을 결혼시키려고 보니까,
서로들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결혼시킬 청년이 없더랍니다.
누구 할 것 없이, 죄다 알코올 중독에 걸려 있었고, 정절(貞節)을
지키고 있던 젊은이들을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최고의 쾌락을 위해 만든, 검투사 경기를 보시지요 !
여러분 ! 생각해 보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
보는 자기들의 즐거움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목숨건 싸움터로 밀어 넣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
당시 로마 사회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
지금이 그때보다 낫습니까 ?
아니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들이 더 잘 압니다.
로마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지금 이 시대는 더욱 심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상이 망할 날이 거의 다 왔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넓은 길입니다.
그 길 끝에는 오직 영원한 형벌과 영원한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이 세대의 풍조를 따라서는 안 됩니다.
둘째,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2절.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むしろ、心を新たにすることで、自分を変えていただきなさい。)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변화의 예는,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사건입니다.(요한복음2장)
그런데 여러분 !
잔치가 끝나고 예수님과 함께, 가나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
요한복음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イエスはこれを最初のしるしとしてガリラヤのカナで行い、
ご自分の栄光を現された。それで、弟子たちはイエスを信じた。)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이 일 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가나를 떠날 때의 그들의 마음이 상당히 변한 것이 분명합니다.
“아 ! 예수님과 함께 하면, 우리도 이렇게 변화될 수 있겠구나 !
마치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말이야 !”하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 중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등은, 결국
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는 어부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지금 우리들에게 일어나야 할 변화는 어떤 변화이겠습니까 ?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변화는 무엇이겠냐 말입니다.
물론 우리도 조금씩 변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바라시는 변화는 그런 점진적이고 미세한 변화뿐이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변화는, 급진적인 변화입니다.
오늘 전하는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가 개혁되어야 합니다]입니다.
여러분 ! 우리 이 시간 모두 솔직해져 보십시다.
지금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목적은,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문항처럼,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들 스스로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여러 부분에 있어서,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예 ! 말로 고백하는 것과, 우리 속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었으면서도,
우리들 마음을 가장 많이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지위가 높아지고, 편한 집에서 살고,
좋은 자동차 타고,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건강하고 .......
물론 우리들에게 이런 날이 오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날이 와야지요 ! 반드시 와야됩니다 ! 그렇고 말고요 !
그러나 이것이 최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 ! 그렇다면, 지금의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나야 할 진정한 변화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목적으로 삼고 살았던 것들을, 모두 다 도구로 삼아라 !”
지금까지 우리가 숨기고 있었지만, 진짜 목매고 바랐던 목적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것들 모두를 도구와 수단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변화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경제적인 풍요가 아닙니다. 높은 지위도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목적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대하심을 이루어 가는 것 입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진정한 변화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모두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수단으로 해, 主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수단으로 쓰여질 때, 거기에는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건강한 몸을 주님과 연약한 성도와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쓰는 겁니다.
즉, 건강한 몸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은 도구일뿐이고 섬김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내가 가진 자동차도 주님과 연약한 성도와 이웃을 섬기는 도구로 쓰는 겁니다.
즉, 자동차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은 도구일뿐이고 섬김과 봉사가 목적이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제껏 배우고 익힌, 우리의 재능과 실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지게 된 재능과 실력을, 나를 높이고, 나를 부유하게 하는데 만 쓰지 말고,
그 가지게 된 재능과 실력을, 주님과 성도와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도구로 쓰는 겁니다.
이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본문2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神のみこころは何か、すなわち、何が良いことで、神に喜ばれ、
完全であるのかを見分けるように。)
여러분 !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를 정말로 사랑하는데, 그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기쁨이, 곧 나의 참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자 !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
본문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兄弟たち、私は神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がたに勧めます。
あなたがたのからだ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きたささげ物として
献げなさい。それこそ、あなたがたにふさわしい禮拝です。)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해진 예배시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어려워 보이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며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들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면 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으면 됩니다.
즉, 풍요, 높은 지위, 명예, 쾌락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면 됩니다.
목적으로 삼았던 것을, 수단으로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스프링 복]이라는 山羊을 소개하겠습니다.
아프리카의 스프링 복은,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사는데,
갑자기 수천 마리가 쏜살같이 달리다가, 차례차례
벼랑으로 떨어져 몰사하는 어리석은 양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동물학자들이 그 이유를 연구했고, 그 연구한 결과가 이렇습니다.
이들이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뒤따라가는 산양들은 좀처럼 풀을 먹을 수 없답니다.
앞에 있는 양들이 다 뜯어먹거나 발로 밟아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양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앞에 있는 산양을 밀기 시작한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뒤에 있는 산양이 자꾸 미니까,
앞에 있는 산양은 자동적으로 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뛰게 된다고 합니다.
앞의 양이 뛰어가면, 뒤의 양은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 되는데,
산양은 본래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뒤의 산양도 앞의 산양을 따라 뛴다 합니다.
결국, 앞의 산양은 뒤의 산양이 미니까 뛰고, 뒤의 산양은
앞의 산양이 뛰니까 뒤따라 뛰는 정말 우스운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무리 속에서 뛰고 있는 산양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자신들이 왜 뛰는지, 그리고 어디로 뛰고 있는지 .......
그런데 산양들의 이러한 달리기는,
결국 산양 무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맙니다.
절벽 앞에서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의 산양은 뒤에서 밀어 대니까 떨어지고,
뒤의 산양은 그냥 앞의 양을 따라서 차례차례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씩 수천 마리씩 떼로 죽는 일이 생기고 만답니다.
여러분 !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십니까 ?
우리 인간들이 이 양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세상 사람들이 뛰니까 같이 따라 뜁니다.
괜히 낙오되면 죽을 것만 같아, 그 불안함 때문에 죽어라고 뒤를 따라 뜁니다.
결국, 세상을 따르려고, 다시 말하면 세상과 분리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뜁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러한 삶이, 우리들의 삶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삶은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우리를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우리의 짧은 삶을 바보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종교개혁 509주년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삶의 길과 방식과 목표를 삼읍시다.
이 일이 우리의 결심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지만, 지금도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하시는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키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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