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026년9월27일, 창세기 32:24-31 (나와 싸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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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10-03 23:07 ヒット 13 コメント 0本文
올 9월, 우리는 믿음의 선배 야곱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입니다.
잠시, 지난 세 주일의 말씀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야곱은 대단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몇 번이나 찾아가셔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마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할렐루야 !
두 주 전에는,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가신 첫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베개 베고 잠을 자던 야곱을 찾아가셨지요.
하나님은 야곱과의 첫 만남을 통해, 그에게 어떤 믿음을 주셨지요 ?!
예 !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야곱에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창세기28:16.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まことに主はこの場所におられる。それなのに、私はそれを知らなかった。)
지난 주일에는, 야곱을 찾아가신 두 번째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외삼촌을 속여, 부자가 되려고 하던 야곱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만남을 통해, 야곱에게 또 하나의 믿음을 주셨습니다.
무엇이었지요 ?!
예 !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삶에 함께하시고,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세기32: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こうして神は、あなたたちの父の家畜を取り上げて、私に下さったのだ。)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야곱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큰 복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하시고, 큰 복도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오늘은,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가신, 가장 중요한 장면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 여기에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20년 전,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또, 얼마 전, 자신을 부자로 만드신 하나님을 만난 야곱,
그 야곱의 신앙이, 곧장 믿음의 조상이 될 정도까지 성장했을까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야곱이 두 번의 특별한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야곱은, 세상 것만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또다시 찾아가신 것입니다.
지금부터, 오늘 본문의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야곱은,
마침내 20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향 땅으로 돌아갑니다.
20년 전, 처량한 모습으로 도망쳐올 때와 달리, 지금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수많은 소와 양과 나귀와 가축과 종들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야곱에게는 한 가지 크고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
예 ! 형, 에서(兄のエサウ)였습니다.
에서는, 장자(長子)가 받을 축복기도를 동생 야곱에게 빼앗긴 후,
얼마나 화가 났든지, 동생 야곱을 죽일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야곱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야곱이 20년이나 타향살이를 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향을 향하던 야곱에게, 형에 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오고 있다고요.
여러분 ! 에서가 야곱을 환영하려고 올까요, 한바탕 하려고 올까요 ?!
예 ! 한바탕 하려고 오는 것 같습니다.
만약 야곱을 환영하려고 오는 길이라면,
뭐하러 400명이나 되는 장정들을 이끌고 오겠습니까 ?!
이런 상황 가운데,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 도착합니다.
이제 얍복강만 건너가면, 형이 있는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야곱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자 ! 여러분 ! 이번에 오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
이에 대한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지난 두 번,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시지요.
첫 번째, 벧엘에서는 7가지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외삼촌 집에서는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자 ! 이번에는 야곱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
여러분 ! 이번에는 지난 두 번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 !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쉽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야곱에게 씨름을 걸으셨습니다.
본문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ヤコブが一人だけ後に残ると、ある人が夜明けまで彼と格闘した。)
그런데 여러분 !
한글 성경은 [씨름]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문 히브리어 [네에바크]는
"먼지를 일어날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본어 성경은, [씨름]을 [격투]로,
그리고 영어성경 KJV도 [wrestle(싸움, 격투)]로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번에 야곱을 찾아온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야곱과 격투, 즉, 치고받고 싸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야곱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
예 ! 야곱에게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구하지도 않았는데, 일곱 가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분이었습니다.
또한, 부정직한 세상의 방법을 썼는데도, 부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이번에 야곱에게 오신 하나님은, [야곱과 싸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나와 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자 ! 여러분 ! 묻습니다. 싸움은 왜 합니까 ?!
더 쉽게 묻습니다.
왜 부부싸움 합니까 ?! 왜 친구와 싸웁니까 ?!
왜 이웃과 싸움을 하고, 왜 이웃 나라와 싸움과 전쟁을 합니까 ?!
물론입니다. 상대와 맞지 않는 것이 있으니까, 싸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딱딱 맞으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야곱에게 싸움을 거신 것은,
첫째, 야곱이 (하나님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고,
둘째, 야곱이 추구하는 야곱의 인생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야곱의 인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혹시 자녀들에게 공부 가르쳐 본 적 있으십니까 ?!
잘 가르쳐집니까, 아니면, 자녀와 싸움을 하게 됩니까 ?!
예 ! 싸우게 됩니다. 더구나 일방적으로요.
누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합니까 ?!
가르치는 부모입니까, 아니면 배우는 자녀입니까 ?!
예 ! 자녀가 일방적으로 당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자녀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그 부모가, 다른 집 아이에게도 그럽니까 ?!
아닙니다. 다른 집 아이에게는 정말 상냥합니다. 칭찬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에게는 생난리를 하며, 자녀와 심하게 싸웁니다.
여러분 ! 왜 부모가 자기 자녀와 그토록 싸웁니까 ?!
물론입니다. 바르게 자라게 하려고요. 복된 사람이 되게 하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은 왜 야곱하고 싸우셨을까요 ?!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도 소중히 여기시는 자기 자녀니까요 !
지금까지 야곱에게 주신 은혜와 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복과 은혜를 야곱에게 주시려고요.
그래서, 싸워서라도 야곱을, 큰 복을 받을만한 사람으로 만드시려고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야곱뿐만이 아니라,
[우리와도 싸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성장시켜, 하나님이 주실 큰 복을 받게 하고 싶으시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도록 만들고 싶으시니까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
얍복강의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바로 이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육신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야곱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영원한 것을 소망하는 사람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두려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신앙이, [벧엘의 신앙]
즉,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부자가 되게 하시는 신앙]
즉,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한없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신앙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신앙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빌립보서3:7-8.
7.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私は、自分にとって得であったこのようなすべてのものを、
キリストのゆえに損と思うようになりました。)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노라>
(それどころか、私の主であるキリスト・イエスを知っていることのすばらしさのゆえに、
私はすべてを損と思っています。私はキリストのゆえにすべてを失いましたが、
それらはちりあくただと考えていま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하나님은, 야곱을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시기 위해서,
얍복강의 야곱을 찾아오시고, 그와 싸우신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 !
하나님이 야곱과 싸우시는 본문의 장면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을 살펴보고 우리의 거울로 삼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에, 딴청을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선 야곱, 지금 그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에서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은 야곱의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
물론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에게서 얻어내고자 했던 것과,
하나님이 야곱에게서 얻어내시고자 했던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원하셨던 것은, [야곱의 변화]였습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야곱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바꾸는 것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야곱과 싸우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와도 싸우십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떨 때는 금식도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하나님 !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해 주세요. 사업이 망하기 직전이에요.
잘 다니던 직장을 더는 못 다닐 것 같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
그런데도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십니다.
상황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이런 상황이 찾아오면, 뻔히 질 싸움 길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야곱은, 자신이 싸우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본문24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ヤコブが一人だけ後に残ると、ある人が夜明けまで彼と格闘した。)
그렇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싸우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나와 싸우고 계신 건데, 우리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어떤 사람하고, 싸우고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냥 상황이 안 좋아서, 혹은 어떤 사람이 내 길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 상황을 바꿔 주세요" "저 사람 좀 치워 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
사실은 그 상황이, 하나님이 주신 상황이고,
사실은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시 우리의 삶에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까 ?!
그 어려움이,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대가 세상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그 어려움을 돌파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셋째, 야곱이 항복하지 않자, 하나님이 야곱의 뼈를 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25절.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その人はヤコブに勝てないのを見てとって、彼のももの関節を打った。
ヤコブのももの関節は、その人と格闘しているうちに外れた。)
이 말씀에서 [허벅지 관절]이 뜻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야곱의 자아(自我)를 뜻합니다.
허벅지 관절이 몸을 지탱하듯이, 자아(自我)는 인간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자아(自我)가 깨져야, 비로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예를 들면, 바로 이런 것들이, 반드시 깨져야 할 우리의 자아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아.
내가 가장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아.
내가 하는 방법이 가장 옳고, 다른 사람의 방법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하는 자아.
무시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아.
질투하고 미워하는 자아. 자랑하고 싶은 자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힘을 더 의지하는 자아.
존 웨슬리가 말했습니다.
"의롭다고 인정받기는 쉽다, 그러나 거룩해지기(성화, 聖火)는 참으로 어렵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날의 교회가 왜 세상으로부터 비웃음과 조롱을 당할까요 ?!
왜 교회 안에, 다툼이 있고, 성도들이 모인 곳에 싸움이 일어날까요 ?!
분명합니다. 자아(自我)가 깨지지 않은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향교회의 올 목표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교회, 예수님을 닮은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속에 있는 자아(自我), 즉, 나를 부러뜨립시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를 부러뜨릴 수 없으니,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아"
“내가 가장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아"
“내가 하는 방법이 가장 옳고, 다른 사람의 방법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하는 자아"
“무시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아"
“질투하고 미워하는 자아" “자랑하고 싶은 자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힘을 더 의지하는 자아"
“하나님의 은혜의 손으로, 전부 부러뜨려 주세요"
“주 예수님의 이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택한 자녀로 태어났지만, 믿음 없는 야곱, 자기 방식대로 살던 야곱을,
하나님은 몇 번이고 찾아가셔서, 마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신 하나님 !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야곱 때는 꿈으로 찾아오시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지만,
지금은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우리의 환경을 통해 찾아오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통해,
첫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도 확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확신과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