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026년9월20일, 창세기 31:11-13 (하나님께서 내게 가축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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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9-26 21:12 ヒット 4 コメント 0本文
지난 두 주일, 우리는 믿음의 선배 야곱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잠시, 지난 두 주일의 말씀을 되돌아보겠습니다.
여러분 ! 야곱은 대단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할아버지였고, 이삭이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
자비로우신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몇 번이고 찾아가셔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마침내 믿음의 조상 [이스라엘]로 우뚝 세우셨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이 야곱을 처음 찾아가신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베개 베고, 잠을 자던 야곱을 찾아가셨지요.
그리고, 야곱에게 일곱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이 첫 만남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었지요 ?!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쳐 고백했습니다.
창세기28:16.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まことに主はこの場所におられる。それなのに、私はそれを知らなかった。)
한편,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안 야곱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은혜와 변화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오늘은, 하나님이 야곱을 두 번째 찾아오신 장면을 소개합니다.
자 ! 두 번째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하나님이 왜 또, 야곱을 찾아오셔야 합니까 ?!
물론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야곱의 믿음이,
[겨자씨보다도 작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야곱이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그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신앙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야곱은, 벧엘의 체험 이후에도, 여전히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해지는 신앙인은 절대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인은, 주셨던 믿음을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신앙인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 안에서,
조금씩 변화되고, 조금씩 성장합니다.
지금부터 오늘 말씀의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후, 무사히 외갓집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라헬을 사랑하게 되지요.
여러분 !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몇 년을 일했지요 ?!
물론입니다. 14년을 외삼촌 라반의 종처럼 일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수일처럼 여겼습니다.
한편, 여러분 !
마침내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한 야곱이,
그다음 인생 목표로 삼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지요 ?!
예 !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창세기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私が来る前は、あなたの財産はわずかでしたが、増えて多くなりました。
私の行く先々で主があなたを祝福されたからです。
いったい、いつになったら私は自分の家を持てるのです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부자가 되고자 하는 야곱의 꿈이, 매우 신앙적으로 느껴집니까,
아니면 조금은 세속적으로 느껴집니까 ?!
예 ! 그 후, 가축을 차지하기 위해, 외삼촌을 속이는 것을 보면,
세속적인 느낌도 많고,
또한, 자기 힘만 믿고 사는, 그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신앙인에게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긴 하는 것 같은데, 그 삶을 보면 그냥 자기 힘으로 삽니다.
특별한 일 아니고는, 좀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원하는 것도 세속적이고, 그것을 이루어 갈 때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기보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대로 담담히 해나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는 믿고 있다’라는 것만 빼고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 이러한 신앙을 [이원론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신앙생활 따로, 세상 생활 따로 !"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하는 분에게는, 하나님은 그저 내 마음의 안식처이고,
내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열심히 살아,
내가 수고한 대로 거두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이원론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인이면서도 [이원론적 삶]을 삽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는 신실한 성도로 살고,
세상에서는 성도의 신분을 감추고, 그저 한 인간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좋은 가축을 차지하기 위해, 외삼촌을 속이면서,
자기의 세상 경험을 총동원하는 야곱의 지금 모습은,
가장 대표적인 [이원론적 신앙], [이원론적 삶]을 사는 연약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이런 연약한 신앙인일까요 ?!
물론입니다.
야곱이 꿈에서만 하나님을 만났지,
실제 삶에서는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하나님이 내 삶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은 아직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기만 하는, 제1단계 신앙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그 하나님이 내 삶의 주관자가 되셔서, 내 모든 것을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은, 제2단계 신앙의 자리입니까 ?!
아직 제1단계 신앙의 자리에 서 있던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야곱의 소원대로, 때로는 얼룩무늬 양을,
때로는 점박이 양을 태어나게 하셔서, 야곱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이, 자기의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아내들에게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자 !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본문6-9절.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あなたたちがよく知っているように、
私はあなたたちの父に、力を尽くして仕えてきた。)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それなのに、あなたたちの父は私を欺き、私の報酬を何度も変えた。
しかし神は、彼が私に害を加えることを許されなかった。)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彼が『ぶち毛のものはあなたの報酬になる』と言えば、群れのすべてが
ぶち毛のものを産んだ。また、『縞毛のものはあなたの報酬になる』と
言えば、群れのすべてが縞毛のものを産んだ。)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こうして神は、あなたたちの父の家畜を取り上げて、私に下さったのだ。)
아내들을 향한 야곱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본문11, 13절.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神の使いが夢の中で私に『ヤコブよ』と言われた。
私は『はい』と答えた。)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わたしは、あのベテルの神だ。あなたはそこで、石の柱に油注ぎをし、
わたしに誓願を立てた。さあ立って、この土地を出て、
あなたの生まれた国に帰りな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야곱은 이렇게,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두 번째 만났습니다.
더구나 이 두 번째 만남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뿐만 아니라,
야곱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자신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 아내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9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こうして神は、あなたたちの父の家畜を取り上げて、私に下さったのだ。)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그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한없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믿음의 단계까지 도달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런데 여러분 ! 우리도 반드시 이 믿음의 단계에 도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신앙의 두 번째 단계에 도달해야,
비로소 더 깊은 신앙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땅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내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또한,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또한, 내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영생의 복을 믿을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혹시 ‘믿는다’라고 해도, 애매하고 그저 추상적으로 믿을 뿐입니다.
정말 그럴까, 아마 그럴까야 !! 하는 애매한 믿음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세상에서 (실제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신령한 복도 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쁘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번째 믿음의 단계에, 반드시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한편 여러분 !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신앙]과 [기복신앙]에 대한 것입니다.
기복신앙(祈福信仰)이란, 재물, 무병장수(無病長壽),
자손 번창(子孫繁昌) 등 세상의 복을 구하는 신앙의 한 모습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주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
성경에는, 하나님께 복을 구한 분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중, 두 분을 소개합니다.
첫째, 야베스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역대상4:10.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私を大いに祝福し、私の地境を広げてくださいますように。
御手が私とともにあってわざわいから遠ざけ、
私が痛みを覚えることの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
참으로 솔직한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지역, 즉, 땅을 넓혀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야베스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근심과 걱정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 야베스의 이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
예 !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대상4:10.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神は彼の願ったことをかなえられ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한 소원을
솔직하게 구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
주기도문.
마태복음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私たちの日ごとの糧を、今日もお与えください。)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복을 구하는가, 복을 구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둘째,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 천 번제 (千匹の全焼のささげ物)]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3:5.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あなたに何を与えようか。願え。)
솔로몬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열왕기상3:9.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善悪を判断してあなたの民をさばくために、
聞き分ける心をしもべに与えてください。)
솔로몬의 대답(기도)을 크게 기뻐하신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3:11-13.
11. 네가 .......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あなたが、自分のために長寿を願わず、自分のために富を願わず、
あなたの敵のいのちさえ願わず、むしろ、
自分のために正しい訴えを聞き分ける判断力を願ったので、)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見よ、わたしはあなたが言ったとおりにする。見よ。わたしはあなたに、
知恵と判断の心を与える。あなたより前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なく、
あなたの後に、あなたのような者は起こらない。)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そのうえ、あなたが願わなかったもの、富と誉れもあなたに与える。
あなたが生きているかぎり、王たちの中であなたに並ぶ者は一人もいな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할 때,
[무엇을 먼저 구하느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예를 들면,
사명(백성을 재판할 때 필요한 지혜)을 위해 구하는 것이 먼저냐,
아니면, 내가 누릴 복을 구할 것이 먼저냐입니다.
솔로몬은 사명, 즉 백성을 재판할 때 필요한 지혜를 먼저 구했고,
그 결과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です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
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心配しなくてよいのです。)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
あなたがたにこれらのものすべてが必要であることは、
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知っておられます。)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할렐루야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솔로몬과 같이, 내가 누릴 복을 먼저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한 것을 먼저 구하여,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응답받는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야곱에게 첫 번째 나타나신 하나님, 즉 [벧엘의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 두 번째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떤 믿음을 주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야곱의 삶에 함께하시고,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야곱의 삶에 함께하시고, 야곱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 야곱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 하십니다.
또한, 솔로몬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복을 구하라 하십니다.
부디, 하나님을 마음으로만 믿지 말고,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
간절히 기도도 하면서, 또한, 성실하게도 살아,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모두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리하여,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반드시 고백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미, 이 복을 누리는 분들은, 더 큰 복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에게,
그 믿음(함께하시는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아는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