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026년9월6일, 창세기 25:29-34 (내가 원하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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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9-12 22:31 ヒット 3 コメント 0本文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도 물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삶의 목표로, 어떤 것들을 품으신 채, 이제까지 살아오셨습니까 ?!
우리 중에는, 사람답게 살려고 살아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자녀들을 잘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살아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특별한 목표 없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어떤 분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산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믿음의 선배 야곱(이삭의 아들)의 삶의 목표는 어떤 것들었을까요 ?!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야곱은 대단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고향과 친척을 떠난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분입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이삭은, 자기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 할 때,
묵묵히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한 분입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감을 찾기 위해 왔을 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알고, 즉시 순종한 분입니다.
또한, 야곱과 에서를 낳기 위해, 남편 이삭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한 분입니다.
이런 특별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요새 말로 하면, 어머니 뱃속부터 하나님을 안, 모태신앙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이런 야곱의 삶의 목표는 과연 뭐였을까요 ?!
첫째, 장자의 명분(장남이 받을 상속권)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쌍둥이 형인 에서와 싸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장남으로 태어나고 싶어서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야곱은 간발의 차로 차남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이 몹시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았겠습니까 !?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되었습니다.
예, 야곱이라는 뜻은, [발뒤꿈치를 잡는], [남의 것을 빼앗는] 등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야곱의 그런 모습이 등장합니다.
본문29-33절.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ヤコブが煮物を煮ていると、エサウが野から帰って来た。彼は疲れきっていた。)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エサウはヤコブに言った。「どうか、その赤いのを、そこの赤い物を
食べさせてくれ。疲れきっているのだ。」それで、彼の名はエドムと呼ばれた。)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するとヤコブは、「今すぐ私に、あなたの長子の権利を売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エサウは、「見てくれ。私は死にそうだ。
長子の権利など、私にとって何になろう」と言った。)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ヤコブが「今すぐ、私に誓ってください」と言ったので、エサウはヤコブに誓った。
こうして彼は、自分の長子の権利をヤコブに売った。)
그렇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하든,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여러분 !
오늘 본문은 그가 70세가 넘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야곱이 147세까지 살았으니,
거의 반평생(半平生)을 장자의 명분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야곱의 시대에 [장자의 명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
1> 사회적 특권
① 부친의 뒤를 이어 가문(家門)의 가장(家長)이 되어,
가문의 대소사를 처리할 권리를 가짐.
② 다른 형제들보다 유산을 2배로 받을 권리를 가짐.
2> 신앙적 특권
① 하나님 앞에서 가문의 대표자로 인정받음
② 영적인 축복의 계승자가 됨
그렇습니다. 여러분 ! 장자의 명분에는 여러 특권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바로, 그 특권을 가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은 것입니다.
한편, 배고픈 형을 꼬드겨, 붉은 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산 야곱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더 심한 일을 행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삭의 축복, 장자에게 주는 축복을 가로챕니다.
아버지가 장자에게 해주는 [축복 기도]를 대신 받아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어머니와 힘을 모아, 눈먼 아버지를 속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야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야곱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답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까 ?!
물론입니다. 야곱은 전혀 신앙인답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야곱이 태어나 70세를 넘을 때까지, 성경에는
그가 하나님께 물었다든지, 하나님께 기도했다든지 하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배고픈 형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살 때도,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챌 때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야곱의 삶의 목표는) 어여쁜 여인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장자가 받을 축복 기도를 가로챈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피해 결국 외삼촌 집(어머니 리브가의 친정)으로 도망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곳에서 삶의 두 번째 목표를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여쁜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29:15-20.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ラバンはヤコブに言った。「あなたが私の親類だからといって、ただで私に
仕えることもないだろう。どういう報酬が欲しいのか、言ってもらいたい。」)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ラバンには二人の娘がいた。姉の名はレア、妹の名はラケルであった。)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レアは目が弱々しかったが、ラケルは姿も美しく、顔だちも美しかった。)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ヤコブはラケルを愛していた。それで、「私はあなたの下の娘ラケルのために、
七年間あなたにお仕えします」と言った。)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ラバンは、「娘を他人にやるよりは、あなたにやるほうがよい。
私のところにとどまっていなさい」と言った。)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ヤコブはラケルのために七年間仕えた。
ヤコブは彼女を愛していたので、それもほんの数日のように思われ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인생의 두 번째 목표를 발견한 야곱은, 라헬이라는 어여쁜 여인을 위해,
자그마치 7년 동안이나 외삼촌의 머슴이 될 것을 자청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위한, 야곱의 봉사 기간 7년이,
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짧다고 생각하십니까 ?!
각각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이나 머슴살이를 했던 것은,
라헬이 야곱의 삶에 너무도 소중한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야곱은 7년 후, 순조롭게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까 ?!
아닙니다. 라반에게 속아, 큰딸 레아와 첫날밤을 보내게 됩니다.
화가 난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이렇게 소리칩니다.
창세기29:25.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私に何ということをしたのですか。
私はラケルのために、あなたに仕えたのではありませんか。
なぜ、私をだましたのですか。)
결국, 야곱은 라헬과 첫날밤을 보낸 7일 후, 라헬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것도 다시 7년을 외삼촌을 위해 일하기로 약속하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14년을 멈추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쉴새 없이 일했습니다.
우리는 이 야곱의 모습을 통해,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가지기 전까지는 포기할 줄 모르는,
매우 집요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다시 한번 묻습니다.
지금 야곱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답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까 ?!
물론입니다. 야곱은 전혀 신앙인답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우자(아내)를 선택하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향에 계신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욕망만을 앞세웠습니다.
셋째, (야곱의 삶의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14년을 일한 야곱은,
이제 외삼촌 라반과 새로운 계약을 맺습니다.
그 장면이 창세기 3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30:30-32.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私が来る前は、あなたの財産はわずかでしたが、増えて多くなりました。
私の行く先々で主があなたを祝福されたからです。
いったい、いつになったら私は自分の家を持てるのですか。)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彼は言った。「あなたに何をあげようか。」ヤコブは言った。
「何も下さるには及びません。もし私に次のことをしてくださるなら、
私は再びあなたの群れを飼って守りましょう。)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私は今日、あなたの群れをみな見て回りましょう。その中から、ぶち毛と斑毛の羊を
すべて、子羊の中では黒毛のものをすべて、やぎの中では斑毛とぶち毛のものを
取り分わけて、それらを私の報酬にしてください。)
그렇습니다.
야곱은 자기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삼촌 라반과 자신의 품삯에 대한 계약을 맺습니다.
그 계약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과 염소의 무리 중에서, 털 색깔이 검은 어린양과 얼룩진 점박이 어린양,
그리고 털 색깔이 얼룩진 점박이 어린 염소를 자기 것으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야곱의 요구는, 외삼촌 라반이 볼 때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대부분이 흰색이고, 염소는 대부분 암갈색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라반은, 몇 가지 조건을 추가한 후, 야곱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야곱은 이때부터, 자신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삼촌을 속입니다.
양과 염소가 번식기를 맞이할 때, 이런저런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가질 양과 염소를 많게 한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한 방법은 매우 비과학적이고,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외삼촌의 양과 염소 중, 좋은 것들을 거의 차지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30:42-43.
42.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こうして、弱いものはラバンのものとなり、強いものはヤコブのものとなった。)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このようにして、この人は大いに富み、多くの群れと、男女の奴隷、
それにらくだとろばを持つようになった。)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야곱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야곱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가지기 전까지는 포기할 줄 모르는,
매우 집요한 사람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지금 야곱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답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까 ?!
물론입니다. 야곱은 전혀 신앙인답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야곱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나이가 100세에 도달할 때까지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야곱은 대단한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어머니는 그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낳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야곱은, 100세가 되도록 신앙인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가 목표했던 인생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세상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야곱의 인생의 목표는, 명예와 권력과 힘, 즉 장자의 명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또 다른 인생의 목표는, 여인과 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혹시, 이 야곱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
특히, 모태신앙인 분들, 지금까지 소개한 야곱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
저는 오늘의 말씀 서두에,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삶의 목표로, 어떤 것들을 품으신 채, 이제까지 살아오셨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만약, 야곱의 이야기가, 이것으로 전부라고 한다면,
야곱은 절대로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의 이야기가, 이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야곱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신앙인으로 살지 않았던 야곱 !
그 야곱을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오셨습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요.
성경에 기록된 것만 해도, 열 번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는 경험이 한 번, 두 번, 세 번 이어지면서,
야곱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더구나 여러분 !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행하시는 이러한 방식(즉, 은혜)은,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입니다.
즉, 택한 자로 태어났지만,
세상 사람과 똑같은 목표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당신의 청지기로, 당신의 사자(使者)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시고, 또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야곱을 찾아가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오십니다.
할렐루야 !
저는,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 하나님께서, 신앙이 없는 야곱을,
언제(즉, 야곱이 어떤 상황에 있을 때),
무슨 뜻을 가지시고 찾아가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야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전할 야곱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도 성령의 은혜로) 야곱처럼,
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녀였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였고,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저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였으며,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저 어머니 리브가의 하나님이였습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를 서서히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우리에게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
그저 박 목사의 하나님입니까 ?!
그저 어머니와 아버지의 하나님입니까 ?!
그저 신실한 어느 성도의 하나님입니까 ?!
야곱을 찾아오신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오셔서,
하나님을 [나(우리)의 하나님]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끝으로, [엘리야의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제목 : 엘리야의 하나님 (エリヤの神, 김보훈 작사, 김보훈 작곡)
갈멜산에서 쌓은 번제물을, 불로써 태워 버린 여호와여
(カルメル山で積み上げた燔祭を、火で焼き尽くした主よ)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エリヤの神は私の神)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エリヤの神が私たちの神)
갈멜산 제단 위에 불로써 나타나신 (カルメル山の祭壇の上に火で現れた)
엘리야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 (エリヤの神が、すなわち私の神)
내가 지금 주 앞에 울부짖나이다 (私は今、主の前で叫んでいます)
불로 응답하소서, 응답하소서 (火で応えてください、応えてください)
주님은 분명히 <주님은 분명히> (主は確かに)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生きている神)
간곡한 기도에 응답하소서 (熱心な祈りに応えてください)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
(エリヤの神、エリヤの神、私の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