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026년8월16일, 예레미야 32:39-4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기쁨으로 하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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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6-08-22 19:34 ヒット 16 コメント 0本文
사랑하는 여러분 !
누군가에 대해, 잘 오해하는 편입니까, 잘 이해하는 편입니까 ?!
만약, 잘 오해하는 쪽이라면, 주로 누구에 대해 오해하십니까 ?!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되,
"오해하는 마음 가지지 않게 하시고, 이해하는 마음 주세요 !"라고 기도하셔서,
오해하는 우리 되지 않고, 이해하는 우리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여러분 !
오늘날 많은 신앙인이, 하나님을 오해(誤解)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例)가 ‘인간이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품은 사람들 대부분은, 의무감에 사로잡힌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주일예배를 안 드리면, 그 주간에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 !'
'내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나는 지옥에 떨어질 거야 !‘
본향성도여러분 !
만약,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신앙생활이 즐겁고 행복하겠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따분하겠습니까 ?!
예 !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이상한 신앙생활에 대해, 한 청교도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무감에 하는 신앙생활은) 사랑하지 않는데 이혼은 싫으니까,
할 수 없이 배우자와 함께 하는 결혼 생활처럼, 매우 불편하고 불행하다.”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사람은, 신앙을 의무라고 생각해,
자신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이제껏 자신이 즐기던 즐거움을 다 잃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천재적인 지성을 가지고 태어나, 세상 학문에 깊이 빠져 배움과 탐구를 즐겼고,
17세부터는 이성과의 즐거움에 빠져, 여인과 동거를 시작해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모니카라는 여인이었는데, 아들이 세상 즐거움에만
깊이 빠진 것을 안타깝게 여겼고, 평생 눈물로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니카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마침내 어거스틴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됩니다.
그 어거스틴이 그의 책을 통해, 하나님께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한때, 잃어버리게 될까 봐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세상> 즐거움들이,
<저에게서> 한꺼번에 제거되었을 때, 정말 너무나 상쾌했습니다.
저에게서 그것들을 몰아내신 당신은, 진정 최상의 기쁨입니다.
저에게서 그것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취하신 당신은 ...
그 어떤 즐거움보다 더 감미롭습니다.”
“그 어떤 비밀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있는 당신은, 모든 빛보다 더 빛나는 분입니다.
자기 속에서 영광을 찾으려는, 어리석은 인간의 눈에는 비록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모든 영광을 능가하는 분입니다.
오, 주 나의 하나님, 나의 빛, 나의 행복, 나의 구원이시여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가 하나님의 품으로 올 수 없도록, 그를 막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의 즐거움들을 다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하나님을 오해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즉,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이런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도리어 그는 참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어거스틴이 체험하고,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한
참 즐거움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여,
(신앙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기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다음으로 소개할 사람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로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사울이 왕위에 오른 2년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습니다,
당시 블레셋의 군세(軍勢)는 병거(兵車)가 3만, 마병이 6천,
그리고 군사는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습니다.
사무엘상13: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ペリシテ人はイスラエル人と戦うために集まった。戦車三万、
騎兵六千、それに海辺の砂のように数多くの兵たちであった。)
이에 반해, 사울 왕의 군사는 겨우 6백 명이었습니다.
사무엘상13:15.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가량이라
(サウルが彼とともにいた兵を数えると、おおよそ六百人であった。)
더구나 여러분 !
블레셋 군사들이 철로 된 칼과 창으로 무장(武裝)한 것과 달리,
사울의 군사들에게는 그런 무기들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상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戦いの日に、サウルやヨナタンと一緒にいた兵のうちだれの手にも、
剣や槍はなかった。ただサウルと息子ヨナタンだけが持っていた。)
여러분 !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싸움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
이렇듯 이스라엘과 사울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부닥쳐 있을 때,
사울 왕이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한 가지 놀라운 명령을 내립니다.
사무엘상14: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その日、イスラエル人はひどく苦しんでいた。サウルは、
「夕方、私が敵に復讐するまで、食物を食べる者はのろわれよ」と言って、
兵たちに誓わせていた。
それで兵たちはだれも食物を口にしていなかったのであった。)
여러분 ! 사울이 어떤 명령을 내린 것입니까 ?!
예 ! 목숨 걸고 전쟁하는 군사들에게 금식(禁食)을 명령한 것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사울의 명령이 타당합니까, 말도 안 됩니까 ?!
예 !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군사에게 내릴 명령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사울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했을까요 ?!
예 ! 사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었기에,
이런 극단적인 종교적 행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어리석은 생각은, 도리어 군사들을 지치게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 너무 배고파, 짐승을 피 채로 먹는 죄까지 범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경은 죄인인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범죄한 인간의 실존은 그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그저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선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무모한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힌트가 구약과 신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경 잠언과 욥기입니다.
잠언8: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主が天を堅く立てられたとき、わたしはそこにいた。
主が深淵の面に円を描かれたとき、)
이 말씀에서 1인칭 주어인 [내(가)]는 '지혜'의 근본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의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그]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즉,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함께,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욥기33:4.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神の霊が私を造り、全能者の息が私にいのちを下さる。)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 하나님]도
그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먼저 본 잠언 8장에 이런 말씀이 이어집니다.
잠언8: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わたしは神の傍らで、これを組み立てる者であった。
わたしは毎日喜び、いつも御前で楽しんでいた。)
성도여러분 !
이 말씀을 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즉, 삼위 하나님이 서로 어떤 관계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여기에서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다”는 것은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다”라는 것은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의 즐거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창조 때의 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기뻐하시고, 완전한 즐거움 가운데,
만족하게 교제하시고 계셨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신약 성경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父よ、今、あなたご自身が御前でわたしの栄光を現してください。
世界が始まる前に一緒に持っていたあの栄光を。)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교회, 그리고 성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장면으로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창세 전’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이신 성부 하나님과
영광을 함께 누리고 계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천지 창조하시기 전, 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겨 하시며, 완전한 영광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 이전 삼위 하나님은, 교제(코이노니아)하고 계셨고,
그 완벽한 교제를 통해, 충만한 기쁨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시던 삼위 하나님이, 왜 우주만물을 지으셨을까요 ?!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쁨은 나눌 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 수록 가벼워진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기쁨과 즐거움을 더 크게 하시려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기쁨과 즐거움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그 기쁨과 즐거움이 더욱 충만해지도록
그리고 사람과 만물을 통해 영광(기쁨과 즐거움)을 받으시기 위해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
그 [에덴]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예 ! 기쁨, 즐거움, 환희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에덴, 즉 천국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 안에서 환희를 느끼는 곳입니다.
또한, 여러분 !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 안에서 환희를 느끼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 아담이 외롭다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까 ?!
금식하며 기도했습니까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외로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에게 하와를 주셨습니다.
또한, 하와를 주시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
하와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흙을 가져오라 하시고,
또 물을 부어서 빚으라고 하셨습니까 ?!
아닙니다. 아담을 편히 잠들게 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일하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하나 취하시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을 깨워 그 여자를 보여주셨습니다.
놀란 아담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창세기2:23.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これこそ、ついに私の骨からの骨、私の肉からの肉。)
내가 그대 안에 있고, 그대가 내 안에 있다는 사랑의 노래요, 기쁨의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그에 대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며,
바로 그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공부하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질문과 답이 무엇입니까 ?!
바로 이것입니다.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人の主な目的は何ですか。)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人の主な目的は、神の栄光をあらわし、永遠に神を喜ぶことです。)
칼빈 주의 목사인 존 파이퍼는 이 제1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 설명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神を喜ぶ)]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 !
여기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神を喜ぶ)]라는 것은,
[하나님을 즐겁게 하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즐기라]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있다고 가정해 보시지요.
둘이 서로를 즐거워(相對を喜ぶ)해야 행복합니까,
아니면 서로를 즐겁게 해줘야 행복합니까 ?!
물론입니다. 상대를 즐거워(相對を喜ぶ)해야 행복합니다.
상대를 즐거워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즐겁게 해주려고만 애를 쓰면,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
물론입니다. 지칩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상대가 나를 즐거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즐겁게 해주려고 애를 쓴다면,
상대의 그 열심이, 나에게 감동이 됩니까, 안 됩니까 ?!
물론입니다. 부담만 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감동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도 이와 똑같습니다.
여러분 ! 인간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神を喜ぶ)]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영화롭게(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앞서 소개한 존 파이퍼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만족을 얻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신다.
(私たちが神の中で最高の満足を得るとき、
神は私たちの中で最高の栄光を受け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 즉,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최고의 만족을 얻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입니다.
자 ! 이제 오늘 본문을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한 언약] 즉, 변하지 않는 약속을 하십니다.
자 ! 그렇다면, 그 언약(즉, 약속)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
첫째,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본문40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わたしが彼らから離れず、彼らを幸せにするために、
彼らと永遠の契約を結ぶ。)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더라도,
또한, 우리가 어떤 어리석은 일을 하더라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 이유가, 우리를 종(從)으로 삼거나,
우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하나님의 이 약속은 본문에만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반복하십니다.
그중 한 곳 만 소개합니다.
이사야59: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これは、彼らと結ぶわたしの契約である。主は言われる。
あなたの上にあるわたしの霊、わたしがあなたの口に置いたわたしのことばは、
あなたの口からも、あなたの子孫の口からも、子孫の子孫の口からも、
今よりとこしえに離れない。)
이 놀랍고 고마운 하나님의 약속이,
이곳에 함께 한 모두에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쁨으로 예배하는 마음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40절.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わたしは、彼らがわたしから去らないように、
わたしへの恐れを彼らの心に与える。)
이 말씀에서,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라는 말씀에는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예배하고 싶은 열망이, 너희 마음속에
일어나게 하고야 말겠다”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그저 의무감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기쁨 때문에,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또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아무리 악하고, 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양심이 굳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일을 그치지 않으심으로써,
그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감격의 예배를 드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시면,
그는 그 하나님께 그런 반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이미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 안에, 이러한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하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물론입니다.
이런 행복을 겪은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선하심을 경험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떠나겠습니까 ?!
이 은혜도 입은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친히, 마음과 정성을 모아, 우리를 축복의 땅에 심으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41절.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わたしは彼らをわたしの喜びとし、彼らを幸せにする。
わたしは、真実をもって、心と思いを込めて、彼らをこの地に植える。)
이 말씀을, 다니엘이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사명선언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 )를 축복의 땅이 심으리라.”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 )를 천국에 심으리라.”
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
더구나 하나님은, 이 일을 [기쁨으로]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 세상 어느 신(神)이 인간을 이처럼 섬긴다고 말합니까 ?!
세상 어느 신(神)이 인간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합니까 ?!
오직 우리의 하나님뿐이십니다.
이 사실을 먼저 깨달은 믿음의 선배들은, 그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출애굽기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主よ、神々のうちに、だれかあなたのような方がいるでしょうか。
だれがあなたのように、聖であって輝き、たたえられつつ恐れられ、
奇しいわざを行う方がいるでしょうか。)
모세의 고백입니다.
시편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主よ、神々のうちであなたに並ぶ者はなく、
あなたのみわざに比べられるものはありません。)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을 만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면, 이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영원히 멸망할 우리를 찾아오셔서, 크고 놀라운 은혜를 주사,
좀처럼 감동하지 못하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런 하나님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되돌아보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맛보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의무감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깁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다고 할지라도, 그는 단지 종교인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면, 온전하고 참된 순종을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세상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을 감동시켜야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감동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핵심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본문40-41절.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わたしが彼らから離れず、彼らを幸せにするために、
彼らと永遠の契約を結ぶ。わたしは、彼らがわたしから
去らないように、わたしへの恐れを彼らの心に与える。)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わたしは彼らをわたしの喜びとし、彼らを幸せにする。わたしは、
真実をもって、心と思いを込めて、彼らをこの地に植え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기를 더욱 구하십시오.
또한,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는 그 인자하심의 은혜를,
속히 깨달을 수 있도록,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분명, 우리는 매일 매일, 최고의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이 땅에서도,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 의지하여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