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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3년12월25일, 마태복음 2:13-18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도리어 죽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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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21,408回 日時 23-12-31 10:50

本文

  지난 주일의 메시지를 잠시 돌아보며, 지체들과 함께 고백해 봅시다.


  성도님 ! 왜 성탄을 맞이하면, 우리 마음이 설레고, 평화로워질까요 ?!

  성탄의 주인인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해 주시고, 즐거움을 주십니다.

  사람과 이웃과의 관계를, 평화롭고 화목하게 해 주십니다.

  자녀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평화의 나라와, 참 안식을 주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오해, Le Malentendu, 誤解]라는 희곡(戲曲) 작품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체코의 한 깊은 산속에 마르타라는 처녀가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여관을 경영합니다.

  그런데 이 두 모녀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태양을 그리기 좋아하는 마르타를 위해,

  남쪽 지중해 연안으로 이사 가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겐, 이사하는 꿈과 함께, 한 가지 기다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 ! 마르타는 20년 전에 집을 나간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과 꿈을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 모녀는,

  이사할 돈을 모으기 위해서, 참으로 흉악한 일을 저지릅니다.

  여관에 들어오는 투숙객 중에서 부유해 보이는 손님들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가진 것을 빼앗고, 그들을 강물에 빠트려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으로 부유하게 보이는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크게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모녀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그 사람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고, 늘 그랬던 것처럼, 그를 강물에 던져 죽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그 사람을 죽이고 난 후, 빼앗은 돈과 물건을 정리하면서,

  두 모녀는 자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신분증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 두 모녀가 죽인 남자는 과연 누구였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녀들이 지난 20년 동안,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고 오빠였습니다.

  실은 마르타의 오빠는 엄마와 동생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자신의 정체를 숨겼던 것입니다.

  이 희곡은, 세 가족의 비참한 죽음으로,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부조리(不條理)를 말합니다.

<참고> 부조리(不條理, 영어: absurdism)는 불합리 · 배리(背理) · 모순 · 불가해(不可解)

  등을 뜻하는 단어로써,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기대하고 원합니다. 행복을 열망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은,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를,

  자기 스스로 자기 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자들이 말하는 [부조리(不條理)]입니다.


  부조리(不條理)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려 하고, 또 성공하기를 원합니까 ?

  그런데 전혀 부자가 될 수 없는 요인, 성공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을,

  자기 자신 속에 꼭꼭 담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신앙)에 대해서도 대입(代入)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신앙인이 참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은, 참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거짓 믿음의 사람이 되는 요인들을 자기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오신 그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고, 버리고 배척했으며,

  끝내는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2천 년 전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오시매,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동방으로부터 별의 인도함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온 박사들이, 헤롯 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마태복음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ユダヤ人の王としてお生まれになった方は、どこにおられますか。

  私たちはその方の星が昇るのを見たので、禮拝するために来ました。)


  박사들의 말을 듣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박사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오래전에 약속하셨던 [그 메시아]임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이렇게 묻습니다.

  마태복음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王は民の祭司長たち、律法学者たちをみな集め、

  キリストはどこで生まれるのかと問いただした。)

  그렇습니다. 헤롯 왕은, 그리스도(즉, 메시아)의 나실 곳을 물었습니다. 


  헤롯 왕의 물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태복음2:5-6.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彼らは王に言った。「ユダヤのベツレヘムです。

     預言者によってこう書かれています。)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ユダの地、ベツレヘムよ、あなたはユダを治める者たちの中で決して

     一番小さくはない。あなたから治める者が出て、

     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を牧するからである。』」)

  그렇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역시, 구약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말하면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 나실 것이라고 헤롯에게 말합니다.


  자 ! 여러분 ! 묻습니다.

  비록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유다의 왕으로서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헤롯,

  또한, 유대인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들이 메시아 탄생에 대한 소식을 박사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무엇을 먼저 했어야 합니까 ?!


  물론입니다.

  우선 메시아 탄생이 사실인가를 확인하고, 그것이 확인되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메시아를 환영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 메시아를 죽일 궁리만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흉악한 계획을, 하나님께서 일단 막으셨지만 말입니다.


  본문13절.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彼らが帰って行くと、見よ、主の使いが夢でヨセフに現われて言った。

「立って幼な子とその母を連れてエジプトへ逃げなさい。

  そして、私が知らせるまで、そこにいなさい。

  ヘロデがこの幼な子を捜し出して殺そうとしています。」)


  더구나 헤롯은, 수많은 어린아이를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본문16절.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ヘロデは、博士たちに欺かれたことが分かると激しく怒った。

  そして人を遣わし、博士たちから詳しく聞いていた時期に基づいて、

  ベツレヘムとその周辺一帯の二歳以下の男の子をみな殺させた。)


  자 ! 여러분 !

  헤롯과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치 20년 만에 돌아온 자기의 아들과 오빠를 죽인 두 모녀처럼,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결국에는 죽이고 말았을까요 ?!


  첫째, 그들이 땅과 세상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

  본문 당시 유대인들은, 왜 그토록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까 ?!

  예 ! 메시아가 오면, 로마로부터 독립을 시켜 줄 것이고, 다윗왕 시대와 같은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대다수 유대인의 관심은 [오직 세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문제, 땅의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다렸고,

  오신 예수님이 그것을 해결해 줄 분으로 보이지 않자, 죽인 것입니다.

  예 !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한 동방의 박사들은 어떠했습니까 ?!

  그들이 비록 하나님도 모르고 메시아도 모르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배운 적도 없던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베들레헴까지 와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 !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바라본 하늘이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동방박사들은, 땅과 세상의 일보다,

  하늘에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노아 홍수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지만, 사람들은 하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님이 세상 종말의 때와 비교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17:26-27.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ノアの日に起こったのと同じことが、人の子の日にも起こります。)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ノアが箱舟に入るその日まで、人々は食べたり飲んだり、めとったり嫁いだり

      していましたが、洪水が来て、すべての人を滅ぼしてしまいまし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땅과 세상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메시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또한, 땅과 세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이런 충격적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땅과 세상만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죽이고 만 것은),

  그들 자신의 자리와 자신들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방박사들을 통해, 메시아 탄생의 소식을

  전해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은 깜짝 놀랍니다.

  마태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태복음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これを聞いてヘロデ王は動揺した。エルサレム中の人々も王と同じであった。)


  이 말씀에서, [소동한지라]의 원문 헬라어는 [타랏소]인데,

  그 뜻은 [뒤흔들리다, 당황하다, 무섭다]로서,

  당시 예루살렘 성내(城內)가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극심한 불안과 공황상태에 빠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 왜 좋은 소식을 듣고, 도리어 패닉(panic)이 되고 말았을까요 ?

  헤롯 왕은, 왕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쌓아 올린 권력과 힘을 잃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은,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

  자기 자리를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마음이 [타랏소],

  즉, [뒤흔들리고, 당황하고, 무서워진] 패닉 상태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들과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한 동방의 박사들은 어떠했습니까 ?!

  물론입니다.

  메시아의 별을 본 후, 주저 없이 자신들의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메시아를 향해 곧바로 나아갔습니다.

  별이 인도하는 대로 말입니다.

  더구나 손에는 메시아에게 드리기 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까지 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심판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기의 자리와 자기 것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세상 종말에 때와 비교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17:28-30.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また、ロトの日に起こったことと同じようになります。人々は食べたり

      飲んだり、売ったり買ったり、植えたり建てたりしていましたが、)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ロトがソドムから出て行ったその日に、火と硫黄が天から降ってきて、

      すべての人を滅ぼしてしまいました。)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人の子が現れる日にも、同じことが起こります。)


  그렇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이 가진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려움과 염려에 빠집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

  2천 년 전, 첫 성탄 때의 헤롯 왕,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백성과 비교해서 우리는 어떠하냐 말입니다.


  예 !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고대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뜻이, 내 삶의 현실 속에 잘 어울리게,

  예수님의 뜻이, 내 삶의 현장 가운데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혹시 바라는 것은 아닙니까 ?!

  마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유다 예루살렘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식의 예수님, 즉, 내 삶의 현실 속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예수님을 원하고 있다고 하면,

  어쩌면 우리도 머지않아 예수님을 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신자들이, 겉으로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그저 ‘자기의 소원이나 들어주는 도와주는 분’ 정도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의 유대인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왜 헤롯 왕이 메시아를 죽이려 합니까 ?!

  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메시아를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까 ?!

  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데 협력했습니까 ?!

  예 ! 사실은 그들 모두는, 자기들 스스로가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혹시, 우리 스스로 왕이 된 것은 아닙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로를 영접해야 했던 당시 사람들,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렸던 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 앞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땅과 세상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들 자신의 자리와 자신들의 것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인생을 삽시다.

  또한,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동방박사들처럼, (별이 인도하는 대로)

  즉,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결단하여 순종하는 우리가 됩시다.

  분명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슬기로운 처녀와 같은 참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성탄절을 예배의 날로 구별하지 않는 이 땅 일본에서,

  바로 지금 2023년 성탄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경배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첫 성탄 때에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가 거듭 충만하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參考>

 『誤解』(ごかい、Le Malentendu)は、1944年に初演されたアルベール・カミュの戯曲。

  舞台はある田舎の小さなホテルで、ここを経営する女性マルタとその母親は、

  暗い自国を抜け出して太陽の照る海辺の街で暮らすために、

  たびたび宿泊客を殺して金品を奪っていた。

  そこに、大昔に家を出ていったマルタの兄ジャンが身を立てるのに成功して戻ってくる。

  彼は母親たちを救うために戻ってきたのだが、彼女たちの悪事のことは知らず、

  驚かせる目的で自分の正体を隠したままこのホテルに宿泊する。

  羽振りがよく独り身と見えた彼は格好の餌食となり、

 マルタと母親はジャンを睡眠薬で眠らせて川に放り込む。

  しかし間もなく残されたパスポートから自分たちの肉親を殺してしまったことを知り、

  母親は絶望して息子の後を追うが、マルタはジャンの様子を見に来た

  彼の妻マリヤに冷たい言葉を投げつけて去っていく。

  この物語は東欧で実際に起こった事件から着想を得ており、

  カミュはこの事件を小説『異邦人』(1942年)の中の三面記事として登場させ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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