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년12월3일, 창세기 2:22-25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룰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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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의 가정이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첫째, 배우자의 듣기 싫은 조언과 충고를,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둘째,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배우자가
변화되도록 힘쓰며, 또한 사랑의 마음으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셋째, 배우자는, 주님이 짝지어 주신 내 짝꿍임을 잊지 맙시다.
넷째, 배우자의 아름다움을 자주 칭찬합시다.
본문인 창세기 2장의 말씀을 의지하여,
[무엇이 회복되어야,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말씀을,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전하겠습니다.
다섯째,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본문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
결혼은, 아버지와 어머니, 즉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를 떠나는 것]이라 함은,
이제껏 살던 삶의 습관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배우자와 함께 새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이전에 살던 삶의 방식을 떠나서,
약속의 말씀에 기초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부부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결혼한 아들이, 틈만 나면 부모님 집으로 퇴근합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이 더 맛있고, 장가간 아들이 가면 엄마가 좋아한다고요.
또한, 결혼한 딸이, 틈만 나면 친정으로 달려갑니다.
친정이 더 편하고, 친정엄마로부터 반찬과 용돈도 얻어갈 수 있어서 좋다고요.
그리고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부부가 서로 전화합니다.
"여보 ! (자기 !) 오늘은 시간도 늦고 피곤하니까 여기서 자고,
내일 퇴근 후에 집으로 갈게 ! 애들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서 재워 !"
여러분 ! 이 가정이 부모를 떠난 가정입니까 아닙니까 ?!
예로부터, 여인들은 일본도 한국도,
결혼 후에는 자라왔던 집을 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집을 떠나 시집에 갑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기가 살던 집으로, 아내를 맞이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통해 여자는 부모를 떠나는데,
남자는 좀처럼 부모를 떠나지 못합니다.
살던 집뿐 아니라, 부모를 지나치게 의지하는 태도와 생각,
그리고 삶의 습관과 방식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서 남자의 떠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마마보이(mama's boy)]라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마보이와 결혼한 어떤 여인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직접 겪고 있는데, 자기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사람이 바뀌어요.
이런 마마보이들의 특징은 자기 엄마, 형제의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정작 자기 마누라가 공격을 당하면 아무 말도 안 해요.]
물론, 결혼한 남자든 결혼한 여자든, 부모에게 효(親孝行)를
다하고, 형제자매 간에 우애(友愛)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 우선해서, 부부가 먼저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자가 [부모를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가정의 원리]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 성도와 교회와의 관계도 같습니다.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떠나야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와 교회의 관계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고보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4:4.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고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
(世を愛することは神に敵対することです。
世の友となりたいと思うものは誰でも自分を神の敵としているのです。)
여섯째, 그의 아내와 합하여야 합니다.
본문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その妻と結ばれ。)
이 말씀에서 [합하여]의 원문 히브리어는 [다바크]인데,
그 뜻은 [곁에 머물러 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향해 다가간다]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한 부부는 각방을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互いに相手を拒んではいけません。ただし、祈りに専心するために
合意の上でしばらく離れていて、再び一緒になるというのならかまいません。)
또한, 부부는 잠자리뿐 아니라, 항상 곁에 있어 주어야 합니다.
남편, 혹은 아내가 "지금 뭐 해요 !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라고 하는데,
"나, 지금 바쁘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 !"라면 되겠습니까 ?!
어릴 적에 즐긴, [짱가(アストロ ガンガー)]라고 하는 애니메가 있습니다.
그 짱가의 한글판 주제가가 한때 상당히 유행했었습니다.
이런 가사입니다.(한글 버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틀림없이 생겨난다, 지구는 작은 세계 우주를 누벼라
씩씩하게 잘도 날은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당당하게 지구를 지킨다,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
(일본어 버전)
[どこかでだれかになにかがあれば, ガガガガガガーンと 大きな力 ヤー
かならずかならずやってくる, 心をはずませ見上げる空をたくましく
今日もとぶ ガンガーガンガー アストロガンガー]
그렇습니다. 결혼은 배우자를 위해, 항상 함께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또한, 결혼은 상대방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예 ! 배우자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배우자를 힘껏 사랑하기 위해, 배우자를 향해 계속 다가가는 것이 결혼입니다.
"나는 이해 못 해 !" 하고 그냥 딱 선을 그어버리면,
그 가정은 행복을 유지하기도, 기쁨이 가득한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기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결혼은 부부가 [합하는(다바크)],
즉 [곁에 머물러 있고, 끊임없이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 본향의 모든 부부가 이렇게 다가가는 부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것은 성도와 하나님, 성도와 교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 교회를 향해 끊임 없이 나아가고 다가가는 것,
바로 이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한, 중요한 원리인 것입니다.
일곱째, 부부가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その妻と結ばれ、ふたりは一体となるのである。)
이 말씀에서 [한 몸]의 [한]의 원문 히브리어는 [에하드]입니다.
그 뜻은, [단일, 통일, 일치, 하나 됨]입니다.
이 [에하드]란 단어는,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에도 등장합니다.
신명기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聞け、イスラエルよ。主は私たちの神。主は唯一であ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또한, 하나님이 한 분이듯이,
부부는 완전히 한 몸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고, 아내의 아픔은 나의 아픔입니다.
남편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고, 아내의 응답은 나의 응답입니다.
또한, 남편의 목표는 나의 목표이고, 아내의 꿈은 나의 꿈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몸]이고, 온전한 [하나 됨(에하드)]인 것입니다.
친정의 어려움, 시댁의 어려움이 있는데,
"당신네 집안일은 당신이 알아서 해, 우리 집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게 !"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친정의 어려움도, 시댁의 어려움도 모두 우리 가정의 어려움입니다.
친가의 기쁨도, 처가의 기쁨도 다 우리 가정의 기쁨입니다.
온전히 하나 된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어느 편의 인격도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 둘은 삶의 목적에 있어서, 마음에 있어서 하나를 이룹니다.
우리 본향의 모든 부부가 이렇게 하나인 부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것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 성도와 교회의 관계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꿈이 교회의 꿈이 되고, 교회의 꿈이 성도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이 성도의 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위해 일하시고 계십니다.
여덟째,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25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人とその妻はふたりとも裸であったが、恥ずかしいとは思わなかった。)
예 ! 부부는 서로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수용하며, 채워 주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다 벌거벗으면, 부끄러운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온전한 하나가 되려면, 서로에게 부끄러운 점,
연약한 점들이 드러날 때마다, 그것을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용납하고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는, 온전한 하나 됨은 없습니다.
나에 대해서는 너그럽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대응하는 것은 절대로 아름다운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J. 애덤스라는 유명한 기독교 상담가가 있습니다.
그분이 겪은 일을 짧게 소개합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왔는데, 도저히 남편과 살 수 없다고 합니다.
아담스가 찾아온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죠 ?!"
그러자 부인은, 꾸깃꾸깃한 두꺼운 대학노트를 꺼내면서,
"이것이 지난 15년 동안에 남편의 행적을 적은 것입니다."라며 펼쳐 보였습니다.
그 노트 안에는, 15년 동안 남편의 실수, 부족한 점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까맣게 적혀있었습니다.
그 부인을 향해 애덤스가 말합니다.
"이 노트가 문제네요. 이 노트를 당신의 마음에서 전부 태워버리기 전에는,
당신과 남편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도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를 마음에서 지워야 합니다.
또한, 교회 역시, 성도로부터의 아픔을 마음에서 속히 지워야 합니다.
한국의 어느 목사님 부부를 소개합니다.
두 분은 신학교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캠퍼스 커플'입니다.
섬기는 교회에서도, 목사님은 앞장서 헌신하고, 사모님은 뒤에서 협력하는데,
사모님이 뒤처리를 너무나 잘하셔서, 그 교회 성도들은 모두
"우리 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사모님이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 중에, 빨래(세탁)를 잘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빨래야 세탁기가 다 해 주는데, 뭘 못한다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이 사모님은 세탁된 빨래를 털지 않고 널거나, 셔츠 등을 꾸겨진 그대로 널었습니다.
특히, 건조 후에는 양말의 짝을 찾아서, 같은 짝끼리 서랍에 넣어야 하는데,
그냥 대충 던져 넣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목사님이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밝은 낮에는 양말이 섞여 있어도, 찾아 신으면 되니까 그나마 괜찮습니다.
문제는 새벽예배 때입니다.
단칸방 시절에 아이들이 깰까 봐, 방의 전등을 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어둠 속에서 서랍을 열어서,
양말 색깔을 맞춰서 신고 예배당에 가는데, 강대상에 올라가 환한 불 아래서 보면,
어떤 날은 파란색과 흰색 양말을 신고 나온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한쪽은 목사님 것, 한쪽은 사모님 것을 신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목사님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늘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 우리 아내는 다 좋은데, 빨래하는 것만 좀 고쳐주세요 !"
여러분 ! 이런 기도는 내 뜻대로 응답이 옵니까 ?! 안 옵니까 ?!
물론입니다.
지난 주일에 소개했던 [남편의 기도로 아내를 돕는다] 라는 책과
[아내의 기도로 남편을 돕는다] 라는 책을 쓴
스토미 오마샨의 예를 통해 보는 것처럼,
이런 기도는 절대 내 뜻대로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목사님이 또 양말 때문에 창피를 당한 다음,
너무 속이 상해서 하나님께 그 문제를 놓고 또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목사님 마음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 어떤 응답을 주셨을까요 ?!
물론입니다. 이런 응답이었습니다.
[목사야 ! 네가 빨래와 양말 정리를 잘하면, 앞으로는 네가 하면 되겠네 !]
다음 날, 그 목사님은 온 가족을 모아놓고, 정식으로 위임식을 했답니다.
"앞으로 우리 집 세탁 및 양말 개기는 아빠가 책임지고 한다."
그래서 그 후로부터, 남편 목사님이 세탁을 담당했더니,
모든 문제가 다 원만히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부부는 서로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이해하며, 채워 주어야 합니다.
우리 본향의 모든 부부는, 이렇게 용납하고 채워 주는 부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안에 우리 가정이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가정(교회)이,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아름다운 동산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두 주일에 걸쳐, 여덟 가지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첫째, 배우자의 듣기 싫은 조언과 충고도, 감사함으로 받읍시다.
배우자의 말에 자존심과 교만한 마음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아직
십자가에 교만과 자존심을 못 박지 못한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배우자가 변화되도록
힘쓰며, 또한 사랑의 마음으로 배우자를 위해 항상 기도합시다.
셋째, 배우자는, 주님이 짝지어 주신 내 짝꿍임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과 만나 부부가 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배우자의 아름다움을 자주 칭찬합시다.
아내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남편이고, 남편을 더 멋지게 만드는 것은 아내입니다.
다섯째, 부모를 떠납시다.
특히, 우리 남자들이 이 말씀에 순종합시다.
여섯째, 일곱째, 부부가 합하여 한 몸을 이룹시다.
남편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또한,
아내를 힘껏 사랑하기 위해, 내 남편과 내 아내를 향해 다가가고 또 다가갑시다.
여덟째,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서로의 부족함을 용납하고 인정하며, 부족한 그것을 대신해서 채워 줍시다.
이 말씀들에 순종하여,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을 지켜나가는,
모든 본향성도의 가정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