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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3년10월15일, 시편 134:1-3 사도행전 16:25 (늘 찬송하면서)-민선기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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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5,434回 日時 23-10-2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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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지만,

오늘 주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는 모든 분들에게

입술에 찬송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찬송가에는 모두 645곡의 찬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은혜로운 찬송입니다만,

이 중에서도 특별히 여러 사람들에 의해 애창되는 찬송들이 또한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찬송을 가장 즐겨 부르십니까?


CBS 찬송가 프로그램 장민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10주년(2022.10.17) 

그 동안 방송된 4만 3천여 곡 중 가장 많이 방송된 찬송가 10곡 선정

 1위. 내 영혼이 은총 입어

 2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3위.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4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5위. 아 하나님의 은혜로

 6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7위. 내가 매일 기쁘게

 8위. 빈들에 마른 풀 같이

 9위. 내 진정 사모하는

10위.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사라 플라워 아담스(Sarah Fuller Flower Adams 1805.2.22.-1848.8.14.)

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한 18세기 영국 최고의 여배우였습니다.

유명 엔지니어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폐결핵에 걸려 아름다운 외모는 시들어가고

배우로 활동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던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끔찍한 시간에 쫓기던 어느 날, 침대 옆에 놓인 성경을 발견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았던 성경이지만

배우 활동을 하면서 전혀 보이지 않았던 성경이었습니다. 


사라는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야곱이 형에게 쫓겨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을 읽으면서

그동안 자신이 붙들었던 꿈들이 떠올랐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한적한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눈물 흘리는 야곱의 모습이 마차 자신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질병으로 육신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꿈은 사라졌어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라는 그 감동을 시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사라는 4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작곡가, 로웰 메이슨(Lowell Mason)에 의해 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바로 찬송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입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 찬송이 유명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1912년 4월 15일, 북대서양을 건너던 타이타닉호가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갑판까지 바닷물이 차오르자 승객들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모두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월리스 하틀리(Wallace Henry Hartley)가 이끄는

8명의 선상 악단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급박한 상황 속에 울려 퍼지는‘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의 선율은

흥분했던 승객들에게 침착함을 되찾게 하였습니다.


연주는 침몰하기 10분 전까지 3시간가량 계속되었고,

그 덕분에 승객들은 여자와 어린이부터

질서 정연하게 구명보트에 탈 수 있었습니다.

보트가 부족하여 탈출을 포기한 승객들은

연주를 들으며 차분히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끝까지 연주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하틀리는

일주일 후 주변 해상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침몰 10분 전까지 울려 퍼진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의 찬송은

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연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이 ‘타이타닉호의 최후’는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져 방영되었는데,

죽음을 목전에 두고 찬송을 부르는 그 장면은

우리를 너무나도 엄숙한 감동에 젖어 들게 만듭니다.

“내 일생 소원을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일반 喪家에 가면 울음 소리, 성도의 喪家에 가면 찬송 소리,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은 곧 ‘생활화’되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생활화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데,

이 세 요소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성경’과 ‘기도’와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매일 읽으며 또는 들으며 공부하고 묵상하며,

우리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온전한 기도생활’을 하며,

그리고 매일 매일 ‘찬송’이 우러러 나오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서는,

그 아무도 “나는 참된 신앙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셋은 모두가 따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셋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밀접히 연관된’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 신앙의 기초요 바탕이 된다면,

‘기도’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찬송’은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찬송은 우리 마음속의 신앙을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을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찬송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찬송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행할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엡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찬송을 통해 신앙을 총체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하나하나를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시134편에서 주목한 단어가 있습니다.

“밤에” 라는 단어입니다.

시134: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밤에 성전에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

레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도 찬양받으실 분이기에

성전에서는 밤에도 찬양이 올려졌습니다.


대상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 권면은 단지 밤에도 찬양해야 했던

레위인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왜 밤에 찬양하는 것을 특별히 언급했겠습니까 ?

낮에 찬양하는 모습 보다,

밤에 찬양하는 모습에서 더 큰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깜깜한 깊은 밤 듣는 사람 하나 없는 시간에

성전에서 울려 퍼지는 찬양,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 밤에 찬양하는 것이 진짜 찬양이구나!’깨달아질 것입니다. 


저의 경험상 저희 교회 1년에 한번씩 153 연속기도회로 153시간 연속해서 기도회하면

제가 첫 번째 밤 9시에 홀로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하네’

1절과 4절, 시작 할 때 감동입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이 권면은 인생의 밤을 지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삶이 언제나 기쁘고 황홀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죄에 넘어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실패하고, 수치를 겪고, 가난해지고, 연약해지고, 내동이쳐지고,

하나님께 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순간이 옵니다.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실까?”

“하나님은 정말 나의 기도에 응답하실까?”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

시편기자는 오히려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하라 하였습니다.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우리가 온전히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낮과 밤 구분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밤은 고통스런 시간이지만, 오히려 밤을 만났을 때,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차례 죽을 뻔했었습니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고후1:9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처럼 밤을 만났을 때만 얻게 되는 것이 있기에

우리에게 영혼의 밤이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밤이 왔을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삶의 밤, 영혼의 밤에도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 복을 받을 사람인 것입니다. 

시134: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님께서 시온에서 너희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밤에도 찬양하려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 잃어버려도 결코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 하나면, 어떤 처지나 형편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면 밤에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바라보며 찬양하라 한 것입니다.


밤을 만났을 때, 천국이 뚜렷이 보입니다.

인생의 낮에는 천국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부족한 것이 없을 때, 이 세상이 천국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칠 때, 실패했을 때, 몸이 병들었을 때,

천국은 매우 가까이 여겨지고

비로소 천국에 대한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행 16장에 보면

2차전도 여행 때 빌립보 지역으로 간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렇게 밤이 되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주님 때문에,

복음 전하다가 매를 맞았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 찬송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고난과 역경의 깊은 밤에 부르는 노래는 천사도 부를 수 없는 찬송입니다.

천사에겐 고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밤에 부르는 찬양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부를 수 있는 축복입니다.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가 한 밤 중에 감옥에서 찬양을 부르는 중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빌립보 간수장이 달려와 회심하고,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밤에 부르는 찬송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밤에 찬송한다고 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분명히 지진이 일어납니다. -아멘-


이게 다 찬송 중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찬송 중에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전도사 시절 담임목사님에게는 어려움도 두려울 것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역하면서 교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담임목사님임을 알았습니다.

교회 모든 책임감, 가정에 모든 것이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찬양대 연습시키러 갔다가, 누가 찬양을 교회에서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었습니다.

부르는 찬송은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이였습니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그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님을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여러 어려움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낮을 지나고 있습니까?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아마 밤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낮이나, 밤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탄식하고 원망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권면대로 바울과 실라처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야 말로 밤에 하나님의 집에 서 있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밤은 밤대로 주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늘 찬송하는 여러분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338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찬양을 부르겠습니다.

찬양을 듣는 중에 이 찬양이 내가 드릴 찬양이라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은 같이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찬송 중에 임재하여 거하실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인생의 낮이나, 밤이나 늘 찬송하기를 결단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경험하며

간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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