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년10월8일, 요한복음 15:1-7 (많은 열매로 주님을 기쁘게)
ページ情報

本文
지난 주일의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은 우리에게, 멈춰서 쉬라고 안식일(主日)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배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회복시키고,
가족과 이웃도 회복시키라고, 우리에게 안식일(主日)을 주셨습니다.
안식일(主日)은 우리 마음대로 사는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약 1년 동안 기도하며, 함께 애쓰며, 헌신하며 준비한
교회설립 25주년 감사예배와 임직예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난 1년간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축복한 아래의 축복이,
본향 지체들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私の愛する兄弟たち。堅く立って、動かされることなく、いつも主のわざに励みなさい。
あなたがたは、自分たちの労苦が主にあって無駄でないことを知っているのですから。)
우리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우리는 25주년 주제를 [많은 열매로 주님을 기쁘게]로 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매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7:17, 19.
17.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良い木はみな良い実を結び、悪い木は悪い実を結びます。)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良い実を結ばない木はみな切り倒されて、火に投げ込まれます。)
마태복음21:19.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道端に一本のいちじくの木が見えたので、そこに行って見ると、葉があるだけで、
ほかには何もなかった。それでイエスはその木に「今後いつまでも、おまえの
実はならないように」と言われた。すると、たちまちいちじくの木は枯れた。)
요한복음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まことに、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一粒の麦は、地に落ちて
死ななければ、一粒のままです。しかし、死ぬなら、豊かな実を結びます。)
본문1-2절.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わたしはまことのぶどうの木、わたしの父は農夫です。)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わたしの枝で実を結ばないものはすべて、父がそれを取り除き、実を結ぶものは
すべて、もっと多く実を結ぶように、刈り込みをなさいます。)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금방 소개한 열매에 대한 네 가지 예수님 말씀에서,
예수님이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라"입니다.
자 ! 여러분 ! 무엇이 우리가 맺을 (아름다운, 좋은) 열매입니까 ?!
저는 올 1월의 주일 말씀을 통해,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열매]라는 단어의
원문 헬라어는 [카르포스(καρπος)]라 했습니다.
그 뜻은 [성도의 거룩한 변화]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열매(카르포스)란,
[그리스도를 믿고 새사람이 됨에 따라 나타나는 모든 거룩한 변화들의 총칭]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는,
우리가 점점 [거룩한(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해야, 점점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힐 수 있을까요 ?!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그 답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본문4-5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わたしにとどまりなさい。わたしもあなたがたの中にとどまります。
枝がぶどうの木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自分では実を結ぶことができないのと
同じように、あなたがたもわたし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実を結ぶことはできません。)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わたしはぶどうの木、あなたがたは枝です。人がわたしにとどまり、
わたしもその人にとどまっているなら、その人は多くの実を結びます。
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우리를 가지(枝)라 하십니다.
그리고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곧 마릅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매 맺는 신앙은,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꽉 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5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わたしを離れては、あなたがたは何もする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
본문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わたしにとどまっていなければ、その人は枝のように投げ捨てられて枯れます。
人々がそれを集めて火に投げ込むので、燃えてしまいます。)
여러분 ! 나무에서 떨어진 한 가지(枝)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특히 포도나무 가지는, 이리저리 휘어서 아무 짝에 쓸데없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포도나무 가지는, 오직 땔감으로 쓰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
첫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축복의 통로인 나무를 얻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지가 나무에 연결된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그 나무줄기를 통해 뿌리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박혀 있는, 온 대지와 연결됩니다.
그 결과 가지는, 대지가 가득 품은 온갖 영양분을 다 얻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그 가지는 그 나무를 통해 하늘과도 연결됩니다.
하늘의 공기와 태양 빛과 열, 그리고 비와 눈과 바람이 모두,
가지(枝)가 받아 누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진 가지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나무로부터 떨어진 한 가지가 땅 위에 놓여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 가지와 땅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가지는 땅과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가지는 땅 위에 있지만, 땅의 수분과 영양을 조금도 섭취하지 못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말라갈 뿐입니다.
또한, 그 가지는 태양 빛과 열, 그리고 눈, 바람, 비
그 어느 것도 자신의 복이 되지 못합니다.
다만 자신을 썩히고 죽음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둘째, 가지가 나무에 꽉 붙어 있으면, 농부(즉 하나님)도 얻습니다.
물론 이 농부는, 땔감을 구하는 나무꾼이 아닙니다.
이 농부는 가지를 아껴줍니다. 살펴줍니다. 또한, 사랑해 줍니다.
더구나 농부에게는, 가지를 온전히 지키고 보살필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농부의 커다란 사랑과 능력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반드시 나무에 꽉 달라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토프카피 박물관에는,
모세가 사용했던 지팡이와,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쳤던 칼 等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실물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이 진짜 모세의 지팡이라고 해도,
그 지팡이를 본 사람들은 우선 크게 실망부터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형편없이 초라한 그 모습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 ‘모세의 지팡이’ 하면, 어떤 장면이 생각나십니까 ?
그렇지요. 영화 십계에서 모세 역을 맡은 찰턴 헤스턴이,
홍해를 가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때 그 지팡이, 얼마나 멋집니까 ?
그런데 이스탄불 토프카피 박물관에 전시된 지팡이는,
전체 길이가 겨우 1m 남짓에 그 두께도 어른의 엄지손가락 정도라고 합니다.
지팡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짜리 몽땅 막대기'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실제로 모세가 살았던 미디안 광야는,
찰턴 헤스턴이 들고 있었던 것과 같은, 크고 굵은 가지가 전혀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 한 번 잠시 상상해 보겠습니다.
모세가 홍해에 내민 지팡이는 멋진 지팡이가 아니라 작은 막대기였을 것입니다.
반석을 쳤던 지팡이도 볼품없는 막대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민망스러운 막대기를 내밀자 바다가 갈라졌고,
그 작은 막대기로 반석을 쳤더니 2백만 명이 마실 샘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는, 그저 볼품없는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그 지팡이를 붙잡고 계셨기 때문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볼품없는 막대가 같은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을 때, 놀라운 기적의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한 여러분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우리를,
이 어려운 시대에 놀라운 기적의 사람으로 세우실 줄 믿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만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꽉 붙어 있을 수 있을까요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함을 입으면,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본문3-4절.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話したことばによって、すでにきよいのです。)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わたしにとどまりなさい。わたしもあなたがたの中にとどまりま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결해야 합니다.
성결하지 않으면, 즉 깨끗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께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본문3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話したことばによって、すでにきよいのです。)
에서 ‘너희’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2천 년 전, 오늘 본문의 배경인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직접 예수님께로부터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지난 3년간, 매일 매일 예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제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중에,
그들의 영혼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에베소서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みことばにより、水の洗いをもって、教会をきよめて聖なるものとするためであり、)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모든 예배드리기를 간절히 소망하십시오.
우리들의 영혼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확실하게,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나무에 꽉 붙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본문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わたしがわたしの父の戒めを守って、父の愛にとどまっているのと同じように、
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戒めを守るなら、わたしの愛にとどまってい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
(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戒めを守り、わたしの愛にとどまりなさい。)”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계명을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
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うこと、これがわたしの戒めで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일까요 ?
여러분 ! 오늘 본문의 말씀은 포도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가지로서 다른 가지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포도나무에는 많은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곁에 있는 가지를 피하지 않습니다.
사실 못마땅한 가지가, 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정말 못난 가지 곁에, 자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병들거나 상처 입은 가지가 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포도나무 가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웃한 가지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자기의 사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오히려 꽉 감싸줍니다.
이것은 포도나무 가지를 비롯한 모든 나뭇가지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지(枝)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그가 뭐라 해도,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힘들게 해도,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나무가 자라는 과정을 한 번 상상해 볼까요 ?!
맨 처음에 연한 순이 땅속에서 솟아오릅니다.
그 순이 줄기가 되어 줄기가 자라면서, 첫 번째 가지가 돋아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가지가 연이어서 돋아납니다.
그런데 그 가지들의 위치를 보세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가지는 언제나 맨 밑자리에 있습니다.
두 번째 가지가 그 위에,
세 번째 가지는 두 번째 가지 위에 자리 잡습니다.
언제나 제일 위쪽, 그러니까 가장 돋보이는 자리는,
마지막으로 돋은 가장 약한 가지가 차지하게 됩니다.
만약, 제일 첫 번째 가지가,
자기가 가장 오래되고 굵다고 맨 윗자리를 차지해 보세요.
그 나무는 그 가지의 무게로 인해, 얼마 안 가서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나무가 세월이 흘러, 강풍에도 견디는
거목이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
그것은 크고 먼저 된 두툼한 가지들이,
가장 밑에서 든든히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새로운 가지들을 위해, 기꺼이 밑에서 받쳐 주는, 그런 가지가 됩시다.
여러분 !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
어떤 교회가 새 가지들이 쑥쑥 자라, 새 가지들이 주렁주렁 열매 맺는 교회일까요 ?
그것은, 새로(혹은 처음) 교회에 찾아온 분들이,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먼저 된 교인들이 주저 없이, 밑가지가 되어주는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본향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새 신자들의 천국이 되는 교회,
오래된 교인일수록 밑가지로 받쳐 주는 교회,
그런 모습으로 가지끼리의 사랑을 온전히 나누는 교회,
그런 교회로 본향교회를 만듭시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변화된 우리 본향교회를,
이 땅의 가장 아름다운 교회라고, 천사들에게까지 자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본향의 나무는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볼 때,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꽉 붙어 있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입니다.
자 !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
첫째,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축복의 통로인 나무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땅과 하늘의 모든 복을 얻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가지가 나무에 꽉 붙어 있으면, 좋은 농부도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모세의 지팡이처럼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 붙어 있을 수 있습니까 ?
첫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함을 입으면,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를 사모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결함을 입고, 예수님과 점점 강하게 하나가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나무에 꽉 붙어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하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새 가지를 감싸주며,
또한 새 가지를 받쳐 줄 때, 비로소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모두, 예수님께 꽉 붙어 있는, 받쳐 주는 가지가 됩시다.
우리가 그리할 때, 이제 곧 우리는,
우리들의 가지에서 주렁주렁 열린 탐스러운 열매들을 볼 것입니다.
그 열매들로, 아버지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