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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1 2021년12월12일, 요나 1:4-10(성도를 향한 세상사람들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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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5,899回 日時 21-12-18 21:29

本文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더구나 성도님 !

  우리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함께 해주시고, 또한 친히 앞장서 주십니다.

  또한, 성도님 !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기 위해,

  약속의 말씀으로 (주일 설교 등을 통해) 용기를 주십니다.

  믿음의 동역자들(身内)을 통해서도 용기를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도 용기를 주십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축소지향의 일본인’(‘縮み’志向の日本人)이란 책을 써서,

  일본에서까지도 유명해진 문학평론가 이어령(李御寧)교수가,

  몇 년 전, 한국의 한 교회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당시에만 해도, 자기는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07년 일본에서 세례를 받고, 지금은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당시, 그런 분을 교회가 초청한 이유는,

  그를 비롯해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가 ?” 그 이유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어령씨는 자신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자기는 미션스쿨인 梨花女子大学에 오랫동안 재직(在職)했기 때문에,

  예배도 많이 드렸고 성경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산상수훈(마태복음5-7장)을 깊이 공부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산상수훈대로 사는 기독교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바로 그것이 자기가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말로만 요란하게 떠들 뿐이지,

  실제 삶에서는 예수님 믿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산상수훈대로 살고 있는 성도를 보신다면

  저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다.”


  여러분 ! 언젠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세상 사람들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힘듭니까 ?

  아니면 우리 기독교인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힘듭니까 ?

  오늘날 교회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습니다.

  물론입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세상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그 대표적인 예(例)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2절.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さあ、大いなる都ニネベに行ってこれに呼びかけよ。)

  죄악의 도시 니느웨로 가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다시스 행 배에 오릅니다.

  그가 도망한 것은, 니느웨와 그 백성들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나를 깨우치시기 위해,

  요나가 탄 배가 떠 있는 바다 위에 엄청난 바람과 파도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본문4절. 여호와께서 큰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 지라

 (主は大風を海に向かって放たれたので、

  海は大荒れとなり、船は今にも砕けんばかりとなっ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엄청난 바람과 파도로 인해, 요나 등이 탄 배가 바다에 가라앉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에 배의 승객들과 선원들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이 믿는 신(神)을 부르며,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급한 상황에도, 요나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본문에는 이 요나를 향해,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지금 세상이 교회에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자 ! 어떤 질문들일까요 ?


  첫째 질문,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본문6절.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寝ているとは何事か。さあ、起きてあなたの神を呼べ。)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한가하게 잠만 자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 물론 사람은 자야 합니다.

  사실 다른 것은 좀 부족하더라도 잠만큼은 잘 자야,

  다른 일들을 힘차게 집중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이 자거나 깨어 있어야 할 때 잠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함께 탄 배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폭풍이 몰아쳐서,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저마다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요나만 배 밑창의 선실에서 곤하게 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장이 묻는 것입니다.

  본문6절.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寝ているとは何事か。さあ、起きてあなたの神を呼べ。)


  바로 이 말입니다.

 “왜 당신은 지금 상황에 그렇게 관심이 없소 ?

  이 일이 당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

  오늘의 이 질문은 단순히 선장이 요나에게만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선장의 질문에 대답해 봅시다.

  이 세상이라는 배가 세상의 온갖 つなみ를 맞아 깨져가고 있는데,

  그 일이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까 ?

  아무 상관이 없느냐 말입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가 3억 명에 이르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이 600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자연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 가는 데,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까.


  우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로, 조금 범위를 축소해 볼까요 ?

  우리 때문에 지금도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의 이웃과

  친구와 동료를 향해, 미안한 마음과 돌이킬 마음이 있습니까 ?!

  또한, 우리 때문에 지금도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의 부모 형제,

  남편과 아내, 가족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까 ?!

  또한, 영원한 지옥불, 영원한 멸망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이 땅 일본의 1억2천6백만 명의 영혼들을 안타까이 여기십니까 ?!

  그들이 어떤 삶을 살든, 어떻게 되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까 ?!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귀찮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무관심 때문에, 내가 잠자고 있는 동안

  그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입니다.

  더구나 더욱 무섭고 놀라운 것은, 그 문제들의

  많은 부분의 원인 제공자가, 사실은 나(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가 위기에 빠진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

  물론입니다. 요나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니느웨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 배는, 정반대 편인 다시스를 향해 가는 배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나를 깨우치시려고, 폭풍을 일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정작 당사자인 요나는 모든 관심을 끄고 잠만 잡니다.

  그로 인한 모든 고통은, 다른 사람들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고요 !!!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았던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싫고 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 명령이라도 따를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가는 배를 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요나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도라고 하면서도, 자기가 싫은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명령이라 할지라도, 자기 고집은 절대 꺾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아예 관심을 끄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데로 가서 깊이 잠들어 버립니다.

  그러는 동안 가정은 깨지고, 일터가 휘청이고, 나라가 흔들리고,

  교회가 시험에 빠지는 데도 말입니다.


  중세교회가 잠자고 있는 동안, 세상은 암흑세계에 빠져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일부 교회와 일부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

  신자 요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자기들의 신을 부릅니다. 

  또한, 배를 가볍게 하려고, 자기들의 귀중한 짐을 다 바다에 던집니다.

  이들은 무역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짐이라는 것은 곧 살아가는 이유이며,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다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 때문에 일어난 위기인데,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세상이 요동칠 때 무엇을 합니까 ?

  하나님을 간절히 부릅니까 ? 우리의 재물과 시간을 포기합니까 ?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시대에, 일부 한국 교회가 한 행동을 보십시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데, 광장에 모여 정치집회를 강행합니다.

  마땅히 자숙(自肅)해야 할 교회, 마땅히 먼저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신자가,

  도리어 정부를 향해 [교회 박해] [신앙 박해]를 운운합니다.


  한편 여러분 !

  첫 번째 질문,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는 질문에 대해,

  오늘 본문의 요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바다와 배의 상태는 점점 더 험해져 갔습니다.

  배는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처럼,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폭풍우의 기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이제 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럴 때 누군가가 말합니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비뽑기로 알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배 안의 모든 사람이 제비뽑기했고, 결국 요나가 뽑힙니다.


  그때부터 배 안의 사람들이 요나에게 질문을 퍼붓습니다.

  본문8절.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人々は彼に詰め寄って、「さあ、話してくれ。この災難が我々にふりかかったのは、誰のせいか。

  あなたは何の仕事で行くのか。どこから来たのか。国はどこで、どの民族の出身なのか。」)


  요나는 거의 심문에 가까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요나가 대답합니다.

  본문9절.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ヨナは彼らに言った。「わたしはヘブライ人だ。

  海と陸とを創造された天の神、主を畏れる者だ。」)


  오늘 우리들이 살펴 볼, 세상이 교회를 향해 하는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이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자 ! 무엇일까요 ?


  둘째 질문,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


  본문10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なんという事をしたのか。)


  요나에게는 참으로 뼈아픈 질문이었습니다.

 “아 ! 이 모든 것이, 네가 신앙생활을 똑바로 안 했기 때문이었구나 !”라는

  조롱과 원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책망은 요나가 하나님에게서 들어야 하는 책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망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요나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 속에는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의, 노기(怒気) 띤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믿으려면 좀 제대로 믿지, 왜 엉터리로 믿어서 애매한 우리까지 힘들게 하는 거냐 ?”

 “대체 너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했길래, 세상이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거냐 ?”

 “너희 할 일을 제대로 하기만 했어도, 우리가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 ?”


  한국 국회의원 3분의 1이 기독교인이면 뭐합니까 ?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데요.

  재벌과 사업가들이 크리스천이면 뭐합니까 ? 탈세와 못된 일은 앞장서 하는데요.

  교수와 학자가 기독교인이면 뭐합니까 ? 양심을 속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데요.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 이렇게 있으면 뭐합니까 ?

  먹고사는 것과 자식 키우는 것에 너무 힘을 빼앗겨,

  섬김과 사명은 얼마 못 해서 지쳐 버리고 마는데요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한 분이 본향교회를 찾아와서,

  3개월 동안 우리의 믿음 생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가 세상에 나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

  희망을 찾았다고 할까요 ? 아니면, 본향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할까요 ?

  기억하십시오 !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찬양을 잘하느냐, 기도를 잘하느냐, 믿음이 좋으냐’가 아닙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거의 맨 나중까지 우리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인격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보는 것은, 거의 맨 나중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기도를 좀 못해도 좋고, 찬양을 못 해도 좋고, 교회에서 우리들의 영향력이

  좀 줄어들어도 괜찮고, 봉사를 조금 덜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인격만큼은 시급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모두 ! 지금보다 기본을 더 잘 갖춘, 상식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 바른 신앙은, 반드시 인격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 ‘바른 신앙’과 ‘바른 인격’을 고루 갖춘,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시다.

  그래야만, 이 땅의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의 충격적 질문으로, 요나의 마음이 요동할 그때,

  바다는 더 심하게 출렁거렸습니다.

  이제 배 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상황은 누가 봐도 막바지였습니다.

  배는 곧 바다에 침몰할 것처럼 흔들거렸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제 남은 방법은 오직 딱 한 가지뿐이었습니다.(세상 방법)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 방법은 아님)

  그때 그들이 요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합니다.


  셋째 질문,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


  본문11절.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あなたをどうしたら、海が静まるのだろうか。)


  무슨 말입니까 ?

 “우리가 보니, 너 때문에 이런 재앙이 온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이것을 피할 수 있을지 방법을 말해 봐라 !” 그 얘깁니다.

  첫째 둘째 질문을 통해서, 그들이 요나에게 한 것은 다만 원망뿐이었습니다.

  요나에게 어떤 제재(制裁)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질문 끝에, 마침내 그들은 행동에 나섭니다.


  여러분 !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는 이 세 번째 질문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

  지금 세상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나태하고 능력 없는 기독교인들이여 ! 우리가 당신들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


  요나는 결단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이 일이 온 것을 알고 책임을 지기로 합니다.

  희생제물이 되기를 결심합니다.

  뒤늦었지만, 자기 한 몸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요나는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배 위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2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わたしの手足を捕らえて海にほうり込むがよい。そうすれば、海は穏やかになる。

  わたしのせいで、この大嵐があなたたちを見舞ったことは、わたしが知っている。)


  뱃사람들이 요나를 들에 바다에 던집니다.

  심하게 출렁이던 바다가 그의 몸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폭풍이 멈추고 바다는 잠잠해졌습니다.

  요나가 바다 밑으로 사라지고 바다가 고요해지자,

  배 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그렇습니다. 남은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제물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본문16절.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人々は大いに主を畏れ、いけにえをささげ、誓いを立てた。)


  다시 말하면, 요나의 희생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내가 죽으면 됩니다.

  내가 책임지기로 하면 됩니다.

  문제는 바로 나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해결방법도 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길은, 말로서 이래저래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내가 죽는 모습으로 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요나는 없습니다.

  선원들은 평온을 찾았고 다시 그들의 인생을 살 것입니다.

  다만 요나의 희생에 마음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요나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고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하나님께는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커다란 물고기를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책임지고 내가 희생하고 내가 양보하면,

  자존심 상하고, 손해 보고 끝나는 것 같지만,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사, 하나님의 귀히 쓰시는 사명자로 부활시키십니다.


  이제 더는, 세상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말하지 마십시다.

  오히려 세상이 우리 때문에 고난 당한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먼저 돌이킵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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