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019년12월8일, 요한복음 3:26-30(신랑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신랑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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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께서, 참으로 교만하고 부패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우리에게 하나님 교회의 [청지기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우리 !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됩시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순종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됩시다.
끝까지 충성하며 오직 주님만을 위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됩시다.
여러분 ! 결혼식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한국의 일반적인 결혼식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웨딩드레스, 부케, 신랑 신부, 결혼예물, 축하객, 축의금, 축가 등등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일반적인 결혼식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신랑신부를 도와주는 [들러리]라고 합니다.
들러리는, 결혼식을 하는 모든 과정에서, 신랑 신부를 식장으로 인도하는 등,
신랑 신부를 가장 옆에서 보살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들러리는 결혼식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다만 들러리는 주인공을 잘 보살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들러리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래 들러리는 그렇게 나쁜 뜻의 단어가 아닙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신랑의 들러리’를 ‘Best Man’이라고 합니다.
한국말로 하면, 신랑의 가장 좋은 남자, 혹은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
신랑을 최측근에서 도울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들러리는, 주인공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고,
그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보조자이며, 또한 조력자(助力者)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어떤 일의 주인공도 되되, 그에 못지않게 좋은 들러리의 사명도 많이 감당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우리 주님이, 또한 우리 주위 여러 사람이,
아름답게 빛이 나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참으로 훌륭한 들러리 한 분이 등장합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들러리의 삶에 만족하면서, 들러리로서의 기쁨을 마음껏 누린, 참 멋진 분입니다.
그 세례 요한의 생애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그는 유대 헤롯 왕 때에 태어났습니다.
한 나이 많은 제사장의 아들로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세상에 옵니다.
그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육신적 어머니인 마리아와 친척 간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철이 들자마자 성령에 이끌려 광야(사막)로 나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꽃에서 채집한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렇게 선지자로서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가 세상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는 이미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외친 메시지는 아주 단순했지만, 그 파문은 대단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큰 찔림을 받았고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의 권위 있는 메시지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엘리야나 또는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가복음1:7-8,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러던 그가, 드디어 자신이 증거 했던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즉시 사람들에게,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요한복음1:29-31.
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들러리의 사명에 충실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가 이렇게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증거 했더니,
그때부터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로요.
나중엔 자신의 제자들까지 그를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옥에 갇히고, 그리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헤롯 왕의 잘못을 꾸짖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그(세례 요한)의 일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람,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마태복음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인류 역사상 세례 요한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하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 세례 요한, 그는 분명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로서만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일에 주인공이 안 되어도 좋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들러리(협력)만 잘해도, 우리가 위인(偉人)의 반열에 설 수 있고,
주도자가 아닌 협력자만 되어도, 우리가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도 기꺼이 들러리(협력자)가 되십시다.
먼저는 예수님의 들러리가 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들러리가 되고,
또한, 이웃의 들러리가 되십시다.
그리고 직장동료의 들러리가 됩시다.
특히, 우리 모두 좋은 들러리, 가장 잘 협력하는 들러리가 돼봅시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을 통해, 들러리의 자세를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들러리(협력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예 ! 들러리는 그야말로 들러리일 뿐,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랑의 최고 친구로서, 신랑을 높여 주고 신랑을 받들어 주어야지,
도리어 자신이 신랑 대접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지, 또 자기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몰려왔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는 요한의 이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였는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부근사람들이 나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自服)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순간에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적 지도자로 우뚝 섰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바로 이럴 즈음, 예수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두 분의 사역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메시지도 비슷했습니다.
예수님도 물로 세례를 주었고, 세례 요한도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비교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능력이 있는가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예수님 쪽으로 몰렸습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의 주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졌습니다.
여러분 ! 여기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누구였을까요 ?
물론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세례 요한을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본문26절. 랍비여 !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여러분 ! 사람들이 왜 그릇된 경쟁의식과 피해망상에 빠집니까 ?
그렇습니다. 자기보다 탁월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의 자리가 약해질 때 피해망상에 빠집니다.
그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
물론입니다. 경쟁을 시작합니다.
그래도 처음엔 점잖게 경쟁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엔 파괴적인 경쟁을 하게 되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최후에는 양쪽 다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 ! 세례 요한은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
오늘 본문 말씀에 확실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27절.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지금 저 건너 예수님에게로 몰려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질투할 것도 없고, 시샘할 것도 없고, 그래서 피해망상에 빠질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말합니다.
본문28절. 내가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 자신은 확실히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오직 예수님의 들러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
“나는 그분 앞에 보냄을 받은 들러리일 뿐이라고 너희들이 전해야 해 !
그리고 이제부터는 너희들도, 저분(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증거 해야 해 !”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 얼마나 대단합니까 ?!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사실 요한은, 마음을 조금만 잘못 먹으면,
자신을 메시아로 착각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아니냐고 떠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경력을 봐도,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섰습니다.
예수님은 삼십 세가 되도록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대패질하던 목수였지만,
세례 요한은 이십 년이 넘도록 광야에서 수도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 세상 사람들에게 누가 더 매력적으로 보여졌겠습니까 ?!
상황이 이쯤 되니까, 요한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자기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예수님께만 집중하도록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누가 어떤 말로 자신을 흔들어도,
하나님께서 서 있으라고 하신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예수님의 들러리가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존귀와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나 자신을 높이려는, 그런 인생을 살지 맙시다.
오직 우리를 통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 높아지게 합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주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려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그 옛날 타락했던 천사 루시퍼와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하나님의 좋은 들러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들러리(협력자)는 신랑을 보면서,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본문29절.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면서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곧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
유대의 관습에 따르면, 낮에 오는 결혼 하객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신랑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 역시, 신랑의 친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 즉 들러리의 역할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바로 이런 기쁨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오늘 이 세례 요한이 가지고 있는 기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
어떤 일로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면, 그것 때문에 기뻐하십니까 ?!
옆에 있는 본향 지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이 내게도 기쁨이 됩니까 ?!
섬기는 기업과 직장의 동료들이 잘되면, 그것이 내게도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까 ?!
또한, 함께 동역하는 본향의 지체가 그 사역을 잘 감당하면, 그로 인해 기쁘십니까 ?!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히카리 선교단의 리더가, 오늘 찬양 인도를 참 은혜스럽게 인도했을 때,
함께 협력한 악기 파트 담당자들과, 찬양 파트 담당자들에게, 그로 인한 기쁨이 충만하냐 말입니다.
이것은, 찬양대도, 교회학교도, 새해부터 시작될 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 혹 들러리(협럭자)로서 본분을 잊어버리고, 그 기쁨에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감당할 일,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온전한 들러리(협력자)의 마음은, 신랑의 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랑의 기쁨이 내 기쁨인 것입니다.
앞서 인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어야 하고, 그 기쁨이 내 기쁨이어야 합니다.
그가 기쁠 수 있다면, 그것은 내게도 기쁨이기 때문에,
그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들러리요, 앞에 선 자의 가장 좋은 친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며,
예수님의 좋은 들러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들러리(협력자)는, 신랑은 흥하고 자기는 쇠해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들러리는 자기의 위치를 알고, 신랑과 한마음으로 기뻐하는 것뿐 아니라,
특히, 신랑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얼마든지 작아져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최고의 들러리의 표본인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30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더 높아져야 하고, 자신은 더 낮아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모든 삶을 통해, 예수님이 높아지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 선언입니까 ?!
성도여러분 !
이렇듯 최고의 들러리는 자신을 통해 신랑만 높아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야말로, ‘Best Man’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예수님의 ‘Best Man’입니까 ?!
우리들은, 우리들이 섬기는 직장의 ‘Best Man’입니까 ?
우리들은, 우리 본향교회의 ‘Best Man’입니까 ?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진정한 들러리(협력자), 즉 ‘Best Man’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모습의 신앙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자기가 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원성취도 해서,
그저 편하게 사는 것이 신앙 생활하는 목적입니다.
또 한 종류의 신앙인이 있는데, 그분들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위해 자기가 쇠하여지기를 소원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 ! 우리 각자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신앙인입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가장 경쟁력 있는 생활방식이 뭔가를 놓고 이리저리 고민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삶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귀하신 여러분 ! 여러분들은 어떤 삶이 가장 경쟁력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 답은, 바로 세례 요한의 고백에 있습니다.
본문30절.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 ! 이것이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가장 경쟁력 있는 생활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귀하신 여러분, 가을이 깊어 가고 있고, 새로운 한 해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세례 요한의 들러리(협력자) 마음을, 우리 마음속 깊이 새깁시다.
첫째, 들러리(협력자)는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둘째, 들러리(협력자)는 신랑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셋째, 들러리(협력자)는 친구를 위해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 때,
내년 이맘때쯤에는 우리 교회와 우리 주위, 그리고 우리 자신이
놀랍도록 성장한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기도와 순종과 섬김으로 전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