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1월10일, 요한복음 6:47-51(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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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9 2019년11월10일, 요한복음 6:47-51(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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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0,862回 日時 19-11-16 16:12

本文

  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인간은 완전히 부패(腐敗)되고 타락한 존재입니다.
  이른바, 칼빈주의 5대 교리 첫 번째인, [전적 부패(全的 腐敗, Total Depravity)]입니다.


  성도님 ! 죄로 인해 완전히 타락하고, 완전히 부패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선택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른바, 칼빈주의 5대 교리 두 번째인, [무조건적 선택(無條件的 選擇, Unconditional Election)]입니다.


  성도님 !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들(자기 백성, 자기 양)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른바, 칼빈주의 5대 교리 세 번째인, [제한 속죄(制限 贖罪, Limited Atonement)]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소개하겠습니다.


  넷째, 불가항력적 은혜(不可抗力的 恩惠, Irresistible Grace)


  성령께서 어떤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구원의 역사(役事)를 행하실 때,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사람이나 그 무엇의 힘으로도 방해하거나 막아 낼 수 없는, 특별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父がわたしにお与えになる人は皆、わたしのところに来る。わたしのもとに来る人を、わたしは決して追い出さない。)


  로마서8:30. 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神はあらかじめ定められた者たちを召し出し、召し出した者たちを義とし、義とされた者たちに栄光をお与えになったのです。)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인간을 부르실 때(이것을 소명<召命>이라고 함),

  그 소명(召命)에 대해, 두 가지가 결과가 나타납니다.
  외적소명(外的召命)과 내적소명(內的召命)입니다.


  먼저, 외적소명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제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생을 얻으라는 진정한 권면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외적소명은,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지 않은 소명입니다.


  다음으로, 내적소명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를 제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영생을 얻으라는 진정한 권면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내적소명은 외적소명과 달리, 성령의 역사가 동반된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적소명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영생을 얻습니다.


  로마서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神の賜物と招きとは取り消されないものなのです。)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복음22:1-14)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天の国は、ある王が王子のために婚宴を催したのに似ている。)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王は家来たちを送り、婚宴に招いておいた人々を呼ばせたが、来ようとしなかった。)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そこでまた、次のように言って、別の家来たちを使いに出した。『招いておいた人々にこう言いなさい。

  「食事の用意が整いました。牛や肥えた家畜を屠って、すっかり用意ができています。さあ、婚宴においでください。)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しかし、人々はそれを無視し、一人は畑に、一人は商売に出かけ、)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また、他の人々は王の家来たちを捕まえて乱暴し、殺してしまった。)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そこで、王は怒り、軍隊を送って、この人殺しどもを滅ぼし、その町を焼き払った。)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そして、家来たちに言った。『婚宴の用意はできているが、招いておいた人々は、ふさわしくなかった。)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だから、町の大通りに出て、見かけた者はだれでも婚宴に連れて来なさい。)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そこで、家来たちは通りに出て行き、見かけた人は善人も悪人も皆集めて来たので、婚宴は客でいっぱいになった。)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王が客を見ようと入って来ると、婚礼の礼服を着ていない者が一人いた。)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王は、『友よ、どうして礼服を着ないでここに入って来たのか』と言った。この者が黙っていると、)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王は側近の者たちに言った。『この男の手足を縛って、外の暗闇にほうり出せ。そこで泣きわめいて歯ぎしりするだろう。』)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招かれる人は多いが、選ばれる人は少ない。)

  이 말씀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잔치에 초대는 받았으나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요,

  [택함을 받은 자]는 초대를 받아 잔치에 참여한 사람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부르심(즉, 召命)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초대는 받았으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부르심이요,
  둘째는 초대를 받고 잔치에 참여하게 된 부르심입니다.
  전자(前者)를 외적소명(外的召命)이라 할 수 있고,

  후자(後者)를 내적소명(內的召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의 핵심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구원을, 인간이 거절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구원의 주도권이 인간에게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불가항력적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거절할 수 없고, 순종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안 주의자들을 이렇게 주장합니다.
  성령이 어떤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역사(役事)를 시작할 때, 그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할 수 있다.

  사람이 자진해 구원을 받겠다고 하지 않는 한, 성령은 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 ! 이 주장은 성경에서 벗어난 잘못된 주장입니다.


  몇 년 전 세계 곳곳에서 개봉되어,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큰 충격을 주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멜 깁슨이 감독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란 영화입니다.


  미국의 텍사스에서 한 살인강도가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고, 경찰에 자수했다는 이야기는

  미국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국에서 어떤 기독교인 며느리가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 영화를 보았는데,

  그 시어머니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쯧쯧쯧 !!! 예수님이 전생에 무슨 업보와 죄를 많이 지었기에, 저렇게 심한 형벌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참 딱하기도 해라 !!!"
  그렇습니다. 미국 살인강도와 한국 시어머니의 반응이 정반대였습니다.


  물론, 미국의 강도는 그 자라온 환경과 교육 배경이 기독교적 문화였기에,

  어쩌면 예수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한국의 시어머니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생각이, 자기 삶의 바탕이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것은 표면적 생각일 뿐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의 영혼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

  한국 시어머니의 영혼보다, 미국 살인강도의 영혼이 더 순수하고 깨끗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깨끗하고 순수함으로 치면, 사람을 죽인 살인강도보다,

  당연히 나름대로 신앙 안에서 산 한국의 시어머니가 더 깨끗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영혼이 달랐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영혼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사람의 영혼이 태어날 때부터, 어떤 사람의 영혼은 깨끗하고,

  또 어떤 사람의 영혼은 악하고 더러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고, 완전히 부패했다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인간의 내부 깊숙한 곳에는,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특별한 영역(영혼)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사단만이 주장(主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 영혼이 하나님에 의해 인도하심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되지만,

  반대로 사단에 의해 조종받는 순간, 그 사람은 죄의 노예로 살다가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영혼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영혼이 우월하고 혹은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인도함을 받고 있느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영혼이면 그는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는 인생이 되는 것이고,

  사단의 인도함을 받는 영혼이면, 그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는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 !

  성찬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려고 할 때,

  대부분의 성도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당하신 고통에 너무나 관심을 집중해,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토록 심한 고통과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

  하는 생각만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사는 부끄러운 자신을 바라보며,

  죄책감에 잠시 빠져, 참회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생각할 때,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기만 한다면,

  그는 참으로 온전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를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그저 올려 보는, 유대 군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것만으로 끝을 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왼편 십자가에 달려, 까마귀에게 산 채로 눈알을 파 먹히는 악독한 강도의 자리가,

  실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찬을 맞는 우리의 마음이고 자세여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힙니다.
  에베소서2:2-3.
  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あなたがたは、以前は自分の過ちと罪のために死んでいたのです。> この世を支配する者、かの空中に勢力を持つ者、

    すなわち、不従順な者たちの内に今も働く霊に従い、過ちと罪を犯して歩んでいました。)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わたしたちも皆、こういう者たちの中にいて、以前は肉の欲望の赴くままに生活し、肉や心の欲するままに行動していたのであり、

     ほかの人々と同じように、生まれながら神の怒りを受けるべき者でした。)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할 존재였습니다.
  또한, 이 세상 삶이 끝나는 순간,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비참한 존재였습니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 짧은 세상의 삶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차지하고, 어떻게 하면 더 편할까만을 생각하는, 참으로 우둔한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런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우리의 영혼과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오른편에 매달린 우편 강도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셨고,

  세상에서 우리가 행한 것들이 가장 어리석은 일임을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놀라운 구원에로의 부르심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방해할 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

  즉, 불가항력적인 은혜(不可抗力的 恩惠)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특별한 은혜를 누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7-51절.
  47-4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はっきり言っておく。信じる者は永遠の命を得ている。)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あなたたちの先祖は荒れ野でマンナを食べたが、死んでしまった。)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しかし、これは、天から降って来たパンであり、これを食べる者は死なない。)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わたしは、天から降って来た生きたパンである。このパンを食べるならば、その人は永遠に生きる。

      わたしが与えるパンとは、世を生かすためのわたしの肉のことである。)


  또한,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이어,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6:53-58.
  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はっきり言っておく。人の子の肉を食べ、その血を飲まなければ、あなたたちの内に命はない。)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わたしの肉を食べ、わたしの血を飲む者は、永遠の命を得、わたしはその人を終わりの日に复活させる。)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わたしの肉はまことの食べ物、わたしの血はまことの飲み物だからである。)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わたしの肉を食べ、わたしの血を飲む者は、いつもわたしの内におり、わたしもまたいつもその人の内にいる。)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生きておられる父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り、またわたしが父によって生きるように、わたしを食べる者もわたしによって生きる。)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これは天から降って来たパンである。先祖が食べたのに死んでしまったようなものとは違う。このパンを食べる者は永遠に生きる。)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주일2부 예배 시간을 통해,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찬식을 행합니다.
  이 거룩한 성찬(聖餐)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모든 지체들에게,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요한복음6:56-57절 말씀

  즉,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わたしの肉を食べ、わたしの血を飲む者は、いつもわたしの内におり、わたしもまたいつもその人の内にいる。)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生きておられる父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り、またわたしが父によって生きるように、わたしを食べる者もわたしによって生きる。)

  는 말씀이
  그 말씀 그대로 성취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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