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018年10월28일, 로마서 12:1-2(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종교개혁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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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님 !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는 복을 꼭 누리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직한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땅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히 행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들에게 좋은 땅을 차지하게 하시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성도님 ! 자기 힘으로 살던 것을 버리고, 오직 주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온유(温柔, 프라우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501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질문을, 당시 카톨릭 교회를 향해 던졌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몇 번 소개했던 것처럼, 95개 조항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27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 나온다는 것은 허황(虚荒)된 거짓말이다.
제45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95조는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당시 카톨릭 교회의 폐단은,
면죄부를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구원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결코 면죄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이렇게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교회 내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의 모습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전까지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장엄하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의식주의적이었으며 외형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바르게 증거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의식적, 외형적인 예배를,
하나님 말씀 중심의 예배로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예배로 회복시킨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배의 개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은 바른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온전한 예배 없는 교회가 온전한 교회일 수 없는 것처럼,
참 예배가 없는 신앙은 절대로 참 신앙일 수 없습니다.
오늘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감격의 예배, 종교개혁자들의 뜨거운 예배를, 우리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좀 더 구체적으로, 도대체 예배란 무엇일까요 ?
구약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솨하’인데, 그 뜻은 ‘엎드린다. 경배한다.’입니다.
또한, 영어로는 worship인데 ‘가치를 돌리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이유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배드림보다 더 급한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배는 오늘 못 드리면 다음에 드리면 되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배는 그 순간 지나쳐 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세상일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배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놓치면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또한 예배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믿음의 선배들 중, 예배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복을 누렸습니다.
예를들면, 다윗은 하나님의 전에서 이렇게 예배하며 기도합니다.
시편138:1-2,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다) .......”
시편145:1-3,
1.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2.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했던 다윗이 받은 은혜와 복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으며,
또한 큰 허물과 죄도 용서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참 놀라운 예배를 드린, 특별한 예배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일생 중에서 가장 극적인 모습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라보는 행복, 키우는 기쁨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테스트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셨습니다.
창세기22:2,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 번제로 드리라”
이 말씀은, 아들을 죽여 각을 떠서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하고 다른 소리를 들은 줄로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물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고 분명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결단했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진정한 예배는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드린 예배는, 바로 그런 예배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가 바로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훗날,
바로 그 모리아 산에, 인류 역사 상 첫 성전인 솔로몬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역대하3: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난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탁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아브라함의 예배가 그렇게 소중할까요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예표(豫表)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향해 칼을 내려 칠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급하게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 아브라함아 !”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창세기22:12,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잠시 후,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여기 갑자기 나타난 그 양은 훗날 온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대신 죽으실,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모형이고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 역시,
하나님이 친히 온 인류의 죄를 담당시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이었고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최고의 예배를 드린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22:16-18,
16.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이러한 복을 받는 아름다운 예배자 되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 (또한)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일까요 ?
첫째, 예배는 자발적 행동이어야 하고 자발적 순종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드려지면 의미가 없습니다.
프랑스의 루이14세는 5살에 왕위에 올라 72년간 집권했던 왕입니다.
루이14세가 통치할 당시, 프랑소와 페넬롱이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루이14세가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행원들과 함께 예배당에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는 아무도 없고 페넬롱만 혼자 있었습니다.
루이14세가 “오늘은 왜 예배드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라고 묻자,
페넬롱이 대답하기를
“실은 폐하, 오늘은 폐하께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몇 일 전 광고를 했습니다”
“아니, 왜 그런 광고를 했습니까 ?”
그러자 페넬롱이 대답하기를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고, 누가 폐하께 아첨하려고 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나아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어떤 모습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
둘째, 참된 예배는, 예배자의 거룩한 삶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성전 문 앞에서 외칩니다.
예레미야7:2-3, “......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배드리기 위해 성전에 오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렇게 외칩니다.
이사야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
선행을 배우며 .......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또한,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1절,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본문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거룩하지 않은 삶으로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기에,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 독일 군이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독일의 일반 군인들에게 있는 양심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없애려고, 독일군 지도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할 수 없이 아무 데나 배설을 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짐승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독일군의 양심은 사라져갔고,
결국 사람을 짐승으로 보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때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끝까지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라 합니다.
수용소 안에서 매일 4시 반이 되면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했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받으면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를 했답니다.
그리고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서 옷 조각을 가지고 이빨도 닦습니다.
그리고 유리병 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도 했습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은 잃지 않겠다는 몸부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바로 이런 사람들이 죽음에서 제외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단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가 성도다움을 포기하도록 공격하고 미혹합니다.
죄 짓게 만들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어 성도다움을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살게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만듭니다.
여러분 !
부디 미혹에 넘어가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며
성도답게 살다가, 성결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된 예배는, 준비된 예배입니다.
준비된 예배란, 희생이 따르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시간의 희생입니다.
헌물을 드리는 것은, 물질의 희생입니다.
마음을 드리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버리는 희생이 따릅니다.
매일 가는 학교라도 준비가 필요하고,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라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준비가 없다면,
그 예배는 가인의 제사처럼 자칫 실패한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특히, 준비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을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거리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꼭 유혹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런 손님이 찾아오거나, 급한 일이 생기게 되거나,
피곤이 몰려와 잠이 쏟아지거나 하여, 예배자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걱정거리를 만들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또한, 몸은 교회에 와 있는데, 혹시 내가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
아니면 문을 잠그지 않고 온 것은 아닌가 ?
등등의 다른 생각으로 예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창세기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제단에 올려놓았는데
솔개가 와서 그 제물을 가져가려고 방해를 할 때 솔개를 쫒아버림 같이,
우리들도 예배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방해를 쫒아버려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서해안에 낚시를 갔다가 갑자기 불어 닥친 폭풍으로 배가 뒤집혀서
정부중앙부처에 근무하는 과장급 몇 사람이 죽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날 그들과 함께 낚시를 가기로 약속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서울 어느 교회에 다니는 초신자였다고 합니다.
아내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남편이 제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의 간절한 기도로 드디어 교육도 받고, 세례도 받기로 했는데,
때마침 낚시를 가기로 약속한 그 날이, 바로 세례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아침, 아내가 남편을 간절히 붙들었습니다.
“여보 ! 드디어 오늘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어디를 가려고 해요 ! 절대로 안돼요 !”
그래서 마지못해, 교회에 나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
만약 이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예배가 아닌 낚시를 선택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폭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의 도움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쳤기에, 죽음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배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곧 신앙의 승리요, 인생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한 신학자의 고백처럼,
예배드림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드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예배드림은,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 안에서 예배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아름다운 예배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