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12월17일, 시편 57:1-11(하나님만이 우리의 참 피난처<避難処>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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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통해, 더 크고 더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처럼 매일 매일 기도로 준비하며,
또한 남의 것을 베낀 모방욕망(模倣慾望)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소망(비전)으로 준비합시다.
더구나, 혼자가 아니라 합심(合心)하여 하는, 동역(同役)의 마음을 준비합시다.
지난4월30일,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모씨는 춘천의 한 노래방에 갔습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던 김씨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비상구를 화장실 문으로 착각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순간 김씨는 약4미터 아래 건물 밖으로 추락하고 말았고,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사고는 이번뿐이 아닙니다.
몇 해 전, 한국의 경상북도 안동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시청 공무원이었던 도씨와 김씨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안동의 한 음식점에서 도씨의 표창장 수여(授與) 축하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모임 중 두 사람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같은 층을 돌아다니며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마침 주방에 있던 비상구가 눈에 띄었고, 아무 의심 없이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문 밖은 허공이었습니다.
문을 연 김씨가 중심을 잃고 건물 아래로 떨어지자, 이를 잡으려는 도씨도 함께 추락했습니다.
지상 10미터 높이에서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진 도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김씨 또한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목숨을 잃은 도씨의 친동생은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 비상구는 새들이나 날아가는 문이지, 사람이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나가는 문은 아닙니다.
과연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허공 비상구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같은 해 3월에는 울산의 한 노래방에서 허공을 향해 있던 비상구 문을 열고 나오던 윤영길씨가
역시 1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문제는 이런 [낭떠러지 비상구]가 2015년 기준으로 한국 전역에 약 1300개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황당한 낭떠러지 비상구가 생겨난 것은,
지난 2002년 개정된 소방법에 의한 것으로, 개정된 소방법의 내용에는,
노래방이나 식당 등은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 별도의 비상구를 설치하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규정에는 비상구를 설치하라고만 했지,
비상구 바깥 부분에 계단이나 발코니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1300여 곳의 식당 및 노래방의 업주들은,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허공을 향하는 비상구아닌 비상구를 만들었고,
또 담당 소방서는 계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그러한 낭떠러지 비상구의 설치를 허가한 것입니다.
말 그대로 '눈 가리고 야옹'입니다.
지난 해 개정된 소방법으로 인해,
2016년10월19일 이후에 지어지는 신규 업소들은 비상구 설치時 추락방지 안전시설
(예를 들면, 경보음발생 장치, 안전로프, 추락위험표지) 설치가 의무화되었지만,
기존 업소들은 의무가 아니랍니다.
따라서 여전히 많은 낭떠러지 비상구가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준비된 비상구(피난처)가,
도리어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죽음의 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
만약 우리들이, 다급한 순간에 도움을 받기 위해 피한 곳이,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멸망의 자리,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자리, 죽음의 자리가 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
한국의 옛날 그 옛날의 무서운 공포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스토리를 잘 아시지요.
한 가지 예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옛날 그 옛날, 어떤 선비가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을 가던 도중,
그만 산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결국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둡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산길에서, 얼굴과 몸은 나뭇가지에 긁히고
발은 나무뿌리에 걸려 이리 넘어 지고 저리 넘어지며 필사적으로 길을 찾던 중,
선비는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합니다.
선비는 '이제는 살았구나'는 마음으로 서둘러 불빛을 향해 갑니다.
도착해보니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었습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머물기를 청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 까, 자정이 넘었는데,
인기척이 있어 깨어 문밖을 내다보니 두 여인이 마당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의 모습과 좀 다른 듯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글쎄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만약 여러분이 이 선비가 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피난처인줄 알고 안심하고 하룻밤을 맡겼더니, 알고 보니 피난처가 아닌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성도여러분 !
인생의 여정을 가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
여러분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피난처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
대다수의 사람들은 피난처로 돈을 준비합니다. 혹은 보험을 듭니다.
혹은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권력자가 되든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자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 놓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나름대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인류 역사상 돈, 권력 등이 인간을 위기에서 완전히 건진 적이 있습니까 ?
돈과 권력이 인간의 참 피난처가 됩니까 ?
아니요.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롯데그룹은 한국에서는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포스코를 이어 재계6위의 그룹이고,
일본에서도 매년 대학졸업자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랭킹의 상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프로야구 구단(千葉ロッテ)까지 가지고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롯데그룹이 있기까지, 가장 크게 기여한(1등 공신) 사람은,
신격호 前 롯데그룹 회장과 지금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오른 팔이었던
이인원 前 롯데그룹 부회장입니다.
그런 그가 그만 작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을 예정이었고,
결국 그룹 전체의 조사로 확산될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 앞에, 그가 가진 실력, 엄청난 재력, 수많은 인간관계 등은
결코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오늘, 우리 본향의 지체들에게, 우리 인생의 가장 확실한,
가장 믿을만한 피난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믿음의 조상 다윗도, 생애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오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바로 그 피난처로 피했고, 다윗은 최대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 다윗의 피난처를 소개하겠습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죽인 다윗은,
그 후로부터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에게 아주 심각한 견제를 받게 됩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권좌을 빼앗길까봐, 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어떻게 하던지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의 도피생활은 30세에 이르기까지 약 10여 년 간 계속됩니다.
20대의 다윗의 삶은 오로지 피난길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본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때 쓴 시로서, 다윗이 가장 위태로울 때 쓴 詩이며 기도입니다.
본문의 기도가 다윗을 통해 드려질 당시, 다윗은 엔게디라는 황무지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사울에게 고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엔게디가 좁은 지역이었으므로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여,
3천 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다윗을 포위했습니다.
다윗은 허겁지겁 엔게디 지역에 있던 여러 굴 중, 한 곳으로 피했고,
사울은 엔게디 지역의 굴들을 하나 하나 수색하였습니다.
여러분 !
지금 다윗이 선택한 비상구, 다윗이 선택한 첫 번째 난처가 다윗을 구하기 충분했을까요
아니면 그렇지 못했을까요 ?!
물론입니다.
다윗이 선택한 피난처는 다윗에게 가장 위태로운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의 칼날은 서서히 다윗의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다윗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갑작스럽게 선택한 동굴 피난처, 요새 피난처가 아닌
최고의 피난처를 향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기록된 대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1-2절, "하나님이여 !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여러분 ! 지금 다윗이 새롭게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곳은 어디입니까 ?!
물론입니다.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 더없이 존귀하신 하나님,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것입니다.
피난처이신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도는 계속됩니다.
본문3절, "그(피난처 되신 하나님)가 하늘에서 (使者를)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여기에서 '셀라'라고 하는 말은, '높임' 혹은 '중지'의 뜻을 가진 음악적인 용어로서,
찬송을 할 때 음성을 높이 올리거나 주악의 리듬을 강하게 하여, 그 부분을 강조하는 지시어로 추측됩니다.
즉, 다윗은 자신의 생애 최고의 위기 상황에서,
참 피난처 되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가운데, 구원받을 것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당시 다윗의 나이는 25세 정도로, 오랜 도피 생활로 심히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려서부터 그토록 주님을 높였던 찬송이 그 입술에서,
그가 그토록 주님을 기쁘시게 했던 악기 연주가, 그에게서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생애 가장 큰 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자신의 참 피난처가 하나님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깊이 확신케 됩니다.
이러한 확신을 회복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러한 기도를 이어갑니다.
본문7-8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렇습니다. 도피생활로 끊어 졌던 찬송, 멀리 했던 악기 연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찬양을 회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악기들을 향해, 그리고 자신을 향해 외칩니다.
"비파야 깰지어다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하나님을 향한 내 찬송을 회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다윗은 지금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참되고 영원한 피난처를 회복했고,
그로 인해 최고의 평안과 더불어 사명의 회복을 얻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
한편,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기도가 마쳐지는 순간, 굴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그는 굴속에 다윗의 일행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있던 사울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오랜 추격으로 지쳤는지, 굴속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사울의 겉옷자락 끝을 살짝 자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울이 굴 밖으로 나간 후 사울을 따라 나갑니다.
저쪽 편에 건너간 사울을 향해 다윗이 외칩니다.
사무엘상24:9-10,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사무엘상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다윗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
얼마나 담대합니까 ?
결국 하나님은 이때로부터 약5년 후, 다윗을 다시 한번 훈련하시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우십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피난처로 삼고, 사람과 자기 주먹을 피난처로 삽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들은 무엇을 피난처로 삼습니까 ?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
우리들이 가장 어려울 때, 우리들이 피하여 할 곳은 과연 어디입니까 ?
물론입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선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46:1-3,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또한, 앞서 소개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다윗 역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27:1-3,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對敵)하여 진(陣)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힘찬 고백들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들의 체험들이, 우리들의 체험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위기 속에서도 평강의 은혜, 사명을 되찾는 은혜를 누리며,
더불어 역전의 승리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