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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7 2017년11월26일, 사무엘상 17:22-26(우리에게도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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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9,250回 日時 17-11-30 13:44

本文

  오늘의 메시지는, 지난2009년1월의 설교말씀입니다.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의 성결함과 거룩이, 하나님 안에서 당신의 능력과 힘입니다.
  바른 순서로,

  먼저 예배를 통해 영혼이 잘 되는 당신, 세상의 모든 일도 잘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12월2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가자地區(옛 블레셋)를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정권 하마스와의 戰爭이

  갈수록 피해를 더하고 있습니다.
  UN안보리는 당장 전쟁을 중지할 것을 결의하여 양 진영을 압박했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미 1,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목요일 하마스 제2인자의 죽음을 계기로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금요일에는 미국 국무장관과 이스라엘의 외무부장관이 종전을 합의하는 서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가자지역의 전쟁은 오늘만이 것이 아닙니다.

  둘 간의 전쟁은 3천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오늘날의 가자지역을 영토로 삼고 있었던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B. C. 1020년경)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이었고, 블레셋의 장수는 골리앗이었습니다.
  양 진영은 40일 동안,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힘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만 팽팽한 균형이었지 실제로는 블레셋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블레셋 군대를 지휘하는 골리앗은 키가 280cm나 되었고,

  60kg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도 움직임에 둔함이 없었으며,

  창날만 7kg이나 되는 창을 가볍게 휘둘러 대는 엄청난 장수였습니다.


  골리앗은 40일 간,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 진영 가까이까지 나아와 이스라엘을 위협했습니다.
  사무엘상17:8-9, ".......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골리앗의 위용 앞에 이스라엘은 벌벌 떨었고, 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에 출정한 형들에게 왔다가 이 현장을 보았습니다.

  청년 다윗에게 비친 엘라 골짜기는 희망이 하나도 없는 골짜기였습니다.

  두려움의 골짜기요, 공포의 골짜기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어둠의 골짜기였습니다.
  그러나 청년 다윗은 그 어둠의 골짜기에서 청년다움을 맘껏 발휘했습니다.

  열정을 불살랐습니다. 미래를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청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기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 전반(全般)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은 암담한 이스라엘의 현실을 순식간에 기쁨과 승리의 환성으로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세계는 엘라 골짜기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어둡습니다. 두렵습니다. 막막합니다. 불안합니다.
  바로 이때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다윗과 같은 '청년의 마음'입니다.

  어두운 현실을 새로운 미래로 바꾸는 마음입니다.


  저는 우리 본향성도들이 이 시대의 다윗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어둠 속에서 오히려 화려하게 역사의 全般에 등장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 그렇다면,

  다윗은 무엇을 가지고 있었기에, 커다란 위기를 오히려 놀라운 기회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


  첫째, 다윗에게는 '살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무장상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골리앗은 엄청난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놋 투구, 가슴에는 작은 철판들을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붙여 만든 갑옷,

  다리와 종아리에는 놋쇠로 만든 갑옷을 튼튼하게 쌌습니다.

  또 어깨에는 언제라도 던져서, 상대방을 찍을 수 있는 단창 통이 얹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 앞에는 방패를 든 장수가 서 있었습니다.
  이 골리앗이 입고 있는 갑옷 무게만 60kg이었고, 창은 손잡이를 제외한 창날 무게가 7kg에 달했습니다.

  한마디로 골리앗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물 맷돌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것은 골리앗을 완전히 죽일 수 있는 무기는 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골리앗은 자신의 칼로 죽습니다.
  사무엘상17:50-51, "다윗이 .....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  


  다윗이 이 전쟁에 나서기 전, 베들레헴에서 양을 지킬 때 곰이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다윗은 물 맷돌을 던져 어린양들을 구해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골리앗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양을 빼앗아 가는 사자와 곰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선 것은 그를 죽이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다만 연약한 양과 같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든지 지켜보려는,

  다른 말로 하면 죽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지키고 살리기 위한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골리앗이 '죽이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윗은 '살리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에게는 비록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 재능이 있습니다.
  지성의 힘, 감성의 힘, 젊음의 힘, 물질의 힘,

  또한 성도로서 기도의 힘, 찬송의 힘 등 여러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힘들을 무엇에 사용해야 할까요 ?


  여러분의 힘을 살리는 데, 지키는 데 사용하기 바랍니다.
  결코, 나누는데, 배반하는데, 남이 가진 꿈을 깨는데, 남을 짓밟는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지 못합니다.


  제 신앙의 스승이었던 전대홍목사님은 우리들이 탁구경기를 하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탁구는 자신이 이기기 위해,

  남이 치지 못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의 교훈은 이러했습니다.

 "무의식적이라도 자신의 힘을 상대를 속이거나 상대를 깨는데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고, 소망을 키우고, 기쁨을 주는 다윗 같은 청년에게 역사를 맡기십니다.
  결코 골리앗처럼 사람을 죽이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힘을 자랑하는 사람은

  비록 그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버림받습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입술을, 사람을 세우고 격려하여, 살리는데 쓰십니까, 아니면 비판하고 죽이는데 쓰십니까 ?
  우리들의 입술은 차갑습니까 ? 아니면 따뜻합니까 ?
  따뜻한 입술과 말이 우리들의 인상(印象)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왜 얼굴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
  화장하고, 장식하고, 예쁘게 꾸미라고요 ?
  아니면, 화내고, 짜증내고, 딱딱하고, 근엄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의 접근을 금하라고요 ?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주간 사모님과 함께 몇 년 전, 본향성도들의 사진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란 것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밝고 맑아 누구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얼굴을 가졌던 지체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어둡고, 딱딱하고, 차가워져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얼굴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얼굴에 힘을 주고, 근엄하게 하고, 차갑게 하게 하면 여러분들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십니까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얼굴은 좀처럼 사람을 살리는 얼굴이 되기 어렵습니다.

  살리는 얼굴은 밝은 얼굴, 웃는 얼굴, 미소지어주는 얼굴, 다정한 얼굴입니다.
  여러분들의 얼굴이 살리는 힘을 가진 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윗이 어두웠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를 환하게 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스라엘을 앞을 막고 서 있는 골리앗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다윗은 절대로 골리앗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로만 골리앗을 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보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
  육신의 눈으로만 보지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바라봤던 열 명의 정탐꾼의 눈은

  이성적인 눈, 객관적인 눈이었습니다.

  경험의 눈이었고, 지식의 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합리적인 것 같았지만 실패의 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를 비전과 꿈을 가지고 용감히 나아갔던 사람들에게 맡기셨습니다.

  또한 구속의 역사는 자신의 말씀하신 대로(예언하신 대로)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지 않는 세상사람들도 비전과 꿈을 가지고 용감히 나아갈 때 어두운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그 꿈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명기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명기28:3-6. "城邑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牛羊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앞에 골리앗과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비전과 꿈을 가지고 용감히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적의 승리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이 눈을 가집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칩시다.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놀라운 승리가 내게 임할 것이다"


  셋째, 다윗이 어두웠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미래를 환하게 열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거룩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만민이 기도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할 성전이

  장사꾼들의 소굴로 전락한 것을 보시고 거룩한 분노를 느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
  사랑과 자비가 풍성했던 예수님께서

  오히려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습니다.(마태복음21:1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져간다는 소식을 듣고

  거룩한 분노를 느끼고 성을 재건하는 일에 생애를 걸었습니다.(느헤미야1장)


  마틴 루터는 복음을 잃은 카톨릭교회, 평신도를 病신도(병에 걸린 신도)로 만든 카톨릭 성직자들,

  영광스러웟던 예배의 상실을 바라보며 거룩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결국 루터는 자신의 생애를 걸고 종교개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비느하스는 온 이스라엘이 슬피 회개할 때,

  오히려 악을 행한 시므리 족장를 향해 '거룩한 분노'의 창을 던짐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습니다.(민수기25:1-13)


  오늘 본문의 다윗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시하는 블레셋,

  이방족속들과 골리앗 장군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를 느겼고,

  마침내 그 위기 상황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 민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감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영적 위기상황을 보고, 거룩한 분노, 거룩한 불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반드시 큰 일을 이루십니다.
  위기 속에서 도피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히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사람들, 삶을 던질 줄 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 본향교회의 19년 간의 짧은 역사를 통해 볼 때도,

  하나님은 거룩한 분노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교회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교회가 세워질 때도, 거룩한 분노를 가졌던 6명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좁아 어려울 때도, 거룩한 불만족을 가졌던 지체들을 통해 예배당 확장이전의 기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들에게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까 ?
  우리들은 거룩한 불만족을 가지고 있습니까 ?
  방황하는 이 땅의 영혼들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는 아픔, 고통이 있습니까 ?
  연약한 일본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가슴앓이, 하나님의 고통이 우리들의 심장 속에 있습니까 ?
  본향교회의 연약함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울부짖는 눈물이 있습니까 ?

  보석과 많은 돈을 보면 가슴이 뛰면서

  만약 이러한 것들에 무관심하다면 어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무너져 갈 때 우리들의 가슴속에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오랫동안 이어 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때,

  놀라운 회개와 부흥, 승리와 기적은

  거의 대두분 거룩한 분노와 거룩한 불만족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졌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내 자신의 썩어질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에 욕구 불만에 차 있다면,

  이제는 내게 거룩한 불만족이 있는가를 먼저 돌아봅시다.
  내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는 것 때문에 화를 내고,

  내 인생의 어려움 때문에 분노를 터뜨리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거룩한 분노로 그 분노를 바꿉시다.


  더구나 여러분 ! 다윗은 거룩한 분노를 느끼며,

  다른 어른들에게, 다른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전쟁터에 있던 형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이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사회를 비판하고, 교회를 비판하고, 국가를 비판하기 보다

  먼저 자신이 그 문제 상황에  뛰어 들었습니다.

  문제를 짊어졌습니다.
  다윗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입으로만 문제를 진단하고 평가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충고 만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몸을 던져 문제를 향해 나갔습니다.


  여러분 ! 이 땅을 보며, 사회를 보며, 직장을 보며, 가정을 보며, 교회를 보며,

  무엇인가 분노와 불만족이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을 통해 그 일을 새롭게 하시려고 당신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비느하스처럼, 느헤미야처럼, 루터처럼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부탁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 국면을 타개해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이룰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첫째, 다윗처럼 우리의 힘과 재능을 '살리는 데 사용'합시다.
  둘째, 다윗처럼 객관적인 눈, 현실적인 눈이 아닌 '믿음의 눈'을 가집시다.
  셋째, 다윗처럼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내 인생을 던집시다.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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