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9월24일, 창세기 38:1-7(하나님의 큰 은혜를 본보기로 누리고 있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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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고, 또한 永生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를 화목하게 만드는 사명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능(달란트 및 은혜 및 경험)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름대로의 신앙이 아닌)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 [본보기]라는 말을 잘 아시지요 ?!
그런데, 이 '본보기'라는 말은 한 가지가 아닌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1>본 받을 만한 대상이나 인물이 [본보기]입니다. -> 귀감(龜鑑)
예를 들면, [조지 뮬러는 고아사랑의 본보기로 존경받고 있다]
2>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를 시키거나, 주의를 주는 의미에서, 사람들 앞에 실제로 내세워 보이는 것.
-> 見せしめ
예를 들면, [너를 본보기로 삼아, 다시는 나쁜 짓을 못하게 할거야 !]
3>본으로 보여 주기 위한 물품. -> 見本
예를 들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만든 본보기를 보면서 해 !]
4>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설명해 주거나 증명해 주는 대표적인 것.
예를 들면,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이처럼 큰복을 받고 사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의 본보기입니다] -> 本
위의 본보기들 중, 네 번째 본보기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 ! 우리 본향지체들에게 한 여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말(タマル, 종려나무를 의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에게는 열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넷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어느 날 장성한 유다가 가족들을 떠나, 아둘람이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한 가나안 여인을 만나, 그녀와 가정을 꾸리지요.
그 후 유다는 그 가나안 여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얻습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엘'과 '오난'과 '셀라'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들이 장성하자, 유다는 큰아들 엘을 위하여, 며느릿감을 데리고 옵니다.
그 여인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다말'입니다.
이제 갓 시집 온 다말은,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
그 가정을 번성하는 가정, 승리하는 가정으로 세워나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
그만 남편 엘이 어느 날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엘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7절,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ユダの長男エルは主の意に反したので, 主は彼を殺された.)
갑작스럽게 장자 엘을 잃은 유다는, 둘째 오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8절,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자녀)가 있게 하라"
그렇습니다.
죽은 형 엘을 대신하여 형수와 하룻밤을 보내,
자손이 없이 죽은 형의 자손을 네가 대신 이어주라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한 가지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계대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손 없이 죽은 형수와 하룻밤을 보내,
형을 대신해 형의 자손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계대결혼 제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계대결혼을 명하신 목적 중 하나는,
후사가 없이 죽은 형제를 위하여, 대신 자손을 낳게 해줌으로서,
죽은 자의 후사가 끊기지 않고, 그의 기업을 보전하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으니
곧 남편과 사별한 후 의지할 곳 없는 미망인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계대결혼은, 가족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혈통과 가문과 가족을 보호해 주려는데 있었습니다.
한편, 계대결혼의 책임을 가지게 된 사람을, [고엘]이라고 칭했습니다.
이 계대결혼 법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는, 모세의 율법으로 계시되기 전부터
이미 족장들의 삶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명령)의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모세를 통해,
기록된 율법으로 선포되었습니다.(신명기25:5-10)
그렇습니다. 여러분 !
유다가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와 하룻밤을 보내,
자손이 없이 죽은 형의 자손을, 네가 대신 이어주라는 것은,
바로 계대결혼의 의무를 네게 있으니, 그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본문8절을 히브리어 원어성경으로 보면, 세 개의 명령문이 나옵니다.
"너는 네 형의 아내에게 들어가라 !"
"그리고 너는 그녀에게 의무를 행하라 !"
"그리고 네 형의 씨를 세우라(이어라) !"
여러분, 오난은 고엘(즉, 동생으로서의 역할)의 사명을 감당했을까요 ?
아니오 !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9절,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그렇습니다.
오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불순종했습니다.
여러분 ! 그 후 오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본문10절,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졸지에 두 아들을 잃은 유다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막내아들 셀라를 며느리 다말에게 주어야 할텐데,
그것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막내까지 죽을까봐서요 !!!
그래서 결국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버립니다.
본문11절,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그렇게 몇 년, 그리고 또 다시 몇 년이 지났습니다.
친정에 쫓겨간 다말은, 시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시집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다말은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아버님 유다는, 고엘의 역할을 해야할 셀라 도련님을 절대 내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다말은,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또 시아버지 유다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기의 친정 가까운 곳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매춘 영업을 하는 여인으로 변장하여,
시아버지가 지나갈 것이 확실한 큰길의 문 옆에 앉았습니다.
본문14절,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잠시 후, 다말의 예상대로 시아버지 유다가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아내를 잃고 적적했던 유다는, 매춘 여인으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에게 다가갔습니다.
물론 다말은 얼굴도 가리고, 목소리도 달리 했기에,
그녀가 자신의 며느리 다말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유다가 다말에게 말합니다.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다말이 답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유다가 대답합니다. "(지금은 없으니, 내일) 염소 새끼를 주리라"
다말이 말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유다가 말합니다.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다말이 답합니다.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의 지팡이로 하라"
결국, 유다는 담보물을 주고 다말과 동침하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께서 그 날 밤, 다말의 태에 생명을 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한편, 다음 날 아침, 유다는 친구를 통해 다말에게 염소 새끼를 보냅니다.
그리고 담보물로 주었던, 자신의 것들을 찾아와 달라 부탁합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 아무리 찾아도, 그 여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곳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 지방에는 예로부터 매춘하는 여인들이 전혀 없습니다. 뭔가 잘 못 아신 것이 아닙니까 ?!"
그렇게 다시 3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와서, 며느리 다말에 대한 소식을 들려줍니다.
본문24절,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깜짝 놀란 유다는, 종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본문24절,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며느리 다말이 사람들에게 끌려나갈 때에,
다말이 다른 이에게 부탁해, 보관하고 있던 담보물을 시아버지 유다에게 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25절,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
여러분 ! 그 담보물을 본 유다의 얼굴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얼굴을 빨개지고,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겠지요 !!!
그래서 유다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본문26절,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다시 몇 달 후, 드디어 다말이 아들들을 해산합니다. 쌍둥이였습니다.
그 쌍둥이 아들들의 이름은, 베레스와 세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다말은, 남편의 아들이 아닌, 시아버지의 아들은 낳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다말의 행동은, 뜻은 좋았을지 모르지만, 방법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말의 행동은 의롭지 못한 행동이 분명합니다.
세상에서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자식을 낳은 며느리는 아마 다말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말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다말이 낳은 베레스를, 놀랍게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롭지 못한 다말이,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1:1-3,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
사랑하는 여러분 ! 다말은 세상적으로 보면, 부도덕한 여인입니다.
또한, 돌에 맞아 죽어도 마땅한, 시아버지를 유혹한 패역한 죄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말을 어여삐 여겨주셨고, 또한 다말을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다말과 비슷한 처지에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바울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고린도전서15:9-10,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わたしは, 神の敎會を迫害したのですから, 使徒たちの中でもいちばん小さな者であり,
使徒と呼ばれる値打ちのない者です.)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神の惠みによって今日のわたしがあるのです. そして, わたしに與えられた神の惠みは無馱にならず,
わたしは他のすべての使徒よりずっと多く働きました.
しかし,働いたのは, 実はわたしではなく, わたしと共にある神の惠みなのです.)
여러분 ! 우리들도 다말 못지 않은 죄인이며, 바울 못지 않은 악한 자입니다.
어쩌면 다말과 바울보다 더 끔찍한 죄를 저지른, 죄인 중의 괴수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말과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귀히 사용하셨듯이,
우리에게도 크신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귀중히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일꾼으로서, 사역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베레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될 줄은, 베레스 자신도, 결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셨습니다.
우리는 그 피 값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너무나도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소중히 여기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한 죄 많은 성도가 목사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 저 같은 사람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받아 주실까요 ?"
목사님이 그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성도님 ! 성도님은 아끼던 옷이 찢어졌을 때, 그 옷을 버립니까 ?"
그랬더니 성도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다시 수선해서 입습니다"
목사님이 말합니다.
"성도님이 자신의 옷에도 그렇게 마음을 쓰는 데,
하나님이 독생자의 피 값으로 사신 성도님에 대해, 그 마음을 안 쓰시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1000만 원짜리 수표가 찢어지면 그냥 버립니까 ?
아니지요 ! 찢어진 부분을 붙여 사용합니다.
그것의 가치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보혈의 피 값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너무나 가치가 큰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 본향교회의 항존직으로 기름 부어 세움 받을,
귀한 청지기 후보자들을 하나님 안에서 선택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답지도, 또한 하나님의 딸답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아들과 딸로 삼아주셨습니다.
여러분 !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성품과 모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믿기에, '아멘'하며, 하나님의 자녀 됨을 감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권사답지도 안수집사답지도 또 성도답지도 목사답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연약한 자를 세워 나가시는 일을, 묵묵히 순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은혜로, 연약한 우리들을, 성장시켜 나가신 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연약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당신의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쓰고자 하십니다.
우리 !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나아갑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됩시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1:16,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わたしが憐れみを受けたのは, キリスト·イエスがまずそのわたしに限りない忍耐をお示しになり,
わたしがこの方を信じて永遠の命を得ようとしている人 の手本となるためでし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의 부르심은,
여러 사람들에게, 우리들을 본으로 삼으시려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멋진 모습, 신앙인다운 모습으로,
그렇지 못한 신앙인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저토록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 은혜를 입으면, 저렇게 귀히 쓰임 받는 구나 !"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는 본보기로 우리를 삼으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다말이 바로 그런 본보기입니다.
또한 잠시 말씀드린 바울도 바로 그런 본보기입니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저렇게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구나 !"
"그러니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만 힘 입으면, 귀하게 쓰임 받는 구나 !"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제목: 은혜 아니면)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놀라운 사랑 그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