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12월11일, 누가복음2:1-7(주님 제 방을 내드리겠습니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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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6 2016년12월11일, 누가복음2:1-7(주님 제 방을 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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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0,427回 日時 16-12-20 21:23

本文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약속 받은, 열린 천국 문의 복, 시험의 때를 면하는 복,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는 복, 그리고 하나님의 귀하신 이름이 우리에게 기록되는 복을,

  우리도 약속 받읍시다.
  그러기 위해, 빌라델비아 성도들처럼,

  작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지키며, 맡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합시다.

  여러분 ! '성탄절', '크리스마스'하면 어떤 느낌을 가지십니까 ?
  괜히 마음이 설레고,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은 기대가 생기며,

  또 마음이 왠지 따뜻하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십니까 ?!
  올 성탄에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여러분들 가운데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약2천 년 전의 첫 번째 성탄절, 즉 실제로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상황은,

  이렇듯 편안하지도 또 낭만적이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인데, 얼마나 놀랍고 큰일입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적어도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는,

  예수님 탄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그런데 여러분 !

  놀랍게도 마가와 요한은 이 부분, 즉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한 내용을 생략했습니다.
  마가복음의 실제적인 기록자 베드로도,

  그리고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기록한 마태와 누가도,

  그들이 기록한 예수님 탄생에 대한 기록의 모양새가 참으로 많이 다릅니다.

  우선 마태를 보면, 그의 전직(前職)이 세무서 직원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펜대를 좀 굴렸던'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마태가 기록한 글(즉, 마태복음)은 매우 격조(格調)있고 깔끔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런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사를 마태복음1:18-2:11까지에 기록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마태복음2:11절입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 (예수)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런데 여러분 !

  이 말씀만 보면, 아기 예수님이 호텔에서 나셨는지, 조산소에서 나셨는지, 보통 집에서 나셨는지,

  마구간에서 나셨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뭔가를 감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누가복음의 기록자인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여러분 ! 의사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사실 그대로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누가의 글은 투박하지만 매우 사실적인데다 정말 꼼꼼합니다.
  문체(文体)가 어떻든,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어떻든,

  누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께서 구유에 누우셨다는 것을 밝히 기록했습니다.
  본문6-7절, ".......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만약 누가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예수님이 그토록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 그렇다면 왜 ! 마태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
  또 요한과 베드로(마가)는 아예 이 얘기를 거론도 하지 않았을까요 ?
  아마도, 유대인이었던 마태와 베드로(마가) 요한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을,

  자기 민족이 홀대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그렇게 맞이한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또 생각도 하기 싫어서 어쩌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탄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기쁨의 날이고, 평화의 날이며, 마음껏 즐거워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편에서 본다면, 성탄절은 자신을 철저히 낮춘 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성탄절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낮추는 날이 되어야합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연약하고, 지치고, 상한 사람들을 섬기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올 성탄은, 우리의 섬김과 낮아짐을 통해, 이 땅의 한 사람에게라도 용기와 위로를 주는,

  귀한 성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약 50년 전, 한 미국 여인이 자신의 딸을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 딸은 한국 전쟁에서 죽은 자신의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는데,

  사정이 있어서 한국전쟁 직후 고아원에 맡긴 딸이었습니다.
  처음 1∼2년까지는 서로 연락도 주고받았는데, 그 뒤로는 그만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여인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딸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몇 년이 지나도 도저히 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여인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찾아는 주는 쉐이드라는 사람에게 부탁해, 딸의 행방을 수소문했습니다.

  쉐이드는 여러 경로를 통해, 마침내 LA의 한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여인의 딸을 찾았습니다.
  쉐이드는 편지를 통해, 그 딸과 약속을 하고,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금방 공연이 끝난 뒤라, 무대 뒤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합니다.
 "쉐이드씨 ! 보시다시피 저는 앞을 보지를 못합니다.

  쉐이드씨가 보내신 편지도, 사실 제 매니저가 읽어줘서 비로소 그 내용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쉐이드에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를 낳았다고 하는 그 여인을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겁니다.

  나는 결코, 나를 고아원에 버린 그 여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쉐이드는 설득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딸은, 자신을 낳은 여인을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약속한 그 날이 되어, 딸 클라우디아는 약속한 호텔로 갔고, 방문을 열었을 때

  거기는 우아한 중년 부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딸은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매니저의 안내를 받았지요.
  그런 딸을 쉐이드가 엄마 앞으로 세워 주었습니다.


  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다가 딸이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겨우 인사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어머니가 말합니다.
 "애야 ! 목소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 할 말이 많았었는데 ....... 아무 말도 못하겠구나 !

  이리 가까이 와 주겠니 ?"

  어머니의 음성을 듣자, 딸은 그동안 꾹 참았던 눈물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왜 다시 저를 찾으신 거예요. 버릴 때는 언제고 왜 다시 찾으셨어요.

  저는 당신이 싫어요. 당신은 제 어머니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딸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딸의 머리로부터 얼굴과 볼, 그리고 목과 어깨를 차례로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많이 컸구나. 이렇게 예뻐졌구나.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 !"
  그러면서 계속 딸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는 겁니다.
  순간 딸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엄마도 앞을 못 보는 거예요 ?"

 "그래 ! 나도 너처럼 앞을 못 본단다. 하지만 나는 그때, 네가 세상 어디 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믿었지 !"


  둘은 서로 와락 부둥켜안고 통곡을 합니다.

  그 동안에 엄마에게 품었던 모든 원망과 분노, 증오가 한순간에 다 녹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엄마도 자기처럼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모든 것이 다 용서되었고 또 이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2년 전, 어머니는 어느 날 의사로부터

  자기가 유전성 시각 질환을 앓고 있고, 얼마 후면 실명하게 된다는 것을 통보 받았습니다.
  그런데 딸을 진찰해 보니까, 딸에게도 그 병이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의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고아원에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고아원에 맡기면, 앞을 볼 수 있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볼 수 없는 나와 사는 것보다는 더 행복하게 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는 서로 이해하고 불쌍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딸을 고아원에 맡긴 어머니와 참으로 상처 많은 딸이,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동병상련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느끼고 싶으셨던 마음이,

  바로 이 마음, 즉 동병상련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구유에 나신 우리 주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사람이 됐단다.

  네가 죄의 짐을 지고 고통 당할 때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내가 너와 함께 느끼고 싶었단다.

  네가 겪는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도 너와 같이 가난하고 싶어서 사람으로 왔단다.

  또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파할 때, 또 네가 홀로 고독할 때,

  또 네가 실패하여 낙심할 때,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너와 함께 하고 싶어서,

  내가 사람의 몸을 입고 너에게 왔단다."

  필립 얀시는 예수님의 나심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오히려 피조물의 한 부분이 되셨다는 그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
  춥고 어두운 날 밤, 베들레헴 굴곡진 언덕 위에서, 영계(靈界)와 물질계(物質界)가 극적으로 교차되었습니다.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시골뜨기 아이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똑같이, 걷는 법과 말하기와 혼자 옷 입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의(自意)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결함 속으로, 약점 속으로 들어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전지(全知)하심은 당시 통용어였던 아람어 발음 하나하나를 배워야 하는 한정된 지식으로 바뀌었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그의 편재하심은 두 발로 걷고, 때로는 나귀를 타야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그의 전능(全能)하심은,

  나무를 켤 정도의 힘은 있었지만,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나약한 상태로 변하셨습니다.


  한 눈으로 온 우주의 별들을 바라보시던 그 분이,

  나사렛의 좁은 오솔길과 유대 광야의 바위들과 예루살렘의 복잡한 거리를 보셨습니다.
  마치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의 한 점이 되듯,

  또한 극작가가 자신이 쓴 연극 대본의 한 등장인물이 되듯,

  예수님은 그렇게 피조물의 일부분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에게 가난이 있고, 실패가 있고, 아픔이 있더라도 너무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그런 고통을 예수님께서 안아 주시기 위해,

  또한 함께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주님은 이렇듯 약한 자의 편에 서십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구유에 누우신 것이나,

  천사들이 당시 매우 천대받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알린 일이나,

  안나와 시므온 같이 100세가 넘어 아무 힘이 없는 노인들을 만나 주신 것이나,

  이방인인 저 동방박사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나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연약하고, 부족하고, 또한 억압받고, 소외당하고, 또한 아파하고, 고통 당하고,

  또한 병들고 가난한 자들의 편이십니다.

  여러분 !

  그동안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들으셨던 모든 간증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간증했던 분들이 언제 주님을 만났던가요 ?
  실패하고 부도나고 병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주님을 만나지 않았던가요 ?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도저히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주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役事)하십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고 있을 때, 아파하고 있을 때, 그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우시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말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이제 예수님께 우리가 무엇을 해 드려야 될까요 ?

  물론입니다.

  구유에 계신 예수님을, 이제는 따뜻한 방으로 옮겨 드려야합니다.

  사실, 당시 요셉과 마리아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로마제국 전역에, 호적을 새로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거주지였던 나사렛에서 호적지 베들레헴까지는 무려 120km나 됩니다.
  당시에는 나귀를 타고 가더라도 3∼4일이 걸리는 먼 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당시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베들레헴은 어떤 마을이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너무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변변한 물건을 구하려고 하면, 이웃 큰 마을로 가야 할 만큼 아주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 여관다운 여관이 있을 리도 없고, 여인숙 같은 작은 숙소가 있다 하더라도,

  너무 호적하기 위한 여행객이 많아, 도저히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몸은 지쳐 있는데, 태중(胎中) 예수님이 쉬실 방은 없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방이 없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일본에 처음 와서 방을 못 구하고,

  친구나 선배 집에서 며칠씩 신세지며 지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편히 쉴 이 땅의 방 한 칸은 그렇게 절실한 겁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마리아가 진통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아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당황한 요셉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부탁했을 겁니다.
 "우리 집 사람이 지금 해산하려고 합니다. 제발 방 하나만 주세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다급해졌습니다.

 "제발 방 하나만 주세요. 부탁입니다."
  결국 어떤 집에 사정했더니, 방은 없고 마구간이 있으니

  거기에 들어가려면 들어가라고 해서 마구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에서, 비록 궁궐은 아니어도, 우리들의 방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눈비를 피할 수 있고, 고단한 몸을 쉬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눈치 안 보고 편히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 있다는 것, 이것 정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름이면 시원한 물로 샤워할 수 있고, 겨울이면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것,

  이것 보통 큰 은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미국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칩니다.


  교회학교 유년부 선생님이, 성탄절을 맞아 자기가 맡은 반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연극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배역을 만들어, 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배역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반에는 윌리스라는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못생긴 아이였는데, 학교에서는 1학년에 이어 2학년에서도 낙제를 한,

  별로 공부에 취미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참 선량했습니다.


  선생님이 고민을 했습니다. "윌리스에게는 어떤 배역을 주어야 하나 ?"
  배역을 잘 소화도 못할 것도 같고, 또 만약 윌리스가 실수하면 연극 전체를 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대사가 가장 짧고 간단한 역할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윌리스가 맡은 역은, 여인숙 주인영감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여인숙의 문을 두드리면서,

 "여보세요. 호적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 여관마다 만원이고 이 추위에 아내는 해산할 때가 됐으니

  방 하나만 빌려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때 여인숙 주인영감이,

 "안됩니다. 모든 방에 손님이 가득 찼습니다."하면 되고,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두드리면, "방이 없다고 했잖아요."하면 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한 후, 드디어 성탄절 발표회의 연극공연 차례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로 가득 찼고, 연극은 바로 윌리스가 등장하는 그 장면까지 왔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룻밤 묶을 방을 달라고 하니까,

  여인숙 주인 역할인 윌리스가 "안됩니다. 모든 방에 손님이 가득 찼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장면은 아주 잘 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거절을 하고 들어가자, 마리아와 요셉이 쓸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쩌나 ? 이 추운 겨울날에 여관마다 만원이고, 어디 다시 한 번 사정을 해봅시다."하고

  다시 대문을 두드립니다.
  이때 여인숙 주인 역할을 한 윌리스가, "방이 없다고 했잖아요 !"하고 들어가면 되는데,

  그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윌리스가 두 번째 나와서는, 맡겨진 대사를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기만 합니다.


  여러분 ! 경험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극 중간에 대사가 끊기면, 처음에는 웃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객들까지도 몸이 달게 됩니다.


  이에 선생님이 급히 막 뒤로 뛰어가서 대사를 읽어 줍니다. "방이 없다고 했잖아요."
  선생님이 읽어 준 그 대사를 반복하기만 하면 되는 데,

  윌리스는 그 말을 전혀 못하고 난처한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이에 선생님이 말합니다. "윌리스야 ! 빨리 하고 들어와 !"
  세 번 네 번 재촉하며 대사를 읽어주니까, 윌리스는 "방이 ......."까지 하고는 또 가만히 서있는 겁니다.
  계속되는 선생님의 재촉에, 결국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대사를 말합니다.
 "방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리고는 무대 뒤로 들어갔습니다.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연극은 계속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무대 저쪽으로 나가면서 또 말합니다.

 "아 ! 어떻게 하나 ! 이 추위에 이렇게 먼 길을, 지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는데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자기의 대사를 끝내고 내려갔던 윌리스가,

  다시 무대 위로 후닥닥 뛰어 나왔습니다.

  자기 차례도 다 지나고 연극 대본에도 없는 장면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퇴장하려는 요셉과 마리아를 간절히 부릅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이리 좀 오세요."

  여인숙 주인 역인 윌리스의 두 눈에는, 언제부터인지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 여인숙은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지만 손님, 내 방이 있습니다. 내 방에라도 모시겠습니다.

  이 추위에 피곤하고 지친 몸, 더구나 무거운 몸으로 어디를 가시렵니까 ?

  자 어서 들어오세요. 제 방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윌리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고,

  긴장해서 보고 있던 교회 안의 모든 성도들도, 윌리스와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연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그 연극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가 감격에 겨워서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서, 그때부터 이 말이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내 방을 내 드리겠습니다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 중에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의 방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는 방이 없었습니다.
  나실 때도 방이 없었지만,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전히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릴 뿐, 아직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두 잘 아시는 요한계시록3:20절 말씀을 읽습니다.
 "볼지어다 !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우리도 여관 주인역할을 한 윌리스처럼,

  어쩌면 남은 우리 인생의 대본을, 지금부터의 우리 인생의 목표를, 완전히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 주님은 다른 곳에서 기쁨을 얻으시겠지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아무런 빛도 드러내지 못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이번 성탄절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모시는 성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의 빗장을 풀고, 마음 문을 활짝 열어,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는 은혜의 성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 여기 주님이 머무실 방 한 칸이 있습니다. 제 방을 내 드리겠습니다."

  우리 함께 찬송합시다.(찬송가278장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오 !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同居, 함께)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위해, 그리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

  내 방을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다가오는 올 성탄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기업, 자녀에게

  평강에 평강이 넘치는 성탄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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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16 박성철 10177 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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