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년11월6일, 빌레몬서1:9-14(배려와 살핌과 섬김이 가득한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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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더 이상 망설이지말고, 나병환자처럼 우리도 주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 우리도 이렇게 아룁시다.
"주여 !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우리 본향교회가 本鄕宿을 연지도 벌써 만 13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100여명의 식구들이 둥지를 거쳐갔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참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두 사람,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난 분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의 辭典에는 '배려(配慮)'라는 단어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샤워장이든, 부엌이든, 화장실이든, 현관이든 그 친구들이 지나간 곳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으악'하는 비명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일수록 자신만의 공간은 또 잘 챙깁니다.
결국 저는 本鄕宿의 평화와 대다수 분들을 위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막내들을 향한 제 시각은 조금 엄한 편입니다.
왜냐하면,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막내들은 '배려'에 대해 좀 인색한 편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특히 막내들은 평균의 경우보다 그 경우의 수가 조금 높습니다.
우리 본향에 속한 막내여러분 !
배려하고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나오는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종 오네시모가 자기 주인 빌레몬을 배신하고 재물 등을 훔쳐 먼 곳 로마까지 도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망한 곳 로마에서, 사도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자기가 매우 악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솔직하게 바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바울이 오네시모의 主人인 빌레몬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바울을 통해 골로새 지방에 교회가 세워질 때,
바로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빌레몬은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고,
또한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바울과 빌레몬의 관계는 신실한 목회자와 충성스러운 동역자의 관계였고,
또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제자 빌레몬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인 빌레몬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바울은 빌레몬의 스승이므로,
오네시모의 자유 함에 대해, 그리고 그가 저지렀던 죄에 대해 부탁하고 명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가르침이 이러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3:28, "너희는(또한 우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러나 여러분 !
바울은 빌레몬에 대해, 스승으로서의 권위보다, 철저한 살핌과 배려를 우선합니다.
본문9-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나이로도 빌레몬보다 위입니다.
또한 스승입니다. 복음으로 낳은 빌레몬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간구했습니다.]
여기에서 '간구'라는 말은 무릎꿇고 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규율과 강압보다는 살핌과 배려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규범과 방식보다는, 이웃과 지체를 배려하는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는 규칙과 규범도 세워져야 하지만,
배려와 살핌과 섬김이 우선 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계속해서 본문13-14절을 보겠습니다.
"그(오네시모)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自意)로 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거듭 빌레몬에게 사랑과 용서, 이해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이웃을 대함에 있어, 당연함이 아닌
배려와 살핌이 항상 앞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인천에서 목회를 하시는 이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이 목사님이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을 향해 가는데,
건설 현장에 일하러 가는 어떤 노동자 아저씨가 공연히 시비를 걸고 욕을 하더랍니다.
그 노동자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자기를 앞서 간다"느니 하면서,
이런 저런 욕을 실컷 퍼붓더랍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했답니다.
어떤 때는 이 목사님도 화가 나서 맞대꾸를 하고 싶었으나,
목사로서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못하기도 해서, 항상 그냥 피해 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또 그 사람을 만났는데,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는 마음이 들더랍니다.
바싹 마르고 작고 볼품 없는 욕쟁이 아저씨의 연약한 모습이,
공사현장에 나가서 일을 할 때, 어느 누구에게나 밀리게 생겼더랍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생각했습니다.
'공사장의 책임자에게 그렇고, 세상에서 어느 누구하나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판에,
그래도 저 사람이 이기는 자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나구나 !
저 사람이 아무리 욕을 해도, 내가 아무 대꾸도 안하니, 만만히 보이는 것은 역시 나뿐이구나 !'
이 목사님이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그 후로부터 시비를 걸고, 또 욕을 먹어도 마음이 편안하더랍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이 목사님은 욕쟁이 아저씨와 그 부인을 길에서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레슬링 선수처럼 몸집이 컸고,
그 앞에서 욕쟁이 아저씨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더랍니다.
이 목사님은 "그러면 그렇지"하며 앞으로도 내가 욕을 많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다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 !
부부사이의 갈등이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 또한 살핌과 배려 없는 한 마디가,
자칫 부부간에 아픔과 다툼을 가져오게 합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살핌과 섬김이 없는 곳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부인이 거울을 보는 남편에게 "여보 ! 당신은 세월이 갈수록 매력이 있어요 !"라고 말하면,
남편은 "비행기 태우지마 !"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화장실에 가서 몰래 거울을 쳐다보면서 "내가 진짜 매력이 있나 !"하는 것이 남편들입니다.
이것은 아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살림 꾸려가느라, 부족한 남편 섬기느라 온갖 고생하는 아내에게,
"여보 ! 나는 당신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어.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당신 같은 여자와 꼭 결혼할거야 !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의 눈은 저 유명한 스위스의 레만 호수처럼 정말 청초해 보였지.
당신의 목은 가을의 코스모스처럼 한들거려 보였다오 !"
"그런데 당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 !"
여러분 ! 아내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 날 저녁 반찬이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여러분 !
왜 성도들 간에 갈등과 다툼이 생깁니까 ?
배려하는 마음, 살피는 마음, 섬기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녁 프란시스의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가보니, 문 밖에 한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 나병환자가 프란시스에 말하기를,
"제가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을 했고,
이에 프란시스는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 함께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청빈하게 살았던 프란시스의 집안도, 추운 밖과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좀처럼 환자의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밤이 깊어지자 그 나병환자는,
아직도 자기가 너무 추우니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부탁을 했고,
이에 프란시스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나병환자를 녹여주었다고 합니다.
이튿날 아침, 프란시스가 일어나 보니, 그 나병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이에 프란시스는 큰 깨우침을 얻고,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소원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때 드린 기도가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평화의 기도'랍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
이것은, 프란시스가 드린 '평화의 기도'를, 한국의 한 수녀님이 찬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모임을 이런 모임으로 만들어봅시다.
배려하고 살피고, 또한 이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그런 모임이 되게 합시다.
말씀의 처음으로 돌아가, 막내에 대한 말씀을 조금 더 나누겠습니다.
대다수 막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책임감이 약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남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막내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막내들을 통해서, 많은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셋, 야곱, 모세, 다윗 등입니다. 이들은 모두 막내들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또한 역사를 통해 살펴보아도,
첫째보다는 막내 혹은 둘째 등이 더욱 큰일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
저도 첫째지만, 대다수 첫째 들의 특징 중 하나는,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과 부모에 대한 것이 그렇습니다.
첫째들은 대부분 성품(性品)적으로도 이것저것 살피는 것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첫째들은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참 힘들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족을 위해 혹은 부모를 위해,
혹은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위해, 아쉽지만 포기합니다.
모두를 위해, 자신의 것은 포기를 잘하는 것이 첫째들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첫째들의 포기에는,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이 부분 뿐 아니라, 저 부분도 살펴야 하니까요 !!!"
그러나 여러분 !
대다수의 막내나 둘째, 셋째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든 손에 넣습니다.
특히 막내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미 소개한 대표적인 막내 다윗이 그렇습니다.
골리앗이 있는 전쟁터에 왔을 때, 이미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큰 형 엘리압이
막내 동생 다윗을 이것저것을 고려해서, 이렇게 꾸짖습니다.
사무엘상17:28, "큰형 엘리압이 .......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
그렇습니다. 엘리압은 전쟁터 속에서도 가정을 걱정하고 양들을 걱정합니다.
이것이 첫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 속에는, 오직 골리앗을 물리치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들에 있는 양은 지금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눈 앞의 골리앗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다윗에게, 크고 놀라운 승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도여러분 !
대다수의 막내들은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막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첫째들은, 대부분의 경우가 자기의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또한 대다수 막내들은 욕심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명에 대한 욕심도 강합니다.
막내 야곱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
본향에 속한 막내 여러분 ! 또한 둘째 셋째 여러분 !
야곱과 같이 다윗과 같이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는 거룩한 욕심을 가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막내 여러분 ! 또한 둘째 셋째 여러분 !
한 가지 기억할 것은, 타고난 막내의 성품에 더해서,
첫째들이 가지고 있는, 배려하는 마음, 살피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위로하는 마음을 얻기를
항상 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첫째 같은 막내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되신 본향의 귀한 지체여러분 !
막내와 동생들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또한 첫째들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장자 이삭이 그렇고, 사무엘이 그러하며, 더구나 예수님이 장자가 아닙니까 ?
특히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본래 가진 배려함, 살핌, 이해함, 위로함에 더해서, 거룩한 욕심을 가지십시오.
커다란 비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비전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장자에게 갑절의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토록 장자의 복을 원했던 것이 아닙니까 ?
첫째 여러분 !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심을,
세상 장자(長者)로서의 책임으로 인해 잃어버리지 말고,
도리어 지키고 행하여,
여러분들에게 주어질 하나님 나라 장자(長者)의 복을 꼭 얻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본향교회는, 교회설립 후 지난 열 여덟해 동안 있었던 구역을 내년부터 폐지하려고 합니다.
그를 대신해, 팀 모임을 중심으로, 깊은 섬김과 살핌이 있는 모임을 가지려 합니다.
이제까지는, 제가 매년 구역편성을 새롭게 했습니다.
새로운 분들과의 교제, 새로운 분들과의 섬김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본향지체들은, 어느 정도는 서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년 2017년도부터는, 또래 별로, 인생을 살아온 날수가 비슷한 분들끼리,
섬김과 배려와 살핌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계기로,
각 또래 모임(팀)이 예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각 팀의 창립총회를 오늘 갖습니다.
이 귀한 일에, 순종함으로 동참하여,
본향의 새 역사의 밀알이 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