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년10월30일, 마태복음8:1-4(주님 !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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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봅시다.
탐욕과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지킨 사람이, 청결한 마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에 양(兩)다리를 걸친 마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5대 강화(講話, 어떤 주제에 대하여 강의하듯 쉽게 풀어서 이야기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상수훈(山上垂訓, 5∼7장),
제자파송 설교(10장),
천국비유 설교(13장),
제자의 도(道)에 관한 설교(18장),
그리고, 종말론 강화(24∼25장)입니다.
그 중 첫 강화인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공생애(公生涯) 초기에, 갈릴리 호수 주위의 어느 산(山)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하신 설교말씀입니다.
이 설교말씀을 특히 수훈(垂訓, 후세에게 전할 교훈)이라고 하는 까닭은,
이 교훈이 대대로 배우고 행하여 할, 주옥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바로 그 첫 번째 강화인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마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본문1절,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특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물론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이 주신 교훈은,
결코 선지자나 학자들의 교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한 지혜의 말씀이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그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있을 때,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꿇어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2절,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가복음1: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3절,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
여러분 ! 나병환자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즉시 고침 받았습니다.
마가복음1: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본문3절, ".......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주옥같은 예수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체험한 사람은, 오직 그 나병환자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처럼,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 중에, 바로 우리들이 응답 받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씀의 은혜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 주님의 말씀에 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놀랐지만,
말씀을 주신 주님이,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능력의 主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그들은 무리였고, 또 군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예수님이 정말 누구신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약3년 후 빌라도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그런데 여러분 !
문제는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이러한 군중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그저 신자들 사이에 묻힌 채로, 조용히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이 힘들 때 용기와 위로만 받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들은 헌신을 피하려 하며, 도리어 신실한 성도들의 헌신과 봉사와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군중들입니다.
오늘 예배드리시는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그저 따르는 무리가 되지 말고,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는, 어떻게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
첫째, 나병환자는, 그를 가로막는 수많은 고난(苦難)과 장벽(障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나병환자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레위기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당시 나병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것의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마을에서 떠나 살아야 했고, 직업과 가족과 미래를 잃어야 했습니다.
또한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다가오면 "부정하다 ! 부정하다 !"라고 외쳐,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은, 자신의 삶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온몸 구석구석에는 병(病)으로 인한 상처와 흔적들뿐이고,
마음 속에서는 '나는 저주받은 자'라는 상처와 고통의 탄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런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더구나 지금 예수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나병환자는 목숨을 건 것입니다.
둘째,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자신을 고쳐주실 주(主)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현자(賢者)나 율법학자 등을 높여 존경함으로 부를 때, '랍비'(선생님)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향해 "주여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여 !'라는 말의 원문 헬라어는 '퀴리에'인데,
이것은 종(從 혹은 노예)이 주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환자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지 않고, '주여'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어떤 학자나 설교자로 보지 않고,
능력과 위엄을 가지시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자신의 주인으로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 뒤에 계속되는 예수님께 말씀드린 이 환자의 소망이,
선한 가르침이나 위로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나병 그 자체를 고쳐달라는 것임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본문2절, "주여 !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본문의 나병환자는, 예수님만 원하시면 자신의 문제를 고칠 수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 ! 당신에게는 저를 치료할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께서 저를 원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치료를 원하십니까 ?
당신께서는 저의 병에 개입하실 뜻이 있으십니까 ?
제 인생에 들어오셔서 저의 주인이 되어주실 겁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만약 주님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다고 하는 그 많은 기적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지 않으시면,
그 구원의 십자가조차도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그 나병환자를 완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1: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 단계로 역사(役事)하십니다.
1>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의 원문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인데,
그 뜻은 '창자가 뒤틀리다' 혹은 '내장이 끊어지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찾아온 나병환자를 보시자말자,
자신의 내장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심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가 가지고있는 모든 고통을, 온 가슴으로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큰 고통으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갈 때, 그리고 우리의 고통을 외칠 때,
우리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온 가슴으로 느끼십니다.
2>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의 몸에 대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받아들이겠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우리 주님의 강력한 사랑의 표현이시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접촉했다는 뜻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뒤섞는다는 뜻입니다.
나병환자와 예수님이 뒤섞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자와 부정한 자가 섞이는 것입니다.
이 시간 ! 우리 주님의 손길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3>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나병은 매우 무서운 병입니다.
이 병은 나병균이 피부로 침투해서, 살을 썩게 하고, 뼈를 녹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게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피부가 짓무르고, 살이 터지고, 코가 주저 않고 성대가 망가집니다.
몸의 체계가 무너집니다. 삶의 모든 체계가 완전히 붕괴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병을,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마디 말씀으로 치료하셨습니다.
여러분 !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
물론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언어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간절한 간구에, 예수님의 응답의 선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한편, 고침 받은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주님이 주신 기적은, 예배와 감사예물로 온전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마가복음1장을 보면, 고침 받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온 동네방네에 자신이 당한 일을, 다 전파하고 다닙니다.
마가복음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널리 퍼뜨리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한 이 사람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증거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 나병환자는 자신의 병이 치료되니까, 말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했습니다. 그래서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나병환자는 예수님께서 엄히 명하신 말씀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
생각해보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나병환자는 죽은목숨과 같았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희망이 다 끊어진, 죽을 날 만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모든 병이 치료되어 살 소망이 생겼으니,
그가 그냥 침묵하고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
말기 암 판정을 받아서 죽음을 기다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사람이,
어떤 의사가 조제해준 약을 먹고 완치되었다면,
이 사람이 그 의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에서 꼭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변했어 ?", "너 정말 달라졌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매주 교회에 가도, 세상 사람과 같고, 내 영혼에 변화가 없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도리어 "너 예수 믿는 것 맞아 ?"이런 소리를 들으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병환자와 같은 변화가 우리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 ! 고침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전파한 후, 예수님께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마가복음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고치기 위해, 그들을 가족과 사회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해,
정작 자신은 한적한 곳, 문 밖으로 스스로 물러 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께서 이렇게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은,
후에 예수께서 가실 영문 밖 골고다 언덕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문 밖에서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나병환자처럼 살점이 썩어서 떨어져 나가고 비틀어지고 찌그러진,
죄 때문에 소생할 가망성이 없었던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 성문 밖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지금 숨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살과 피로 인해, 우리가 오늘 여기에 서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은혜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우리를 위해, 죽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는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까 ?
주님께서 원하시면 해결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그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제목: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
일어라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
일어라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 때때로 뒤돌아보며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
일어라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