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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6 2016년9월11일, 누가복음10:25-37(어디까지가 내 이웃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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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21,083回 日時 16-09-22 20:50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드리는 진정한 감사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드리는 감사는,

  나를 매고 있는 모든 사슬들을 끊고, 장벽들을 부수어 버리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또한 우리가 온전히 감사할 때, 우리 이웃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난 8월25일 오전8시40분 경,

  한국 대전시 서구에서 승객 2명을 태우고 택시를 운전하던 택시기사 이모씨(63세)가,

  차량운행 중 갑자기 급성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켜, 그대로 핸들 위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운전자 이씨는,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워 핸들을 조작할 수도 없었고,

  또한 밟고 있던 가속페달에서 자신의 발을 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택시는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대로 큰 사고로 이어질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마침 앞을 달리던 다른 자동차와 충돌해 택시는 도로 중앙에 무사히 멈춰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택시가 멈춘 뒤에 일어났습니다.
  그 택시를 타고 있던 승객들이, 정신을 잃은 운전자 이씨를 그대로 두고,

  자신들의 짐을 챙겨 곧바로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뿐만이 아닙니다.

  두 명의 승객은, 이씨가 쓰러져 있던 운전석에 꽂혀 있던 열쇠를 빼내, 차 뒤의 트렁크 문을 열고,

  골프가방 등의 자신들의 짐을 꺼낸 뒤,

  심장이 멈춰 쓰러진 이씨에 대해 아무런 응급조치나 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한편 정신을 잃은 택시기사 이씨는, 다른 시민의 신고로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

  그 두 명의 승객들은, 도대체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죽어 가는 생명을 내버려두고, 그렇게 도망치듯 가버렸을까요 ?!
  두 명의 승객이 급히 자리를 떠난 이유가, 후에 밝혀졌습니다.
  사고 당시, 그 두 사람은 공항에 가는 공항버스 출발 시각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할 수 없이 다른 택시로 갈아타고,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경찰 조사에서 밝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 두 사람에게는, 어쩌면 눈앞에서 죽어 가는 한 사람의 목숨보다,

  공항버스를 타는 것이 더 귀중한 일이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 한국의 법(法)에서 이 두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法 條項)이 있을까요 ?!

  물론입니다. 전혀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마음 답답하고, 슬픈 일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운전면허에도 벌점제도가 있습니다.
  운전 중 규칙을 위반을 하여, 경찰 등에 적발 될 경우, 위반한 내용에 따라 벌점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신호위반은 벌점 2점입니다.
  그리고 그 벌점의 합계가 6점 이상이 되면, 운전면허가 정지 혹은 취소가 됩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남까지 위험하게 하니까요 !!!


  그런데, 여러분 !

  위반 벌점 중에 가장 높은 벌점이 무엇일까요 ?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음주운전, 마약관련 약품을 섭취한 상태의 운전, 그리고 구호의무위반(救護義務違反)입니다.

  구호의무위반이란 것은, 운전 중 부상을 당하거나,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돌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뺑소니 운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벌점은 음주운전, 마약운전, 구호의무위반, 모두 각각 35점입니다.
  벌점 6점이 면허정지 및 취소니까, 35점은 굉장히 높은 벌점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악질 운전자입니다.

  일본에서 이런 사람은, 초범일 경우 면허 정지 3년이고, 5년 이하의 징역 및 벌금에 처해 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본문25절, "선생님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그렇습니다.

  이 율법사는, 율법(성경에 기록된 법)만 지키면, 구원과 영생(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율법으로 우리의 죄가 씻음 받습니까 ?
  여러분 !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성경말씀 두 곳을 함께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즉,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생도 얻지 못하지요.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되고 말입니다.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여러분 ! 율법의 역할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참고> 몽학선생은 어린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헬라어로 아이(파이스; pais)의 인도자(아고고스; agogos)란 뜻을 지닌 이들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6-16세의 어린아이의 가정교사로서, 초등학문을 가르치며,

  의복, 식사, 행동들을 돌봐주고, 학교에도 데리고 다니는 노예들이었다.
  이와 같이 이들은 스승(고전4:15)이자 후견자로서의 두 역할을 맡고 있었다.

  몽학선생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후견인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아이는 몽학선생에게 순종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가 성인이 되면 몽학선생은 아이에게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하며,

  아들은 본래의 자유로운 신분으로 돌아왔다.

  어리석고 당돌한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따뜻한 마음으로, 그 율법사의 수준에 맞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26절, ".......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이에 율법사가 대답합니다.
  본문27절,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 율법사가 조금은 지혜로운 것은, 율법의 핵심은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서13:10, ".......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그래서 율법을 물었더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28절,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 그러면 살리라"
  그랬더니, 그 율법사가 다시 예수님께 묻습니다.
  본문29절,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
  바로 이 때, 예수님께서 그 유명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자 ! 조금 쉬운 말로 번역된, 표준새번역 성경을 함께 교독하겠습니다.


  본문30절, ".......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본문31절,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본문32절,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서,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본문33절,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본문34절,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본문35절,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하였다"
  본문36절,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까 ?
  물론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관심을, "누가 나의 이웃인가 ?"에게,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 ?"로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 !

  앞서 소개한 택시의 두 승객이, 쓰러져 죽어 가는 택시기사를 내팽개쳐 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까 ?
  그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은 택시기사를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남(他人)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들을 만난 그 사람을,

  자신의 이웃이 아닌, 그저 남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25:4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에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이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매일 매일 우리에게 그 이웃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부디 쓰러진 택시 기사를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떠나버리는 우리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편 여러분 !

  본문의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에게 베푼 친절과 섬김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는 분명 무엇인가 중요한 일로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의 내용을 보면,

  주막 주인에게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기름과 포도주를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에 붓고 싸매는 등

  최선의 치료를 했고, 또 자기의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갔으며, 후속 조치까지 완벽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사마리아 사람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강도 만난 사람을 그토록 정성껏 보살필 수 있었을까요 ?
  이런 감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 근본적인 에너지는 무엇일까요 ?

  본문33절에 그 실마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본문33절,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영어성경KJB, "when he saw him, he had compassion on him."
  일본어 개역성경, "彼を見てかわいそうに思い."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베푼 선행의 원동력은,

  어떤 종교적인 의무감이나, 높은 윤리의식, 혹은 자기 이익을 계산한 자선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그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의 원동력이었고,

  강도 만난 사람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주었던 내적 동기였습니다.


  영어성경KJB에서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compassion'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compassion'은 'com'과 'passion'의 합성어인데, 'passion'의 어원은 라틴어 'paitor'입니다.

  그 뜻은 '함께 겪고, 함께 아파하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기 자신이 강도 만난 사람의 입장에 되어,

  함께 두려워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피 흘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웃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공감(共感)',

  즉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겪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 본문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선행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공감(compassion, 함께 아파하는)의 마음이 있으면,


  첫째, 나귀에서 내려, 어려운 이웃을 향해 가까이 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나귀에서 내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진 것들을 모두 동원하여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강도를 만나 신음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아파한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한 울타리, 그리고 누리고 있는 기득권,

  또한 쾌적한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남이 자신의 자리로 들어오는 것도, 좀처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공감하여, 같은 입장에 서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느끼면,

  주저 없이 그 누군가를, 자기 자신의 공간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님은, 바로 이 마음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둘째, 우리에게 공감의 마음이 있으면, 우리의 나귀에 어려운 이웃을 태워줍니다.


  예 ! 나귀는 작은 동물이어서 누군가를 태우면 나는 거기에 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태우면 나는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아파하고, 함께 느끼면 우리는 나귀에서 내려와 즐겁게 걸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누릴 자리를, 고통 당하는 이웃에게 내어 줍시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셋째, 공감의 마음이 있으면, 상처 입은 사람을 끝까지 책임집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자신의 나귀에 태우고,

  여관으로 데려가 완전히 회복될 때가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대충 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비용도 충분히 지불했습니다.(두 데나리온은 당시 60일 분의 숙박비에 해당됨)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 어떻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것은 강도 만난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힘들어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동경에는 참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곳 긴시쵸에도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마다 특성이 다 있는데,

  저는 우리 교회가 크지 않지만 우리 모든 지체들이 누구에게나 공감해(함께 해) 줄줄 하는,

  진실된 사랑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감(함께 아파하는)의 마음은 착한 사람들, 섬세한 사람들만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의 성품입니다.
  이 공감의 영성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삶의 구석구석에서도, 이 공감의 영성이 발휘되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공감하여 상대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와 성도가 서로 공감하여,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온전한 섬김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직장의 상사와 부하가, 채권자와 채무자가, 한국과 일본이,

  서로 공감의 마음을 가질 때, 그곳에는 온전한 이웃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머무는 모든 곳을, 공감과 사랑으로 물들여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권고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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