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014년9월7일, 누가복음18:9-14(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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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하겠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내 삶이 달라집니다.
마음을 바꾸면,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이 시간 생각을 바꿉시다.
어떤 생각을 마음에 품을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입니다.
사단이 준 생각을 뽑아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중심에 채웁시다.
지난1995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중에서,
데이빗 핀처가 감독하고,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핏트가 주연한 '세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릴러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살인범이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죄'에 해당되는 악을 행한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하는데, 그 수법이 참으로 잔혹하고 엽기적일 뿐 아니라,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서,
경찰이 수사(搜査)에 큰 어려움을 겪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일곱 가지 죄'입니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 죄'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1700년 전인, 초대교회 후반인 4세기 무렵입니다.
당시 교회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일곱 가지 죄를 구별하여,
이것들로부터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일곱 가지 죄는 바로 이것들입니다.
교만(Pride), 질투(Envy), 분노(Wrath), 탐식(Gluttony), 탐욕(Greed),
게으름(Sloth), 음란한 정욕(Lust).
오늘은 이 가운데 '교만(驕慢)'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교만은 모든 죄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유명한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교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사람이 행하는 모든 악한 죄들이, 처음에는 교만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 교만은 참으로 무서운 죄입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18장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교만'의 죄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교만이라는 죄는, 도대체 어떤 죄일까요 ?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교만은 극단적인 자기 중심적 죄악입니다.
자 ! 오늘 본문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9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본문의 교만에 대한 비유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즉 교만한 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하는 것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틀렸다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자기를 존중히 여긴다, 자기를 귀히 여긴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 건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도, 인간의 정신 건강에 있어서,
자존감(自尊感)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입니다. 건강한 프라이드(Pride)는 죄가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귀히 여기는 것은,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닙니다.
건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문제는 자기만 사랑하고, 자기만 귀히 여기고, 자기만 옳다는 것이 죄입니다.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들, 즉,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 우월감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자기만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중상하고 비난하고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일종의 자기 숭배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15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찌롤라노 사보나롤라가,
일정 기간 동안 어느 한 교회로 보냄을 받아, 설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뜰을 산책하던 중,
마리아像 앞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그 石像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는 노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튿날도 산책을 하다 보니,
어제와 같은 시간에 또 그 노부인이 그 石像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 후 사보나롤라가 관심을 가지고 그 부인을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늘 같은 시각에 와서 변함 없이 石像 앞에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귀한 신앙을 가진 분이로구나 !"
그러던 어느 날,
사보나롤라는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친구 수도사와 함께, 교회 뜰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그 노부인은 그 石像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보나롤라가 친구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 내가 저 부인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구먼 !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치나, 꼭 같은 시간에 와서 저렇게 기도를 한단 말이야.
참 신앙심이 대단하지 !"
그랬더니 옆에 있던 친구 수도사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아직 몰랐었나 ? 수십 년 전, 이 교회에 마리아像을 처음 조각할 때,
당시 조각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이 바로 저 부인이었어 !"
"그 후 저 부인은, 그만 크게 교만해지고 말았지 !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자랑하고 또 으스(시)대고 상처를 주었는지 ......"
"결국 사람들은 저 石像에서 하나 둘 떠나가고 말았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부인은 자기 만 옳았지, 다른 이는 다 틀렸고 !"
"저 부인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숭배하고 있는 거야 !"
그렇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대개의 경우,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다 틀립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오직 나 혼자만 옳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매우 귀하다는 것을 인정합시다.
그의 생각과 마음도 귀중한 것임을 인정합시다.
그것이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첫 걸음입니다.
둘째, 교만은 이웃과 나 사이에 벽을 쌓는 죄악입니다.
본문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교만한 바리새인은 기도하는 곳조차 구별해서, 따로 서서 기도합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혼자만 잘났습니다.
더구나 금방 읽은 본문 말씀에, 두 번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입니까 ? 그렇습니다. '같지 아니하고'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과는 완전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렇게 기도한 바리새인이 정말 그렇게 의롭습니까 ?
아니요 !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마태복음23:25-26, "화 있을진저 ....... 바리새인들이여 !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태복음23:2-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여러분 ! 최초의 인간이 범죄해 타락할 때, 우리 인간은 그 속에서 모두 함께 타락했습니다.
고로 나도 죄인이고, 저 사람도 죄인이며,
그러므로, 저 사람 안에 있는 부패함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들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남의 눈 속의 작은 티는 보면서, 내 눈 안의 커다란 들보를 보지 못하는,
매우 커다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남을 비판할 때는, 아주 건설적인 비판이라고 말하면서,
반대로 남이 자기를 충고할 때는, 그것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비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교만한 사람이 가진 대표적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교만한 마음을 멀리 합시다.
교만한 사람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 전체가 고통을 받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한 공동체에 있으면, 그 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문의 바리새인과 같이 벽을 쌓기 때문입니다.
이웃들과 자신 사이에 높은 벽을 쌓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은 이웃과 자신 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 사이를 연결시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항상 낮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다른 이를 섬기셨습니다.
성도여러분 !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명을 감당하셨듯이,
우리도 겸손히 섬겨, 다리 놓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죄악입니다.
본문11-12절,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한글 성경에는 본문에 '나'라는 주어가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훨씬 더 많이 '나'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여러분 ! 생각해 보십시오 ! 이것이 기도입니까 ? 아니면 자기 선전입니까 ?
그렇습니다. 기도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제 바리새인의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선전, 자기 자랑에 몰두하고 있는 꼴불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기도에 있어서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 이 죄인이 주 앞에 왔습니다. 하나님 ! 아시지 않습니까 ?"
"하나님 !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내 속에 있는 부조리, 내가 숨기고 있었던 내 속의 죄악과 허물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도 응답하시고, 기도하는 사람도 변화의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 기도는, 자신의 말들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변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를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여러분 ! 이러한 기도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겠습니까 ?
어떤 신실한 여인이 결혼할 때 자기 신랑과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 매일 잠들기 전에, 꼭 둘이서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하고 자자 !"
새신랑은 믿음이 적었지만, 어쨌든 결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손을 꼭 잡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아내가 기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가끔씩 남편도 몇 마디 기도하고,
그렇게 둘이 손잡고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신랑이 아주 술에 만취해서 들어 왔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그래도 여보 ! 오늘도 약속대로 기도하고 잡시다."
아내가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 보시다시피 오늘밤은 남편이 만취했습니다. 너무 술에 취한 우리 남편을, 용서해 주세요"
그랬더니 이 남편이 술김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보, 주님 앞에 술 취했다고 하면 어떡해. 아프다고 그래, 그냥 아프다고 그러라니까"
오늘 본문의 교만한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우리 보다 더 자세히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있는 세리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
본문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主님께서 내리신 결론은, "바로 그 세리가 의롭다함을 받았다"입니다.
본문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겸손히 이렇게 기도합시다.
"은혜로우신 주님 !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뢰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를 새롭게 하옵소서 !"
"마땅히 지옥 불에 떨어질, 참으로 악한 저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 !
지금은 부활하셔서 보좌의 우편에 계신 주님 !
주님의 그 보혈의 능력으로 저를 씻어주시고,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겸손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자 ! 그렇다면, 교만한 죄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
예 ! 그것은 참으로 무거운 것인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불신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불신자가, 즉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교만하다면,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가 무엇일까요 ?
물론입니다. 그것은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갈 곳은 영원한 지옥 불입니다.
왜냐하면, 교만 한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의 신이요, 오직 자기를 믿고 삽니다.
다음으로 신자(信者)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그것은 하나님의 더 깊은 은혜, 하나님의 더 깊은 축복을 경험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사람은 대적하십니다.
야고보서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끝으로, 어떻게 우리는 이런 교만의 죄를 이겨낼(극복할) 수 있을까요 ?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생을 드렸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렇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나를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만이라는 것은, 우리가 잠깐만 틈을 보여도, 금방 우리 속에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매순간 자신을 점검했습니다.
"내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가 ?" "내가 혹 교만하지 않은가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인간을 파멸에 이끄는 일곱 가지 죄악 중, 교만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교만은 극단적인 자기 중심적 죄악입니다.
둘째, 교만은 이웃과 나 사이에 벽을 쌓는 죄악입니다.
셋째,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죄악입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불신자가 교만하면, 그 사람에게는, 죽음과 그 후에 지옥 불 밖에 없습니다.
신자가 교만하면,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들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항상 겸손합시다.
또한 교만이 우리 속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항상 우리 마음을 살핍시다.
교만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말씀으로 쳐서 복종시킵시다.
무엇보다도, 주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순종합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그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제목: 말씀하시면(김영범 곡)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
오 주님 ! 나를 이끄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