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11월3일, 마태복음11:2-6(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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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3 2013년11월3일, 마태복음11:2-6(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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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679回 日時 13-11-19 15:54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다짐합시다.

  우리 ! 이 타락해 가는 시대에, 새로운 개혁자로 쓰임 받읍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 삶을 단순히 정리하여, 예배 중심으로 삽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정직 합시다.
  작은 희생부터 시작합시다.
 
  오래 전, 미국의 어떤 큰 부자가 다음과 같은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진실로 행복한 분이 있다면, 오셔서 저에게 자신의 행복을 제게 납득시켜 보세요.
  그러면 그분께 100만 불을 드리겠습니다."

  광고 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한 젊은 남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자기의 행복을 설명했습니다.
 "저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을 너무 너무 귀히 여기고 만족하며 사랑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마지못해 하고, 먹고살기 위해 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참으면서 일을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모든 일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100만 불은 마땅히 저의 것입니다."
 
  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기를,
 "나는 불평을 하고 싶어도 불평할 것이 없는 것이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세계 일류대학 박사학위를 소지했고, 유명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좋은 대우도 받고 있고, 학생들도 나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는 더 바랄 것 없는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100만 불은 마땅히 나의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젊은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보이면서 이렇게 자신의 행복을 설명했습니다.
 "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은 재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가 제게 청혼도 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저의 미모를 보고 즐거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100만 불은 마땅히 저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나름대로 "나는 행복하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그 부자가 원하는 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부자는 이러한 답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진정 행복하여 당신의 100만 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온 것은, 행복은 자신이 직접 느끼는 것이지,
  돈으로 남의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러 왔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
  혹시, 무엇인가를 더 가져야만 행복하실 것 같습니까 ?
 
  가끔 말씀드리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친구 집보다 내 집이 넓으면 행복해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친구 남편보다 내 남편이 더 잘생기고, 더 키가 크고, 더구나 월급까지 많으면
  그것을 통해, 꽤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
  참 행복은 비교를 통해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참 이상한 습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이 떡이 더 커 보이는' 습성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의 행복은 절대로 오래 가지 못 합니다.
  아무리 내 것이 좋아도, 내 것 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을 금방 만나기 때문입니다.
  부디 자족하는 믿음을 가져, 범사에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더구나 여러분 !
  지금 나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신앙인 중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およそ女から生まれた者のうち, 洗禮者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なかった.)
 
  또한, 세례 요한은 자족(自足)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3:29-30, "신부(성도)를 취하는 자는 신랑(예수 그리스도)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세례 요한 자신)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세례 요한)는 쇠하여야 하리라"
 
  정말 놀라운 신앙을 가진, 정말 위대한 분입니다.
  더구나, 여러분 ! 이 세례 요한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
  마태복음3:3, "저(세례 요한)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6개월 전에 출생해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복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옴을 직접 체험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3:17)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온 백성에 선포했던 증거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에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것은, 그토록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 세례 요한이, 신앙적으로 크게 흔들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보면,
  아마도 세례 요한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의심이 물밀 듯이 밀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의심하니 평안함이 없고 평안함이 없으니, 참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묻습니다.
  본문3절,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여러분 !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
  이미 앞에서 소개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직접 선포했던 세례 요한,
  더구나 하나님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보내신 그 세례 요한이,
  이런 당돌한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세례요한의 의심, 그의 흔들림은 우리에게는 도리어 큰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때때로 의심과 흔들림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례 요한같이 위대한 분에게 의심이 생겼으면, 우리에게도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아주 좋은 책을 많이 쓰는 기독작가중 한 사람인 필립 얀시가 동역자와 공저한 책,
 [내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내게 들려주지 않았던 그 무엇들]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실재(實在)하시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와 같았다. 의심이 항상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심은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의심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그 의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의심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의심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사실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식의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는 의문은 가지지만,
  그에 대해 확신한 답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하나님이 계셔도 괜찮고 안 계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신의 인간관계를 성장시키는 곳이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분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에 대해 의심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그 의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는 의심입니다.
  이 의심은, 궁극적으로 더 큰 이해와 더 큰 믿음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을 하는 사람은, 만약 의심이 생기면 책을 읽고, 또 선배에게 묻고 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그 의심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심이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것이면, 목사님과 상담하고, 말씀을 간절히 묵상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이 의심을 풀 수 있게 해 주세요. 성령님 깨우침을 주세요 !"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사실들을 보면,
  때때로 선인(善人)보다 악인(惡人)이 더욱 더 형통하고,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는 사람들과 세계를 지배할 때가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자들보다, 악한 자들이 더욱 더 잘 삽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악인에게 지배당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을 놓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 것인가 ?"
 "만약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정말 공의(公義)로운 분이신가 ?"
 
  시편73편을 기록한 아삽이라는 분도 이런 의심을 했습니다.
  1절, "하나님이 참으로 .......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절,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절,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절,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절,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절,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절,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여기에서 아삽은, 의심을 지나, 질투에 가까운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삽은 이 의심을 어디에서 해결 받았습니까 ?

  시편73:16-1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6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절,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아삽의 의심은,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없어졌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도 때때로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의심이 우리의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수십 년 간의 신앙생활이 헛된 것처럼 보여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냥 견디시겠습니까 ? 이래도 저래도 좋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습관적인 신앙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의심이 찾아올 때,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그분으로부터 확신을 얻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 속에서 온전한 기쁨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세례 요한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主께서 하시는 일이 자기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 즉, '오실 그분 !' 그분이 오시면, 로마의 압제와 세상의 온갖 고통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고,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른 바 메시아 대망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당시 대다수 유대인들의 소망이었고, 세례 요한도 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도 이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상에 의하면, 메시아는 오셔서 완전히 승리하셔야 합니다.
  압제된 자신들에게 화평을 주고, 번영을 주고, 정치적 혁명을 일으켜 개혁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고 기다린 메시아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해야 할 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일을 하실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천국을 건설하시고, 정의사회를 구현하시 위해,
  빨리 혁명을 일으키셔야 하는데, 이것을 안 하시는 겁니다.
  더구나 수많은 시간 동안, 아픈 사람들만 돌보아 주고 계시고, 병든 자만 낫게 해주고 계시며,
  가끔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만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우리가 그 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은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핵심은 뒤로하고,
  신앙을 가진 후 자신들이 얻을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이나 가룟 유다 등의 사람은 혁명을 통한 천국 건설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은 다음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통해 사업의 성공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통해 좋은 학교의 합격과 좋은 직장의 취직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통해 좋은 배우자 얻기를,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통해 인생의 성공(명예, 돈, 권력)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
  즉 위의 것들을 얻지 못하면 서서히 의심이 일어납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처럼 말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영광의 메시아를 바라봤습니다. 그것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사랑의 메시아, 희생의 메시아, 고난의 메시아였습니다.
  자신이 기대하고 생각했던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좀처럼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옳다면 다른 사람은 그것에 대해 틀리다고 정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대화가 안되고, 타협이 안되고, 상대방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까지 우리의 주장만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가장 옳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절대 진리요, 그분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는 것이 바로 온전한 신앙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평생 흔들림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항상 같을 수 없습니다.
  또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나를 향한 내 목적이 항상 같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하나님 말씀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꿈은 이러한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한 소개한 시편 기자 아삽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로소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 ! 내 생각만이 맞는 것이 아니었구나 !"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구나 !"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것이 아닌, 보다 나은 길을 준비해 주셨구나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런 깨달음의 기쁨이 우리에게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5절,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렇습니다.
  듣고 본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참 무섭습니다.
  왜 무섭습니까 ?
  세례 요한도 이것은 알았거든요.
  사실 세례 요한이 원했던 것은, "언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합니까 ?"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은 혁명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내가 메시아이니 네 생각을 버리고 내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너 세례 요한의 방법이 아닌,
  나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니 너는 무조건(無條件)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 무겁습니다.
  본문6절,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방법이, 때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실족함을 줄 정도로
  이해가 안될 수도 있지만, 그저 순종하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시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여러분의 길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
  기대했던 평안한 신앙생활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까 ?
  그래서 혹 신앙을 잃을 위기까지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

  물론입니다. 당연히 정상입니다. 의심과 불평, 질투는 신앙인에게도 찾아옵니다.
  우리 아삽처럼 성소로 나아와 기도합시다. 교회에 무릎 꿇읍시다.
  본문의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께 직접 물읍시다.
  하나님께서는 아삽에게 깨우쳐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분명 깨우침을 주실 것입니다.
 
  의심을 이겨내고, 끝내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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