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년9월8일, 고린도후서1:18-20(‘예’하고 ‘아니라’함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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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서로 권면(勸勉)합시다.
세상 !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에, 우리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우리 함께,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맑고 깨끗한 빛이 됩시다.
어느 기독교인이 말(馬)을 키우면서, 그 말에게 '할렐루야'와 '아멘'을 가르쳤습니다.
'할렐루야'하면 출발하고 '아멘'하면 서도록 했습니다.
그 말은 아주 기특하여, 주인의 뜻대로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 말은 아주 기특하여, 주인의 뜻대로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어느 날 이웃 사람이, 그 말을 좀 타볼 수 없겠느냐고 청했습니다.
말 주인은 선뜻 허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했습니다.
"이 말(馬)은 '할렐루야'라고 외쳐야 출발하고, '아멘'이라 외쳐야 멈춥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 할렐루∼야 !'하면 매우 빨리 달리고, '아멘' '아∼멘'하면 급히 멈춥니다.
이것만큼은 꼭 잊지 마십시오 !"
그 사람은 잘 알겠다고 하고, 말을 힘껏 몰아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습니다.
어느 덧 말은 마을의 가장 높은 동산 위에 도착했습니다.
그 동산 너머에는 비탈길이 이어지고, 그 비탈길 끝에는 낭떠러지 절벽이 있었습니다.
그 동산 너머에는 비탈길이 이어지고, 그 비탈길 끝에는 낭떠러지 절벽이 있었습니다.
말은 순식간에 그 비탈길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이제 말은 탄 그 사람은 말을 세워야 했는데, 글쎄 '아멘'이라는 말이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이제 말은 탄 그 사람은 말을 세워야 했는데, 글쎄 '아멘'이라는 말이 생각나질 않았습니다.
이제 낭떠러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안절부절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멘 !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말이 절벽 바로 앞에서 급히 멈춰 섰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 너무나 기분 좋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 너무나 기분 좋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
여러분 ! 그 사람과 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여러분 ! 그 사람과 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 기독교인들을 말할 때, '할렐루야'와 '아멘'이라는 말로 칭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도 할렐루야야 !"
그들은 '할렐루야'와 '아멘'이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적인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할렐루야'와 '아멘'이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적인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히브리어 '할렐루야'는 무슨 뜻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하고,
또 찬양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 중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황소를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진정한 찬양 드리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사야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더구나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이사야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가 우리의 영과 몸과 마음과 목소리로,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에 친히 임재(臨在)하셔서,
우리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고,
또한 우리로 하나님 깊이 느끼게 하시며,
더구나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서로 '할렐루야'하는 것은 귀합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권유하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 ! 우리 옆 사람에게 외칩시다. 아니 권면합시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 힘껏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
자 ! 우리 옆 사람에게 외칩시다. 아니 권면합시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 힘껏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
자 ! 다음으로 헬라어 '아멘'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
예 !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뜻이기 때문에, 기도가 끝나면 모두 '아멘'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뜻이기 때문에, 기도가 끝나면 모두 '아멘'하는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입니다.
또한 '아멘'은,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즉, '아멘'의 눈은 '긍정적인 눈'이고, 또한 '따뜻한 눈'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의 눈을 가진 지체들이 교회 안에 많으면,
즉, '아멘'의 눈은 '긍정적인 눈'이고, 또한 '따뜻한 눈'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의 눈을 가진 지체들이 교회 안에 많으면,
그 교회는 따뜻한 교회, 협력하는 교회, 격려하는 교회가 됩니다.
또한 '아멘'은, 우리의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내 앞에 다가온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피고,
내 앞에 다가온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피고,
하나님 안에서 나아갈 길을 찾습니다. 이것이 '아멘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아멘'이라는 말씀을 참 자주 하셨습니다.
특히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시작하실 때,
특히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메시지를 시작하실 때,
'아멘, 아멘'하면서 시작하신 경우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아멘, 아멘'은, 우리 한글성경에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씀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아멘, 아멘'이라는 말씀이 25번이나 나타납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아멘, 아멘'이라는 말씀이 25번이나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요한복음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요한복음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아멘'의 전문가이십니다.
항상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아멘'의 전문가가 됩시다.
자 ! 옆의 지체들과도 서로 축복하며, '아멘, 아∼멘'합시다.
"당신이 '아멘'의 전문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아∼멘 !"
자 ! 옆의 지체들과도 서로 축복하며, '아멘, 아∼멘'합시다.
"당신이 '아멘'의 전문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아멘 ! 아∼멘 !"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의 '아멘(예)'하시는 삶이 나타납니다.
본문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본문19절,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항상 '아멘'으로 순종하셨음 말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아멘 아∼멘 !"하는 사람은,
'아멘'의 축복, 즉 이루어지는 축복, 응답되는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은, '아니요', '싫어요', '다음 에요', 이런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좀처럼 '아멘'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왜 그렇게 마음에 안 들고, 싫은 일들이 많은지,
남들이 하는 것은 모두가 틀려 보이는 지, 좀처럼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격려하는 글, 찬성하는 글도 많지만,
오히려 반대하는 글, "당신이 틀렸소"하고 비판하는 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성도들은 긍정적인 '아∼멘'의 사람입니까 ? 아니면 부정적인 '노∼멘'의 사람입니까 ?
우리 결코 '아멘'의 사람이 될지언정, '노멘'의 사람은 되지 맙시다.
우리 결코 '아멘'의 사람이 될지언정, '노멘'의 사람은 되지 맙시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는 성령에 이끌려 말을 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 비판하는 말이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순종과 위로, 격려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항상 소망하며, 아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틀리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온갖 고난과 환란조차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언제나 틀리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온갖 고난과 환란조차도,
사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사랑의 디딤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아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도,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아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도,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멘'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가 자주 찬양하는 찬송가449장(통일찬송가377장)의 가사처럼,
우리 순종하며, '아멘'하며 삽시다. 그것이 복된 길입니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오늘 본문18절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하는 말씀에서,
'미쁘시니라'는 단어는 헬라어 '피스토스'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피스토스'는 사업의 거래나 공적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이 '피스토스'는 사업의 거래나 공적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즉, 정직하고, 확실하며, 변함 없다는 말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아∼멘'을 심고, 긍정을 심는 사람은, 형통과 기쁨과 감사를 거둡니다.
그러나 노∼멘을 심고, 비판과 부정을 심는 사람은, 분명 비판과 부정과 슬픔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청주 청석교회에 조동식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여덟 째 중 막내입니다. 어머니가 44살에 조 집사님을 낳았습니다.
조 집사님의 어머니는 아들이 귀한 집에 시집을 가,
여덟 째 중 막내입니다. 어머니가 44살에 조 집사님을 낳았습니다.
조 집사님의 어머니는 아들이 귀한 집에 시집을 가,
맏아들을 얻고 계속 딸이어서 아들을 하나 더 얻기 위해 일곱 째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맏아들이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맏아들이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조 집사님 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목사님께 갔습니다.
"목사님 ! 우리 집안에는 아들이 참 귀합니다.
우리 며느리가 꼭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축복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네 ! 목사님 !"
그래서 목사님이 새댁에게 안수기도를 하시던 중 "아들을 나을지어다"하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새댁에게 안수기도를 하시던 중 "아들을 나을지어다"하고 축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가 창피해서 '아멘'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시어머니가 '아∼멘'했습니다.
여러분 ! 그로부터 1년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멘둥이'가 된 것입니다.
현재 대학교수인 조동식집사님은 지금도 이렇게 고백한다고 합니다.
"나는 아멘둥이입니다."
"그때 우리 어머니가 '아∼멘'하지 않았으면, 나는 세상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멘'을 심으면, '아멘'의 응답을 거두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한국의 한 회사의 광고문구를 소개합니다.
"매일 아침 만원버스나 지하철로 힘들게 출근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닦아야 할 창이 있고, 고쳐야 할 문이 있다면, 내가 사는 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세탁해야 할 옷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면, 내게 옷이 많다는 것입니다."
"연일 많은 일로 지쳐 있다면, 내가 회사와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메일이 넘쳐 난다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온 몸이 뻐근하고 허리가 쑤시면, 지금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매일 아침 만원버스나 지하철로 힘들게 출근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닦아야 할 창이 있고, 고쳐야 할 문이 있다면, 내가 사는 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세탁해야 할 옷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면, 내게 옷이 많다는 것입니다."
"연일 많은 일로 지쳐 있다면, 내가 회사와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메일이 넘쳐 난다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온 몸이 뻐근하고 허리가 쑤시면, 지금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감사를 심읍시다. 감사가 넘칠 줄 믿습니다.
자주 소개하는 민수기13장의 사건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행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행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되는 험난한 광야 길에 점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이런 의심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 살 가나안 땅이, 과연 약속대로 축복의 땅인가 ?"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려는, 결국 가나안 땅의 정탐을 추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가 들어가 살 가나안 땅이, 과연 약속대로 축복의 땅인가 ?"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려는, 결국 가나안 땅의 정탐을 추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자신을 의지하지 못하는, 불신앙을 바탕으로 한 정탐꾼 파견 요청이었지만,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정탐꾼은 각 지파 당 1명씩, 총12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탐할 길을 지정해 주고, 각 성읍과 주민들의 전투력을 탐지할 것과,
정탐꾼은 각 지파 당 1명씩, 총12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탐할 길을 지정해 주고, 각 성읍과 주민들의 전투력을 탐지할 것과,
각 지역의 토양 상태를 알아보게 하는 등의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목적은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하여 갈 축복된 땅에 대한, 모든 의심을 말끔히 씻어주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봐라 !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냐 !!!"
뭐, 이러신 것이었습니다.
"봐라 ! 내가 너희를 위해 준비한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냐 !!!"
뭐, 이러신 것이었습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은 40일에 걸쳐 가나안 땅을 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정탐한 내용을 보고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문제는 열두 정탐꾼의 보고가 일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 정탐한 내용을 보고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문제는 열두 정탐꾼의 보고가 일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10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이며 아주 비관적인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실망시켰습니다.
물론 두 사람은 아주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
열 명의 정탐꾼과 나머지 두 명의 정탐꾼이 각각 다른 길로 가나안 땅을 돌아보았습니까 ?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열두 명의 모든 정탐꾼들은, 똑같은 상황을 똑같은 상태에서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보고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열두 명의 모든 정탐꾼들은, 똑같은 상황을 똑같은 상태에서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보고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긍정적인 신앙과, 부정적인 신앙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명의 정탐꾼들 즉,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엇을 긍정하는 신앙을 가졌을까요 ?
물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아멘의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민수기14:7-8절, ".......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렇습니다. 정탐꾼 중에 긍정적인 두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의 생각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지 못 들어갈지의 여부가 다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있었습니다.
즉, 자신들의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인정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즉, 자신들의 모든 미래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인정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들어가 살게될 집이, 높은 언덕에 있고, 또 담이 너무나 높고, 관리할 마당이 너무 넓고,
우리가 들어가 살게될 집이, 높은 언덕에 있고, 또 담이 너무나 높고, 관리할 마당이 너무 넓고,
대문의 잠금 장치가 너무 견고하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사 딸린 자동차를 주시고, 넓은 집과 마당을 관리할 관리인을 주시며,
든든한 대문을 열고 들어갈 열쇠를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불평하지 말고, '아멘, 아∼멘'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을이 시작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110여일 남은 금년의 삶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막고있는 수많은 장벽들이, 결코 우리의 방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장벽들보다 훨씬 크고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110여일 남은 금년의 삶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막고있는 수많은 장벽들이, 결코 우리의 방해물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 장벽들보다 훨씬 크고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향의 성도들이 올 가을,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수 있는 것은,
세상 상황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갈렙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갈렙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본향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꿇읍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사, 올 가을 ! 흘러 넘치도록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사, 올 가을 ! 흘러 넘치도록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용기를 내십시오.
금번 2013년도 가을은 어느 때보다 풍성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긍정적으로 살아갑시다. "아멘"을 생활화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용기를 내십시오.
금번 2013년도 가을은 어느 때보다 풍성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긍정적으로 살아갑시다. "아멘"을 생활화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아멘"의 복으로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