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8월26일, 아모스5:21-2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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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2 2012년8월26일, 아모스5:21-2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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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4,744回 日時 12-08-31 08:47

本文

  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잠시도 의로운 길을 걸을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십니까 ?
  아마도 이 무더운 계절에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당연히 겨울을 말씀하시겠지요.
  저도 겨울이 좋습니다.
  제가 겨울에 태어난 것도 있지만,
  저의 과거 추억을 떠올려 보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겨울에 많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와의 추억도 겨울에 참 많았습니다.
  이른 겨울 새벽, 새벽예배를 드린 후
  서울 지하철2호선 안에서의 데이트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평소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다 주셨던, 특제(特製) 썰매를 타고
  어름 판 위를 씽씽 달릴 때,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참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겨울 토끼 사냥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
  눈밭에서의 토끼들은 참 빠릅니다.
  그래서 눈이 하얗게 덮인 산에서 토끼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토끼를 잡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산등성이 양쪽에서 골짜기로 토끼를 모는 겁니다.
  한 번에 대량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인데 문제는 사람이 많아야 된다는 겁니다.

  또 한가지 방법은 토끼가 잘 다니는 길에 올무를 놓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토끼는 빠르고 잽싸기로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토끼는 자기가 다니는 길로만 다닙니다.
  평소에 다니는 길이 아니면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끼 발자국이 보이면 그 길목에다가 올무를 둡니다.
  다음 날 가보면, 대개의 경우 토끼가 걸려 있습니다.
  토끼사냥을 잘 하는 분들은 그 길목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왜 토끼들은 바보같이 다니는 길로만 다녀, 잡히고 말까요 ?"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이상한 일은 토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 숨바꼭질하는 것을 보면, 대개 숨는 곳에 또 숨습니다.
  우리들이  까끔 하는 가위 바위 보도 그렇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항상 먼저 내는 것을 꼭 내고 맙니다.
  저도 맨 처음에는 거의 '가위'내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잘못된 쪽으로 익숙해 져버린 것이 있다면,
  꼭 바꿔주시는 主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이야기입니다.
  목자이자, 농부였던 아모스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에게,
  당시 백성들에게는 익숙해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던
  한 가지를 바꾸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제사, 즉 예배였습니다.
  여러분 ! 예배드리는 것이 서투십니까 ? 아니면 익숙하십니까 ?

  지금 우리들이 예배에 익숙해 있는 것처럼,
  본문의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도 예배에 매우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 때로부터 천 년 이상 예배를 드려오고 있었던,
  예배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그들이 가장 잘 알고있다고 잘 하고 있다고 느꼈던 예배의 잘못된 부분들을
  통렬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아마도 백성들은 아모스의 지적에 이렇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잘 드리고 있는 이 예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까 ?"
  오늘 날 우리들도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잘 드리고 있는 예배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

  유명한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모든 예배하는 사람들을 연극을 보는 관객과 무대 위의 연극 배우로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극에서 관객은 연극을 보는 자요, 무대 위의 배우는 연극을 드리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할 때도 예배를 보는 자와 예배를 드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들이 잘 아는, 요한복음4장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예배에 대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4:23,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父はこのように禮拜する者を求めておられる.)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모스 때나, 예수님 때나, 그리고 지금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본문22절을 보세요. 참으로 충격적인 하나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선지자 당시, 여러 백성들을 통해 수많은 예배가 드려졌지만,
  그 예배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예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금식하며, 소 잡고 양 잡아서
  나름대로 힘껏 번제를 드렸지만, 거기엔 그들의 中心이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23절,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요즘말로 하면, 찬양대의 찬양과, 피아노와 모든 악기 연주도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우리 신분이나 외모, 또는 예배 형식이나 절차가 아닌,
  오직 우리의 中心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중심을 다해 드리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가장 초창기로부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를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였고,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歷史 속에서도
  바른 예배드림을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사야 시대(이사야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미가 시대(미가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말라기 시대(말라기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드리는 예배가
  너무도 잘못된 예배인 것을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도 주일, 평일 구분 할 것 없이, 이 땅에서는 수많은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아닙니다.

  자 ! 그렇다면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예배일까요 ?
  혹,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 잘 못된 것은 없을까요 ?

  앞에서 소개한 잘못된 예배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에, 세 가지가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그들의 예배는 마음이 빠진 예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마가복음7:6, "이사야가 너희 ....... 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렇습니다.
  말로만 아무리 "주님 ! 영광 받으소서 !"하면 뭐합니까 ?
  가장 중요한 예배자의 마음이 빠졌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
  마음이 빠졌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우리들은 흔히 마음이라고 하면 감정을 생각합니다.
  마음이 뭉클 하다든지 소름이 끼친다든가 그런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感情的인 부분보다는 知的인 요소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
  마가복음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입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의 모든 감정(heart)과, 너의 모든 혼(soul)과, 너의 모든 마음(mind)과,
  너의 모든 힘(strength)을 다하여 主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 영어 성경에서의 'heart'(심장, 감정, 기분)가
  우리 성경에서는 '마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살펴 볼 때,
  우리 성경에서는 '뜻'으로 번역된, 'mind'(知性, 知力)가
  실은 '마음'에 더욱 가깝습니다.
  실제로, 'mind'는 마음 중에서도, 지성과 지력에 가까운 마음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루디아가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14절을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여셨다는 것은,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에서 마음은,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각(自覺)이나 발견 같은 지적(知的)인 요소입니다.

  요한복음17:3절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생(永生, 구원)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永遠の命とは,唯一のまことの神であられるあなたと,
  あなたのお遣わしになったイエス·キリストを知ることです.)

  그렇습니다.
  영생은 우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知的인 요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코 단순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마음이 빠진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결핍된 예배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모르고 예배당에 앉아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모르는 대상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습니까 ?
  없지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분이 뭘 기뻐하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존경하고 어떻게 예배합니까 ?
  가인이 실패한 예배를 드렸던 것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과
  오랜 신앙생활한지 오래 된 분은
  그 예배의 모습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예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예배는 매주 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질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어느 정도나 알고 계십니까 ?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
  만약, 잘 모른다 대답하시면, 우리는 마음이 빠진 예배를 드리기 쉽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한 두 번 왔다가 오지 않습니까 ?
  아니 어떤 사람들은 한 동안 교회를 다니다가 갑자기 그만둡니까 ?
  그렇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세상사람들도 교회에 약간의 관심과 매력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적인 고통과 갈등 때문에 어떻게 위안을 얻어볼까 하고
  교회를 다녀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고,
  성경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울 마음이 없으면,
  좀처럼 온전한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십니까 ?
  성경을, 예수님을 알아가고 싶은 쪽입니까 ? 아닙니까 ?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주일예배 외에도,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각종 성경공부 등의 시간을 주셨습니까 ?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늘려 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天地神明에게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물을 떠놓고,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
  그렇게 해야 천지신명이 감동해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혹시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즉, 내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이 받으시겠지 하는 신앙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전한 예배, 온전한 신앙은 내 나름대로가 아니라,
  성경말씀대로 인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
  온전한 예배, 마음과 중심을 다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그들의 예배는 양심이 빠진 예배였습니다.

  아모스2:8절에 보면, 양심 없는 예배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典當)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神殿)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彼らは, すべての祭壇のそばで, 質に取った着物の上に橫たわり,
  罰金で取り立てたぶどう酒を彼らの神の宮で飮んでいる.)
 
  예배자들이, 제단 옆에서 전당(典當)잡은 옷을 깔고 누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법은, 아무리 전당잡은 옷이라도, 겉옷은 저녁때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 옷이 이불이었고 요였기 때문입니다.
  즉, 추운 밤에 겉옷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겉옷을 돌려주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당잡은 옷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은 이웃에게 자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는 자비를 구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속에는 악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경건한 척 하고, 은혜 받는 척 합니다.
  도무지 양심이라고는 찾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한 주간을 살면서 결코 죄와 무관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죄 짓고 삽니다.
  저를 비롯한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죄악된 우리는 깨끗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일까요 ?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결한 예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회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죄인이었던 다윗은 시편51:16-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たとい私がささげても, まことに, あなたはいけにえを喜ばれません.
  全燒のいけにえを, 望まれません.
  神へのいけにえは碎かれたたましい. 碎かれた, 悔いた心.
  神よ. あなたは, それをさげすまれません.)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한 주간에 지은 자신의 죄로 통회하는 마음이 있는 예배,
  바로 그 예배가 양심이 살아 있는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자신의 죄로 통회하셨습니까 ?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두려워서,
  남들이 보건 말건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눈물 흘리는 그 양심이 있었습니까 ?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지나간 일주일에 대해서 통탄해 하고 참으로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이
  한 자락이라도 있었습니까 ?

  여러분 !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만약 그런 눈물이 있다면, 주일 날, 언제 그런 기도를 하시나요 ?

  물론 예배 대표 기도자의 기도에는 회개의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기도로 여러분의 한 주간의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까 ?
  아니지요, 자기 자신이 회개하며 기도해야지요.
  그렇다면, 언제 참회하시나요 ?
  언제 그러한 간절한 회개기도를 드리시나요 ?

  사랑하는 여러분 !
  왜 우리가 예배 시간 전에 일찍 와서 기도해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한 주간의 죄를 고백하며, 양심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에 앞서서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있도록 통회해야 합니다.
  그 예배야말로 주님이 받으실 예배입니다.

  예배에 앞서 우선 하나님께 일찍 나아와, 자신의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양심이 살아 있는 마음으로, 중심을 다해 예배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셋째, 그들의 예배는 순종이 빠진 예배였습니다.

  순종이 빠진 예배란 예배와 삶이 일치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24절,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公義の水のように, 正義をいつも水の流れる川のように, 流れさせよ.)
  우리의 삶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냐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예배는
  예배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2:1-2절을 보겠습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自分の體を神に喜ばれる聖なる生けるいけにえとして捧げなさい.
  これこそ, あなたがたのなすべき禮拜です.
  あなたがたはこの世に倣ってはなりません.
  むしろ, 心を新たにして自分を變えていただき,
  何が神の御心であるか, 何が善いことで, 神に喜ばれ,
  また完全なことであるかをわきまえるようになりなさい."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물론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를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 역시
  드리는 예배와 내 삶이 일치가 되도록 뼈를 깎는 신앙의 경주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오늘 말씀대로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리는" 모습이 되기까지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저 예배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그 예배를 통해 주신 말씀과 은혜대로 살지 않는 다면,
  그 예배는 이미 죽은 예배인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익숙한 일이 사실은 많이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스스로 자신을 볼 때도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 성경을 펼쳐도 잘 모르는 말씀이 너무나 많고,
  또 내 양심을 봐도 오염된 부분이 많으며,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의 내 삶이 다른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게는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모든 것은 정결케 되고,
  또한 그러한 상한 심령의 예배를 주님은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의 삶이 모순투성이라도
  십자가 때문에 그 예배는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제부터 예배드릴 때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결단은 매 예배시간마다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도 분명히 확신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예배로도 우리의 생애는 놀랍게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놀라운 일이 가능할까요 ?
  그것은, 지금도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당신을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고,
  또 그 사람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받으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폭포수처럼 넘치게 쏟아 부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마음을 다해 예배드릴 때, 우리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예배드릴 때, 죄 사함 받는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다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을 앎으로 드리는 중심을 다한 예배,
  양심이 담긴 회개의 예배,
  그리고 말씀대로 따르는 순종의 예배를 드립시다.

  오늘부터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서
  깊이, 더 새로운 예배를 드림으로,
  더욱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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