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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1 2011년11월13일, 누가복음3:7-14, 21-22(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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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2,438回 日時 11-11-14 23:11

本文

  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을, '남편 사랑 받는 것'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바꾼
  레아를 본받아, 우리도 거룩한 삶의 목표를 찾읍시다.

  지금 당신이 가장 힘쓰고 애쓰고 있는 일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송, 감사가 항상 끊이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 세례(洗禮)가 무엇이지요 ?
  한국어 사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입교(入敎)하는 사람에게, 모든 죄악을 씻는 표시로 베푸는 의식"

  일본어 사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キリスト敎徒となるために敎會が執行する儀式.
  全身を水にひたすか, または頭部に水を注ぐことによって罪を洗い淸め,
  神の子として新しい生命を與えられる證(あかし)とする."

  장로교회의 12신조(信條)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음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표적과 인(印)침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서,
  정식 기독교인이 되는 의식을 지난 2천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두 가지인데,
  침례교나 순복음 교회처럼 온 몸을 완전히 물에 잠기게 하는 방법도 있고,
  우리 장로교나 감리교처럼 머리에 물을 조금 얹어 세례를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야 어떻든 그 의미는 똑같습니다. '구원의 표'입니다.
  베드로전서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될 것은,
  세례가 '구원의 표'라고 하는 것은,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세례가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세례가 '구원의 표'가 되는 것이지,
  믿음 없는 세례는 무의미한 의식뿐이라는 것입니다.

  자 ! 지금부터 오늘의 본문 말씀을 설명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기 시작하자, 온 유대 백성들이 화들짝 놀라고
  크게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리와 함께 살아왔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리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하박국, 말라기 등의 외침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의 소리를 다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소리가 나름대로의 힘이 되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강단에서 외쳐지는 말씀들에 다 순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씀으로 힘을 얻고 사는 것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선지자를 통해 외쳐지는 하나님의 소리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하나님의 소리가 딱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끝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약 400년 간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0년 동안이나 선지자를 통해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대 광야에 선지자 세례 요한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꿀)을 먹는 등, 선지자다운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소리를 향해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자 !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 외치게 하신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

  마태복음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는 복잡하지도 않고 길지도 않았습니다.
  딱 한 마디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런데도 오랫동안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당시의 기득권 세력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까지
  나와서 그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나아 온 백성들을 향해 더욱더 강하게 외칩니다.
  본문7-8절,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본문9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참으로 가슴이 떨리고, 눈이 팍 떠지는 강력한 말씀이었습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세례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본문10절,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에 세례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11절, 일반 백성들에게는 ->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본문13절, 세리에게는 ->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본문14절, 군인에게는 -> "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말씀을 따라 광야로 나온 백성들은, 이러한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앞다퉈서 회개하며,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례 요한이 베푼 세례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세례 받은 자들은 과거의 모습대로 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훗날 이 부분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로마서6: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장사되고,
  함께 부활해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기 전의 우리의 모습과 세례 받은 후의 우리의 모습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는 것이고, 같아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후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특별히 세례 교인여러분 !
  우리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세례 교인입니다.
  세례 교인은 옛 습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성품들로
  자기 자신의 새 습관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
  습관을 좇아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항상 기도합시다.
  범사에 하나님 뜻을 최우선 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 뜻을 최우선하며 삽시다.
  예수님처럼 겸손합시다.
  예수님처럼 사랑합시다.

  그것이 바로 세례 받은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이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렇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 참으로 뜻밖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세례의 의미는 '구원의 표'이며, 죄를 씻는 의식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에게 구원이 필요합니까 ?
  아니지요.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지 얻는 분이 아닙니다.
  또 묻습니다. 예수님에게 죄를 씻는 것이 필요합니까 ?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았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말립니다.
  마태복음3: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래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다시 세례를 요청합니다.
  결국 요한은 할 수 없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예수님은 세례를 굳이 받으셨을까요 ?

  자 !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것은 저주아래 놓인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하루 하루를 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과 죄인들을 동일시하셨고,
  자신과 연약한 인간들을 하나로 여기셨습니다.

  그렇게 죄인의 위치에 당신 자신을 항상 두셨으며,
  그렇게 연약한 인생들의 삶의 자리에 당신 자신을 이끄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모습을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사야53:12,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죄인을 사랑하셨기에, 자신이 직접 인간이 되셨고,
  죄인의 자리에 함께 하셨습니다.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세례 받기 위해 줄을 서셨고,
  또한 세례를 받으심으로, 더욱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세례는 사랑이며, 섬김이며, 낮아지심이었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도 바로 세례가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 세례 받았습니까 ?
  세례 교인이십니까 ?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사랑합시다.
  예수님처럼 섬깁시다.
  예수님처럼 더욱 낮아집시다.
  예수님처럼 낮고 천하고 연약하고 외로운 사람 옆에 가서 우리도 섭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를 우리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의 세례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것이 언제일까요 ?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은밀히 청탁을 합니다.
  마가복음10:37,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때 두 제자는 영문도 모르고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받을 그 세례는 인간으로서는 받을 수 없는 피의 세례였고,
  저주의 세례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세례는, 요단강에서 시작되어서,
  연약한 자들의 삶의 현장과 마음을 거쳐,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마쳐진, 바로 그러한 세례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 삼으시고 십자가에 무참하게 죽으심으로
  그 분의 세례는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진짜 세례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중, 다른 것은 잊으시더라도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십시오.
  허접한 무리들 가운데 그들과 똑같이 줄 서 계신 예수님을 그려보십시오.
  그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새삼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한 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분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지금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높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한 촌부의 모습으로 세례 받는 줄에 초라하게 서서,
  당신 차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크고 놀라운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겸손과 사랑과 따뜻함이 보이십니까 ?
  바로 이런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겸손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세례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고,
  더욱이 피의 세례를 받으실 아무 이유도 없는 분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바로 이 예수님의 세례가
  요단강에서 시작되어,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끝이 난 것이라면,
  우리가 받아야할 세례도 분명합니다.
  우리 세례 역시, 요단강의 섬김과 낮아짐을 거쳐, 골고다의 희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
  지금 힘드십니까 ?
  혹 외로우십니까 ?
  혹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습니까 ?
  혹 미래가 걱정됩니까 ?
  그렇다면, 십자가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 십자가 속에 비춰지고 있는, 당신을 향한 주님의 계획을
  당신은 확실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한평생 크신 사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르겠다는 분이 계십니까 ?
  십자가 앞으로 나가십시오.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잠잠히 따라가 보십시오.
  그러면 그 끝에서 분명, 그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한 사랑의 십자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까 ?
  십자가 앞으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신음을 들어보십시오.
  그 신음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고, 나의 허물 때문이었음을 금방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없는 위로와 평안이 우리 예수님께는 있습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가서 그분 앞에 모든 고통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그 고통을 모두 대신 담당하시고,
  깊은 평안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이 모두를 체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례입니다.
  이미 세례 받은 모두에게, 그리고 앞으로 세례 받으실 모두에게,
  이 세례의 은총이 가득히 넘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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