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011년11월6일, 창세기29:31-35(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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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고백합시다.
종교개혁가들이 이루어낸 예배의 개혁을 우리도 이루어내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립시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배합시다. 내가 아는 하나님을 입술과 마음으로 고백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합시다.
야곱이 아직 거듭나지 못했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형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약 800km나 떨어진 외갓집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피신한 그 외갓집에서, 두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훗날 야곱의 아내가 된 레아와 라헬입니다.
레아와 라헬은 친자매간으로, 야곱과는 외사촌간이었습니다.
성경은 레아와 라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창세기29: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우선, 레아는 안력이 부족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안력이 부족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에네 라코트'인데, '총기가 없는 눈(마음)' 혹은 '유순한 눈(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어성경 新共同譯은 'レアは優しい目をしていた'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물론 '優しい'는 '他人に對して思いやりがあり'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라헬은 그리 예쁘지도 않았고, 또한 여인으로서의 매력도 부족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고왔습니다.
한편, 라헬은 곱고 아름다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우아하고 외모가 아름답다'입니다.
일어성경 新共同譯은 'ラケルは顔も美しく, 容姿も優れていた'로 표현했습니다.
자 ! 본향의 자매들에게 묻습니다.
레아처럼 유순한 여인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라헬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습니까 ?
자 ! 이번에는 본향의 형제들에게 묻습니다.
유순한 여인이 더 좋습니까 ?
아니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더 좋습니까 ?
자 ! 그렇다면, 본문의 야곱은 이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했을까요 ?
여러분 ! 지금부터 약4천 년 전의 밧단 아람 라반의 집으로 가봅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라반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야곱으로서, 그 집 주인인 라반의 조카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딸들만 있었던 집에 독신 남자가 찾아왔으니,
당연히 라반의 딸들도 야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친척간의 혼인이 유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야곱이 언니인 레아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동생 라헬에게만 눈길을 줍니다.
그런데 그 눈길이 참 그윽합니다.
여러분 ! 여러분이 레아의 입장이라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
나도 야곱에게 관심이 많은데, 정작 야곱은 동생 라헬만을 쳐다봅니다.
그렇지요. 상처가 안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속상합니다.
그렇지만, 동생 라헬이 훨씬 예쁘고 여성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명 내 마음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하며 때를 기다리던 언니 레아에게
충격적인 날이 오고 맙니다.
야곱이 아버지 라반에게 하는 다음의 말을 듣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29:18,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자신도 마음에 품고 있는 야곱이, 자신이 아닌 동생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 동안을 봉사하겠답니다. 레아는 정말 속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7년이 지났고, 드디어 야곱과 라헬의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레아의 마음은 한없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버지 라반이 레아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 레아야 !
네가 야곱을 마음에 둔 것을 안다.
오늘이 야곱과 네 동생 라헬의 결혼식이긴 하지만, 아버지에게 다 생각이 있다.
그러니 너는 아무 말 말고, 오직 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해다오 ! 알겠느냐 ?!"
그리고 라반은 레아를 첫날밤을 맞을 야곱의 침실에 들여보냅니다.
여러분 ! 모든 사람에게는 첫날밤의 설렘과 꿈과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첫날밤을 맞는 레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설렘은커녕 신혼 첫날밤을 속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동생 대신 들어가는 자기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또 마음도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
그런데, 더 비참한 것은 그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첫날밤을 함께 보낸 여인이 사랑하던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는 사실을 안 야곱이
노발대발합니다.
"이게 누구야 ! 레아 잖아 ? 에이 이게 뭐야 !"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결국, 욕심 많은 라반은, 작은 딸 라헬도 야곱의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으로,
야곱에게 다시 7년 간의 봉사를 요구합니다.
아마 이때 레아는 눈물을 흘리며,
첫날밤을 보낸 신방(新房)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레아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아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야곱과 결혼은 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 중 하나는,
나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차별을 받거나, 혹은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혹 우리들 가운데도 분명 레아와 같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를 사랑합니다.
나도 그 일을 좋아합니다.
나에게도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왔다고 생각한 그 기회가, 가장 비참한 자리가 되고 맙니다.
혹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 방법으로 자식을 낳는데 힘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레아에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낳은 첫째 아들이 르우벤입니다. '보라 ! 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첫 아들을 낳고 이렇게 울며 기뻐합니다.
본문32절,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레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33절,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래요 ! 시므온의 뜻은 '들으심'입니다.
레아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셔서 이 아들을 주셨으니
이제는 남편이 내게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둘째를 낳았지만 여전히 야곱은 레아에게 관심 없었습니다.
다시 얼마 후 셋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레아가 고백합니다.
본문34절,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위는 '연합하다'란 뜻입니다. "이젠 남편이 나와 연합해 주겠지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 유다를 낳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 마음의 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본문35절,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여러분 레아에게 일어난 변화가 어떤 변화입니까 ?
그렇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사랑에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변화였습니다.
드디어 집착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아는 비로소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나서,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을,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바꾸는
커다란 결심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또 놀라운 일이 레아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택하신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내 중,
라헬이 아닌 바로 레아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레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레아는 이제까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보지 못하고,
오직 남편의 사랑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넷째 아들을 낳으면서, 비로서 남편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비로서 자신의 놀라운 사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유다'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광야를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우리가 추구하고 또한 의지하는 것들을, 종종 왜 없애 버리실 까요 ?
그것은 우리들이 가진 것이 모두 다 말라 버렸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첫 번째 부인 레아가 그랬습니다.
레아는 이제까지 남편의 사랑만을 추구했습니다.
레아의 인생의 꿈은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는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아들을 넷이나 얻은 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소망하며 사십니까 ?
남편의 사랑입니까 ?
부귀영화입니까 ?
자식의 성공입니까 ?
성공적인 직장생활입니까 ?
아니면 건강의 회복입니까 ?
폼 나는 결혼입니까 ?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것들 속에서, 지금 하나님을 향해 찬송이 드려지고 있습니까 ?
아니면 혹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으십니까 ?
지금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아옹다옹하며 사는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계십니까 ?
우리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하신 그 가장 큰 목적을,
감당해 내고 있느냐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소망하고, 지금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기도가, 감사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하는 그 일을, 그저 자기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곳을 여러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못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제목; 나를 지으신 주님)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주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주가 닦아 주셨죠
주는 내 아버지 난 주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늘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주가 들으시죠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삶, 그만 좀 아옹다옹합시다.
지금 내가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 지쳐서 쓰러질 정도로 추구하는 것들이,
어쩌면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무조건 아들만 낳으면,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레아와 같이 말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다 버리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이들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레아가 자식을 낳고자 하는 것, 정말 잘하는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틀렸습니다.
오직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 오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명, 그 가정을 향한 사명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남편 사랑입니다. 그래서 틀린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토록 이를 악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훨씬 너그럽게 해도 됩니다.
왜 입니까 ?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힘 다 빼고, 다 내려놓고 그 분만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을 시작해 봅시다. 그래야 우리에게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가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레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 ! 반면에 끝까지 자기 힘만 믿고, 얼굴에 핏대 올려 가면서,
늘 충혈 된 모습으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
바로 라헬처럼 말입니다.
라헬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상태가 훨씬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언니는 줄줄이 아들들을 낳는데 자기는 못 낳으니까 억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새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아기를 낳지 못하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라헬은 억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으려고 노력합니다.
자 ! 이 라헬이 야곱과 대화하는 내용을 잠깐 보십시오.
창세기30:1-2,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사랑하는 본향의 남성여러분 !
지나치게 예쁜 여자, 우아한 여자 좋아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너무 예쁜 여자들은 성질이 라헬과 같습니다.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확 죽어 버리겠다" 이게 말이 됩니다.
잔소리에, 바가지에, 투정에, 거기다가 말도 안되는 억지까지 부립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마음도, 생각도, 그 어느 것도 전혀 없습니다.
결국 남편을 다그치다가 안 되니까,
잔머리를 굴려 자기의 여종을 야곱과 동침하게 만듭니다.
여종을 통해 자기도 아들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지 보세요.
그렇습니다. '단'이라고 지었습니다.
억울함을 풀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종을 통해 또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납달리'라고 지었습니다.
납달리의 뜻은 '경쟁', '싸움'의 뜻입니다.
즉, 이제는 아들 둘이 되었으니, 언니 레아와 싸울 만 하다는 뜻일까요 ?!
그렇습니다.
라헬은 단 한 번도 자기에게서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악착같이 자기 의지와 방법대로 삽니다.
그러다가 베냐민을 낳고 죽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도 모르고,
하나님 은혜 또한 뭔지도 모르고,
돌이킴도 없이 자기 만을 위해 살다가
그냥 얼굴에 핏대 세운 그대로
결국에는 아무 이룬 것 없이 그냥 죽어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신앙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
내 힘 빼고, 우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복스러운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몸과 마음에서 힘 좀 뺍시다.
억척스럽게 살던 것을 좀 느슨하게 해 봅시다.
이제 그만, 영악(靈惡, 利害關係にがめつい, ぬけ目がない)하게 살던 방식을
내려놓읍시다.
좀 어수룩하게 보이고, 좀 순진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그렇게 앙칼지게,
아무 손해보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이기기만 하겠다고 살면,
정말로 모든 것이 잘 되고,
행복해 지고, 또 모든 것이 좋게 마무리됩니까 ?
절대로 그렇지 않지요. 좋게 마무리 될 리가 없습니다.
라헬은 예뻤습니다.
우아했습니다.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자식을 낳다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 얼굴과 마음을 한 번도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말입니다.
라헬은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나의 슬픔(고통)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악하게 살던 라헬의 인생은 결국 슬픔과 고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감사와 찬양, 만족과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레아와 같은 부분도 가지고 있고, 또 라헬과 같은 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결단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처음의 레아나 마지막까지의 라헬처럼 헛된 것에 인생을 걸지 맙시다.
아이를 낳겠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직장에서 누구에게 인정받겠다.
좋은 남자(여자) 만나 폼 나게 결혼하겠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자식으로 키우겠다........
이 모든 것, 우리들이 걸어야 할 인생의 참된 목표는 결코 아닙니다.
넷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난 후의 레아처럼,
진정한 삶의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찾읍시다.
넷까지도 갈 필요 없이, 이들을 거울삼아, 그 전에 인생의 참 목표를 발견합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 몸에서 인간적인 힘이 빠집니다.
잘못된 욕망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능력도 마음껏 누리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감사와 기쁨과 찬양과 만족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종교개혁가들이 이루어낸 예배의 개혁을 우리도 이루어내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립시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배합시다. 내가 아는 하나님을 입술과 마음으로 고백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합시다.
야곱이 아직 거듭나지 못했던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형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약 800km나 떨어진 외갓집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피신한 그 외갓집에서, 두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훗날 야곱의 아내가 된 레아와 라헬입니다.
레아와 라헬은 친자매간으로, 야곱과는 외사촌간이었습니다.
성경은 레아와 라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창세기29: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우선, 레아는 안력이 부족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안력이 부족하다'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에네 라코트'인데, '총기가 없는 눈(마음)' 혹은 '유순한 눈(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어성경 新共同譯은 'レアは優しい目をしていた'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물론 '優しい'는 '他人に對して思いやりがあり'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라헬은 그리 예쁘지도 않았고, 또한 여인으로서의 매력도 부족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고왔습니다.
한편, 라헬은 곱고 아름다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우아하고 외모가 아름답다'입니다.
일어성경 新共同譯은 'ラケルは顔も美しく, 容姿も優れていた'로 표현했습니다.
자 ! 본향의 자매들에게 묻습니다.
레아처럼 유순한 여인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라헬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습니까 ?
자 ! 이번에는 본향의 형제들에게 묻습니다.
유순한 여인이 더 좋습니까 ?
아니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더 좋습니까 ?
자 ! 그렇다면, 본문의 야곱은 이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했을까요 ?
여러분 ! 지금부터 약4천 년 전의 밧단 아람 라반의 집으로 가봅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라반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야곱으로서, 그 집 주인인 라반의 조카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딸들만 있었던 집에 독신 남자가 찾아왔으니,
당연히 라반의 딸들도 야곱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친척간의 혼인이 유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야곱이 언니인 레아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동생 라헬에게만 눈길을 줍니다.
그런데 그 눈길이 참 그윽합니다.
여러분 ! 여러분이 레아의 입장이라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
나도 야곱에게 관심이 많은데, 정작 야곱은 동생 라헬만을 쳐다봅니다.
그렇지요. 상처가 안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속상합니다.
그렇지만, 동생 라헬이 훨씬 예쁘고 여성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분명 내 마음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지'하며 때를 기다리던 언니 레아에게
충격적인 날이 오고 맙니다.
야곱이 아버지 라반에게 하는 다음의 말을 듣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29:18,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자신도 마음에 품고 있는 야곱이, 자신이 아닌 동생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 동안을 봉사하겠답니다. 레아는 정말 속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7년이 지났고, 드디어 야곱과 라헬의 결혼식 날이 되었습니다.
레아의 마음은 한없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버지 라반이 레아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 레아야 !
네가 야곱을 마음에 둔 것을 안다.
오늘이 야곱과 네 동생 라헬의 결혼식이긴 하지만, 아버지에게 다 생각이 있다.
그러니 너는 아무 말 말고, 오직 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해다오 ! 알겠느냐 ?!"
그리고 라반은 레아를 첫날밤을 맞을 야곱의 침실에 들여보냅니다.
여러분 ! 모든 사람에게는 첫날밤의 설렘과 꿈과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첫날밤을 맞는 레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설렘은커녕 신혼 첫날밤을 속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동생 대신 들어가는 자기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또 마음도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
그런데, 더 비참한 것은 그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첫날밤을 함께 보낸 여인이 사랑하던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다는 사실을 안 야곱이
노발대발합니다.
"이게 누구야 ! 레아 잖아 ? 에이 이게 뭐야 !"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결국, 욕심 많은 라반은, 작은 딸 라헬도 야곱의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으로,
야곱에게 다시 7년 간의 봉사를 요구합니다.
아마 이때 레아는 눈물을 흘리며,
첫날밤을 보낸 신방(新房)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레아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아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야곱과 결혼은 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 중 하나는,
나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차별을 받거나, 혹은 귀중히 여김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혹 우리들 가운데도 분명 레아와 같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를 사랑합니다.
나도 그 일을 좋아합니다.
나에게도 기회를 주면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왔다고 생각한 그 기회가, 가장 비참한 자리가 되고 맙니다.
혹 이런 상황에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 방법으로 자식을 낳는데 힘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레아에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낳은 첫째 아들이 르우벤입니다. '보라 ! 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첫 아들을 낳고 이렇게 울며 기뻐합니다.
본문32절,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레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33절, "아들을 낳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 하고 그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그래요 ! 시므온의 뜻은 '들으심'입니다.
레아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셔서 이 아들을 주셨으니
이제는 남편이 내게 오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둘째를 낳았지만 여전히 야곱은 레아에게 관심 없었습니다.
다시 얼마 후 셋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레아가 고백합니다.
본문34절,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레위는 '연합하다'란 뜻입니다. "이젠 남편이 나와 연합해 주겠지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 유다를 낳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 마음의 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본문35절,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여러분 레아에게 일어난 변화가 어떤 변화입니까 ?
그렇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사랑에 얽매이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변화였습니다.
드디어 집착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레아는 비로소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나서,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을,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바꾸는
커다란 결심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또 놀라운 일이 레아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택하신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내 중,
라헬이 아닌 바로 레아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레아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레아는 이제까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보지 못하고,
오직 남편의 사랑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넷째 아들을 낳으면서, 비로서 남편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고,
비로서 자신의 놀라운 사명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유다'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광야를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우리가 추구하고 또한 의지하는 것들을, 종종 왜 없애 버리실 까요 ?
그것은 우리들이 가진 것이 모두 다 말라 버렸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첫 번째 부인 레아가 그랬습니다.
레아는 이제까지 남편의 사랑만을 추구했습니다.
레아의 인생의 꿈은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는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아들을 넷이나 얻은 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소망하며 사십니까 ?
남편의 사랑입니까 ?
부귀영화입니까 ?
자식의 성공입니까 ?
성공적인 직장생활입니까 ?
아니면 건강의 회복입니까 ?
폼 나는 결혼입니까 ?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것들 속에서, 지금 하나님을 향해 찬송이 드려지고 있습니까 ?
아니면 혹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으십니까 ?
지금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아옹다옹하며 사는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계십니까 ?
우리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여러분들을 인도하신 그 가장 큰 목적을,
감당해 내고 있느냐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울려 퍼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내가 지금 소망하고, 지금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기도가, 감사가, 흘러나오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하는 그 일을, 그저 자기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곳을 여러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못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양이 생각납니다.(제목; 나를 지으신 주님)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주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주가 닦아 주셨죠
주는 내 아버지 난 주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늘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주가 들으시죠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삶, 그만 좀 아옹다옹합시다.
지금 내가 모든 정력을 쏟아 부어, 지쳐서 쓰러질 정도로 추구하는 것들이,
어쩌면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무조건 아들만 낳으면,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레아와 같이 말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다 버리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이들을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레아가 자식을 낳고자 하는 것, 정말 잘하는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목적이 틀렸습니다.
오직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 오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명, 그 가정을 향한 사명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남편 사랑입니다. 그래서 틀린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토록 이를 악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훨씬 너그럽게 해도 됩니다.
왜 입니까 ?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힘 다 빼고, 다 내려놓고 그 분만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을 시작해 봅시다. 그래야 우리에게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진정한 의미가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레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 ! 반면에 끝까지 자기 힘만 믿고, 얼굴에 핏대 올려 가면서,
늘 충혈 된 모습으로 살아가면 어떨까요 ?
바로 라헬처럼 말입니다.
라헬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상태가 훨씬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언니는 줄줄이 아들들을 낳는데 자기는 못 낳으니까 억지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새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아기를 낳지 못하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같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라헬은 억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으려고 노력합니다.
자 ! 이 라헬이 야곱과 대화하는 내용을 잠깐 보십시오.
창세기30:1-2,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사랑하는 본향의 남성여러분 !
지나치게 예쁜 여자, 우아한 여자 좋아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너무 예쁜 여자들은 성질이 라헬과 같습니다.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확 죽어 버리겠다" 이게 말이 됩니다.
잔소리에, 바가지에, 투정에, 거기다가 말도 안되는 억지까지 부립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마음도, 생각도, 그 어느 것도 전혀 없습니다.
결국 남편을 다그치다가 안 되니까,
잔머리를 굴려 자기의 여종을 야곱과 동침하게 만듭니다.
여종을 통해 자기도 아들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뭐라고 지었는지 보세요.
그렇습니다. '단'이라고 지었습니다.
억울함을 풀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종을 통해 또 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납달리'라고 지었습니다.
납달리의 뜻은 '경쟁', '싸움'의 뜻입니다.
즉, 이제는 아들 둘이 되었으니, 언니 레아와 싸울 만 하다는 뜻일까요 ?!
그렇습니다.
라헬은 단 한 번도 자기에게서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악착같이 자기 의지와 방법대로 삽니다.
그러다가 베냐민을 낳고 죽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도 모르고,
하나님 은혜 또한 뭔지도 모르고,
돌이킴도 없이 자기 만을 위해 살다가
그냥 얼굴에 핏대 세운 그대로
결국에는 아무 이룬 것 없이 그냥 죽어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신앙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
내 힘 빼고, 우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복스러운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몸과 마음에서 힘 좀 뺍시다.
억척스럽게 살던 것을 좀 느슨하게 해 봅시다.
이제 그만, 영악(靈惡, 利害關係にがめつい, ぬけ目がない)하게 살던 방식을
내려놓읍시다.
좀 어수룩하게 보이고, 좀 순진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그렇게 앙칼지게,
아무 손해보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이기기만 하겠다고 살면,
정말로 모든 것이 잘 되고,
행복해 지고, 또 모든 것이 좋게 마무리됩니까 ?
절대로 그렇지 않지요. 좋게 마무리 될 리가 없습니다.
라헬은 예뻤습니다.
우아했습니다.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자식을 낳다가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 얼굴과 마음을 한 번도 하나님께 향하지 않고 말입니다.
라헬은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나의 슬픔(고통)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악하게 살던 라헬의 인생은 결국 슬픔과 고통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감사와 찬양, 만족과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레아와 같은 부분도 가지고 있고, 또 라헬과 같은 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결단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처음의 레아나 마지막까지의 라헬처럼 헛된 것에 인생을 걸지 맙시다.
아이를 낳겠다.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직장에서 누구에게 인정받겠다.
좋은 남자(여자) 만나 폼 나게 결혼하겠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자식으로 키우겠다........
이 모든 것, 우리들이 걸어야 할 인생의 참된 목표는 결코 아닙니다.
넷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난 후의 레아처럼,
진정한 삶의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찾읍시다.
넷까지도 갈 필요 없이, 이들을 거울삼아, 그 전에 인생의 참 목표를 발견합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내 몸에서 인간적인 힘이 빠집니다.
잘못된 욕망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하나님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능력도 마음껏 누리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감사와 기쁨과 찬양과 만족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