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12월21일, 누가복음 2:25-33(첫 성탄 때 하나님을 찬양한 무리들)
ページ情報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특별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몇 곡의 찬송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의 찬송(누가복음1:46-55),
세례 요한의 父親 사가랴의 찬송(누가복음1:68-79),
수 많은 천사들의 찬송(누가복음2:13-14),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시므온의 찬송(누가복음2:28-32)입니다.
특히 본문에 나타난 시므온의 찬송은 임종을 바라보는 한 늙은 성도의 찬송이므로
이를 가르쳐 어떤 이는 '백조(白鳥)의 노래'라 하고
어떤 이는 '일몰(日沒)의 찬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탄생 후 8일만에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40일째 부모와 함께 결례를 받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규례(規例)대로 제물을 드려 속죄를 받는 예식입니다.
율법은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산모와 아이들을 정결케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남자아이는 생후40일, 여자아이는 생후80일만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을 제거하는 뜻에서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결례의식을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랐을 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참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진실한 성도인 시므온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의 가계(家系)나 그의 직분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므온은 성령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뒤에 이어지는 여선지자 안나가 100세가 넘은 것을 보아서
시므온의 나이도 거의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시므온의 일평생 소원은 메시아를 자기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主의 부르심(죽음을 맞이하는)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죽기 전,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
새해에는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려 하십니까 ?
오늘 이후 특별히 새해에 대한 소망의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셔서,
여러분 가정과 개인 그리고 신앙과 인생의 큰 소망을
주께로부터 꼭 응답 얻기를 바랍니다.
한편, 시므온에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베들레헴에서 큰 인물이 났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성전 기둥에 기대어 성전에 오르는 부모들과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을 것입니다.
얼마동안을 애타게 메시아를 기다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10년, 20년, 30년, 그 이상을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하고 초라한 한 젊은 부부가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아이를 안고 성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이 아이가 메시아인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감격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찬송의 내용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므온의 찬송은 어떤 찬송이었을까요 ?
첫째, 간절한 소망과 기다림의 찬송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늘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또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준비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신앙의 다른 표현입니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성전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드디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안아 보는 그 기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누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까 ?
삶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만이
온전한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달리하면 깨어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비로소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찬송이 가슴에서, 입에서 터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순간, 가슴에서 입에서 찬송이 터집니다.
"주재(主宰)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主よ, 今こそあなたは, お言葉どおりこの僕を安らかに去らせてくださいます"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これは万民のために整えてくださった救いで"
"이방에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異邦人を照らす啓示の光, 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の譽れ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시므온과 같은 기다림으로 성탄주일예배를 맞이하셨습니까 ?
아니면, 마음의 준비 없이, 예배의 준비도 없이 혹시 이 자리에 서신 것은 아닙니까 ?
오늘날 은혜를 받는 사람은 바로 기다리는 사람, 준비된 사람,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예배시간이 임박해서 허둥대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앉은 성도들이
어떻게 온전한 찬송을 드리며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
기다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찬송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시므온의 찬송은 의롭고 경건한 삶을 바탕으로 한 찬송이었습니다.
본문25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다는 말은 늘 하나님 앞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살아가면서 늘 부족하고 연약해서 넘어지고 실수도 잘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경건이 없는 신학은 죽은 것이고 경건이 없는 신앙은 외식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결국 6일 동안의 삶이 아름다워야 주일 예배가 경건하고,
평소의 삶을 경건하게 살아야 主日의 예배가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됩니다.
더욱 경건한 삶을 세상에서도 이루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 여러분과 저는, 그런 경건한 삶을 살지 못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믿고 이 자리에 섰지만,
우리 본향의 모든 지체들이 삶이 점점 더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시므온의 찬송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찬송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므온이 성령의 사람임을 세 번이나 말씀합니다.
본문25절,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본문26절,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본문27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은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행동의 근본이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온전한 기도도, 온전한 예배도, 온전한 봉사도, 온전한 헌신도, 온전한 사명감당도,
온전한 감사도 오직 성령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찬송도 같습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온전한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의 찬송은 바로 성령의 함께 한 찬송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 찬송하실 때, 성령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시므온의 찬송은 구원의 확신을 노래한 찬송이었습니다.
본문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지금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구원의 감격,
구원의 확신, 구원의 감사로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찬송의 본질입니다.
주의 구원을 깨달았을 때 진정한 찬송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가지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가 아니라
내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말씀으로 깨달아 지게 되고, 찬송의 능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찬송이 내 영혼의 노래가 됩니다..
이 놀라운 찬송이 여기 모인 모든 성도들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할렐루야 찬양대와 함께,
시므온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코자 합니다.
오늘 이후,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우리의 찬양이,
첫째, 간절한 소망과 기다림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의롭고 경건한 삶을 바탕으로 한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이 함께 하시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구원의 감격이 있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새해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해에는 온전한 찬송을 회복하여,
여러분 신앙과 가정과 기업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온전한 찬송을 드려,
바울과 실라를 가두었던 옥문이 열리듯, 여러분 앞의 닫힌 문도 활짝 열리기는
기적이 여러분들의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할렐루야 찬양대의 성탄절 칸타타가
누가복음2:13-14절의 천사들의 찬양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 있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당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특별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몇 곡의 찬송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의 찬송(누가복음1:46-55),
세례 요한의 父親 사가랴의 찬송(누가복음1:68-79),
수 많은 천사들의 찬송(누가복음2:13-14),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록된 시므온의 찬송(누가복음2:28-32)입니다.
특히 본문에 나타난 시므온의 찬송은 임종을 바라보는 한 늙은 성도의 찬송이므로
이를 가르쳐 어떤 이는 '백조(白鳥)의 노래'라 하고
어떤 이는 '일몰(日沒)의 찬송'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탄생 후 8일만에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40일째 부모와 함께 결례를 받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규례(規例)대로 제물을 드려 속죄를 받는 예식입니다.
율법은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산모와 아이들을 정결케 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남자아이는 생후40일, 여자아이는 생후80일만에 번제와 속죄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을 제거하는 뜻에서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결례의식을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랐을 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참으로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진실한 성도인 시므온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의 가계(家系)나 그의 직분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므온은 성령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뒤에 이어지는 여선지자 안나가 100세가 넘은 것을 보아서
시므온의 나이도 거의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시므온의 일평생 소원은 메시아를 자기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主의 부르심(죽음을 맞이하는)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죽기 전,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
새해에는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려 하십니까 ?
오늘 이후 특별히 새해에 대한 소망의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셔서,
여러분 가정과 개인 그리고 신앙과 인생의 큰 소망을
주께로부터 꼭 응답 얻기를 바랍니다.
한편, 시므온에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베들레헴에서 큰 인물이 났다는 말이 있으나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늙은 몸을 이끌고 성전 기둥에 기대어 성전에 오르는 부모들과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을 것입니다.
얼마동안을 애타게 메시아를 기다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10년, 20년, 30년, 그 이상을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하고 초라한 한 젊은 부부가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아이를 안고 성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이 아이가 메시아인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감격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 찬송의 내용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시므온의 찬송은 어떤 찬송이었을까요 ?
첫째, 간절한 소망과 기다림의 찬송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늘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또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준비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신앙의 다른 표현입니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성전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드디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안아 보는 그 기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누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찬송을 부를 수가 있습니까 ?
삶 가운데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만이
온전한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달리하면 깨어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비로소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을 때 찬송이 가슴에서, 입에서 터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순간, 가슴에서 입에서 찬송이 터집니다.
"주재(主宰)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主よ, 今こそあなたは, お言葉どおりこの僕を安らかに去らせてくださいます"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わたしはこの目であなたの救いを見たからです"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これは万民のために整えてくださった救いで"
"이방에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異邦人を照らす啓示の光, あなたの民イスラエルの譽れ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여러분은 이러한 시므온과 같은 기다림으로 성탄주일예배를 맞이하셨습니까 ?
아니면, 마음의 준비 없이, 예배의 준비도 없이 혹시 이 자리에 서신 것은 아닙니까 ?
오늘날 은혜를 받는 사람은 바로 기다리는 사람, 준비된 사람,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예배시간이 임박해서 허둥대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앉은 성도들이
어떻게 온전한 찬송을 드리며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
기다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찬송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시므온의 찬송은 의롭고 경건한 삶을 바탕으로 한 찬송이었습니다.
본문25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다는 말은 늘 하나님 앞에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평생 살아가면서 늘 부족하고 연약해서 넘어지고 실수도 잘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경건이 없는 신학은 죽은 것이고 경건이 없는 신앙은 외식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결국 6일 동안의 삶이 아름다워야 주일 예배가 경건하고,
평소의 삶을 경건하게 살아야 主日의 예배가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됩니다.
더욱 경건한 삶을 세상에서도 이루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오늘 여러분과 저는, 그런 경건한 삶을 살지 못했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믿고 이 자리에 섰지만,
우리 본향의 모든 지체들이 삶이 점점 더 경건한 삶으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시므온의 찬송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찬송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므온이 성령의 사람임을 세 번이나 말씀합니다.
본문25절,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본문26절,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본문27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은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행동의 근본이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온전한 기도도, 온전한 예배도, 온전한 봉사도, 온전한 헌신도, 온전한 사명감당도,
온전한 감사도 오직 성령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찬송도 같습니다. 성령이 함께 할 때 온전한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므온의 찬송은 바로 성령의 함께 한 찬송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 찬송하실 때, 성령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시므온의 찬송은 구원의 확신을 노래한 찬송이었습니다.
본문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지금 아기 예수님을 안고서 구원의 감격,
구원의 확신, 구원의 감사로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찬송의 본질입니다.
주의 구원을 깨달았을 때 진정한 찬송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가지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가 아니라
내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말씀으로 깨달아 지게 되고, 찬송의 능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찬송이 내 영혼의 노래가 됩니다..
이 놀라운 찬송이 여기 모인 모든 성도들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할렐루야 찬양대와 함께,
시므온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코자 합니다.
오늘 이후,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우리의 찬양이,
첫째, 간절한 소망과 기다림의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의롭고 경건한 삶을 바탕으로 한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성령이 함께 하시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구원의 감격이 있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새해가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해에는 온전한 찬송을 회복하여,
여러분 신앙과 가정과 기업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는 온전한 찬송을 드려,
바울과 실라를 가두었던 옥문이 열리듯, 여러분 앞의 닫힌 문도 활짝 열리기는
기적이 여러분들의 삶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할렐루야 찬양대의 성탄절 칸타타가
누가복음2:13-14절의 천사들의 찬양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 있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