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2월7일, 요한일서 4:7-12(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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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8 2008년12월7일, 요한일서 4:7-12(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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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866回 日時 09-01-20 00:00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은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곳을 예배의 처소로 바꿀 능력자입니다.
당신은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곳을 기도의 처소로 바꿀 사명자입니다.

한 생물학과 교수가 흔하게 볼 수 없는 새 한 쌍을 우연히 본 후에 그 새를 관찰하고
책을 펴냈는데, 그 제목이 "큰 오색 딱따구리의 육아일기"입니다.
저자 김성호 교수는 50일 동안, 새벽4시30분부터 밤10시까지,
낮에 강의만 겨우 하고 종일 큰 오색 딱따구리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한 쌍의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아기 새가 부화해서
둥지를 떠날 때까지의 일을 아주 세밀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글입니다.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새벽 05:20 둥지를 튼 나무에 도착합니다.
… 둥지는 비어 있고 계곡을 떠나 흐르는 물소리가 지리산 자락을 채웁니다.
06:15 암컷이 먼저 둥지를 찾아옵니다.
… 힘이 드는지 나무 부스러기를 던지고 나서는 고개를 내밀고 잠시 쉬기도 합니다.
07:20 수컷이 날아와 교대합니다.…
15:30 강의가 끝나고 다시 둥지를 튼 나무에 도착합니다.
수컷이 고개를 내밀어 나무 부스러기를 던집니다.
16:10 암컷이 와서 교대를 합니다.
19:35 둥지를 떠난 수컷과 암컷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큰 오색 딱따구리는 알을 부화하기 전에 둥지부터 먼저 만듭니다.
다른 새들은 짚을 물어다가 둥지를 만드는데 이 새는 큰 고목을 쪼아서
나무 안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암컷과 수컷이 두 시간 또는 세 시간씩 교대로 나무를 쪼는데,
그 쪼는 횟수는 일초에 무려 20회 정도랍니다.
그렇게 둥지가 완성된 12일 째 되던 날, 드디어 암컷이 알을 낳았습니다.

알을 품는 것도 교대로 품는데,
밤이 되면 역시 수컷이 품다가 아침이 되면 또 암컷이 교대해 줍니다.
암수 둘 다 앞가슴은 털을 뽑아낸 빨간 맨살이었답니다.
혹 털 때문에 알에 체온이 전달되지 않을까 봐 스스로 뽑아 낸 것이라고 합니다.

관찰 24일째, 드디어 아기 새가 부화(孵化)했습니다.
1, 2분 간격으로 엄마 새, 아빠 새가 바쁘게 먹이를 물고 둥지를 들락거립니다.
그리고 아기 새들의 분비물은 물어서 둥지 바깥에 버리는데,
가까이 버리면 천적들이 알아채고 공격할까 봐 멀리 숲에다 내다 버립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도대체 어떻게 할까 봤는데,
그 빗속을 뚫고 아빠 새가 먹이를 구해 아기 새들에게 먹입니다.

어느 날, 천적(天敵)인 붉은 배새매가 둥지를 습격해 왔는데,
엄마 아빠 새는 앞머리가 다 뜯기면서까지 아기 새들을 보호했습니다.

45일째, 밤이 깊어도 아빠 새가 둥지를 찾지 않습니다.
그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아기 새들을 돌봐온 아빠입니다.
웬일일까 ? 뒤늦게 관찰자는 아빠 새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아기 새들을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홀로서기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아기 새들은 아빠의 체온 없이 긴 밤을 견뎌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엄마와 아빠는 먹이를 먹여주는 대신 눈앞에 들고 약만 올립니다.
아기 새들이 배가 고파 울어도 끄덕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선 어미 새가 더욱 엄격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개체수가 줄어드는
가혹한 환경에서 생명을 지키려면 이런 담금질이 필수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큰 오색 딱따구리는 날 수 있을 만큼 자라면 둥지를 떠나는데,
한 번 떠나면 다시는 그 둥지로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관찰 50일 째,
아기 새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는 김 교수가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날아가 버리고,
남은 한 마리마저 둥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아기 새가 둥지를 떠난 지도 모르고 아빠 새가 먹이를 물고 둥지엘 왔는데
아기 새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 아기 새를 찾으려고 너무나 처절하게 애를 씁니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관찰 50일 째,
12:55 아빠 새는 일곱 번째 미루나무 전체를 돌아다니며 둘째를 찾고 있습니다.
벌써 네 시간째입니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키운 정성을 잘 아는 나는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기로 합니다.
… 부리에는 네 시간 전에 물고 왔던 먹이가 그대로 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는 모양입니다.
주위를 한 번 찬찬히 둘러보더니 그렇게 홀연히 먼 북쪽 산을 향해 날아갑니다.

한참 뒤에 돋아날 나뭇잎 모양까지 미리 계산해 둥지를 짓고 아기 새를 키운 아빠입니다.
그리 애지중지하던 아기 새의 홀로서기를 배웅조차 못한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마는,
부모 노릇이 거기까지인 줄을 알고 돌아설 뿐이지요.
사랑이 다해서가 아니라 더 넓게 사랑하라고 돌아서는 마음,
큰오색딱따구리에게서 생명을 기르는 큰마음을 배웁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제자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분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70년을 더 살았고 말년에는 에베소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흔히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의하면, 제자들이 설교를 부탁하면 노구(老軀)의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임종 때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만 대 여섯 번 반복해서 제자들이 더 할 말이 없느냐 묻자,
"그것이면 족해,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 계명의 모든 것이야"라고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잡혀 온갖 수욕(受辱)을 당하실 때,
그곳까지 따라간 제자는 누구입니까 ?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苦痛하실 때,
그 십자가 밑에 까지 함께 한 제자는 누구입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요한입니다.

요한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하면서도 오히려 연약한 인간들을 끝까지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누가복음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놀라운 용서의 말씀은 요한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21에서 베드로는 이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 너희에게 본(本)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
(キリストは ..... その足跡に續くようにと, 模範を殘されたからです.)
여기에서 本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휘포그람모스'인데, 이것은,
'선생님이 그려 준 것을 학생들이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들 역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도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본문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愛する者たち, 神がこのようにわたしたちを愛されたのですから,
わたしたちも互いに愛し合うべきです.)"

자 !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가장 크게 깨달은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
그것은 상대를 용서하고 이해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갖 기적과 신유를 체험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의 배신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깊이 상처받고 아파해야 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특별히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자
멀찍이 뒤따르면서 결국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누구도 밝히지 않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통해 회복되는 장면을
요한복음21:15-19절에 기록합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ヨハネの子シモン, この人たち以上にわたしを愛しているか"
요한은 바로 이 대목을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용서하신 것은,
베드로가 그렇게 라도 한 것을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의 從 말고의 귀를 검으로 친 것도, 비록 멀찍이 따라갔지만
대 제사장 집까지 따라 간 것도,
그 후 예수님을 부인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낙향한 것도,
예수님은 모두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봐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그 사랑은 서투르다는 것뿐이었지,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로 하여금 갈릴리 해변 가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셔서,
자신을 부인했던 것을 용서하시고, 세 번 사랑을 고백하게 하심으로서
세 번 부인했던 허물을 덮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 역시, 나를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라 서툴게 표현했던 사람들을
용서합시다.
아니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여 줍시다.
본향교회를 처음 왔는데, 오자마자 뺑 둘러싸 질문공세를 폅니다.
얼마나 부담되었겠습니까 ?
그러나 용서하십시오. 사랑과 관심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설교 시간에 자꾸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 역시 용서하십시오.
사랑을 표현한 것인데 오히려 부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부족하고 서툰 것을 용서로 받아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즉,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랑할 수 있을지를 배워야 합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닌, 상대가 받기 원하는 사랑을 줍시다.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 하면 우리에게는 사랑일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자칫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오래 생각한 후에 사랑을 성숙하게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1999년 겨울은 저에게 여러 가지로 힘든 한 해였습니다.
교회설립1주년을 지나, 교회는 많은 부분에 성장하였지만,
여전히 敎會의 家賃은 커다란 장벽이었습니다.
저와 교회를 향한 야쿠자(八九三)의 횡포도 그 정도를 더해갔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함께 있었던 목사님 가정 때문이었습니다.
1999년 봄, 한 후배가 일본선교사로 오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뛰어 다니며 절차를 밟아,
결국 그 후배 목사님부부가 일본선교사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본향교회에 그 분이 필요해서 초청한 것도 아니고,
또, 그 목사님이 20여 명 정도 되는 본향교회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사역을 찾을 때까지만 우리교회에 계시기로 했습니다.

당시 家賃을 20일 씩 밀려낼 때였고,
사모님도 家賃 등 교회 운영비를 위해 아침7시에 일을 가서 저녁8, 9시에 돌아오는
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교회에서 온전한 생활비를 받지 못하던 때이므로,
그 목사님께도 생활비를 드릴 형편이 되지 못되었습니다.
이에 딱하게 여긴 몇몇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매월 조금씩 회비를 걷어 그 선교사님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금액은 많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잠간 다니러 간 사이에,
협력한 성도들 중 대표가 그 목사님께 그것을 드렸는데,
거기에서 오해로 인한 다툼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랑이 사랑으로 안 받아들여지고 말았습니다.

2000년5월, 드디어 그 목사님이 사역지를 찾게 되었고,
저는 그 부부가 사역지로 출발하기 전 날, 호되게 그 부부를 꾸짖었습니다.
왜,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감당할 사역지에서 성공적인 사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제 입장에서나 사랑이었지, 상대방에게는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을 합시다.
또한 우리가 사람에게도 그들이 받기를 원하는 사랑을 주어야 하듯이,
우리 주님께도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이 시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주님은 여러분의 무엇을 기다리고 계실까요 ?
얼마 남지 않은 2008년, 이것을 깊이 생각하여,
새해에는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가 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맞춤 사랑,
주님이 바라시는 소박한 사랑,
그런 사랑에 눈을 뜨는,
그래서 당장은 어설프고 모자라고 서툴더라도 그 사랑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아무것도 바라지말고, 그냥 사랑합시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되 내가 주는 것만큼 그곳에서 받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그렇지 않지만, 이런 부모들이 있습니다.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 잡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서
저희들끼리 잘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지만,
어떤 부모님은 자기 자녀들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이 자기 체면과 이익에
관계되기 때문에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식을 자신의 성공의 도구로 삼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딱따구리는 한 번 둥지를 떠나면 부모와 영영 이별입니다.
딱따구리는 효도를 받을 길도 없고, 또 부모의 은혜를 갚을 길도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 아빠 딱따구리는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아기 새를 사랑합니다.
그냥 모든 것을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도 그렇게 그냥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이라는 말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또한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를 배려하여 그냥 기다려 주는 '사랑의 기다림'입니다.
어떻게 들으면 성의 없고 책임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속에는 설명과 해석,
그리고 따져봄과 계산을 뛰어넘는 '사랑의 기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아멘.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동안 서투르게 사랑해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십시다.
그리고 또 우리들의 형제들이 받기를 바라는 사랑을 찾아 그것을 줍시다.
우리 주께서도 여러분과 저를 통해 받으시고 싶은 사랑의 증거가 있습니다.
즉, 우리 주님께도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드립시다.
그것을 찾아 내년에는 가득 가득 드립시다.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합시다.

어느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이러한 사랑을 행합시다.
제목; 사랑, 사랑
"형제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 봤나요, 내가 가진 이 사랑이 예수님의 그 사랑인 지,
시기하진 마세요 그가 날 앞선대도, 남이 잘 되는 것이 나의 참 기쁨이니까,
우리들의 입술로는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은 잘도 하지만 진실로 사랑하나,
내게 유익 없어도 주기만 하는 사랑,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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