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1월23일, 마가복음14:43-52(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과 소망해야 할 것)-이경우목사님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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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8 2008년11월23일, 마가복음14:43-52(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과 소망해야 할 것)-이경우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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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2,070回 日時 09-01-1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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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지난주일 옆에 앉은 분을 위해 10번 기도하기로 약속하신 대로
기도하여 축복의 통로가 되신 당신을 축하합니다.

십여 년 전 익산 온누리교회에서 전임 전도사로 사역을 할 때,
유달리 기억나는 한 성도가 있는데 그 분의 이름은 최화순집사님입니다.
그분은 매일같이 새벽기도회 시간이 되면 하나님을 부르면서 소리내어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분의 기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기도가 방해되어
기도를 하지 못하고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분에게 왜 그렇게 새벽시간에 울면서 기도를 하느냐고 여쭤보았더니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가 전도를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권해도 신앙생활을 하려하지 않아 그대로 두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이 불쌍해서 울면서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일 년이면 수 십 명을 전도하시는 분이었고,
그 시절도 한국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시기였으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전도에 열정을 품은 성도들이 있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말씀의 홍수시대이면서 “영적 암흑의 시대”라고 진단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과거 80년대의 한국교회는 전체 인구의 4분의 일인 1200만의 성도를 거느린
대단한 부흥의 시기가 있었습니다만,
90년대 후반에는 문공부에 확인된 숫자가 800만 정도로 알려졌고,
지금은 더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부, 성도수가 몇 천 명, 몇 만 명, 몇 십만 명씩 되는 교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 전체 5만교회 중에 80% 이상의 교회가 자립되지 못한 재정으로 인해
담임목사님들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이 현실이며,
큰 교회들도 수평이동 되어온 성도들이 대부분이고,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TV의 두 개의 채널과 인터넷에서는
언제나 목사님들의 은혜로운 설교가 들려지고,
교회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가르치는데,
전체적인 차원에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 교회를 부흥의 시기로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주전 4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말라기 선지자 이후부터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시기 전까지의 약 400년 간을 신학자들은 “암흑의 시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던
당시의 세상을 “어두운 시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여기에서 빛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요한복음1:9).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의인인 체하는 이들에게 영적 소경'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그럼에도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들이 있었고,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하며 이방인을 멸시 천대하던 유대인들이 있었음에도
그 시대는 ‘어둠의 시대’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창세 이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전무후무한 “최고의 신학자요,
신학교수인 예수님”의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로 모두가 깊은 잠이든 가운데
고독을 삼키며 처절한 기도를 하신 후,
자신을 배반한 가롯 유다에 의해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저항하시지 않고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 가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16:16)
“다들 예수님을 떠날지라도 영생의 말씀이 계신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
(요한복음6:68)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마태복음26:35)던 제자들이
다 예수님 곁을 떠나갑니다(마가복음14:50).
아예 붙잡혀진 옷을 그대로 벗어 던지고 벗은 몸으로 도망을 하는 모습입니다
(마가복음14:51-52).

나중에는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하고,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몸을 숨기고(요한복음20:19),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요한복음21:3).

최고의 신학자요, 신학교수인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입체적인 신학교육’을
받았으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요 ?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왜 그럴까요 ?

물론 선교지역의 특별한 상황에 있는 우리들을 ‘그러한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곳에서 해야 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신앙인으로 이 곳 일본 땅에 우리들을 두셨고
두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곳 일본영혼을 살리는 ‘은혜의 불 쏘시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들을 이곳 일본 땅에 있게 하신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은혜의 불 쏘시게’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은혜의 불 쏘시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우상 섬기는 문화에 동화되어서 하나님을 실망시킬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의 불 쏘시게”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의 사람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7:20-23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
(뻔뻔스러움과 경솔함을 의미)니 이 모든 악한 것이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악한 생각 곧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 등의 악한 생각은
인간의 모든 ‘부정’과 ‘악한 사상’과 ‘음모’가 곁들여진 ‘의지적인 생각’으로써
행동화되는 죄악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을 품은 마음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 상대의 마음에
복음을 심고 믿음의 열매를 맺기까지 수고를 하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기보다는,
이웃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주거나,
명예를 훼손시키는 등 마음에 상처를 입히므로 마귀의 기뻐하는 일을 하기에
딱 맞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할지라도
삶에 위기가 닥칠 때에 다시 죄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아야 하며 우리들도 예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6:4-6).

바울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28).

다윗은 타락한 자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모두가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시편53:1).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마음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런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위대하게 쓰임 받은 바울마저도 항상 마음속의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악에게 넘어져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로마서8:19),
항상 자신의 악한 생각을 품을 마음을 죽이는 기도를 함으로(고린도전서15:31)
성령이 충만함을 유지하여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악한 마음을 품고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할 수 없기에
마음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마태복음5:8),
옥토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믿음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옥토와 같은 마음을 유지하여 은혜의 불소시게가 될 수 있는 마음입니까 ?
마귀의 기뻐하는 일을 하기에 맞는 마음입니까 ?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은혜의 불 쏘시게 되기 위해 소망해야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 충만과 하나님의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의 개인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사모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은혜의 불쏘시게가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사모하고
거룩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소망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충만”입니다.
말씀을 알아도 그 의미하는 바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갖고 읽으며
스스로도 어느 정도 연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히브리어 원어에 대조해보면
그 의미하는 바가 많이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알지 않고는 원어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바로 항상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직장, 학교, 아르바이트 등으로 인하여 시간을 내어 예배와 기도회를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에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기 위해 소망하면 그런 중에서도 참석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과 행하시는 능력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하셨고,
각종의 불치의 질병을 고치시고,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물위를 걸으시거나,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등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들을 몸소 행하시면서
제자들을 입체적으로 교육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마태복음27:43)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임(요항복음10:30-33, 14:9)을 밝히시기도 하셨습니다.
평범한 이성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으로는 그들은 분명히 달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도 두려워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신앙 고백한 대로 예수님이 죽는 자리까지라도
아니 그들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일지라도 도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비겁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왜입니까 ?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 할 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를 사모합니다. 즐거워합니다.
남들보다 먼저 교회에 와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성가대 찬양을 위해 연습을 하거나,
주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엎드리어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워합니다.

온 성도의 주일 낮 식탁을 위해 밤잠을 안자면서 준비하는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토요일이면 학업이나 직장의 일로 심신이 지쳐있음에도 교회에 나와 청소하며,
꽃꽂이하며 준비하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한 시간씩 두 시간씩 전차를 타고 교회를 오는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았거나,
받은 성령을 충만히 유지하지 않고는 생각 같아서는 쉽게 할 것 같아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행복을 위해 현실적인 일에는 관심을 갖을지언정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거나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지 않고는
“세상적인 가치 기준”이 너무도 타당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의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인 것이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꼭 깨달아야 하는 것은 현재의 삶은 짧고,
죽은 후에 새롭게 열려지는 삶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지나간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때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한국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
성경을 많이 알고 실천한다고 자신했던
예수님 시절의 “하나님 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영적 암흑의 시대”,
최고의 신학자요 신학교수인 예수님으로부터 입체적인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받은 성령을 소멸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곳 일본에 두신 이유는
“일본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 앞에서 우리는 그 거룩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은혜의 불 쏘시게”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목적하신 바를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야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 하고
받은 성령을 충만히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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