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11월16일, 하박국3:17-18(범사에 감사합시다)-추수감사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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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이 간구한 기도, 하나님은 반드시 놀랍게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이번 한 주간 동안 10번 이상 기도하겠습니다.
약100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의과대학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산부인과 교수 한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무엇인가하면
자기 병동 산모보다 다른 병동 산모들의 출산 후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돌보는 산모들은 출산 후에 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다른 병동에 있는 산모들은 빈번하게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추적해 보니까 놀랍게도 그 이유가 아주 단순한데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그 교수는 밝혀낸 원인을 동료교수들한테 알려주고 시정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 교수들의 반응이 어땠냐 하면, 내용을 듣자마자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헝가리 사람이었는데,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과,
또한 다른 교수들보다 모든 일에 앞서갔으므로 시기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헝가리 교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헝가리 교수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은 그 교수가 죽은 후에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그 교수가 밝혀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의사들이 분만 시에 손을 씻지 않아서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었던 100여 년 전에는 의료기술이나 장비가 지금 같지 못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의사들이 수술할 때 끼는 위생장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맨손으로 아기를 받았는데,
바로 그때 산모들이 의사의 손에 있는 나쁜 균으로부터 감염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 어처구니없지 않습니까 ?
손만 잘 씻어도 산모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들 인생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엇갈립니다.
더구나 믿음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볼 때, '잘되는 사람'과 '잘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로 갈립니다.
무엇일까요 ? 그렇습니다.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삶은 그때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면 올릴수록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윤택해지고
풍요로와 질 것입니다.
자 ! 옆에 있는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이 사람에게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당신의 지경은 점점 넓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당신의 삶은 점점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 주위에 보면,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며, 매일 놀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영자라면, 누구를 채용하겠습니까 ?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과 봉사를 찾아서 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일을 주세요"라고 말만 하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를 찾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감사할 조건들을 주셔야 감사를 하지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헬렌 켈러의 "내가 단 한번만이라도"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내가 단 한번만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깊은 산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설리반 선생님의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나에게 그 귀한 감동을 주시는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그 감동스런 성경말씀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지는 해의 그 아름다운 노을을 직접 바라 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소원이 없으리.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으리.
사랑하는 여러분 !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 ! 그러면 지금부터 감사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십니까 ?
지금 여러분은 사랑할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십니까 ?
지금 여러분은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에 감사하십니까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십니까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믿고 감사하십니까 ?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날 구원하신 主 감사"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에)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 꽃 감사, 장미 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은 主前600년쯤 유다 여호야김 왕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이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되어있는 짧은 성경이지만,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똑같이 공감하는데, 그것은 속이 후련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생기는 몇 가지 의문들이 있는데,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그것들을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질문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답을 얻어냅니다.
그러니까 1장은 질문이요, 2장은 응답이요, 3장은 찬양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시대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시절에 가장 큰 사건은 요시야 왕의 죽음이었습니다.
主前609년에 죽은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보기 드문
성군(聖君)이었습니다.
이방신과 우상을 타파하고 나라를 개혁했던 아주 열정 있는 왕이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서 유다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신앙이 개혁되니 정치와 경제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 전체가 바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살 방법을 찾게 되고, 부자들도 나눔을 실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라 전체가 평안과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유다는 모처럼 평안과 기쁨이 가득한 나라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죽자, 유다는 곧바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종교가 부패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자기 의만 주장하고 다투기 바쁩니다.
정치적인 횡포와 경제적인 무질서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의로운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게 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이 터졌습니다.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힘있는 자들이 약한 자를 억압하는 세상을 보시고도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
그러자 이에 대해 하나님이 2장에서 응답을 하시는데, 그 응답이 동문서답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참을 수 없어서 더 심한 울분을 터뜨립니다.
"하나님 그게 또 무슨 말씀입니까 ?
왜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우리 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까 ?"
이에 대해, 하나님이 재차 응답을 하시자,
하박국 선지자는 오랜 묵상 끝에 그것을 깨닫고 드디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가 한 질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 ! 왜 침묵하십니까 ?"
둘째, "하나님 왜 하필이면 악인을 사용하십니까 ?"입니다.
사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은 괜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그들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지난10월 첫째 주일에 전했던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너희(이스라엘)가 내(하나님)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17:5-6)
또한 신명기28:10-13절에 보면, ".......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 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꿀송이처럼 단, 축복의 말씀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하박국 시대는 어떤 형편입니까 ?
약속한 축복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이방 나라에 망신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근동과 비교할 때,
가장 못 사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이렇게 울분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십니까 ?"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 ?"
"설사 우리 유다 민족이 잘못이 있다 칩시다.
그래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침략자로 사는 갈대아 사람보다는 의롭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바벨론 사람을 일으켜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살육하고 빼앗고
재앙을 만나게 하십니까 ?"
"어째서 이렇게 하십니까 ?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
이처럼 수도 없이 많은 질문과 울분에 대해서
하나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단 한 마디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
하박국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들은 갈대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너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하고는 달라. 깊고 넓기 때문에 너희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일들이
내 섭리 가운데 주어진 거라고 믿는 거야.
결국 끝에 이기는 사람은 너희란다. 바로 그것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져 !"
하박국은 처음에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하박국3:16절을 보면 하박국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한 마디로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더구나 유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
본문17절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가 무화과, 포도, 감람나무(올리브) 입니다.
그런데 그 중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도통 먹을 것이 없습니다.
양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도 없습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보면 완전 절망입니다. 끝장입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은 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
하박국은 어떻게 그런 절망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까 ?
본문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은 항상 자기와 함께 하심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19절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자신의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끝까지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 자신에겐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히려 고통과 궁핍만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을 얻고 나니 하박국의 마음에는 놀라운 기쁨이 넘쳤습니다.
여러분 ! 우리 곁에 보이는 조건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세상 것들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 된다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울러 기쁨도 감사도 찬양도 다 잃고 말 것입니다. 전혀 행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지지도 않고, 변치도 않고,
영원한 것을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뿐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믿어보십시오.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명예나 돈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십시오.
그러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무엇 때문에 찬양합니까 ?
물질이 풍성하기 때문입니까 ?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기 때문입니까, 학교에 합격했기 때문입니까 ? 무엇 때문입니까 ?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이유들이 있을 때만 감사한다면,
만일 그 이유들이 사라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원망하겠습니까 ?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 자포자기하겠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신앙은 그 이상입니다.
외적인 이유들이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십시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기뻐하며 무엇 때문에 고민하며 살아왔습니까 ?
오늘 하박국 선지자처럼, 나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송명희 자매의 시를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나 아무 것 없어도)
나 아무 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 것 할 수 없으나, 주는 다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고, 나 모든 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빛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아멘.
당신이 간구한 기도, 하나님은 반드시 놀랍게 응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이번 한 주간 동안 10번 이상 기도하겠습니다.
약100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의과대학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산부인과 교수 한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무엇인가하면
자기 병동 산모보다 다른 병동 산모들의 출산 후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돌보는 산모들은 출산 후에 죽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다른 병동에 있는 산모들은 빈번하게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인을 추적해 보니까 놀랍게도 그 이유가 아주 단순한데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연히 그 교수는 밝혀낸 원인을 동료교수들한테 알려주고 시정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 교수들의 반응이 어땠냐 하면, 내용을 듣자마자
펄쩍 뛰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는 헝가리 사람이었는데,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과,
또한 다른 교수들보다 모든 일에 앞서갔으므로 시기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헝가리 교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헝가리 교수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은 그 교수가 죽은 후에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그 교수가 밝혀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의사들이 분만 시에 손을 씻지 않아서였습니다.
이 사건이 있었던 100여 년 전에는 의료기술이나 장비가 지금 같지 못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의사들이 수술할 때 끼는 위생장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맨손으로 아기를 받았는데,
바로 그때 산모들이 의사의 손에 있는 나쁜 균으로부터 감염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 어처구니없지 않습니까 ?
손만 잘 씻어도 산모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들 인생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엇갈립니다.
더구나 믿음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볼 때, '잘되는 사람'과 '잘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딱 한 가지로 갈립니다.
무엇일까요 ? 그렇습니다.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삶은 그때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라는 말을 입에 자주 올리면 올릴수록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윤택해지고
풍요로와 질 것입니다.
자 ! 옆에 있는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이 사람에게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당신의 지경은 점점 넓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당신의 삶은 점점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 주위에 보면,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며, 매일 놀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경영자라면, 누구를 채용하겠습니까 ?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과 봉사를 찾아서 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일을 주세요"라고 말만 하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를 찾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감사할 조건들을 주셔야 감사를 하지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헬렌 켈러의 "내가 단 한번만이라도"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내가 단 한번만 저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 볼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깊은 산 속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설리반 선생님의
아름다운 미소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저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번만 나에게 그 귀한 감동을 주시는 필립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내 삶을 바꾸어 놓았던 그 감동스런 성경말씀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읽을 수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지는 해의 그 아름다운 노을을 직접 바라 볼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소원이 없으리.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으리.
사랑하는 여러분 !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하지 마시고 지금 있는 것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 ! 그러면 지금부터 감사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십니까 ?
지금 여러분은 사랑할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십니까 ?
지금 여러분은 자신이 처한 모든 환경에 감사하십니까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십니까 ?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믿고 감사하십니까 ?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날 구원하신 主 감사"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 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에)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 꽃 감사, 장미 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하박국서입니다.
하박국은 主前600년쯤 유다 여호야김 왕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이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되어있는 짧은 성경이지만,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똑같이 공감하는데, 그것은 속이 후련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생기는 몇 가지 의문들이 있는데,
하박국 선지자는 바로 그것들을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께 질문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답을 얻어냅니다.
그러니까 1장은 질문이요, 2장은 응답이요, 3장은 찬양입니다.
하박국 선지자 시대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시절에 가장 큰 사건은 요시야 왕의 죽음이었습니다.
主前609년에 죽은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보기 드문
성군(聖君)이었습니다.
이방신과 우상을 타파하고 나라를 개혁했던 아주 열정 있는 왕이었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을 통해서 유다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신앙이 개혁되니 정치와 경제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나라 전체가 바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살 방법을 찾게 되고, 부자들도 나눔을 실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라 전체가 평안과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유다는 모처럼 평안과 기쁨이 가득한 나라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죽자, 유다는 곧바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종교가 부패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변합니다.
자기 의만 주장하고 다투기 바쁩니다.
정치적인 횡포와 경제적인 무질서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의로운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고통 속에 살게 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이 터졌습니다.
"하나님 !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 아니지 않습니까 ?"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힘있는 자들이 약한 자를 억압하는 세상을 보시고도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
그러자 이에 대해 하나님이 2장에서 응답을 하시는데, 그 응답이 동문서답입니다.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참을 수 없어서 더 심한 울분을 터뜨립니다.
"하나님 그게 또 무슨 말씀입니까 ?
왜 유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우리 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까 ?"
이에 대해, 하나님이 재차 응답을 하시자,
하박국 선지자는 오랜 묵상 끝에 그것을 깨닫고 드디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가 한 질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 ! 왜 침묵하십니까 ?"
둘째, "하나님 왜 하필이면 악인을 사용하십니까 ?"입니다.
사실 오늘 하박국 선지자의 울분은 괜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그들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지난10월 첫째 주일에 전했던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너희(이스라엘)가 내(하나님)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17:5-6)
또한 신명기28:10-13절에 보면, ".......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寶庫)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 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꿀송이처럼 단, 축복의 말씀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하박국 시대는 어떤 형편입니까 ?
약속한 축복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이방 나라에 망신을 당합니다. 이스라엘은 근동과 비교할 때,
가장 못 사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이렇게 울분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십니까 ?"
"하나님도 거짓말하십니까 ?"
"설사 우리 유다 민족이 잘못이 있다 칩시다.
그래도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침략자로 사는 갈대아 사람보다는 의롭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바벨론 사람을 일으켜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살육하고 빼앗고
재앙을 만나게 하십니까 ?"
"어째서 이렇게 하십니까 ?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
이처럼 수도 없이 많은 질문과 울분에 대해서
하나님은 너무도 간단하게 단 한 마디로 대답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
하박국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들은 갈대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너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생각은 너희하고는 달라. 깊고 넓기 때문에 너희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일들이
내 섭리 가운데 주어진 거라고 믿는 거야.
결국 끝에 이기는 사람은 너희란다. 바로 그것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져 !"
하박국은 처음에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하박국3:16절을 보면 하박국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한 마디로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더구나 유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
본문17절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가 무화과, 포도, 감람나무(올리브) 입니다.
그런데 그 중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도통 먹을 것이 없습니다.
양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도 없습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보면 완전 절망입니다. 끝장입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하박국은 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
하박국은 어떻게 그런 절망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까 ?
본문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은 항상 자기와 함께 하심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19절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자신의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끝까지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 자신에겐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히려 고통과 궁핍만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을 얻고 나니 하박국의 마음에는 놀라운 기쁨이 넘쳤습니다.
여러분 ! 우리 곁에 보이는 조건들은 시간이 흐르면 다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세상 것들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 된다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실망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울러 기쁨도 감사도 찬양도 다 잃고 말 것입니다. 전혀 행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지지도 않고, 변치도 않고,
영원한 것을 우리의 기쁨과 감사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뿐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믿어보십시오.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입니다.
명예나 돈을 믿어 보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십시오.
그러면 후회 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무엇 때문에 찬양합니까 ?
물질이 풍성하기 때문입니까 ?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기 때문입니까, 학교에 합격했기 때문입니까 ? 무엇 때문입니까 ?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이유들이 있을 때만 감사한다면,
만일 그 이유들이 사라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원망하겠습니까 ?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 자포자기하겠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신앙은 그 이상입니다.
외적인 이유들이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님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십시다.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기뻐하며 무엇 때문에 고민하며 살아왔습니까 ?
오늘 하박국 선지자처럼, 나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송명희 자매의 시를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나 아무 것 없어도)
나 아무 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 것 할 수 없으나, 주는 다 하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고, 나 모든 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지 모를 때, 주 나의 빛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