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10월26일, 히브리서11:8-19(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종교개혁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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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主人으로 영접한 당신은 영원한 천국의 主人입니다.
인생을 통해 좋은 것을 심어, 좋은 열매를 거두는 복의 사람이 되세요.
오늘은 491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10월31일,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정문에 총 95개의 논제(論題)를 붙이고,
그에 대해 토론할 것을 카톨릭 교회에 제안함으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작년 종교개혁주일에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이 외쳤던 세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첫째 핵심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당시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카톨릭교회가 규칙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분명했습니다.
성경을 일부 성직자들의 손에서 온 성도들의 것으로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성경을 마음껏 보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종교개혁가들의 노력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둘째 핵심은, Sola Gratia(오직 은혜로)입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통해서 주장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성경을 통해 깨달은 것은,
구원은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구입할 때,
연옥에 있는 부모가 천국으로 향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는 참으로 잘못된 속임수입니다.
종교개혁의 셋째 핵심은, Sola Fide(오직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은 우리가 의롭게 되어, 천국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는 것은, 삶의 모습을 보면 압니다.
즉, 우리들의 삶이, 믿음 가운데 살고 있느냐를 보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장이라고 불리 우는 유명한 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믿음의 조상들 중,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고,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
첫째, 약속을 믿고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信仰によって, アブラハムは, 自分が財産として受け維ぐことになる土地に
出て行くように召し出されると, これに服從し, 行き先も知らずに出發したのです."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나는 행동으로 응답했습니다.
창세기12:4,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더구나 아브라함은 약속이 더디 이루어져도,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본문9절,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 장막에
거하였으니" "信仰によって, アブラハムは他國に宿るようにして約束の地に住み
....... 幕屋に住みました."
여기에서 '우거(寓居)하여'(헬라어-파로케센)는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삶'을 말합니다.
즉 이것은 나그네처럼 기거한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하였습니다(사도행전7:5).
더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50여 년이 지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도 그녀를 위해 장사를 지낼 땅 한 평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그리고 손자 야곱도, 증손자 유다와 요셉도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자기들 것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상황, (즉 약속은 받았으되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 순종하며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더디 이루어지는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
본문13절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この人たちは皆, 信仰を抱いて死にました.
約束されたものを手に入れませんでしたが, はるかにそれを見て喜びの聲をあげ,"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성취된 것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지난10월5일 주일에, 출애굽기19:1-6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조상이 될 본향성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21세기의 청교도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곳곳에 수많은 교훈들과 축복들이 있지만,
저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그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셨음을 믿습니다.
청교도들은 그것, 즉 출애굽기19:1-6절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약속을 믿고, 그에 순종하여 살 때,
반드시 하나님의 그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도 청교도의 소망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상으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21세기의 청교도'의 소망 외에도,
주님 안에서 품은 다른 여러 가지의 소망들이 있습니다.
진학과 취업, 비자와 만남, 가정과 자녀, 부모, 사명과 믿음,
사업과 미래를 향한 소망들입니다.
부탁하건대,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처럼 기뻐하며 바라보십시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아무리 어렵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그것에 용기를 잃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이 행동하는 믿음을 가졌듯이
이제 벌떡 일어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이 믿음이야말로 아브라함과 가졌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잘 압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여정 속에서,
가나안을 미리 정탐하는 정탐꾼의 사명을 맡았었습니다.
40일 간, 가나안을 정탐한 후 다른 10명의 정탐꾼이 무엇이라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했습니까 ?
민수기13:32-33,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을 악평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기뻐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처지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그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약속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민수기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
이들 중 누가 약속의 성취를 누렸습니까 ?
약속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나아간 여호수아와 갈렙입니까 ?
아니면, 약속을 신뢰하지도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고,
기뻐하지도 못했던 열 명의 정탐꾼들입니까 ?
그렇습니다. 약속을 바라보고 기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렇듯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오늘 함께 하신 여러분들도 이처럼 약속의 성취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시험 중에도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17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여러분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한 가지는,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큰 민족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
그렇습니다. 땅과 후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지 50년이 지나도 땅 한 평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
그런데, 민족을 이루려면 또 한 가지 필요한 후손, 즉 자식도 25년이 지난,
아브라함이 100세가 돼서야 비로소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브라함을 애태우고 또 애태워 겨우 100살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즉,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칼로 죽여,
몸을 반쪽으로 쪼개 하나님께 불태워 제사드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몇 십 년 기다려 겨우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죽이라니요.
아니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래서야 민족이 되겠습니까 ?
땅도 없습니다. 후손도 적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을 이삭을 바쳤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치켜듭니다.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정한 아버지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 !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
본문18-19절을 보십시오. 답이 있습니다.
"저(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즉, 아브라함은 다른 아들이 아닌,
오직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혹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
우리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
한 가지, 두 가지 얻은 것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려놓지 못합니다. 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00배, 60배, 30배의 복이 없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그리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면류관을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 여호수아, 갈렙 등이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들도 용기를 냅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맙시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일 전혀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음성에 귀 기울입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 말씀을 묵상합시다.
빌립보서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요한복음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매일 매일 이어가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를 主人으로 영접한 당신은 영원한 천국의 主人입니다.
인생을 통해 좋은 것을 심어, 좋은 열매를 거두는 복의 사람이 되세요.
오늘은 491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517년10월31일,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정문에 총 95개의 논제(論題)를 붙이고,
그에 대해 토론할 것을 카톨릭 교회에 제안함으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작년 종교개혁주일에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이 외쳤던 세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첫째 핵심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입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당시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카톨릭교회가 규칙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분명했습니다.
성경을 일부 성직자들의 손에서 온 성도들의 것으로 되찾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들이 성경을 마음껏 보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종교개혁가들의 노력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둘째 핵심은, Sola Gratia(오직 은혜로)입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통해서 주장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성경을 통해 깨달은 것은,
구원은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구입할 때,
연옥에 있는 부모가 천국으로 향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이는 참으로 잘못된 속임수입니다.
종교개혁의 셋째 핵심은, Sola Fide(오직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은 우리가 의롭게 되어, 천국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느냐는 것은, 삶의 모습을 보면 압니다.
즉, 우리들의 삶이, 믿음 가운데 살고 있느냐를 보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장이라고 불리 우는 유명한 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이곳에는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믿음의 조상들 중,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고,
우리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자 !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
첫째, 약속을 믿고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信仰によって, アブラハムは, 自分が財産として受け維ぐことになる土地に
出て行くように召し出されると, これに服從し, 行き先も知らずに出發したのです."
그렇습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고향을 떠나는 행동으로 응답했습니다.
창세기12:4,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더구나 아브라함은 약속이 더디 이루어져도,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믿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본문9절,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 장막에
거하였으니" "信仰によって, アブラハムは他國に宿るようにして約束の地に住み
....... 幕屋に住みました."
여기에서 '우거(寓居)하여'(헬라어-파로케센)는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사는 삶'을 말합니다.
즉 이것은 나그네처럼 기거한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하였습니다(사도행전7:5).
더구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50여 년이 지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도 그녀를 위해 장사를 지낼 땅 한 평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그리고 손자 야곱도, 증손자 유다와 요셉도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자기들 것으로 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상황, (즉 약속은 받았으되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 순종하며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은
어떻게 더디 이루어지는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 있었을까요 ?
본문13절을 읽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この人たちは皆, 信仰を抱いて死にました.
約束されたものを手に入れませんでしたが, はるかにそれを見て喜びの聲をあげ,"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성취된 것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지난10월5일 주일에, 출애굽기19:1-6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조상이 될 본향성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21세기의 청교도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곳곳에 수많은 교훈들과 축복들이 있지만,
저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그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셨음을 믿습니다.
청교도들은 그것, 즉 출애굽기19:1-6절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약속을 믿고, 그에 순종하여 살 때,
반드시 하나님의 그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렇듯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도 청교도의 소망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상으로 나타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21세기의 청교도'의 소망 외에도,
주님 안에서 품은 다른 여러 가지의 소망들이 있습니다.
진학과 취업, 비자와 만남, 가정과 자녀, 부모, 사명과 믿음,
사업과 미래를 향한 소망들입니다.
부탁하건대,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처럼 기뻐하며 바라보십시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아무리 어렵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그것에 용기를 잃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이 행동하는 믿음을 가졌듯이
이제 벌떡 일어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이 믿음이야말로 아브라함과 가졌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잘 압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의 여정 속에서,
가나안을 미리 정탐하는 정탐꾼의 사명을 맡았었습니다.
40일 간, 가나안을 정탐한 후 다른 10명의 정탐꾼이 무엇이라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고했습니까 ?
민수기13:32-33,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을 악평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바라보지도 못했습니다. 기뻐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처지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그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약속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민수기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민수기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
이들 중 누가 약속의 성취를 누렸습니까 ?
약속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나아간 여호수아와 갈렙입니까 ?
아니면, 약속을 신뢰하지도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고,
기뻐하지도 못했던 열 명의 정탐꾼들입니까 ?
그렇습니다. 약속을 바라보고 기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렇듯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오늘 함께 하신 여러분들도 이처럼 약속의 성취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믿음은 시험 중에도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본문17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여러분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한 가지는,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큰 민족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
그렇습니다. 땅과 후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들어간 지 50년이 지나도 땅 한 평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
그런데, 민족을 이루려면 또 한 가지 필요한 후손, 즉 자식도 25년이 지난,
아브라함이 100세가 돼서야 비로소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브라함을 애태우고 또 애태워 겨우 100살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이번에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즉,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칼로 죽여,
몸을 반쪽으로 쪼개 하나님께 불태워 제사드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몇 십 년 기다려 겨우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죽이라니요.
아니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래서야 민족이 되겠습니까 ?
땅도 없습니다. 후손도 적습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들을 이삭을 바쳤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향해 칼을 치켜듭니다.
전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비정한 아버지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 !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
본문18-19절을 보십시오. 답이 있습니다.
"저(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즉, 아브라함은 다른 아들이 아닌,
오직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혹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
우리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
한 가지, 두 가지 얻은 것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려놓지 못합니다. 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00배, 60배, 30배의 복이 없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그리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면류관을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 여호수아, 갈렙 등이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들도 용기를 냅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맙시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일 전혀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잡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음성에 귀 기울입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 말씀을 묵상합시다.
빌립보서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요한복음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매일 매일 이어가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