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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2 2022년7월24일, 역대상 13:9-14(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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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5,897回 日時 22-07-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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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예수님은, 복음을 거절한 벳새다 가버나움의 교만한 자들보다,

  연약했던 제자들의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 청교도 농부는, [금식 기도]보다 [감사 기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우리에게, "산과 바다와 해와 달을 보면서 감사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라고 교훈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궤(契約の箱)]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언약궤(契約の箱)]라고도 하는 [하나님의 궤]는, B. C. 1450년경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막의 가장 중심인 지성소에 놓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궤 위에 임(臨)하셔서 제사장에게 자기 뜻을 전하셨습니다.

  예 ! 언약궤는 하나님이 임(臨)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실로라는 곳에 두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B. C. 1070년경,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이 패하자,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이 언약궤의 힘을 빌리고자 그것을 전쟁터로 옮깁니다.

  아마 그들은, 언약궤를 알라딘의 마술램프 정도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편 여러분,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간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

  예, 승리는커녕 전쟁에 대패하고 언약궤도 블레셋에 빼앗기고 맙니다.

  이스라엘 편에서 본다면, 참담한 패배였습니다.


  한편, 블레셋으로 옮겨진 언약궤는 블레셋의 도시들을 돕니다.

  돌고 싶어서 돈 것이 아니라, 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생각했던 언약궤를

  옮겨 놓은 곳마다 큰 재앙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독종(腫物)과 전염병을 퍼뜨렸고 무수한 사람들을 쓰러뜨렸습니다.

  결국, 블레셋의 지도자들은,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보냅니다.


  그런데 재앙은 이스라엘 땅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호기심으로 언약궤를 들여다본 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사무엘상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主はベテ・シェメシュの人たちを打たれた。主の箱の中を見たからである。

  主が民を激はげしく打たれたので、民は喪に服した。)


  이런 큰 일이 일어나니, 그 누구도 언약궤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언약궤는 우여곡절 끝에 기럇여아림 사람인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그곳에 70년 동안이나 방치(放置)되게 됩니다.

  그 70년 중에는, 사울이 왕이었던 40년이 포함됩니다.

  그렇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언약궤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상황이 180도 변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예 ! 다윗은 하나님의 궤(언약궤)를 늘 생각했고,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역대상13:1, 3-4.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ダビデは千人隊と百人隊の長たち、およびすべての隊長と協議し、)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私たちの神の箱を私たちのもとに持ち帰ろう。

    私たちは、サウルの時代には、これを顧みなかったから。)

  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すると全会衆は、そうしようと言った。このことが、

    すべての民の目には良いことに思えたからである。)


  다윗이 이 일을 얼마나 기뻐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지,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헌신할 사람들을, 무려 3만 명이나 뽑습니다.

  사무엘하6:1-2.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ダビデは再びイスラエルの精鋭三万をことごとく集めた。)

  2. .......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神の箱を運び上げようとして ..... 出かけた。神の箱は、ケルビムの上に

    座しておられる万軍の主の名でその名を呼ばれている。)


  이 일로 백성들도 기뻐했고,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빠졌습니다. 

  70년 동안 산속에 내동댕이쳐졌던 하나님의 언약궤는,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수레에 실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반의 총 책임은 지난 70년간 대(代)를 이어 언약궤를 맡아온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히오가 맡게 되었습니다.

  언약궤를 옮기는 행렬은 장관(壮観)을 이뤘고,

  축제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행렬이 기돈의 타작마당까지 왔을 때,

  그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수레를 끄는 소들이 갑자기 뛰었고, 그래서 궤가 기울어질까봐 웃사가 붙들었는데,

  바로 그 순간 웃사가 즉사(即死)하고 만 것입니다.


  이 일로 사람들은 너무 놀랐습니다.

  또한,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 웃사가 죽고 말았는가 ?! 그저 두려울 따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앞장서 주도한 다윗 왕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까지 옮겨 갈 열정과 용기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많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길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비나답은 언약궤를 70년간이나 모셨는데도 벌을 받고 말았고,

  오벧에돔은 단 석 달을 모셨는데도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70년과 석 달은 그 세월로 볼 때, 비교 자체가 되질 않습니다.

  문제는, 그 석 달이 70년 세월보다 더 값어치가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제 자신에 대해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했는데, 선형대수학(Linear Algebra)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시험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앉았는데,

  벡터공간에서의 행렬문제를 1시간 반 넘게 씨름해도 전혀 진전이 없는 겁니다.

  그때 후배가 들어왔는데 3분도 걸리지 않아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까 !

  저는 100분, 그 후배는 3분, 이게 비교가 됩니까 ?!

  아비나답과 그 아들 웃사 그리고 저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 


  그렇습니다. 해답은 간단합니다. 몰라서였습니다.

  일의 성패 여부는, 아느냐와 모르느냐가 그 분기점이 되기도 합니다.

  알면 길이 보이고 그래서 진행이 빠르고 뜻을 이루게 되지만,

  모르면 길이 안 보이고 진행은 더디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알면 기쁘고 즐겁고 복되지만, 모르면 힘들고 불평하고 포기합니다.

  오늘 말씀의 초점은 단연 오벧에돔입니다.

  오벧에돔은 열 두 지파 중 레위 지파 고핫 자손에 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레위지파는 평생 성전 일을 하면서 살도록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 안에도 세 자손이 있어서 자손 별로 섬길 일이 다 따로 있었습니다.

  그 중, 고핫 자손이 하는 일은 특별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 있을 때부터 성소 기구의 운반을 맡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벧에돔은 분명 아버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

  성소 기구와 언약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약궤를 지키고 관리하는 일은, 그들이 마음 깊이 간직한 사명이었습니다.

  오벧에돔과 고핫 자손들은 늘 언약궤를 마음에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그 오벧에돔이 어느 날, 언약궤를 옮긴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생각해 보면, 원래 언약궤는 자기 선조들에 의해서 모셔져야 했고,

  거기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또 나타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언약궤의 행방은 묘연했고, 따라서 영광도 떠나버렸고,

  그것은 자기들 고핫 자손에게는 평생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을 생각할 때, 오벧에돔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보기를 소망했던 그 언약궤가,

  자기와 가까운 곳으로 지나간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 마침내 왔습니다.

  언약궤의 행렬이 3만의 군사, 수천 명의 찬양대와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함께 점점 자기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윗 왕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언약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소 두 마리가 끄는, 화려하게 치장된 수레가 보였고,

  그 앞에는 두 사람이 오만하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오고 나서야 언약궤가 수레에 실려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오벧에돔은 매우 놀랐습니다.

  자기가 배운 바로는, 언약궤는 소와 수레로 옮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7:9. 고핫 자손에게는 <수레와 소를>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ケハテ族には何<台車と雄牛>も与えなかった。彼らの聖なるものに

  関わる奉仕は、肩に担いで運ぶことだったからである。)


  감격과 흥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의문과 불안이 몰려왔습니다.

 “이것이 아닌데,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닌데 .....”

  바로 그때, 소들이 뛰었고 언약궤를 붙들었던 웃사가 수레 아래로 나동그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죽고 말았습니다.

  찬양대의 찬양 소리는 멈췄고, 모여든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화려했던 수레는 치장과는 달리 한없이 초라해졌고,

  거기에 실려있는 언약궤는 그 순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오벧에돔의 마음에는 이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내가 모셔야 해 ! 우리 고핫 자손의 사명이잖아 ! 내가 저 언약궤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잖아 !”

  아마도 오벧에돔은 다윗 왕을 찾아가, 자신의 깨우침과 사명을 말했을 것이고,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해하던 다윗은, 오벧에돔에게 “그리하라”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한편, 그로부터 석 달이 못 되어, 하나님은 오벧에돔에게 큰 복을 주십니다.

  역대상26장에 보면, 오벧에돔의 자손들 62명 모두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었고,

  그들이 받은 복은 쌓을 곳이 없도록 넘쳐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그렇습니다. 우선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고 실력입니다.

  아비나답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으니 불의에 용감했고, 그래서 아들 웃사를 잃었습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것이 힘이 되었고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신앙이 연약해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몰라서 연약한 것이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무성의 때문에 연약한 것이며,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니까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わたしの民は知識がないので滅ぼされる。あなたが知識きを退けたので、

  わたしもあなたを退け、わたしの祭司としない。

  あなたがあなたの神のおしえを忘れたので、わたしもまた、あなたの子らを忘れる。)


  그래서, 호세아는 우리를 향해 외칩니다.

  호세아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私たちは知ろう。主を知ることを切に追い求めよう。)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얼마나 힘쓰셨습니까 ?

  혹시 이미 하나님을 다 안다고 착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

  아니면 하나님과 그 말씀은 쏙 빼놓고,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닙니까 ?

  사울처럼, 아미나답처럼, 웃사처럼 말입니다.


  둘째,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수레에 태워 보낼 때는 가만히 계셨던 하나님,

  또한, 70년을 산속에서 있을 때는 거미줄 떼느라 만지고, 청소하느라

  이리저리 굴려도 가만히 계시던 그 하나님이 왜 이번에는 참지 않으셨을까요 ?

  왜 하필, 다윗 앞에서, 오벧에돔 앞에서 이런 무서운 일을 벌이셨을까요 ?


  그 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섬김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헌신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통해서는 수레에 실려 와도 괜찮고, 아무 관심 없는 사울이나

  아비나답 같은 사람들에게는 70년이나 괄시(恝視)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침 뱉음을 당해도 괜찮고,

  따귀를 맞거나 주먹세례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다윗, 그리고 오벧에돔에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마저 나를 이렇게 대접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다윗 ! 오벧에돔 ! 너희들에게만큼은 내가 하나님이고 싶다.”

 “다윗 ! 오벧에돔 ! 너희들만큼은 나를 온전히 섬겨야 하는 것 아니니 ?”

  그래서 하나님이 안타까운 눈으로 바로 그들을 찾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때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 남들은 막살아도 놔두시면서, 저는 그렇게 살면 왜 안됩니까 ?”

 “남들은 다 편한데, 왜 하필 저에게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주십니까 ?”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 !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얘야 !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에게만큼은 높임을 받고 싶구나 !”

 “오벧에돔처럼 너만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단다 !”


  사랑하는 여러분 !

  왜 하필, 오벧에돔의 앞에서 소가 뛰고 법궤가 흔들립니까 ?

  바로 우리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앞에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피하지 말고 ‘아멘’으로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을 여러분의 의지대로 제어하려 들지 마십시오.

  본문9절.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ウザは手を伸ばして、箱を押さえた。牛がよろめいたからである。) 


  여러분 !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본문 어디에도 궤가 떨어지려고 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소는 말과 다릅니다. 말은 한 번 뛰면 앞발을 1m 이상 들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말이 수레를 끌고 있다면, 말이 놀랐을 때 수레에 실린 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는 아무리 놀라도 앞발 두 개를 한꺼번에 드는 경우는 별로 없을뿐더러,

  혹 있더라도 소의 생태 상 30cm 이상은 뛰어오를 수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여러분 ! 

  어느 바보가 그렇게 귀중한 궤를, 만약 흔들리면 이리저리 사방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장치를 안 했겠습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지금 웃사는 무엇을 한 것입니까 ?

  소가 뛰는 것을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본문9절의 붙들었다는 원어 ‘아하츠’라는 단어는 '소유'의 개념입니다.

  제어(컨트롤)했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을 자기가 만졌다는 의미입니다.

  궤가 마치 자기 것인 양, 떨어지지도 않을 궤를 괜히 한 번 만져서

  사람들 앞에 자기를 과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본문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すると、主の怒りがウザに向かって燃え上がり、彼を打った。

      彼が手を箱の上に伸ばしたからである。彼はその場で、神の前で死んだ。)


  그렇습니다. 웃사가 주인 노릇을 하려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그가 죽은 곳이 어디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입니다.

  자신이 제어하려 했던 궤 옆에서, 즉,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누구도 내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나를 제어(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11절에 보면, 다윗이 그곳의 이름을 ‘베레스 웃사’라고 했습니다.

  베레스는 ‘치다’라는 뜻이고, 웃사는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힘, 능력’이란 뜻을 가진 보통명사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두고자 하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

  그것을 더 신봉하는 자를 하나님이 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왜 그렇습니까 ?

  그런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 말씀을 비틀고 왜곡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조종하고 부리려는 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끌고 가는 것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지, 내 의지가 아닙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본문 마지막 절에 보면, 하나님은 석 달 만에도 인생을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벧에돔의 인생을, 오벧에돔 자녀들의 인생을 크게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면, 주님은 우리 인생도 크게 복되게 하십니다.

  70년 걸려서 안 됐던 일이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석 달에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본문14절.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神の箱は、オベデ・エドムの一家とともに、彼の家に三か月とどまった。)

  우리 온 가족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면 말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오늘 오벧에돔과 그 가족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 것은 불과 석 달이었습니다.

  물론 석 달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섬겼더니 석 달에 큰 복을 받은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믿고, 지금부터 석 달이라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겨 보십시다.

  물론 딱 석 달만 섬기고 마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부터 석 달이라도, 바르게 우리 하나님을 믿어 보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석 달 후에 서로들 돌아보고 간증해 보십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하나님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바른 섬김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계시며 늘 동행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를 소망하고, 바르게 알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오벧에돔 가정이 받은 놀라운 복과 은혜가 꼭 임하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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