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5월1일, 누가복음 1:76-79(아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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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먼저 죽어야 만이, 다시 사는 [현재의 부활]의 복을 누립니다.
성도님 ! 내가 죽어야, 내 주위의 것들이 살아납니다.
성도님 ! 또한, 나를 죽여야, 내 주위의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또한, 바울처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읍시다. 할렐루야 !
유대 왕 헤롯 때에, 사가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입니다.
그의 아내는 엘리사벳이었는데,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참으로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二人とも神の前に正しい人で、主のすべての命令と掟を落度なく行っていた。)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결혼한 후 한참 되어,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았음에도 말입니다.
누가복음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彼らには子がいなかった。エリサベツが不妊だったからである。
また、二人ともすでに年をとっていた。)
사가랴는 레위족속으로 제사장의 일을 감당했는데, 레위족속의 정년(停年)은
50세이므로, 사가랴의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추정됩니다.
민수기8:24-25.
24.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 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가서 복무하고 봉사할 것이요
(これはレビ人に関わることである。二十五歳以上の者は、
会見の天幕の奉仕の務めを果たさなければならない。)
25.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しかし、五十歳からは奉仕の務めから退き、もう奉仕してはならない。)
한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는, 비록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어도,
자녀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사가랴에게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13-16.
13.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恐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ザカリヤ。あなたの願いが聞き入れられたのです。
あなたの妻エリサベツは、あなたに男の子を産みます。その名をヨハネとつけなさい。)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その子はあなたにとって、あふれるばかりの喜びとなり、多くの人もその誕生を喜びます。)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その子は主の御前に大いなる者となるからです。
....... まだ母の胎にいるときから聖霊に満たされ、)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イスラエルの子らの多くを、彼らの神である主に立ち返らせます。)
예 ! 사가랴의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 그로부터 10개월 후, 엘리사벳이 마침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름을 요한이라 하였습니다.
요한의 원문 헬라어는 [요안넨]이고, 히브리어는 [예호하난]인데,
그 뜻은 [자비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태어난 지 8일 후, 사가랴가 아들에게 할례(割禮)를 행한 후,
성령 충만하여 아들 요한을 축복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사가랴처럼 자녀를 축복합시다.
그리하여, 그 축복(祝福)한 대로, 우리 자녀들을 통해 응답 받읍시다.
자 ! 사가랴는 요한을 어떻게 축복했을까요 ?!
첫째,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했습니다.
누가복음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
(ほ<誉>むべきかな、イスラエルの神、主。)
그렇습니다. 사가랴는 아들 요한을 축복하는 서두(序頭)에,
두 번(눅1:64, 68)에 걸쳐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립니다.
여러분 ! 사가랴는 무엇 때문에 감사 찬송을 드렸을까요 ?!
물론입니다. 자녀를 주신 것에 감사하여,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神は彼らを祝福された。神は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는 것은 축복과 동시에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사가랴는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의 찬송을 드리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 자녀에게 감사 찬송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감사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 또한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무자식 상팔자", "자식이 원수"입니다.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에는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나쁜 말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도리어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69:30-31.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歌をもって私は神の御名をほめたたえ感謝をもって私は神をあがめます。)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それは雄牛にまさって主に喜ばれます。角が生え, ひづめが割れた若い牛にまさって。)
자 ! 우리 함께 본향의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시다.
제목 :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주를 향해 외치라
기뻐하라 나의 영혼아, 감사하라 손을 들고
송축하라 나의 영혼아 (아멘)
둘째, 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했습니다.
본문76절. 이 아이여 .......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幼子よ、....... 主の御前を先立って行き、その道を備え、)
그렇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에게 [주인공]이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요한은 장성한 후,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복음3:15-16.
15.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みなヨハネのことを、もしかするとこの方がキリストではないか、と心の中で考えていた。)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そこでヨハネは皆に向かって言った。「私よりも力のある方が来られます。
私はその方の履き物のひもを解く資格もありません。)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또한, 우리의 자녀)가,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와 우리 자녀 인생의 주인공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우리와 우리 자녀의 인생이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14:7-8.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私たちの中でだれ一人、自分のために生きている人はなく、
自分のために死ぬ人もいないからです。)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私たちは、生きるとすれば主のために生き、死ぬとすれば主のために死にます。
ですから、生きるにしても、死ぬにしても、私たちは主のものです。)
고린도전서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あなたがたは、食べるにも飲むにも、何をするにも、すべて神の栄光を現すためにしなさい。)
그리고 사가랴의 아들 요한도 재차(再次)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한복음3:30. 그<예수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あの方は盛んになり、私は衰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높이는 인생을 사는 자녀로 양육하는,
본향의 모든 부모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이웃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축복했습니다.
본문77절.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罪の赦しによる救いについて、神の民に、知識を与える。)
그렇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에게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축복했습니다.
캐나다의 조지 프랜치라는 소년은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체육 시간에는, 늘 운동장(校庭) 구석에 앉아,
친구들이 하는 수업을 우두거니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된 후 맞은 첫 체육 시간, 그날도 조지는 운동장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부러운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로 오신 체육 선생님이 조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조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이에 조지는 소아마비 걸린 다리를 가리키면서, 자기는 지금까지
체육 시간에는 늘 운동장 한쪽 구석에 앉아만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체육 선생님이 조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지 ! 네가 다리가 불편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뛰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되겠니 ?!"
“당장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와 !”
조지 프랜치는 선생님의 강경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체육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4학년 학년 말(學年 末)이 되었습니다.
조지의 학교에는 매년 학년 말에,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회의 대미(大尾)는 약 3km 되는 마을 한 바퀴를 돌아오는 마라톤이었습니다.
체육 선생님은 조지 프랜치에게 마라톤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러자 조지는 선생님에게 강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저는 안 돼요 ! 저의 이 다리로는 절대로 장거리는 못 뛰어요 !”
이에 선생님이 말씀합니다.
“안 돼 ! 너도 우리 학교 학생이잖아 ! 달려야 돼 ! 너도 충분히 달릴 수 있어 !”
조지는 선생님의 강한 말씀에 떼밀려, 결국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운동회의 마지막 시간, 운동회의 꽃, 어린이 마라톤 대회에 351명의 전교생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4년 만에 이루어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 조지는 끝까지 완주(完走)했을까요 ? 못했을까요 ?!
물론입니다. 완주했습니다. 더구나 350등으로요 !!!
조지 프랜치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니 너무 기뻐서 환호를 질렀습니다.
첫째는 끝까지 완주한 것이 기뻤고, 둘째는 꼴찌를 하지 않은 것이 기뻤습니다.
조지는 그 날 이후부터, 달리기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시간만 있으면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운동도 두려움이 물러가고, 점점 재미있어졌습니다.
이제 조지에게는 소아마비 다리가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조지는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열심히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해군사관학교에 당당히 합격하여, 입학했습니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해군 장교로 복무(服務)하던 어느 해,
조지는 휴가를 얻어, 오랜만에 자기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때마침 고향에서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옛날을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조지가 앉은 자리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운동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지가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그 운동회 말입니다.
그런데 조지는, 그 동창회에서 자기가 350등 했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 운동회가 열리는 날 아침, 그 마을 교회의 목사님은
자기 아들 윌리엄(조지의 같은 반 친구)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 윌리엄아, 오늘 운동회 때 마라톤 대회가 있지 ?!
그런데 그 마라톤 대회에, 다리가 불편한 조지도 처음 참여한다는구나 !
조지는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처럼 뛰기가 힘들 텐데,
네가 조지의 바로 뒤에서 뛰면서 그를 응원하며 도와주지 않을래 ?!]
조지의 같은 반 친구 윌리엄은, 아빠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윌리엄은, 마라톤 내내 조지의 바로 뒤에서, 조지를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달렸습니다.
그리고 조지가 무사히 골인한 후, 자신도 바로 뒤따라 골인한 것이었습니다.
한 친구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조지는, 친구들에게 윌리엄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럼, 윌리엄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니 ?!”
한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윌리엄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어 !”
휴가를 마치고 군대로 복귀한 조지는, 군목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조지는 목사님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한 조지 프랜치 목사님은, 캐나다 토론토의
빅토리아 로이스 장로교회에서 목회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배 때 본인이 직접 간증을 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리고 조지 프랜치 목사님과
그의 친구 윌리엄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それぞれ、自分のことだけでなく、ほかの人のことも顧みな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또한, 우리의 자녀)는, 이웃을 섬기고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사셨던 삶이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야 만이, 우리와 우리 자녀의 인생이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 자녀들이 이웃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축복합시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도 사가랴처럼 자녀를 축복합시다.
그리하여, 그 축복(祝福)한 대로, 우리 자녀들을 통해 응답을 받읍시다.
첫째,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합시다.
둘째, 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축복합시다.
셋째, 이웃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축복합시다.
이 모든 축복이, 우리 자녀들에게 풍성하게 이루어지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