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8월6일, 누가복음 18:9-14 (무엇이 기독교인가 ?!) - (2) > 主日説教原稿

本文に飛ぶ
  • 日本語日本語 韓国語한글
사이트 내 전체검색

主日説教原稿

2023 2023년8월6일, 누가복음 18:9-14 (무엇이 기독교인가 ?!) - (2)

ページ情報

profile_image
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5,732回 日時 23-08-12 21:55

本文

  지난 주일의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기독교(基督敎) 즉,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처럼 사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罪人)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정죄(定罪) 받아 마땅한 우리를, 정죄(定罪) 받지 않을 자리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정죄(定罪)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그리스도교의 절대 기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 첫 번째가 무엇이었지요 ?!

  예 ! 금방 우리가 고백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정죄(定罪)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은 죄를 범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8:11.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あなたにさばきを下さない。行きなさい。

  これからは、決して罪を犯してはなりません。)


  누가복음6: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

 (裁い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さばかれません。

  人を不義に定めてはいけません。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不義に定められません。

  赦し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赦されます。)


  자 ! 그렇다면,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두 번째 기준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유명한 비유 중 한 가지입니다.

  이른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비유의 서두에 보면,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향해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지가 나타납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

  본문9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自分は正しいと確信していて、

  ほかの人々を見下している人たちに、イエスはこのようなたとえを話された。)


  그렇습니다. 이 비유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른바,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자를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기독교)의 두 번째 기준은 바로 이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교는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여러분 !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먼저 받은 민족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등의 말씀을 가장 먼저 받지 않았습니까 !?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오시게 한 민족입니다.

  유대인인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습니까 !?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맞이한 민족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다가 예수님을 경배한 목자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 ! 너무나 많은 유대인들이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를, 하나님께서 로마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로마서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彼らは神の義を知らずに、自らの義を立てようとして、

  神の義に従わなかっ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義)]가 아닌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려고만 했고, 그 결과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참고> [하나님의 의(義)]에 대한 말씀은,

  오는 8월 27일(主日)에 구체적으로 말씀을 전할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큰 죄악(罪惡)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오늘 본문을 통해,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낸 자(바리새인,

  혹 우리)들의 악(惡)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


  1>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본문9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自分は正しいと確信していて、

  ほかの人々を見下している人たちに、イエスはこのようなたとえを話された。)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행동은

  전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틀렸다고 하며, 멸시까지 합니다.

  예 ! 자기 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중세 15세기의 유명한 설교자 지-롤라노 사보나롤라가, 얼마 동안,

  어느 교회로 보냄을 받아, 설교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뜰을 산책하던 중, 마리아상 앞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그 석상(石像)을 우러러보며 기도하는 한 노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튿날도 산책하다 보니, 어제와 같은 시간에 또 그 노부인이

  그 마리아 석상(石像)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 후 사보나롤라는 큰 관심을 가지고 그 노부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봄, 여름, 가을, 겨울 한결같이

  늘 같은 시각에 와서 변함없이 그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보나롤라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귀한 신앙을 가진 분이로구나 !”


  그러던 어느 날, 사보나롤라는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어느 수도사와 함께, 교회 뜰을 산책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그 노부인은 그 石像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보나롤라가 그 수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수도사님 ! 제가 저 부인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습니다.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폭풍우가 몰아쳐도

  항상 같은 시간에 와서 저렇게 기도를 한단 말입니다.

  저 노부인의 신앙심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


  그랬더니 옆에 있던 그 수도사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아직 모르셨습니까 ?!”

 “수십 년 전, 이 교회에 저 마리아 석상(石像)을 처음 조각할 때,

  당시 조각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이 바로 저 부인이었습니다.”

 “그 후 저 부인은, 그만 크게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자기의 의(自分の義)만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며, 잘난 체를 했는지 ..!!!”

 “결국, 사람들은 저 마리아상에서 하나둘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저 부인은, 자기만 옳았습니다. 다른 이는 다 틀렸고 말입니다.”

 “아마 저 부인은 지금,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높이며,

  자기를 숭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절대화합니다.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사람은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오직 나 혼자만 옳습니다.

  여러분 !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나님이 매우 소중히 여기심을 잊지 맙시다. 


  자 ! 옆에 계신 성도들을 축복합시다.(강상구 곡, 당신은 소중한 사람)

   [당신은 소중한 사람, 당신은 존귀한 사람

   이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

   그런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 당신을 축복해요

   사랑받기에 합당한 당신을,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2>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며, 이웃과 나 사이에 벽을 쌓았습니다.


  본문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パリサイ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んな祈りをした。『神よ。

  私がほかの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淫する者でないこと、

  あるいは、この取税人のようで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


  자기 의를 드러내는 바리새인은, 기도하는 자리까지 구별해서, 따로 서서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혼자만 잘났습니다.

  더구나 금방 읽은 본문 말씀에, 두 번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입니까 ? 그렇습니다. ‘같지 아니하고(でないこと)’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나는 그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기도한 바리새인이 정말 그렇게 의롭습니까 ?


  아니요 ! 예수님께서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人々の前で天の御国を

  閉ざしている。おまえたち自身も入らず、入ろうとしている人々も入らせない。)


  마태복음23:27-28.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白く塗った墓のようなものだ。

      外側は美しく見えても、内側は死人の骨やあらゆる汚れでいっぱいだ。)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同じように、おまえたちも外側は人に正しく見えても、内側は偽善と不法でいっぱいだ。)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조상 아담이 범죄해 타락할 때, 우리는 아담 안에서 함께 타락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죄인이고, 저 사람도 죄인이며,

  저 사람 안에 있는 부패함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혹시, 이웃의 눈 속의 작은 티는 보면서, 내 눈 안의 커다란 들보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 속에는 교만한 마음과 자기 의를 드러내는 나쁜 마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안에 있는 교만한 마음을 퇴치(退治)합시다.

  왜냐하면, 교만한 마음이 가정에 있으면, 가정 전체가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우리 모임 안에 있으면, 우리 모임 전체가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마음의 공통점은, 본문의 바리새인과 같이 벽을 쌓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자신 사이에 높은 벽을 쌓습니다.

  성도들과 자신 사이에 장벽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도리어 비방하며 비판합니다.

  사랑이 없다고요.


  그러나 여러분 !

  겸손한 마음은 이웃과 자신 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람 사이를 연결합니다.

  자신을 버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겸손하셨습니다.

  항상 낮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다른 이를 섬기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듯이,

  우리도 겸손히 섬겨, 다리 놓는 사람이 됩시다.


  3>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며, 하나님을 속이려 했습니다.


  본문11-12절.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パリサイ人は立って、心の中でこんな祈りをした。『神よ。私がほかの

      人たちのように、奪い取る者、不正な者、姦淫する者でないこと、

      あるいは、この取税人のようでないことを感謝します。)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私は週に二度断食し、自分が得ているすべてのものから、十分の一を献げております。』)


  한글 성경에는 본문에 ‘나’라는 주어가 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훨씬 더 많이 ‘나’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여러분 ! 생각해 보십시오 !

  이것이 기도입니까 ? 아니면 자기 자랑입니까 ?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기도 같지만, 바리새인의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기 자랑, 자기 칭찬에 몰두하고 있는 꼴불견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기도에 있어서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 죄인이 주 앞에 왔습니다.

  하나님 ! 아시지 않습니까 ?

  하나님 !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내 속에 있는 부조리,

  내가 숨기고 있었던 내 속의 죄악과 허물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도 응답하시고, 기도하는 사람도 변화의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도 있습니다.

  그 기도는, 자기의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변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를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여러분 !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上達)되겠습니까 ?!


  어떤 신실한 여인이 결혼을 앞두고, 새신랑과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 ! 매일 잠들기 전에, 꼭 둘이서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하고 자자 !”

  새신랑은 믿음은 연약했지만, 어쨌든 신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손을 꼭 잡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아내가 기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남편도 몇 마디 기도하고, 그렇게 둘이 손잡고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신랑이 술에 만취해서 들어 왔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그래도 여보 ! 오늘도 약속대로 기도하고 잡시다.”

  아내가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 보시다시피 오늘 밤은 남편이 만취했습니다.

  술에 취한 우리 남편을, 용서해 주세요”

  그랬더니 이 남편이 술김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보, 주님에게 술 취했다고 하면 어떡해.

  아프다고 그래, 그냥 아프다고 그러라니까 !”


  오늘 본문의 교만한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있던 세리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


  본문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一方、取税人は遠く離れて立ち、目を天に向けようともせず、自分の胸を

  たたいて言った。『神様、罪人の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내리신 결론은,

 “바로 그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입니다.

  본문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義と認められて家に帰ったのは、

  あのパリサイ人ではなく、この人です。だれでも

  自分を高くする者は低くされ、自分を低くする者は高くされるのです。)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겸손히 이렇게 기도합시다.

 “은혜로우신 주님 !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의뢰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

 “마땅히 지옥 불에 떨어질, 참으로 악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

  지금은 부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계신 주님 !

  주님의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겸손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두 주에 걸쳐, 그리스도교(기독교)의 기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우리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정죄(定罪)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罪人)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정죄(定罪) 받아 마땅한 우리를, 정죄(定罪) 받지 않을 자리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이웃과 믿음의 동역자를 정죄하지 맙시다.


  둘째, 그리스도교는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큰 죄악(罪惡)입니다.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멸시합니다.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사람은, 이웃과 자신 사이에 벽을 쌓습니다.

  [자기의(自分の義)]를 드러내는 사람은, 하나님을 속이려 합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회개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죽음과 지옥 불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들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천국을 주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소망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에 은혜를 더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항상 겸손합시다.

  또한, 교만이 우리 속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항상 우리 마음을 살핍시다.

  교만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부숴버립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コメント一覧

Total 946件 8 ページ
  • RSS
主日説教原稿 リスト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照会 日付
806 2023 박성철 5622 23-01-28
805 2023 박성철 6031 23-01-21
804 2023 박성철 9246 23-01-14
803 2023 박성철 6210 23-01-07
802 2023 박성철 6062 23-01-07
801 2022 박성철 5832 22-12-31
800 2022 박성철 23361 22-12-24
799 2022 박성철 15394 22-12-17
798 2022 박성철 6188 22-12-10
797 2022 박성철 6042 22-12-03
796 2022 박성철 5959 22-11-26
795 2022 박성철 6153 22-11-19
794 2022 박성철 14790 22-11-12
793 2022 박성철 5987 22-11-05
792 2022 박성철 5377 22-10-29
791 2022 박성철 6207 22-10-22
790 2022 박성철 6113 22-10-15
789 2022 박성철 7425 22-10-08
788 2022 박성철 6348 22-10-01
787 2022 박성철 6308 22-09-24

検索

会員ログイン

新規会員登録へ

サイト情報

〒132-0024 東京都江戸川区一之江2丁目6-1 1F
1F 6-1 Ichinoe2 Chome, Edogawa-Ku, Tokyo, Japan
phone : 090-1501-8465

アクセス者集計

今日
3,555
昨日
4,126
最大
5,398
全体
1,959,783
Copyright © 本郷宣教教会.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