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12월11일, 누가복음 3:4-6(주의 길을 준비하며 오실 길을 곧게 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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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메시지를 잠시 되돌아보겠습니다.
여러분, 대강절(待降節, Advent, アドベント)은, 어떤 절기(節氣)인가요 ?!
첫째, 성탄절을 앞두고,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수님을 우리 마음과 삶의 중심에 모셔 들이는 절기입니다.
둘째,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첫째, 깊이 파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는 [신앙적 무관심], [말씀의 무관심]입니다.
올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의 골짜기를 [순종]으로 메웁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망의 골짜기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칩시다.
둘째, 산(山)과 같이 높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神は高ぶる人には敵対し、へりくだった人には恵みを与える。)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신앙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로, 다른 사람의 헌신과 봉사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우리의 기도 생활과 헌금 생활로,
다른 사람의 기도 생활과 헌금 생활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오늘도 지난 주일에 이어서,
[주의 길을 준비하며, 오실 길을 곧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세례 요한과 관련된 말씀을 의지해 전하겠습니다.
셋째, 굽혀진 것을 곧게 하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본문5절. 굽은 것이 곧아지고 (曲がったところはまっすぐになり、)
이 말씀에서 [굽은]의 원문 헬라어는 [스콜리오스]입니다.
그 뜻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1> (사람의 몸<體>을 말할 때)는, [굽은, 구부러진] 것을 말합니다.
2> (사람의 마음<心>을 말할 때)는, [비뚤어진, 꼬인]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이렇게 설교합니다.
사도행전2:38, 40.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それぞれ罪を赦していただくために、悔い改めて、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
バプテスマを受けなさい。この曲がった時代から救われなさい。)
이 말씀에서 [패역한]이 바로 [스콜리오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질 무렵, 당시 유대인들은 [패역한(스콜리오스)],
즉 '마음이 비뚤어지고 꼬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당시 유대인들은, 어떻게 마음이 꼬였을까요 ?!
사도행전2장의 베드로의 설교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2:22-23.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イスラエルの皆さん、これらのことばを聞いてください。神はナザレ人イエスによって、
あなたがたの間で力あるわざと不思議としるしを行ない、それによって、
あなたがたにこの方を証しされました。それは、あなたがた自身がご承知のことです。)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도다>
(神が定めた計画と神の予知によって引き渡されたこのイエスを、
あなたがたは律法を持たない人々の手によって十字架につけて殺したのです。)
그렇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이 비뚤어지고 꼬여,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더구나 여러분 !
그들이 죽인 예수님은, 사실은 그들이 간절히 기다렸던 메시아였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人の心は何よりもねじ曲がっている。それは癒やしがたい。)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보다 꼬이고 부패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의 마음이 꼬이고 비뚤어져 있으면,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눈도, 우리의 말도, 우리의 행동도 꼬이고 비뚤어집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오해하여, 마음이 꼬이고 비뚤어졌습니다.
여러분 ! 마음이 꼬인 가인을 찾아온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였지요 ?!
창세기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もしあなたが良いことをしているのなら、受け入れられる。
しかし、もし良いことをしていないのであれば、戸口で罪が待ち伏せている。
罪はあなたを恋い慕うが、あなたはそれを治めなければならない。)
그렇습니다. 죄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기에서 [죄]의 원문 히브리어는 [하타트]인데,
이 말씀에서 [하타트]는 죄의 근원인 사탄을 의미합니다.
예 ! 마음이 꼬인 가인을 찾아온 자는 [사탄]이었습니다.
한편 여러분 !
가인을 찾아온 사탄이, 가인 마음속에 들어가 가인을 지배하기 시작하니까,
가인이 어떤 일을 하고 말았습니까 ?!
예 !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마음이 꼬여있고 비뚤어져 있으면, 우리는 사탄의 밥이 되고 말고,
그 결과 우리는 악한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혹 우리 마음이 꼬여있고 비뚤어져 있으면,
성령의 기름으로 꼬인 곳을 풀어야 하고,
성령의 불로 비뚤어진 것은 곧게 펴야 합니다.
한국의 남궁정부 씨(82세)를 소개합니다.
남궁 씨는 신발(靴)을 만들던 분이었는데, 그의 나이 55세였던 1995년 11월,
인파로 가득한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그만 사람들에게 떠밀려,
전철이 들어오는 선로(線路)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정신을 잃었던 남궁 씨가 깨어나 보니, 몸의 오른쪽이 허전했습니다.
예 ! 어깨(肩) 밑의 오른팔이 전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철과 부딪쳐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팔을 모두 잃은 것이었습니다.
의수(義手)도 달수 없을 정도로 전부를요.
남궁 씨는 너무나 화가 났고, 또 정말로 괴로웠습니다.
커다란 절망감(絶望感)이 온 마음을 뒤덮었습니다.
마음이 꼬이고 모든 생각이 비뚤어져 갔습니다.
55년 동안 자신과 함께했던 오른팔을 잃었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여러분 ! 남궁 씨도 가인처럼 사탄의 밥이 되고 말았을까요 ?!
아니요, 남궁정부 씨는 가인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몇 날 후, 남궁 씨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나는 오른팔만 잃은 것이다. 나에게는 왼팔도 있고,
양쪽 발과 다른 몸, 무엇보다도 생명이 있지 않은가 !!!’
남궁 씨가 그런 생각을 하던 바로 그때,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구를 만드는 어떤 분이,
남궁 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장애인들을 위한 구두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요 ?!”
남궁 씨는 그 한마디의 말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 구두를 만들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양발로 가죽을 잡고, 한 손으로 구두 가죽을 자르다가,
발이 찔리고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궁 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장애인을 위해, 특수한 구두를 만들어 갔습니다.
발이 굽은 소아마비 환자의 구두, 발가락이 몇 개 부족하거나
전혀 없는 장애인의 구두, 양발의 크기가 다른 구두 등등.
발이 굽거나 발에 장애가 있어서, 평생 단 한 번도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남궁 씨를 통해 구두를 신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들 중에는, 자신의 발로 인해 굽고 꼬였던 마음들이,
남궁 씨가 만든 구두를 신은 후, 치유 받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남궁 씨가 특별히 만든 구두가 5만 켤레나 되었습니다.
다시 몇 년 후, 남궁 씨의 소문(즉, 발로 인해 꼬인 마음들이, 특수한 구두를 통해
회복되었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어느 날 남궁 씨의 이야기가 MBC, SBS, KBS 뉴스에서까지 소개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남은 인생을, 굽고 꼬인 가운데 살아갈 뻔했던 남궁 씨가, 자신의 마음을 곧게 펴니까,
도리어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멋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이 대강절 기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마음을 곧게 폅시다.
그리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는 삶을 삽시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합시다.
넷째,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본문5절.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険しい道は平らになる。)
이 말씀에서 [험한]의 원문 헬라어는 [트라케이아이]입니다.
그 뜻은, [거친, 돌이 많은] 등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평탄하여]의 원문 헬라어는 [레이오스]입니다.
그 뜻은, [매끄러운, 부드러운, 평평한, 고운, 저항이 없는] 등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칠고 험한 마음을, 부드럽고 고운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의 마음이 어떨 때 거칠고 험합니까 ?!
이삭의 아들인 에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エサウは、父がヤコブを祝福した祝福のことで、ヤコブを恨んだ。
それでエサウは心の中で言った。「弟ヤコブを殺してやろう。」)
예 !
무엇인가에 분노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 마음은 거칠고 험합니다.
더구나 여러분 !
우리가 거칠고 험한 마음으로 예배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5:23-24.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ですから、祭壇の上にささげ物を献げようとしているときに、
兄弟が自分を恨んでいることを思い出したなら、)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ささげ物はそこに、祭壇の前に置き、行って、まずあなたの兄弟と仲直りをしなさい。
それから戻って、そのささげ物を献げなさい。)
그렇습니다.
용서한 가운데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입니다.
히틀러와 나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한 폴란드와 폴란드 교회에,
독일 교회의 신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독일인 신자들이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빕니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있고 난 뒤, 한 폴란드 신자가 대답했습니다.
"수도 바르샤바의 돌들은 아직도 검붉은 피로 얼룩져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과 당신들의 나라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결국, 용서의 악수 없이 만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였으므로 주기도문으로 모임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을 함께 암송하던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부분에서 폴란드 교회 신자들의 기도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폴란드 교회 신자들의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잠시 후, 한 폴란드 신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아직 히틀러와 나치를 용서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곧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폴란드 교회와 성도들은, 히틀러와 독일을 완전히 용서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 용서에 관한 말씀을 주실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 잘 모르셔서 그럽니다. 그 사람 한번 만나보십시오.
용서해 줄 만한 사람이 있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모르고 말씀하셨겠습니까 ?
아니요 ! 우리에게 용서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에게 받은 대로 갚아 줍니다.
나에게 잘해 주면, 나도 잘 해주고, 나에게 못하면, 나도 못 합니다.
사실이 이런데,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후,
얼굴색 바꾸고 와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가 가능합니까 ?
물론 어렵지요.
특히 배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
어렵습니다.
용서 못 하는 이유를 말하라 하면,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용서받기에 합당한 사람만 용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18:21-22.
21.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主よ。兄弟が私に対して罪を犯した場合、何回赦すべきでしょうか。七回まででしょうか。)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は七回までとは言いません。七回を七十倍するまで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이웃의 어떤 잘못이라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그것은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지옥에 던져져야 할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용서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아무 조건도 없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태산과 같은 죄를 용서받는 우리가, 겨우 한 움큼밖에 안 되는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신학자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신학자 본 훼퍼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특히 히틀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교훈이다.
그래서, 용서는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분하는 선(線)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あなたがたの父があわれみ深いように、あなたがたも、あわれみ深くなりなさい。)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강절(待降節, Advent, アドベント)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節氣)입니다.
첫째, 깊이 파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는 [신앙적 무관심], [말씀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둘째, 산(山)과 같이 높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우리의 신앙과 봉사로, 다른 사람의 신앙과 봉사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셋째, 굽혀진 것을 곧게 하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人の心は何よりもねじ曲がっている。それは癒やしがたい。)
성령의 기름으로 꼬인 곳을 풀고, 성령의 불로 비뚤어진 것은 곧게 폅시다.
넷째, 험한 길을 평탄하게 하면서, 대강절을 보냅시다.
미워하는 마음, 용서하지 못 하는 마음이 가장 험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합시다.
이 모든 것을 행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온전히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